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4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44화(145/266)
144. Old man, Young Man (4)
볼턴 원더러스는 확실히 만만치 않은 팀이다.
미드필더 앤디 월런은 챔피언십에서 이번 여름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선수고, 공격수 닐 말론은 작년 득점 14골로 득점 순위 4위를 기록한 수준급의 선수다.
선수단뿐만 아니다. 하트만 감독은 분명 인정받는 베테랑 감독이었고, 볼턴과의 의리가 아니었다면 챔피언십 클럽으로부터 몇 번이고 러브콜을 받은 전적이 있었다. 코치진도 그런 하트만 감독과 손발을 오랫동안 같이한 훌륭한 이들이었다.
“Go, gogogo! 볼턴- 오오!”
“I’m Bolton till I die! I know I am, I’m sure I am, I’m Bolton till I die-!”
거기에 가득 찬 관중의 응원.
리그 투로 추락, 겨우 승격 후 리그 원에서 수년간 탈출하지 못하지만.
한때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그때의 시스템과 환경이 불러 모은 팬들의 단결과 응원.
모든 걸 통틀어서, 볼턴은 강했다.
“막-아!”
“Wuuuuuuuuuu-!”
물론, 상대의 앤서니 로우라는 걸출한 공격수가 본인들의 수비를 찢고, 부수고, 박살 낸다고 한들.
아무튼, 스코어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앤서니 로우, 또 한 번 공을 잡습니다! 대니 스콧의 패스가 환상적이네요!
사실 그걸 대니 스콧의 패스가 대단하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받을 수 없는 위치에서, 선수가 있지 않을 만한 위치에서, 갑자기 앤서니 로우가 불쑥 나타나 공을 잡은 것 같았으니까.
“뭐야, 유령이야, 뭐야? 이 새끼-?”
얼빠진 비명을 내지르는 볼턴의 선수를 뒤로하고.
―그야말로 쫓아갈 수 없는 오프 더 볼 움직임입니다! 이거, 중계 카메라도 속겠어요! 공을 잡았을 뿐인데, 앤서니-! 순식간에 수비진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할 정도로, 앤서니는 특유의 움직임으로 수비를 무너뜨렸으며.
―분명, 빠르지 않습니다. 분명, 날렵하지 않습니다, 분명, 몸싸움이 강하지 않습니다. 분명, 분명-!
말을 잇지 못하는 중계진의 해설처럼. 빠르지도, 날다람쥐처럼 날렵하지도, 오스카처럼 강하지도 않건만, 수비진들은 그의 옷깃만 스치고 잡아당길 뿐. 앤서니는 공을 놓치지 않았다. 소위 발끝에 공이 붙었다-라는 상투적인 말이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어떤 방도도, 맥락도 없이 무너지는 수비였지만.
그래도 볼턴은 강했다.
터엉-!
―앤서니 로우의 슈웃! 아아아! 살짝 빗겨 나갑니다! 오늘 앤서니의 네 번째 슈팅, 전부 빗나가거나 골키퍼의 손에 막히는군요! 아직 영점 조절이 필요해 보이는 앤서니입니다! 마무리가 잘되지 않네요!
아무튼, 스코어보드는 그대로니까.
* * *
맨스필드의 원정 팬들은 기이한 불안함을 느꼈다.
‘뭐지, 이거…….’
‘주도권 잡았을 때, 골을 넣어야 하는데.’
‘이거 너무 쎄한데?’
점유율은 비슷하다. 그러나 슈팅수는 맨스필드가 5개를 앞설 정도로 실질적인 공세를 펼치고 주도권을 쥔 건 맨스필드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변함없는 0대 0의 스코어.
축구는 원래 분위기의 스포츠다. 레알 마드리드도, 바에이른 뮌헨도, 맨시티도 90분 내내 압도적인 분위기를 유지하지 못한다. 상대가 아무리 약팀이라도, 골을 넣어 찍어 누르지 못한다면.
―볼턴의 역습! 앤디 월런, 측면으로 길게 내어주는 다이렉트 패스! 오, 갓뎀-! 공격 숫자 셋, 수비 숫자 둘! 달립니다, 달려요!
어느 순간 분위기는 넘어가기 마련.
그리고 숨죽였던 상대가 돌파구를 한번 마련해 내고, 기어코 끝장을 내버린다면.
―스루 패스! 닐 말론, 잡지 않고, 달리는 속도 그대로 때립니- 골! 벼락같은 슈팅,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볼턴의 선제득점이 터져 나옵니다!
