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46)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45화(146/266)
145. Old man, Young Man (5)
스트라이커 두 명을 최전방에 세우는 투 톱 전술이 대단히 변칙적이거나, 참신한 전술은 아니다. 도리어 올드한 편에 속한다.
공격수 두 명을 세운다면, 필연적으로 미드필더에서 선수 하나를 뺄 수밖에 없다.
현대 축구에 이를수록 극도로 효율적이고 짧은 패스 위주의 전개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중원, 또는 2선의 자원을 빼고 최전방에 공격수 두 명을 넣는 건 소위 ‘트렌드’에는 부합하지 않았다.
사실상 투톱 전술을 쓰는 빅리그의 팀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한 명이 처진 채 프리롤, 또는 공격헝 미드필더, 그도 아니면 펄스 나인의 형태였다.
하지만 해리 오스카, 앤서니 로우, 두 명의 선수는.
타겟터에 가까운 컴플리트 포워드 해리 오스카.
오로지 확실한 득점에서만 움직이는 포쳐(Poacher). 일종의 골 사냥꾼의 역할인 앤서니 로우.
전형적인 중앙 공격수 두 명을 최전방으로 내세우는, 소위 올드한 투톱이었던 셈.
그것이 올드하고, 트렌드에 부합하지 않는 이유는 곧 명백히 드러났다.
―맨스필드! 중원 싸움에서 밀립니다! 앤디 월런, 전반전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네요! 단단한 몸집으로 중앙을 휘젓고 있습니다!
대니 스콧과 토마스 캐롤, 그리고 대니 스콧의 맹견, 톰 브룩스의 삼각형 중원이 흔들렸다.
정작 교체 아웃당한 건 왼쪽 윙어인 톰 도허티였지만, 도허티가 활발한 활동량으로 중앙 싸움에 가담하는 걸 생각하면 그의 역할이 얼마나 유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중앙의 힘겨루기에서 우세를 가져간다는 건, 곧 서서히 주도권을 쥔다는 의미였다.
―사실 보통 좋은 공격수가 여러 명 있으면, 그 공격수들을 동시에 기용하면, 더 강력해질 거라고 생각하기가 쉽죠. 문제는, 공격수가 활약하려면, 패스가 가야 하는데 말이죠!
투웅!
중원 싸움에서 밀리자 최전방으로 볼이 배급되는 횟수가 극히 제한됐다.
위협적인 스트라이커?
슈팅을 때리지 못하는데 득점이 나올 수 있는가?
―결국 이리되면, 공격수가 공을 받기 위해, 내려와 주고, 중원에 힘을 실어 주는 플레이를 가져갈 수밖에 없거든요, 해리 오스카가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후반전 투입으로 아직 체력이 쌩쌩한 해리 오스카가 내려와서 공을 받았다.
투욱!
오스카가 내려오자, 미드필더와 수비수가 동시에 같이 움직이며 마크를 시도했다.
“…큿.”
오스카는 침음을 삼켰다. 거짓말처럼 공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이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행동반경을 좁혀오는 상대 팀.
‘이쯤 되면, 이런 팀이 나올 법하지.’
오스카는 베테랑이다. 매 경기 득점을 넣으면 최고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발롱도르급 선수도, 득점왕 타이틀을 경쟁하는 월드 클래스들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왜 그러겠는가. 상대 팀은 바보가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무수한 대응을 준비해 온다. 팀스포츠인 축구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툭!
왼쪽으로 툭 치고 빠져나갈까, 공간이 메워진다.
공을 잡고 버티다가 패스를 할까, 애매하다. 패스가 차단되거나 결국 의미 없는 백패스에 불과하게 될 터. 오스카는 실로 답답함을 느꼈다. 동시에 기이한 생각이 파고들었다.
‘앤서니, 이 새끼, 미친놈 아냐?’
그런 허접한 몸으로, 이 자식들의 수비를 종잇장처럼 찢어놨다고?
전반전, 벤치에서 봤을 때와 실제로 체감하는 볼턴의 수준은 차원이 달랐다.
앤서니의 움직임에 허무할 정도로 무너져서 얕봤던 것이 실수였다.
