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58)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57화(158/266)
157. 마지막 시즌 (2)
맨스필드는 왜 패배하지 않는가?
찰턴을 후반 79분에 무너뜨리며, 끝끝내 18경기 무패라는 기록을 이어가는 맨스필드를 보고 많은 사람이 떠올린 의문이었다.
질투와 시기 따위가 아닌,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운.
[유럽 유일한 무패 팀, 맨스필드 타운]일각에서는 고작 3부 리그 팀인데 뭘 유럽에서 유일하다고 표현하냐는 반응이 나오긴 했지만.
그거야 최상위 리그에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만 보이는 한가로운 반응일 뿐.
맨스필드라는 재앙을 현실에서 맞닥뜨린 리그 원은 진지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경기력은 앞섰는데?”
“분위기도 좋았고, 오히려 컨디션 난조였던 건 맨스필드였잖아?”
“그 잘난 전방 압박? 후반에 슬슬 지쳐서 공간 널찍하게 내어줬었는데?”
무조건 찰턴이 이겼어야 하는 경기는 아니었다.
축구에서 ‘무조건’이라는 단어만큼 공허한 것이 없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최선’은 있다.
그 경기는 맨스필드를 잡기 위한 ‘최선’이었다.
플리머스 전 이후로, 많은 팀이 맨스필드에 대한 분석과 파훼법을 연구하고 완성해 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팀의 전술로서 필드에 이식하는 데 속속 성공했다.
“오스카가 무섭다고? 막았잖아! 앤서니 발끝이 날카롭다고? 아무튼 막았잖아!”
“최선을 다했잖아! 슈팅 최대한 안 내주고 카드 감수하고서라도 계속 막았다고!”
“노력했다고! 저 정도면 최선이라고! 그런데 왜!”
막을 수 없는가.
리그 10라운드까지만 해도, 오스카와 앤서니의 폭발적인 파괴력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결국 둘을 막아야 맨스필드를 막을 수 있다는 결론에는 오류가 없다.
다만, 부족한 점이 있을 뿐이다.
―해리 오스카 4경기 연속 무득점, 앤서니 로우 역시 4경기 동안 2골의 조금 아쉬운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만, 맨스필드는 여전히 무패입니다!
거침없이 때려 부수며 전진하던 오스카라는 탱크의 무한궤도가 비틀린 것처럼 멈췄다.
35세의 나이, 강력한 전방 압박을 기조로 하는 전술, 몸이 부서지라 뛰는 플레이 스타일.
리그가 중반에 치달을수록, 아무리 체력 훈련이 잘 준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서서히 과부하가 발생할 타이밍.
앤서니 로우야 매번 반짝이는 재능을 보이지만, 우선 뛸 체력이 충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하하, 그래도 이 두 선수가 득점 1위, 2위인데, 3위 하고는 9골 차이가 나거든요? 겨우 줄어든 공격력이 이 정도입니다!
여기저기서 저게 ‘부진’한 거냐고 비명을 내지르곤 하지만, 두 선수의 ‘상대적인’ 부진은 확실했다. 드디어 리그 원의 구단들이 벼르던 순간이 온 것이다.
“쟤들 언제까지 체력 왕성할 것 같아?”
“언제까지 골 감각 날카로울 것 같아? 슬럼프 안 올 거 같아? 쟤들이 메시야? 펠레야? 어?!”
물론 리그 경기 결과를 보면, 정말 기다렸던 순간이 맞는지 의아하겠지만.
“오스카와 로우가 이전보다 부진한 지금이야말로 맨스필드를 무너뜨릴 수 있는……어, 쟤들 또 안 졌어?”
“또 맨스필드를 못 이겼다고……?”
애석하게도, 두 선수의 부진은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선수들을 부각했다.
쓰리-톰과 제임스, 스탠리와 대니 스콧까지.
어리고, 그저 투지만 넘치고, 유리 몸에다가, 37살의 늙은 선수일 뿐인데.