“Yeeeeeeeeeeeeaaaaa-!”
“We are Bolton-!”
“멍청한 놈들! 슈팅 많이 때리면 뭐하나, 니네 골키퍼는 그따윈데-!”
“이게 축구다, 머저리들아!”
5개의 슈팅, 1개의 슈팅.
0골, 1득점.
이게 바로 축구였다.
단 한 번 기회를 잡은 볼턴은 순식간에 맨스필드의 골문을 열어젖혔다.
반면 계속해서 공세를 펼치던 맨스필드는 득점을 만들지 못했다.
슈팅 찬스까지 가는 연계 자체는 환상적이었다.
대니 스콧의 패스든, 제임스의 돌파든, 톰 도허티의 버티기든, 스탠리의 오버래핑이든.
아무튼 앤서니는 매번 수비를 허물었고 골키퍼와의 맞대결을 성사해 냈으며.
번번이 득점에 실패했다.
그쯤 되자 인내심 많기로 유명한 맨스필드 팬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오스카는 저런 상황에서 못해도 두어 골을 넣었겠는데?”
“아냐. 그러지 마. 저 찬스 자체는 앤서니 개인 기량으로 만든 거잖아?”
“그럼 뭐하냐고, 득점이 안 터지는데.”
“이게 뭐야?”
사실 맨스필드 팬들이 오스카 때문에 느끼지 못한 거지, 지금 같은 상황이 하부리그의 극히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어느 팀이든 훈련을 통해 슈팅 기회까지 연결되는 플레이는 각자 훌륭하나, 늘 마무리가 아쉬운 현실.
공격수는, 매 경기 골을 넣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그 어려운 걸 오스카가 해왔으니, 맨스필드는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공격수가 골을 넣어야지, 결국엔!”
누군가의 성화처럼.
골을 넣지 못하는 앤서니 로우의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앤서니 역시 조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앤서니의 슈팅, 아 이번에는 어림도 없네요. 골문을 크게 벗어납니다!
유효 슈팅은커녕.
―앤서니, 볼을 잡고 끌다가, 이런 밀려납니다! 너무 오래 공을 소유했어요! 패스 타이밍이었는데요!
홀로 플레이하다가 공을 뺏기는 상황과
―오, 볼턴의 강력한 수비! 앤서니의 움직임, 이제 볼턴 수비진의 눈에 익혀졌나 봅니다! 몸싸움을 이겨 내지 못하고 앤서니가 나동그라집니다! 볼턴, 다시 역습!
끝내는 버티지 못하고 넘어지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빌어먹을! 오스카를 다시 데려와!”
“안 돼. 우리 팀은 오스카가 없어선 안 된다고.”
“이름값 있으면 뭐 해? 우리는 우리의 오스카를 원한다!”
“젠장, 누가 유진한테 말해 봐! 당장 오스카를 넣으라고!”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는 사실이다.
물론, 앤서니 로우는.
“……하아.”
저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는 유진의 가라앉은 눈빛과.
벤치에서 팔짱을 낀 채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해리 오스카를 보며.
“하아. 망했네에.”
좌절감을 느꼈으니.
딱히 하프타임을 알리는 휘슬이 다행으로 다가오진 못했다.
그는 직감했다.
“교체군.”
* * *
“제가 저번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해리 오스카는 문득,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유진이 뒤에서 한 말에 몸을 돌렸다.
“……답이요?”
“앤서니 로우가, 해리 오스카의 대체자가 될 수 있냐는, 그 물음이요.”
“…….”
해리 오스카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방금 전, 자신에게 후반전 투입을 명해 놓곤.
저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오스카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이제 급한 상황이니, 제 비위를 맞추겠다는 건 아니겠죠? 아니면 이제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아신 겁니까.”
조금은 냉소가 섞인 말.
내일 이적 시장 마감이다.
지금 철저한 갑은 해리 오스카다. 하지만 갑질 따위가 아니다. 해리 오스카는 희미한 안도를 느꼈다. 유진에게, 자신은 여전히 필요…….
“예. 두 눈으로 보니 확실히 알겠습니다. 앤서니는 가능하다고요.”
“……!”
오스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짐승의 으르렁거림처럼, 불쾌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금, 저 꼬라지를 보고요? 빌어먹을, 나였다면 벌써 두 골을 넣었을 겁니다.”
“네. 오스카 선수였다면요.”