‘이 자식들, 장난 아니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아, 해리 오스카!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볼튼의 수비가 만만치가 않아요! 결국 빼앗기는 볼! 다시 볼 점유하는 볼턴 원더러스! 경기의 추가, 급격하게 기울이고 있습니다!
“Wuuuuuuuuuuuu-!”
“득점 1위라더니, 머저리팀들 상대로 몇 골 넣은 거로 득점왕이니 뭐니-!”
“여긴 네가 넣을 골은 단 하나도 없다!”
“꺼져라 늙은이!”
경기의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그 분위기는, 관중들이 가장 먼저 느낀다.
전반전 위협적이었지만 골을 넣지 못한 앤서니 로우.
후반전, 그토록 경계하던 해리 오스카의 교체 투입에 잔뜩 긴장했던 이들도, 볼턴이 철저하게 틀어막자 흐름이 바뀐다는 걸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더욱이 오스카의 표정이 좋지 못한 것 역시 두 눈에 똑똑히 담겼다.
실제로 오스카는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그냥 얘네들, 잘해. 보통 잘하는 게 아냐.’
그렇다고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스카-!”
중원에서 밀리자, 후방에서부터 길게 공이 뻗어왔다.
존 젠킨슨이 걷어내듯이 다이렉트로 깊게 찬 공.
타앗!
오스카의 허벅지가 순간 부풀어 오르더니, 탄력 있게 지면을 박찼다.
제아무리 오스카를 막기 위한 플랜을 준비해 왔다고 한들.
“어디 한번, 막아 봐라-!”
오스카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쿠웅, 부딪치는 어깨, 빡, 붙잡는 허리, 쾅- 지면을 박차는 커다란 도약. 그 모든 과정이 이뤄지는 시간 찰나.
―해리 오스카가 뛰어올랐습니다!
상대의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 훅훅 튀어나오는 단내, 벌게진 눈, 땀으로 젖은 얼굴, 코를 찌르는 땀내. 그 모든 정보가 동시에 파도처럼 몰려들어 왔다. 그 순간, 오스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순식간에 고개를 돌리고 눈을 크게 떠서 주위를 봤다.
누구에게 공을 줘야 하는가. 누구와 호흡을 맞추며 플레이해야 하는가. 누구와 어떻게…….
‘……!’
그 순간.
한 선수의 움직임이 마치 확대되듯이 확 시선을 끌었다.
등번호 10.
그것을 본 순간, 오스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동시에 그의 몸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작동했다. 마치 지금의 동작이 모조리 예정된 기계처럼.
투웅!
―오스카의 헤-더! 머리에 맞춘 공이 떨어집니다, 볼턴의 수비들이 자리 잡……어, 어, 앤서니 로우, 앤서니 로우가 수비 틈에 숨어있다가 나타난 것처럼 공을 낚아채서, 접고, 슈-팅!
누구도 반응하지 못한 앤서니의 슈팅이 벼락같이 터져 나오는 순간.
―때론, 협력이 경쟁을 이깁니다.
오스카의 뇌리에 유진의 그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 * *
터엉-!
앤서니의 슈팅은, 또 한 번 골문 안으로 향하지 못했다. 남들이 예상치 못하는 엄청나게 위협적인 움직임이었지만, 마지막 마무리가 골대에서 막혔다.
“미친…….”
“갑자기 저기서 튀어나온 거야?”
“이 새끼들아, 정신 똑바로 차려! 저 세모 발 아니었으면 골이었다고!”
“쟤들 투톱 처음 아닌가? 방금 찬스 뭔데?”
“와, 씨. 심장 떨어질 뻔했네.”
볼턴의 홈 팬들은 일제히 머리나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들의 눈에는 마치 공포 영화처럼 보였다. 단단하기 짝이 없던 수비가 단 한 번의 동작으로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무엇보다도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약속된 움직임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보지 못할 공간으로 공을 패스하고, 귀신처럼 그 위치에서 나타나 슈팅을 때릴 수 있겠는가.
