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41)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40화(141/266)
140. 늙은 에이스 (5)
리그가 5라운드까지 진행된 시점은, 사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열흘에 두 경기꼴로 치르는 격한 경기 일정.
일주일에 사실상 1.5경기를 치르는 스케줄이라 아직 8월 중순.
즉.
“경기 중에 허릴 굽혀서 헉헉대거나, 구역질하거나, 한번 부딪쳐서 넘어졌다고 일어나지 못하면, 훈련이 모자란 것으로 알겠습니다.”
아직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을 시점이란 얘기다.
물론 하프타임의 라커룸에서 내 얘길 듣는 선수단의 얼굴이 딱히 밝지만은 않기야 했지만.
전반전의 거친 플레이 끝에 다들 힘들어하는 와중에 그런 말을 했으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선수들 체력은 아직 준수합니다.”
“첼시전을 앞두고 강하게 체력 훈련을 했던 효과가 지금 엄청나네요.”
“전체적으로 강한 전방 압박 기조를 유지하는데도, 후반전에도 우리가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다니.”
막스와 알롭은 나직이 감탄했다.
“첼시와 친선전, 이런 부분도 노린 겁니까?”
별안간 알롭이 문득 물어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과거부터 현대까지, 축구에 무수한 이론과 새로운 방식이 끊임없이 제시돼왔지만, 변하지 않는 건 하납니다. 체력. 체력은 절대불변의 진리와도 같죠.”
“그야 모두가 아는 내용인데…….”
“예, 코치도 선수도 모두가 압니다. 그래서 문젭니다.”
“네?”
코치 경력이 긴 알롭도, 아직은 경험이 일천한 막스도, 한쪽에서 선수의 발목에 압박붕대를 감아주는 알렌스키도 일순 귀를 기울이는 것이 느껴졌다.
“일찍 자고, 잠 충분히 자고, 야식과 음주를 절제하고, 꾸준히 운동하고, 술과 담배를 끊고, 달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다라는 사실이 이제 막 발견된 진실은 아니잖습니까?”
“……!”
“일반인들, 아니 이제 학교에 들어가는 어린 친구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요, 아무도 잘 안 합니다.”
“!”
나는 피식 웃었다.
“세상의 진리가 이미 나왔는데, 모두 하질 않아요. 체력 훈련도 그렇습니다.”
체력이 좋아야 리그를 잘 치를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선수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있다면, 그는 프로 자격이 없다.
한데도 생각보다 선수들은 체력 훈련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재미없거든요.”
“아…….”
“지루하고요. 치열한 머리싸움 같은 전술 훈련도, 화려한 발재간을 갈고 닦을 훈련도 아닌, 그저 입에서 단내가 나고 근육이 혹사당하는 듯한 그 체력 훈련은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같은 훈련이라도 선수의 의욕도, 성실성, 의지, 참여도에 따라 효율이 천차만별.
의욕 없이 그저 루틴만 따라가는 훈련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아무리 감독이 집중하라, 열의를 갖고 참여해라, 손뼉을 치고 박수를 쳐도.
애당초 훈련은 지루한 것이고, 체력 훈련은 그런 훈련 중에서도 가장 재미없다.
“하지만 첼시라는 목표가 있었죠.”
의욕은 어떻게 챙겨줘야 하는가?
선수들이 스스로 해내겠다는 그 강렬한 승부욕과 의지는 과연 감독이 만들어 줄 순 없는 것인가?
아니, 만들 수 있다.
“우리 팀 선수들은 꿈에 그리던 빅클럽입니다. 그저 티비로만 보던, 다른 세상의 축구 선수들이었고, 클럽이었죠.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첼시는요.”
그런 첼시와 싸울 수 있다. 한판 겨룰 수 있다. 그 사실이 선수들의 의지를 깨웠다. 아무리 지루한 일이라도, 확고한 목표가 세워진다면 전심전력으로 다할 수 있는 것.
그저 평범히 리그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면, 이 정도 효율은 절대 나오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첼시를 상대한다고 하니, 선수들이 더 의욕적으로…….”
“아, 그래서 그토록 격렬한 체력 훈련을…….”
“대니 스콧이나 오스카나, 젠킨슨까지. 나이를 더 먹었는데도 작년보다 오히려 우월한 체력을 보이는 것이 전부!”