―맨스필드에는 사실 오스카와 앤서니라는 공포의 투톱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제임스 선수는 비록 공격 포인트가 적고 이번 시즌 득점이 없지만 왕성한 움직임과 스피드로 매번 수비진을 짜증 나게 만드는 데 일품이죠.
―스탠리의 오버래핑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비면 수비, 공격이면 공격, 수비할 땐 무엇보다도 완벽한 태클을 펼치고, 공격할 때 공간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솜씨는 실로 날카로운 창과 같습니다! 오스카와 앤서니에게 가려졌을 뿐이지, 벌써 시즌 4골 4도움! 수비수의 기록이라고 보기엔, 엄청납니다!
―아하하, 이 우리 우아한 백조, 대니 스콧! 이 선수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9개의 어시스트! 전직 프리미어리거의 발끝은, 시간이 지나도 아름답기 짝이 없어요!
―뭐 외에도 쓰리 톰의 톰 브룩스의 투지, 귀찮게 수비를 괴롭히는 톰 도허티의 움직임, 단단한 수비의 톰 뉴톤의 수비력까지…….
―그래요, 전부 막고, 다 뚫어냈다고 칩시다. 하지만 말이죠, 맨스필드의 최후방에는 스마일맨, 미스터 쿼카, 리처드 골키퍼가 있으니까요!
―선방을 해내고 해맑게 웃는 그 얼굴을 보면, 상대팀 공격수들은 분통이 터져서 그 경기 내내 슈팅을 제대로 못 날리더라고요?
오스카와 앤서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른 구단들은 서서히 깨달았다.
오스카와 앤서니에 대한 견제와 경계가 극에 달할수록.
둘의 부진이 명확해질수록, 나머지 선수들이 더 활약하기 시작했다.
―제임스의 슈팅! 튕겨 나온 공, 대니 스콧의 중거리포! 골문을 가릅니다!
오스카가 지쳤다고 한들, 앤서니가 풀타임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한들.
―톰 브룩스, 중원에서 공을 휩씁니다! 토마스 캐롤과 패스 주고받고, 톰 도허티 왼쪽에서 측면으로 파고들다가, 하프 스페이스에 접근한 스탠리에게 패스! 스탠리 벼락같이 기습 슈팅!
선수 개인을 막는다고 막아지는 팀이 아니다.
―리처드의 슈퍼 세-이브! 이걸 막아 내나요, 이걸 막나요! 저 해맑기 짝이 없는 웃음이, 상대팀 공격수들에겐 지독할 정도로 짜증이 날 겁니다! 리처드가 또 한번 웃고 있습니다!
이제 맨스필드는 하나의 팀이다.
―젠킨슨! 존 젠킨슨! 종아리가 걷어차인 상황에서도 벌떡 일어나 공을 걷어 낸 뒤에야 쓰러집니다! 주장의 투혼이 맨스필드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두고, 땀을 흘리는.
* * *
“젠킨슨 괜찮대요?”
토스트 가게의 엘레나는 익숙하다는 듯이 토스트를 건네며 불쑥 물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가판대 근처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쏠리는 기분이 느껴졌다.
신문을 보는 사람, 차를 마시는 사람, 토스트를 먹으면서 잡담하던 사람.
모든 대화가 일제히 끊기고, 귀를 기울이는 듯한 느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축구 안 보시지 않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엄청나게 궁금해하셔요.”
“피부가 살짝 찢어진 것일 뿐, 근육이 다친 건 아닙니다.”
“휴, 다행이네요. 울 아버지 또 혈압 올라서 쓰러질 일은 없겠네. 아후, 지난 경기에서도 피 철철 흘릴 때 아버지가 심장 부여잡는 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워낙 몸을 돌보지 않고 뛰니까요.”
“아버진 말로는 이번 시즌이 유난히 더 그렇다네요. 원래 거칠게 몸을 던지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뭐라고 해야 할까.”