앤서니는 입술을 꽉 깨물며 불편한 얼굴을 보였다. 아쉬움과 짜증, 분노가 골고루 뒤섞인 스트라이커의 울분.
그를 바라보는 오스카는 그 울분을 모조리 느끼면서도, 동시에 소름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정확했다. 너무도.’
바로 호흡.
연계와 패스가 한 몸처럼 이뤄져야 한다.
투톱이, 원톱처럼.
그것이 바로 투톱 전술의 맹점이었다. 한데 방금 그랬다. 오스카는 뛰어오른 순간, 앤서니의 위치를 보고 반사적으로 움직였지만,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너무도 완벽한 위치로 파고들고 있었기에.
마치 오스카가 공을 따기 위해 움직이고, 동시에 그쪽으로 패스를 보낼 걸 예측한 것처럼.
이상했다.
오스카는 헛웃음이 나왔다.
‘내 움직임을 알아?’
읽고 있다.
저 어린 망나니 놈이.
‘어떻게?’
그 순간, 떠올렸다.
―오스카 선수 특유의 자세더군요.
“!”
유진의 말이 머릿속에 또렷했다. 그랬다. 앤서니는 자신의 슈팅 자세, 타이밍, 그 모든 걸 따라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연구했다. 나를.’
순간 그의 눈이 확 변했다.
답답하다, 느리다, 발이 한없이 무겁고, 나태하며, 오만하다.
그것이 앤서니에 대한 생각.
그런데.
‘나를 연구해……?’
경쟁 포지션의 선수를 연구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오스카가 모를 리 없었다. 오스카야말로 한없이 익숙한 선수였으니까. 무수히 많은 팀을 오갔고, 경쟁에서 이겨 냈으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이 경쟁자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파헤치는 것이었다.
‘네가 나를.’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파헤쳤다는 사실이 불쾌하지 않았다. 도리어, 흡족했다. 내가 저 녀석의 경계를 사고, 저 녀석의 경쟁의식을 불태우게 했다고. 저 세상 만사 안하무인인 저놈에게.
‘내가, 잘못 본 거였나?’
헉헉대고, 조금만 뛰어도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고, 뛰다가 안 될 것 같으면 포기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전형적인 게으르고 나태한 선수의 유형.
하지만 저 움직임, 저 플레이, 저 모든 것에서 보인다.
‘내 슈팅 타이밍을 따라 하려는 각고의 노력.’
불성실한 선수가, 나태한 선수가.
―해리 오스카 선수가 더는 뛸 수 없을 때.
자신의 대체자. 경쟁자. 늙어 버린 올드맨을 갈아치울 젊은 피.
아니다.
―그때야 선수를 대체할 겁니다.
‘후계자…….’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첼시의 보석, 잉글랜드 연령별 국가대표, 차기 삼사자 군단의 스트라이커, 온갖 빅클럽이 노렸던 보석처럼 찬란히 빛나는 재능.
‘내 후계자라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고무됐다.
최고 전성기 때, 챔피언십에서 두 자릿수의 골을 넣은 것이 전부인.
그저 그런 팀들만 전전하며 에이스 놀이나 하던, 하부리그의 공격수 해리 오스카.
그것이 바로 오스카 본인의 정체성이었다.
삐빅!
휘슬이 울렸다. 8월 한여름의 날씨였기에 도입된 쿨링 브레이크.
벤치로 다가가 물을 흩뿌리고 마시는 그들 사이로 오스카가 앤서니에게 다가갔다.
“어이.”
“…….”
“이기고 싶냐?”
답은 없었다. 흐릿한 눈빛 속 짜증만이 가득할 뿐.
평소였으면 신경에 거슬릴 만한 눈빛이었지만, 오스카는 개의치 않았다.
침묵에도 대답하지 않는 그 건방짐을 자비롭게 품었다.
“아니, 잘하고 싶냐?”
“…….”
그 질문이 던져진 순간에서야, 흐릿함 속에 안광이 선명하게 번뜩였다.
오스카가 씩, 이빨을 드러냈다.
“어쭙잖게, 왜 따라 해?”
“……따라 하긴, 누가!”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진 모습이 퍽 우스웠다.
