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3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34화(135/266)
134. 리그 개막 (5)
현대 축구에 이르러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어디일까.
“그야, 풀백 아니겠어요?”
스탠리는 당당히 말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2선 윙어였고, 커리어 내내 측면과 중앙으로 공격을 오갔던 스탠리를 생각하면 변화한 태도는 꽤 흥미로웠다.
사실 스탠리가 뻔뻔하게 태도를 바꿨다기보단, 정론이다.
“스탠리 말이 맞긴 해. 유진.”
“사실 우리 전술과 시스템에서, 스탠리가 가장 고생이 많긴 하잖습니까. 허허.”
코치진인 막스와 알롭도 같은 의견이었다.
현대 축구를 대변하는 포지션이라는 것엔 왈가왈부가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팀에선 풀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자리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스탠리는 자부심을 품을 만했다.
전력분석팀장, 자일슨이 뿔테 안경을 올리며 정확한 근거를 제시했다.
“최근 3경기에서 평균 13.3km의 활동량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리그 원에서 일반적으로 9km에서 11km가 평균임을 고려하면, 눈에 확 띌 정도로 대단한 수치죠.”
“체력 훈련이 충분히 돼서 선수들의 체력 상태가 양호함을 넘어 몹시 훌륭합니다. 덕택에 팀 평균 활동량이 11.7km가 되긴 합니다만.”
“스탠리가 평균을 올려 주고 있네요.”
“팀 평균 압박 횟수는 28.8회. 스탠리는 홀로 52.1회의 압박 강도를 보여 주고 있고…….”
“다른 선수들도 다 엄청난 헌신을 보여 주지만, 스탠리는 차원이 달라요.”
“현재 전방 압박을 강하게 걸면서 들어가는 팀의 성향을 생각하면, 스탠리 덕분이죠.”
공격과 수비, 사실상 경기장 전체를 누비는 그 플레이는 오로지 풀백과 윙백이기에 희생을 요구해야만 하는 포지션 덕분이었다.
“저번 시즌 전반기도 우리는 강했지만, 후반기는 엄청났죠. 패배를 몰랐을 정도니, 허허. 그 모든 변화를 감독님이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까.”
“제 얼굴에 금칠하려고 꺼낸 얘기는 아닙니다.”
나는 담담히 알롭의 웃음을 끊었다.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풀백이고, 스탠리의 포지션 변경을 끌어냈으니, 이 모든 것이 내 덕이다-라는 얘기는 썩 듣기 부담스러운 소리는 아니나, 공치사나 하려고 꺼낸 얘기는 아니다.
“풀백 중요합니다. 현대 축구란 좋은 풀백을 사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요.”
“어쩐지 감독님은 다른 의견이…….”
“예. 우리 팀에선 아닙니다.”
“……!”
순간 파고든 침묵에서 나는 담담히 말했다.
“풀백의 중요성, 현대 축구의 핵심, 전술을 풀어가는 열쇠……같은 말은 우리 팀에서 말하기엔 너무 앞서 나간 얘기입니다.”
막스가 잠시 당황하곤 무어라 반박하려던 차에 손을 들어 그 말을 끊었다.
“스탠리의 노력과 헌신, 투지를 깎아내리는 건 아닙니다. 다만, 생각해 보죠. 스탠리가 없었다고 우리가 지난 세 경기에서 졌을까요?”
“그야 당연히…….”
곧장 대답하려던 말이 끝마쳐지지 않는다. 알롭은 찌푸린 얼굴로, 막스는 진지한 얼굴로, 그리고 자일슨은 자신이 분석해 온 보고서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기다렸다.
그들이 무언가 깨닫기까지.
“…….”
그리고 시간이 지나, 코치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각양각색의 색채를 띤 눈빛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축구는 팀 스포츱니다. 어느 한 선수가 특출나게 잘해서 이길 수도 없고, 어느 누가 처참한 모습을 보여 준다고 지는 게임이 아닙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포지션은 다릅니다.”
스탠리의 풀백은 원하는 전술과 전략을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일 뿐. 스탠리가 부진해도 팀은 무너지지 않는다. 스탠리가 압도적으로 활약해도, 팀은 그저 잘할 뿐이다.
단 하나.
하지만 단 하나의 포지션은 그렇지 않다.
보고서를 확인하던 자일슨이 문득, 중얼거렸다.
“……스트라이커.”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스트라이커까지 공이 가는 건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이…….”
“그래서요. 공격수에게 공이 간다 한들, 스트라이커가 골을 넣지 못하면 팀은 집니다.”
