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38)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37화(138/266)
137. 늙은 에이스 (2)
‘이적?’
오스카는 코웃음을 쳤다.
“Yeeeeeeeeeeea!”
“오스카가 골을 넣었지! 너희들의 아가리에 쑤셔 박았지!”
“오-스-카!”
쏟아지는 원정 팬의 함성.
“빌어먹을 자식!”
“저 미친놈을 왜 못 막아!”
“썩 꺼져 버려!”
그리고 홈 관중의 야유와 욕설이 가득한데도, 오스카에겐 들리진 않았다.
오직 하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짝, 짝―
느린 듯하면서도, 또렷한 박수 소리.
오스카의 시선은 오로지, 박수를 향했다.
‘감독.’
늘 그랬다.
골을 넣으면, 스쳐 가는 무수한 선수들 사이로 선명하게 담담히 미소 짓는 감독의 얼굴이 보였다.
‘근데 지금은.’
아니야.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저 눈빛은. 저 담담함은. 사실 변한 건 없었다. 유진은 똑같았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오스카의 마음이 달라졌다.
약간의 배신감이라고 할지, 아니면 분노라고 해야 할지, 그게 아니면 전부 다.
그 모든 감정의 총체가 베테랑인 그의 심신을 파고들었다.
.
훈련장.
스탠리가 유진과 면담했던 그 시간.
“감독님이 곧 찾을 거다, 오스카. 소식은 들었을 거야. 오퍼가 왔어.”
알롭 코치의 말에 오스카의 눈빛은 깊어졌다.
이적 오퍼.
선수를 지켜야 하는 보드진, 코칭스태프 입장에선 짜증 나고 여간 거슬리는 제안.
반면 선수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전혀 궤가 달랐다.
‘인정.’
다른 팀에서, 나를 갖고 싶다는 확실한 선언.
선수로서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바로 오퍼였다.
“대니도, 스탠리도, 그리고 나까진가.”
오스카는 선수 생활을 해오며 무수히 받은 오퍼를 받았다.
그 결과 그의 또 다른 별명은 ‘저니맨(Journeyman)’, 떠돌이였다.
1년에 한 번씩 팀이 바뀔 정도였다.
당연한 일 아닌가.
‘내 가치를 더 높이 쳐준다는 게, 단순히 돈을 많이 주는 게 아니지. 날 인정한다는 뜻이잖아?’
그만큼의 돈을 준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그쯤 된다는 인정이다.
오스카는 더 많은 주급을 제시하면, 가차 없이 팀을 떠났다.
팀에 대한 충성, 코칭 스태프에 대한 신뢰, 선수들 간의 친밀도.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하지만 그것도 젊은 시절에나 가능했다.
그의 장기로 떠오른 강력한 육체는 시간이라는 가장 거대한 적 앞에 서서히 쓰러지고 있었다. 포레스트에서, 그리고 맨스필드에서.
‘아마도 나는.’
여기가 끝이리라.
맨스필드는 떠돌이 저니맨 오스카의 마지막이 되리라, 생각하고 왔다.
나이와 노쇠화되어 가는 신체, 더는 성장할 수 없기에 내려갈 길만 남은 발끝의 감각.
5년이라는 긴 계약 기간까지 제시하며, 무리수라고 생각했던 주급 상향 선까지, 유진은 모조리 제시해 냈고 오스카를 맨스필드로 데리고 왔다.
그래서다.
그가 인정한 만큼의 가치를 뽐내기 위해 뛰었다.
“꽤 많은 팀이 오퍼를 보냈습니다. 챔피언십 팀 두 곳, 리그 원에서 세 팀, 프랑스 2부리그에서 한 팀, 독일 2부리그에서 두 팀.”
담담히 오퍼가 온 구단을 늘어놓는 유진을 바라봤다.
불과 1년 전.
자신을 영입하고자 전심전력으로 투구하던 그 감독이.