나를 바라보는 코치들의 눈빛이 감탄과 탄식으로 뒤섞였다.
“프리시즌을 얼마나 잘 보내느냐, 프리시즌을 어떻게 준비하냐에 따라 한 시즌 농사의 결과가 결정되는 법이죠. 예, 이게 그 결괍니다.”
나는 필드를 주시했다.
스탠리의 얼리 크로스에 기어코 수비를 떨쳐 내고 선제골을 헤더로 집어 넣는 오스카가 보였다.
* * *
6라운드가 시작하기 이전에.
상대 팀들은 이제는 맨스필드를 크게 경계했다.
아니 그럴까.
리그 원의 뉴스 상당 비중을 차지한 건 맨스필드였으니, 어쩔 수 없이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맨스필드의 유진 감독, 맨스필드를 이끌고 선두로!] [8월 가장 찬란하게 빛난 유진의 지략, 맨스필드를 리그 1위로 이끌다!] [맨스필드 승점 15점, 5연승의 압도적 1위! 현시점 유럽에서 가장 승점이 높은 구단의 명예!]“뭐야, 다들 맨스필드 어용 언론이야? 하부리그가 가장 많이 경기를 치렀으니까, 승점이 가장 높은 거지! 무슨 유럽에서 승점이 가장 높다고……!”
누군가 볼멘소리를 내뱉었지만, 동조하는 의견은 없었다.
아무렴,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유럽에서 승점 15점을 기록하고 있는 팀은 맨스필드가 유일했다. 물론 대부분의 리그가 이제 2경기 내지 3경기를 치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의미 없는 언론의 헤드라인에 불과하다고 한들.
“이대로라면 우승은 무슨, 승격 한 자리 뺏긴다!”
“리그 원이 늪이라더니! 무슨 승격 팀이 저딴 활약을 펼치냐고!”
“떨어질 팀은 떨어진다? 쟤네 그 소리 듣고 작년에 우승한 놈들이야! 이기는 법을 아는 놈들이라고!”
승점 15점의 의미는 하나다.
전승(全勝)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모조리 승리를 거뒀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5경기가 휘몰아치는 말도 안 되는 일정에서, 단 한 번도 미끄러지기는커녕, 소위 압도했다.
곳곳에서 비명과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 알겠다, 너희들 수준. 리그 원은 이 정도인가.”
“리그 투와 별다를 바 없군.”
“왜 유진 감독을 상위 팀들이 탐낸 줄 알아? 모르면 당장 맨스필드 경기를 지켜보라고!”
높아지는 비명 가운데, 맨스필드 팬들은 희희낙락했다.
또 한 번 다시 언더독.
약팀으로서 리그 원에 도전하는 도전자의 입장에 서서 긴장하며 시즌을 시작했던 팬들은, 언제 두 손 모으며 노심초사하며 경기를 지켜봤냐는 듯이,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
“맨스필드의 상승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죠?”
“이번 라운드 상대 팀도, 우리 팀에 관한 얘기도 아닌 맨스필드에 대해 기자님이 왜 질문을 하시는지…….”
“다음 경기에서 맨스필드를 만나는데 어떻게 유진 감독의 지략을 이겨내실 생각이죠?”
“그러니까 왜 지금 맨스필드를…….”
리그 원은 일종의 광풍이 몰아닥쳤다. 그간 리그 원은 고착화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 리그였다. 승격 팀과 강등팀이 늘 예상됐고, 여지없이 거의 그대로 이뤄졌다.
챔피언십에서 강등당한 팀이 다시 재승격하기를 반복하고, 4위에서 10위까지의 팀이 거의 4~8년간 변동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예상치 못한 승격 팀이 상위권에 올라도 와, 대단하다고 감탄할 텐데.
“감독님! 감독님의 맨스필드는 무려 5연승을 질주하며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 흐름의 목표는 어디까지 바라보시는지…….”
“저는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습니다.”
“……!”
“우리가 리그 원에 진입한 순간, 팀의 목표는 오로지 우승입니다.”
“!”
승격 팀.
그리고 고작 감독 데뷔 2년 차의 ‘초짜’ 감독이 2연속 우승을 논하는데.