“……!”
“득점을 넣으면 이깁니다. 축구는 득점을 만들어 내야 하는 스포츠죠.”
“비단 스트라이커뿐만이 아니라, 다른 포지션에서도 득점은 터질 수 있습니다.”
“지난 세 경기에서요?”
“……!”
내가 툭 던진 말에 막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해리 오스카와 앤서니 로우가 다른 포지션이었습니까?”
“아니, 그거야…….”
“예, 둘이 잘해서 넣었습니다. 둘의 득점은 9득점. 기회 득점(XG) 값은 5.41점입니다.”
기대 득점.
특정 상황과 위치에서 얼마나 통계적으로 득점할 수 있는가.
세 경기를 통틀어 두 선수의 기대 득점은 합쳐 봤자 5.41점이었다.
즉, 통계적으로 패스와 어시스트, 연계로 이어진 상황에서 통계적으로 가능한 득점이 5.4점이란 소리였다. 하나둘은 기어코 9골을 드러냈다. 통계 이상을 자신들만의 센스와 발끝으로 이룩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기대 득점 5.4점 자체도 엄청난 수치였다.
정확한 위치와 상황으로 파고들고 위협적인 움직임을 ‘통계적’으로 보여 줬단 뜻이니까.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뚜렷했다.
“그 외를 볼까요. 제임스 세 경기 동안 슈팅 11회, 유효슈팅 2회. 기대 득점(XG)값은 총 1.12점.”
“……!”
“톰 도허티 슈팅 18회 유효 슈팅 11회로 정확한 발끝이나 득점으로 연결되진 않네요. 기회 득점 1.89점. 대니 스콧은 제가 패스 위주의 지침을 내렸지만, 중거리슛 3회, 2회는 골키퍼 선방, 1회는 벗어났고요.”
“…….”
침묵 사이로 나는 자일슨을 향해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다.
상대 팀들에 대한 분석 보고로도 정신이 없을 텐데, 매 경기 피드백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는 솜씨에 잠깐 감탄이 나온다. 피로에 짓눌린 듯한 다크서클을 보면 다소 미안하기야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을 잘해 주는데, 써먹어야지.
나는 자일슨이 내놓은 경기 리뷰 보고서를 거침없이 활용했다.
“공격수가 아니면, 누가 골을 넣죠?”
“그 전개까지에 스탠리 선수가 엄청난 활약을…….”
“예, 그래섭니다. 스탠리의 활약을 이 자리에서 이렇게 치켜세워 줄 수 있었던 건, 공격수가 골을 넣은 덕분입니다.”
“…….”
“골을 넣어 승리하지 못했다면, 누구도 스탠리의 헌신을 입에 담지 않고,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승리란 그렇게 잔인합니다. 열한 명. 그중 단 한 명이라도 없어도 되는 포지션은 없습니다. 결국 그들 모두가 흘린 땀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전부가 하지만, 그 마침표를 찍는 건.”
“…….”
“스트라이컵니다.”
휙.
나는 해리 오스카와 앤서니 로우의 프로필을 탁자 위로 툭 밀어 넣었다.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도, 그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해 줄 스트라이커가 없다면.”
“…….”
“이기지 못합니다. 상위리그에선 다릅니다. 스트라이커가 부진해도 2선은 물론, 3선, 심지어 수비수들까지. 수많은 포지션 파괴에 프리롤. 공격과 수비가 뒤바뀌는 유연성. 그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기에 공격수의 부진이 패배를, 공격수의 활약이 승리를 자신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풀백처럼 팀을 만들어가는 빠질 수 없는 부품이 현대 축구의 정수가 되죠.”
“하지만 우리 팀은, 아니 여기 하부리그는…….”
“그래서 우리가 추구하는 축구의 핵심은 오로지 스트라이컵니다.”
코치들의 시선이 두 명의 프로필을 바쁘게 오갔다.
“그래서 해리 오스카에게 들어온 세 건의 이적 오퍼는 모조리 거부할 겁니다.”
“……오스카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알롭이 조심스레 물었다.
본래 팀 최고 주급을 자랑하던 오스카.
현재 그 자리는 앤서니 로우가 차지했다.
최고 주급이라는 상징성에서 밀린 상황에서 들어온 세 건의 오퍼.
“그중 한 팀은 챔피언십인 퀸스 파크 레인저스는 런던팀이라는 이점에, 주급도 우리보다 적어도 두 배까지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거절해 버리면, 오스카는…….”
“불만을 가질 겁니다.”
“……!”