‘……조금의 조급함도, 없어 보여.’
불쑥 드는 감상.
해리 오스카는 잘 알았다. 본인이야말로 팀의 핵심 선수라고.
득점을 주기적으로 낼 수 있는 확실한 골게터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
그렇기에 유진이 자신을 얻고자 애썼으리라. 하나 지금, 그런 오스카가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유진은 한없이 담담하기만 했다. 그것이 원래 유진의 성격임을 잘 알았지만, 오스카는 왜인지 모를 섭섭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가?’
그 감정을 깨닫자, 오스카는 혼란스러웠다.
왜 섭섭한가. 섭섭함은 기대만큼의 반응이 오지 않았을 때나 나타나는 것.
그래, 기대.
‘나는 무슨 반응을 기대한 거지?’
왜 그런 걸 기대하나.
좋은 오퍼라면,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 쳐주는 제안이라면 오스카는 늘 가차 없었다. 매몰찼다. 그간의 인연이니 친밀도니, 마치 없는 것처럼 단칼에 끊고 떠났다.
그랬을 터인데.
“예. 오스카 선수에 대한 오퍼는 이 정도입니다. 하나같이 훌륭한 클럽이고, 조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스카 선수를 전부 원하고 있습니다.”
“……크흠. 하, 많네요.”
오스카는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유진은 그런 오스카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스탠리와 함께 이 팀에 왔었죠. 스탠리는 남는다고 공언했습니다. 모든 오퍼를 거절하기로요.”
“하하, 그 녀석, 걔가 나랑 달리 욕심은 없지. 그럴 겁니다. 그 친구는.”
“오실 땐 같이 오셨지만, 두 선수, 서로 한 몸이 아닌 거 알고 있습니다.”
유진의 말에 오스카의 눈썹이 살짝 솟구쳤다.
“감독. 그 말은…….”
“스탠리가 남았으니, 나도 남겠다, 같은 건 아니어도 됩니다.”
“…….”
오스카는 침묵한 채 유진을 노려봤다.
이적 오퍼를 받고, 선수를 압박하거나 겁박하지 않는, 도리어 마음의 짐을 치워 주는 편안한 말.
그럴진대.
오스카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상했다.
“……나, 안 잡아요? 감독.”
“물론 잡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도 아쉬워하지 않지? 조급해하면서 막 잡으려고 하지 않지?
이 팀의 골게터, 득점왕, 핵심, 그리고 당신이 원하던 선수잖아.
“더 이상 주급을 올려드릴 수 없으니까요.”
“!”
“주급에 맞는 활약, 그것이 선수의 모토 아닙니까?”
오스카의 동공이 흔들렸다. 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일상의 대화처럼 말했다.
“그 말은, 지금 더 올려드리기엔…… 좀 그렇다는 뜻이죠.”
“……!”
오스카의 눈썹이 휙 솟구쳤다. 우둘투둘 뼈마디가 불거진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그에게 주급은 가치요, 인정이다.
더 높은 주급을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군.”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였다.
실망, 답답함, 그리고 분노가 어울린.
“자격까진 아닐지라도, 선수는 지금 이 구단에서 주는 만큼의 값어치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이상은 구단의 사정까지 얽매여 무리라는 점이죠.”
“감독. 나는 주급을 올려 달라고 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다른 팀으로 가시렵니까.”
“……왜 그리 생각하지?”
“그야, 주급이 선수의 이유니까요.”
꽉 닫힌 오스카의 입술이 씰룩였다. 유진의 가라앉은 눈이 그를 응시했다.
“아닌가요?”
“…….”
한동안 오스카는 대답하지 못했다.
선수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스탠리는 감독이 자신에게 한 뛰게 해 주겠다는 말, 자신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에 혹했다고.
대니 스콧은 은퇴했던 자신을 찾아오면서, 그리고 실제로 어떤 식으로 선수를 다루는지 보여 주면서, 감독으로서의 매력을 두 눈으로 봤다고, 그래서 맨스필드에 왔다고 했다.