“그런데 저 40분만 뛰고도 헥헥대느라 뛰지도 못하고 설렁 걷는 저놈이, 나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요? 그래, 몇 년 후엔 모르겠죠!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보셨습니까, 앤서니 로우의 슈팅 자세, 그 폼이요.”
불쑥 나오는 질문에 화를 쏟아 내려던 오스카는 우뚝 멈췄다.
무언가 호흡의 맥을 찌르고 들어온 듯한 질문이라, 잠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상념의 시간이 타오르려던 그의 불꽃을 잠시나마 억누르고, 침착히 유진의 말뜻을 이해하려는 틈을 만들어 냈다.
“……자세.”
“네, 자세요. 평소의 앤서니처럼 보였습니까?”
“…….”
오스카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유진이 담담히 말했다.
“오스카 선수 특유의 자세더군요.”
저벅.
유진은 오스카의 어깨를 지나쳐 먼저 라커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앤서니 로우는 오스카 선수를 대체할 겁니다.”
“…….”
“하지만 그건.”
휙.
걸음을 멈추고, 오스카를 향해 몸을 돌린 채 유진이 담담히 말했다.
“오스카 선수가 더 이상 뛸 수 없을 때입니다.”
“……!”
“오스카 선수.”
유진의 깊은 눈이 오스카를 지그시 응시했다.
“때론 협력이, 경쟁을 이겨 냅니다.”
* * *
볼턴의 홈 팬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상대는 전승을 기록하고 있는 리그 원의 돌연변이. 어떤 팀도 껄끄럽게 여길 수밖에 없는 난적.
그리고 볼턴과 더불어 리그 원의 유이한 무패의 팀.
그런 팀을 꺾는다-라는 건 단순한 승점 3점만이 아니다.
볼턴 역시, 당당히 우승을 노려볼 만한 경쟁력을 증명한다는 소리와 맥락을 같이하는 의미 아니겠는가.
“맨스필드를 죽여 버려!”
“노팅엄의 촌놈들이 무슨 우승을 하겠다고, 본때를 보여 주라고!”
“Fuxxing going- Bolton-!”
열광적인 관중석과 달리, 선제골을 넣으며 유리하게 경기를 풀어 나가게 된 볼턴의 벤치는 생각보다 축제 분위기는 아니었다.
“앤서니 로우의 움직임은 유령 같았다. 솔직히 등골이 몇 번이 서늘해졌는지 몰라.”
“하지만 오늘 이상하게도 결정력이 형편없네요?”
“리그 교체 투입 출전 경기를 보면, 짧은 시간 임팩트가 어마어마하던데. 기회 절대 안 놓치던 녀석이었는데.”
“어린 친구니까, 주전 경쟁이라는 상황에 부담을 느끼겠지. 그리고 보니까, 몸 상태도 지금 정상이 아닌데 출전을 강행한 거야.”
솔직히 말해 운이 따랐다-라는 게 하트만 감독의 심정이었다.
앤서니 로우의 슈팅 중 한 개만 들어갔어도 경기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래, 이 경기 운이 따른다.
“때론 스포츠에서 운만큼 중요한 게 없지.”
하트만 감독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승운이 자신을 비춘다고 여겼다.
하나 운은 가만히 있는다고 따라 주는 것이 아니다.
두 손으로 강하게 움켜쥐고 끌어당겨야 하는 법. 하트만 감독은 그런 세상의 이치쯤은 경험으로 익히 알았다. 때문에 볼턴은 하프타임의 라커룸에서도, 벤치에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앤서니가 저런 꼴을 보였으니, 후반전에는 분명히 해리 오스카가 나올 거다.”
“오스카!”
곳곳에서 침음이 터졌다.
무수히 경계하고 여러 구상으로 옭맬 방안을 마련했지만, 통할지는 미지수.
그만큼 오스카는 피부에 닿는 위협이었다.
“45분. 이 흐름을 지켜야 한다. 오스카는 단번에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선수야. 끌려가는 상황이니, 어떻게든 뒤집으려고 공세적으로 나올 거다. 그러니…….”
과연 하트만 감독은 노련했다.
방심 따위는 집어치운, 현재 상황에 집중하며 철저하게 대응하는 베테랑의 면모.
다만 그의 노련함조차.
“……뭐?”
자신의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왜 오스카랑 앤서니, 둘 다 필드에 있는 거지……?”
해리 오스카 – 앤서니 로우
투 톱(Two Top) 카드를 꺼낸 유진의 변칙 앞에선.
“갑자기 투톱을 쓴다고? 여기서?”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