“돈을 좋아하는 선수니까요.”
“그러면 우리도 더 상향된 계약을 제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앤서니보다 더 높은 계약이요?”
내 반문에 코치진은 입을 다문다. 선수단지원팀에서 나온 론 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불가다. 그런 재정이 되지 않을뿐더러, 설령 되더라도 앤서니보다 높은 주급을 책정하기엔 문제가 있다.
그는 이제 35살의 노장이니까.
“그럼, 말로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 35살, 오스카도 알 거예요. 지금 저 나이에, 이만한 기회와 돈을 받을 수 있는 찬스는 오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일방적으로 오퍼를 거부하면…….”
“오스카는 팀 내 리더입니다. 젠킨슨과 서로 양분하여 팀을 이끄는 위치고.”
“자칫하면 이거…….”
“팀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라는 거군요.”
사람의 마음은 이성적이기 어렵다. 아무리 프로 의식이 투철해도, 속된 말로 한번 빈정이 상해 버리면 답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때때로 선수들이 십 대 어린애들처럼 느껴진다고 하소연하던 감독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코치진의 우려는 타당했다.
다만.
“오스카는 돈을 좋아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무수한 팀을 오가던 저니맨인 이유도 돈 때문일지 모르죠. 예. 과연 돈 때문만이겠습니까?”
“……네?”
“더 많은 돈을 주니, 팀을 옮긴다. 단지 돈 하나만이 고려 대상이었을까요?”
글쎄, 그렇다기엔 지금 저 오스카의 성적과 이 악물고 뛰는 책임지는 플레이를 다 설명할 순 없다.
내가 본 오스카는 다소 달랐다. 돈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제가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
“이 두 명의 활용법. 나아가 저들의 기량을 극대화할 방법.”
“……!”
코치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막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했다.
“지금 두 명이 세 경기 동안 9골을 만들어 냈는데…….”
“고작 그 정도죠.”
“……!”
나는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 그렇게 만들 겁니다.”
오퍼 따위.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 * *
―자네, 1년 단기 계약이 아니었다고? 벌써 계약 연장을 했단 말인가?
대니 스콧은 솔직히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를 인정하고 믿어 주던 은사인 노팅엄 포레스트의 감독 울란스.
그가 전화를 걸어 혹시 다시 노팅엄으로 돌아올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날이.
비단 그뿐만 아니었다.
“나는 팀에 남기로 했어, 대니.”
무려 116만 파운드라는 구체적인 거금까지 명시된 이적 루머.
정확한 수치가 제시된 이상 더는 루머라 볼 수 없었을뿐더러,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탠리는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챔피언십인데?”
“투자가 활발한 팀이라서 프리미어리그 진출도 노려볼 수 있는 팀이잖아?”
“하물며 환경도 여기보다 훨씬 좋을 테고.”
선수들이 잔뜩 몰렸다. 일부는 은근히 스탠리의 선택을 후회할 짓이라고 폄하하긴 했지만, 그리 말하는 선수들의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동료가 인정을 받고 다른 팀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핵심 선수가 남아서 함께한다는 사실 자체도, 팀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거긴 감독님이 없잖아?”
“아.”
“솔직히 말해서, 내 지금의 활약이 온전히 나만의 것일까. 아니야. 감독님 덕분임을, 왜 모르겠어.”
포지션 변경부터 제2의 전성기까지. 전적으로 유진 덕분이라는 사실만큼은 선수단 중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니 스콧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은퇴해서 코치 일이나 시작했던 퇴물.
그런 자신을 붙잡고 데리고 와 리그 올해의 선수로 만들어 준 건, 또 분명 유진이었다.
스탠리의 모습에서,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명백한 사실에서.
대니 스콧은 어젯밤 전화로 흔들렸던 마음을 붙잡았다.
“대니. 감독님 면담이야.”
스탠리와 오스카가 감독님에게 불려 가 면담을 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
둘 다 알음알음 기사와 SNS에서 이적 루머가 솔솔 퍼져 나왔다는 걸 고려하면.
‘이적 얘기로군.’
대니 스콧은 상관치 않았다. 이미 결심을 내렸으니까. 스탠리처럼 그도.
“오스카?”
사무실 앞에 도착한 순간.
쾅!
문을 거칠게 열고 나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의 오스카와 마주쳤다.
아니, 오스카는 쳐다도 보지 않고 거칠게 걸어 나갔다.
무어라 말을 건네기도 전에 스쳐 간 오스카의 등 너머로,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담담한 유진이 보였다.
“들어와요, 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