감독.
둘 다 감독 때문에, 이 팀에 왔다.
‘그럼 나는?’
오스카는 유진을 바라봤다.
“……날 잡고 싶은데, 주급을 올려 주는 계약은 무리라면, 진심으로 잡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요, 잡고 싶습니다.”
“하-! 감독. 난 기억해요. 1년 전,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오던 그 모습이. 유소년 아카데미까지 두 손으로 찢어 없애 버리면서까지 자금을 마련했죠. 왜 그랬죠?”
“나에게 꼭 필요한 선수였으니까요.”
“였으니까……?”
오스카쯤 되는 나이의 선수라면.
아니, 오스카이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팀을 전전하고, 십수여 명의 감독을 겪어 봤기에. 저 눈빛, 저 목소리, 그리고 저 감정.
“지금은, 아니라는 거군.”
오스카는 유진의 눈을 보고 나서 알았다.
1년 전과는 완벽히 다른 상황.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령 주급을 올려 주기 어려울지언정, 다른 방안을 모색하는 것조차 아닌.
“이적, 하셔도 됩니다.”
정리.
그 선명한 붉은 단어가 오스카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남으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다.
‘왜?’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순간. 떠올리는 이름.
‘앤서니 로우.’
나의 대체자, 아니, 어쩌면 업그레이드.
오스카의 두 주먹이 꽉 쥐어졌다.
“하.”
해리 오스카는 이를 악물었다.
“앤서니, 그 녀석 데리고 와서 그런 거군요, 감독.”
“부정치 않습니다. 하지만, 앤서니가 있다고 한들, 오스카 선수는 저에게도 중요한 자원임을, 잊지 말아 주시면 합니다.”
“중요하겠지. 어린 앤서니, 저 게으르고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풀타임 한 번 뛸 수 없는 망나니 놈의 백업은 필요할 테니까.”
아득, 갈리는 이빨 소리를 내뱉으며 오스카는 벌떡 일어났다.
“감독. 잘 모를 텐데.”
“…….”
“적어도 그 망나니 꼬마 놈, 아직은 아냐. 나한텐.”
형형하게 번뜩이는 눈빛이 담담한 유진의 얼굴을 쏘아보듯 훑어 지나갔다.
이적 오퍼에 관해 더는 어떤 얘기도 없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감독.”
앤서니가 자신의 대체자, 아니 그 이상이냐고.
.
“오스카!”
저 멀리서 들려오는 대니 스콧의 목소리.
보지 않아도 된다. 등을 돌려서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앤서니는 할 수 없는.
호흡을 함께하는 공격수와 미드필더의 호흡.
타앗.
내딛는 걸음, 스터드가 잔디에 팍 박혔다가 튕겨져 나오는 듯한 탄성.
발끝부터 전해지는 생생한 감각.
이건, 경험이다. 이건, 그의 감각이다. 이건 그의 본능이다.
오직, 오스카의 무기.
‘나니까. 대니 스콧의 패스도, 팀의 연계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직 나니까.’
훅, 올라오는 거친 숨을 이를 악물고 뱉어 낸다. 두 눈이 번쩍이며 시야가 거침없이 넓어지고 뻗어간다. 상대의 움직임이 마치 동영상의 배속을 줄인 듯, 느려진다.
90분도 소화하지 못하는 머저리 망나니.
그딴 놈 때문에, 자신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실수야, 감독.’
그는 감독을 알았다.
실수 같은 건 용납하지 않는, 철혈의 독재자. 그가 그리 생각했으면, 정말 그렇다는 뜻. 하지만 오스카는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 90분도 못 뛰는, 그저 재능에 취해 버린 멍청하고 미련한 놈보다, 자신이 못한다고?
작년 득점왕을 기록하고, 지금 득점 1위를 달리는 자신이?