엘레나가 말끝을 늘리자, 주위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우수수 끼어들었다.
“맞아. 올해는 조금 다른 느낌이야.”
“뭔가, 투혼을 불사른다? 불태운다? 그냥 아무 생각, 걱정 안 하고 내던지는 느낌이야.”
“아주 걱정이 많아요. 우리 캡틴 그러다가 크게 다칠지.”
“에이 걱정은 무슨, 감독님이 어련히 잘 지도해 주실까!”
“네, 최대한 선수들 다치지 않게 훈련 조정하고 잘하겠습니다.”
“우리 무패 행진,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계산을 마치는 가운데 은근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곧장 대답하지 않자, 손님들이 서로 떠들었다.
“사실 이 무패 말이야, 우리 감독님 전술이 엄청 대단한 거 덕분이기도 하지만, 사실 주장이 보여 주는 투혼 덕분 아닐까?”
“투혼이라, 그렇지! 최고령자, 그리고 주장이 그렇게 몸을 날리면서 뛰는데, 다른 선수들도 마음가짐이 남다를 수밖에 없지.”
“뭐, 그런 정신론도 좋긴 한데, 그래도 현실을 따지면 골키퍼의 선방이지.”
“으응?”
“리처드 선방률이 중간에 이적해 와 놓고도 지금 리그 1위인 거 몰라?”
“하긴, 리처드 그 친구 물건이더라고!”
“대단해. 웃으면서 공 차는 거 말이야, 힘들기도 할 텐데.”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
“리처드, 그 친구 그냥 즐긴다고. 어쩌다가 실점이 들어가도 그냥 웃어 버리잖아?”
“에이, 골을 먹혔는데 웃고 있는 거 보니까 나는 좀 별로던데…….”
“에헤이, 다르게 생각하면 어, 실점해도 머릿속에서 확 지워 버리고 얽매이지 않는다는 건데. 실점 한 번에 표정 구기면서 그날 다 망치는 골키퍼보단 훨씬 낫지! 그것도 능력이야, 능력.”
“그래도 젠킨슨처럼 이 경기가 마지막인 것처럼 몸 날리는 투혼이야말로…….”
“어허 언제 적 정신론이야, 즐겁게 공을 차야 성적도 나오고…… 리처드처럼……”
“……그냥 여기에 대형 TV 하나 설치해서 맨스필드 경기 틀어놓는 게 어때요?”
“좋은 생각이네요. 아예 맥주를 팔까…….”
엘레나가 웃었다.
“여기 토스트요.”
“더 주문 안 했습니다만.”
“뒤에요.”
엘레나가 툭 건네는 종이봉투 하나를 받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뒤에서 알렌스키 코치가 어정쩡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으흠, 안녕하세요, 감독님.”
“코치는 훈련장보다 여기 토스트가 가게서 자주 보는 것 같습니다.”
“크흠…….”
“먼저 가겠습니다. 얘기 나누고 오시죠.”
“아니, 저도 그냥 토스트 사러…….”
웃으면서 바쁘게 토스트를 굽고 있는 엘레나와 돌아선 나를 어정쩡하게 서서 번갈아 보다가 알렌스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퇴근길에 사러 올게요. 감독님, 제 차 타고 가시죠.”
“직장 상사를 택하셨군요.”
“흠흠, 그런 거 아닙니다.”
탁, 차에 오르고 시동을 걸자 라디오 음성이 흘러나왔다.
―맨스필드는 이제 하나의 팀으로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 것이지만,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데에는 주장진의 헌신이거든요.
어딜 가나 다 맨스필드 얘기군.
하긴,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축구 얘기만큼 청취율을 보장하는 스토리도 없지.
―주장이자 팀 내 최고령자, 존 젠킨슨의 몸을 날리는 투혼을 보고 어떤 선수가 안일하게 플레이하겠습니까?