차마 그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래 2연속 우승, 얼마나 어려운지는 다 알지만, 그렇다고 불가하다고 여기진 않는다. 연패를 거듭하는 압도적 강팀이야 무수히 존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승으로 승격한 팀이 상위리그서 또 다이렉트로 우승……?”
“이런 적이 있나?”
“축구 역사가 얼만데, 찾으면 있겠지…….”
누군가 애써 그 업적을 부정하고 폄하하려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이미 진지하게 그런 얘기가 오갈 정도라면, 소위 ‘역사에 남는다’라는 명제가 성립될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의 맨스필드는 그만한 업적에 도전하는 강팀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줬다.
“이제 5경기다! 이 멍청이들아! 리그가 46라운드라고!”
“5연승 했으니, 5연패를 할 수도 있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냐고? 승격 팀이 우승을 운운하는데, 또 불가능할 건 뭐야? 축구는 변수다! 저놈들 한번 꺾이는 순간이 올 거야!”
“단 한 번, 단 한 번만 무너뜨리면 돼!”
우승을 목표로 뒀던 레딩과 입스위치는 눈이 벌게진 채 소리쳤다.
애석하게도 그들의 염원은 쉽게 이뤄지기 어려워 보였다.
―이 선수, 나이가 35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후반전 들어서도 지치지가 않습니다! 젊은 수비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폭발적인 파워!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해지는 괴물을 보는 것 같아요! 저 탱크 같은 피지컬에 세월이 만들어 낸 노련함까지! 아아! 보세요! 저 부드러운 턴 동작!
리그 득점 1위를 달리는 해리 오스카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만큼 강력한 견제와 압박에 시달렸지만, 겉모습과 달리 오스카는 오로지 힘으로 겨루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저 몸에, 저 발놀림이라니요! 상체를 비스듬히 틀어 수비수를 속입니다! 슈팅할 듯, 길게 좌측으로 빼 주는 패스!
오스카와 겨루는 수비수들은 실로 머리가 아팠다.
이를 꽉 물고, 버티기 위해서 두 다리를 굳건히 박아 넣으면.
커다란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럽고도 깃털처럼 가벼운 발놀림에 번번이 물을 먹는 건 물론이요.
―톰 도허티, 슈팅 때리지 못하고 뒤로 백패스, 대니 스콧이 올라와 잡습니다! 대니 스콧 밀어내면서 전진! 오스카에게 패스! 오스카 다시 리턴……이 아니라 몸을 돌려 돌파합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패스와 연계 플레이까지. 독선적으로 홀로 공을 차는 선수가 아니라,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에 수비들은 납덩이가 심장에 쿵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그래, 거기까진 괜찮았다. 이 정도는, 리그 원 수위의 공격수들도 다 하는 플레이다. 그러니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나 애석하게도, 오스카는 그들과 차원이 달랐다.
유진이 오스카를 선택한 이유.
―맙소사, 오스카 그대로 밀고 들어갑니다!
터프한 체격과 폭발적인 파워에 비해 기술적인 플레이에도 능하다지만.
그래서 수비들이 애써 그 부분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실로 수비들은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그라운드의 짐승.
―오스-카 골! goal, gol-gol-gol-! 수비수들이 뒤엉켰지만, 오스카 기어코 넘어지면서 슈팅으로 골을 꽂아 넣습니다! 마치 하마가 전진하는데 달려드는 하이에나들을 보는 것 같은, 그야말로 전차와 같은 골입니다!
오스카는 상황에 맞게 힘과 기술을 번갈아 사용하는.
‘노련한’ 짐승이었다.
―해리 오스카! 이 선수가 오늘도 맨스필드의 승리를 견인합니다! 앤서니 로우의 영입으로, 그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예상을, 해리 오스카가 오로지 실력으로 깨부숩니다! 지금 누가 뭐라 해도, 맨스필드의 주전 스트라이커, 해리 오스캅니다!
“이제, 슬슬 때가 됐는데.”
유진의 예상은 정확했다.
“감독님.”
유진은 처음 보는 진지한 얼굴의 앤서니 로우를 바라봤다.
“……저 선발 출전 준비됐습니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희미한 불길이 흐릿한 눈빛 속에서 번뜩였다.
유진은 그를 한참 쳐다보더니, 담담히 웃었다.
“아니요. 준비됐다는 판단은, 오로지 내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