“경쟁 말이다. 해본 적 없지?”
“…….”
“어딜 가나 최우선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실력도 있었을 테니까. 안 그래?”
오스카는 실소했다.
“경쟁하는 법을 모르는 얼치기 자식.”
“뭐라는 거야?”
“간단해.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딱 두 가지야.”
“…….”
짜증을 내면서도,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앤서니가 곁눈질하는 것이 느껴졌다. 귀가 쫑긋하는 것도. 오스카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실력 하나는 어지간한 성인 선수들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해 줄 놈이, 하는 짓은 아직도 애군.
“하나. 너처럼 경쟁자의 플레이 스타일을 연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거나.”
흠칫.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감독의 마음을 훔치겠다는 거거든.”
정곡을 찔렀을까.
앤서니는 애써 모른 척하면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면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오스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등을 쾅 쳤다.
“미친놈아. 누가 물을 다 마셔? 입만 헹궈 내듯이 마셔야지. 뛰다가 토할 일 있어?”
“켁, 케헥.”
“왜 감독의 마음을 훔치느냐, 감독이 원하는 플레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경쟁자를 기용하는 이유가, 감독이 원하는 대로 플레이한다고 생각해서야. 안 그래?”
한참 기침해 댄 앤서니는 질질 흐르는 침과 물을 손등으로 거칠게 훑어내곤 오스카를 노려봤다. 한쪽에서 선수들에게 일일이 지침을 내리고 있는 감독이 흘깃, 시야에 아른거렸다.
“감독이 날 쓰는 이유. 내 플레이 때문이라 생각하겠지. 그리고 넌, 알았어. 내가 왜 골을 잘 넣는지.”
“……타이밍.”
오스카가 새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빌어먹을 놈. 짜증 나는 새끼. 내가 이십 년 가까이 갈고 닦은 내 기술을, 그냥 곁눈질한 걸로 훔치려고 해?”
“……훔치긴. 골 못 넣었어.”
“경쟁자의 장점을 흡수해서 감독의 마음에 들겠다는, 그 마음 말야.”
“…….”
슬쩍 눈치를 본다.
눈치 볼 일도 아닌데 말이다. 오스카는 어째서일지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어린놈한테 경쟁의식을 불태우고 노려봤던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앤서니는, 어렸다.
“기특하긴 해.”
“……!”
“근데, 착각했어. 그게 경쟁자를 이길 방법은 아니야. 아니, 적어도 우리 팀, 아니, 적어도 우리 감독에겐 말이지.”
“뭐?”
“내 플레이를 감독이 원해서 날 쓰는 게 아냐. 감독은, 그냥 내 움직임과 플레이를, 완벽하게 활용을 하는 거라고.”
“……!”
“경쟁자를 이길 방법이 두 개라고 했지? 다른 하나는, 감독이 활용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자신만의 강점을 내세우는 것.”
앤서니가 눈을 끔뻑거렸다.
시선을 피하지도, 노려보지도, 애꿎은 잔디를 파지도 않는다.
해리 오스카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깨를 툭 쳤다.
“난 이 경기 이길 거다.”
“…….”
“너가 아니라, 경기를 이길 거라고.”
그리 말하며 필드로 향하는 오스카.
앤서니는 고개를 돌렸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이를 꽉 악문, 그리고 혼란스러운 그 표정으로 앤서니가 유진에게 다가갔다.
하나 정작 유진 앞에 선 그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지 못했다.
무언가 결심한 듯, 겨우 입을 열려는 찰나.
“방법 말입니까.”
유진이 불쑥, 먼저 말했다.
앤서니는 부끄러움일지, 무엇 때문일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독님이 말했잖아요. 어떻게, 어떻게 저 노땅을 이길 수 있는지, 원한다면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도움을 주겠다고요.”
그 말을 뱉어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심이 있었을까.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앤서니 로우.
사람들의 무수한 걱정을 받는 그가, 처음으로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동시에 나아갈 방법을.
다름 아닌 감독에게.
감독.
유진은 웃었다.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네?”
“평소 하던 그대로요.”
“…….”
이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