―하하하, 척 노리슨 씨는 오랜 올드팬이시니 남다른 감상이시겠군요. 젠킨슨의 헌신, 대단하죠. 온몸을 불태우는 그 투혼,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그 투혼에 힘입어, 리처드의 선방이 매 경기 팀을 구해 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젠킨슨의 투혼, 리처드의 활약. 맨스필드가 무패 행진을 달리는 이유죠.
“아까 사람들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젠킨슨 얘기가 많더라고요.”
차 안의 침묵이 어색했는지, 알렌스키가 말했다.
“요즘 인상적이니까요.”
“확실히, 캡틴이라 그런가, 팬들의 마음을 잘 안다니까, 안 그렇습니까. 감독님.”
몸을 날리는 늙은 주장의 투혼이라.
확실히, 팬들의 가슴을 찌르르 울리게 만드는 힘이 있지.
더구나 올드팬이 아직 대다수인 구단의 팬층을 생각하면.
“팬을 위해서가 아닐 겁니다.”
“네? 아, 뭐, 예, 그쵸. 구단을 위해서. 젠킨슨의 헌신은 대단하니까요. 조금 걱정입니다. 그렇게 몸 쓰면 축날 텐데, 요즘 말을 듣지 않네요. 몸 좀 사리라고 하는데…….”
“본인을 위해섭니다.”
“네?”
“구단이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니까, 그런 투혼이 나올 수 있는 거죠.”
“……구단이 아니라, 본인이요?”
―맨스필드 팬들에겐 근래가 가장 행복할 겁니다! 이제 팬들은 하나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노츠 카운티와의 8년 만의 더비전이, 이제 보름 남짓 남았군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딱, 새해네요.
―산타 유진 감독이 선물을 줄 거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나쁜 얘긴 아닙니다. 이기적인 것도 아니죠. 미스터 맨스필드. 젠킨슨과 맨스필드 구단은 하나의 동의어나 마찬가지니.”
투웅, 투웅!
클럽하우스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격한 소리.
부쩍 추워진 날씨에서도 그 누구보다도 일찍 나와 땀을 흘리고 있는, 훈련장의 젠킨슨을 바라보면서 나는 차에서 내렸다.
* * *
“당신, 요즘 너무 몸을 돌보지 않는 거 아냐?”
18라운드 찰턴전에 이어서, 19라운드에서마저 병원 먼저 갔다가 집에 돌아온 젠킨슨을 향해 아내가 했던 말이었다.
단순한 타박이 아니었다.
큰 눈에 가득 떠오른 걱정스러운 기색이 일렁였다.
“원래 당신이 그렇게 거칠게 싸우면서 하는 스타일인 거 알지만, 근래에는 좀 심해.”
“……여보.”
“좀 적당히 하면 안 될까? 주위에서 다 당신 덕분이라고 추켜세워 주지만, 큰 부상은 아니어도 곳곳에 멍들고, 피부 찢어지고 난 진짜…… 아들 데리고 경기장 찾아가기도 겁나.”
“…….”
“혹시 감독님이 그렇게 지시하신 거야? 왜 이번 시즌에만 유난히…….”
그간 오래 참아 온 듯, 약간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토로하는 아내의 말을 젠킨슨은 부드러운 포옹으로 막았다.
필드 위에서 누구보다 투지 넘치고, 폭력적이다 싶을 정도로 거친 모습을 보여 주던 젠킨슨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상한 모습이었다.
젠킨슨은 거즈를 테이프로 붙인 이맛살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딱 이번 시즌만.”
“……응?”
“참아 줘, 이번 시즌까지만.”
연애부터 결혼과 가족을 만들기까지.
그의 부인이 젠킨슨의 짧은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양손으로 넓은 젠킨슨의 등을 쓰다듬었다.
젠킨슨은 조금은 흔들릴지언정, 단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마지막 시즌, 내 축구의 마지막, 전부, 전부를 쏟아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