‘지금까지 전부 성공했다고, 계속 성공하는 건 아냐. 감독.’
한 번쯤.
당신도 틀릴 때가 있을 거야, 감독.
타앗!
정면을 향해 내달리는 그의 뜀이 거침없다. 흘긋, 뻐엉 차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측면에서 제임스가 공을 잡은 것이 시야에 잡혔다.
“제임스! 더! 더 빠르게! 런, 런, 런-!”
거침없는 스피드였지만, 타이밍이 애매했다. 툭, 접어 놓고 킥을 하기 위한 준비-
크로스나 패스, 그 모든 면에서 여러모로 부족했던 제임스의 발끝은,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고.
투웅!
긴 크로스가 페널티 박스 안으로 향했다.
후웅!
“막아! 저놈 막아!”
“오스카다! 저 빌어먹을 놈 들어온다!”
상대방 수비진, 골키퍼가 비명을 내질렀다.
오스카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려서 유진을 바라보고 싶었다.
‘보여? 저들이 두려워하는 이 광경이?’
적의 수비와 골키퍼에게 오직 공포를 안겨 줄 수 있는 선수.
“오-스-카!”
터져 나오는 함성은, 기대감의 폭발이었다.
또 한 번, 오스카라는 감정.
오스카는 찰나 고민했다. 헤더냐, 아니면 트래핑 후 발리냐. 그도 아니면 침착하게 선수를 제치고…….
‘아니.’
이 경기장의 이날 날씨는 간헐적인 돌풍이 불었다.
변덕스러운 섬의 날씨 아니겠는가.
날아오는 궤적을 보는 순간. 그리고 그 궤적이 거짓말처럼 안쪽으로 휘어지는 찰나.
팬들도, 수비들도 모두 동시에 생각했다. 위협적인 크로스가 아니라고.
단 한 명. 오로지 오스카의 본능만이 근육을 멋대로 작동했다.
계산이나 생각, 철저한 연습이나 훈련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오로지 감각으로 빚어 낸 슈팅 타이밍.
“—!”
몸을 돌리고, 상대의 수비에 기대듯이 등을 밀어내고, 동시에 이를 악물며.
떠오른다. 그 육중한 신체가. 온몸을 허공으로 내던지듯 커다란 도약과 동시에 그만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타이밍.
오스카는 웃었다. 발등에 감기는 짜릿한 전율은.
무엇인지 보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아도, 그 결과를 알아챌 수 있기에.
시저스 킥(Scissors Kick)이 골망을 뒤흔들었다.
“Yeeeeeeeeeeeeeaaaaaa!”
“오스카!”
“Woooooooooooooo!”
실로 경기장 전체가 무너지는 듯한 함성. 스완지의 홈 관중마저 반사적으로 터뜨리는 탄성.
아크로바틱한 시저스 킥이 골문을 가로질렀고.
모두가 넋을 놓고 혼이 날아가 버린 듯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오로지 오스카만이 미친 듯이 뛰어가며 포효했다. 제 가슴팍을 붙잡고 미친 듯이 흔들면서.
“해리 오스카-! 너희들의 주전 스트라이커! 그 이름을 더 크게 외쳐!”
그가 심장 위, 엠블럼을 찢어질 듯 붙잡는 세레머니는.
리그 투 32득점, 리그 원 현재 7득점.
총합 39골의 세레머니 중, 처음이었다.
* * *
그 압도적인 득점을 보는 순간.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당신, 벤치로 그만 들어오라고 말이지.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달의 득점, 아니 올해의 득점으로 선정되어 버릴지도 모를 그 득점을 보며, 나는 벤치를 향해 말했다.
“앤서니.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사전에 말한 교체 투입은 않는 게 낫겠습니다.”
“……네에?”
“오스카가, 워낙 잘해 주고 있으니까요. 해트트릭이, 코앞이잖습니까?”
앤서니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