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60)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59화(160/266)
159. 마지막 시즌 (4)
“앤서니는 출전이 아무래도…….”
막스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하고, 뒤에서 알롭은 거의 반쯤 광분하고 있었다.
“이, 이, 철딱서니 없는 멍청한 자-식! 이놈은 크리스마스 때 우리가 사무실에 묶어 놓고 붙잡아 둬야 했어요!”
“으아아아아-”
앤서니가 비명을 내질렀다. 흐릿한 두 눈의 동공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알롭 코치가 앤서니를 붙잡고 마구 흔드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 좀 잘한다, 잘한다고 해줬더니, 또 바로 엇나가? 넌 무조건 나랑 룸메이트다. 숙소에서도 땀으로 그 빌어먹을 알콜 따위 쫙쫙 빼게 해 주마.”
오스카가 알롭 대신 앤서니를 들어 올린 채 마구 흔들었다.
그 큼지막한 두 손에 들려서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면 겁에 질릴 법도 하건만.
우리의 금쪽이는 한마디를 지지 않았다.
“아니이이, 크리스마스자나아아. 놀아야지이이이. 그래서 휴가준거자나요오, 감독님이 그랬다고오.”
“누가 놀라고 했냐고! 쉬라고 했다고, 쉬라고오! 푹 쉬고 다음 날 경기 치러야 한다고……!”
“쉬는 게 노는 거지이이이.”
오스카와 앤서니의 콤비는 퍽 유쾌했지만, 현실 속의 코치진은 웃을 수 없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선 비극인 것처럼.
“크리스마스라고 크게 파티를 벌이고 술까지 진탕 먹었으니, 앤서니가 잔디 위에 토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출전은 추천하지 않아, 유진.”
막스는 얼굴이 영 좋지 못한, 숙취로 가득 찬 찡그린 앤서니의 얼굴을 쳐다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롭이 앤서니에게 주급 정지와 벌금을 물겠다고 방방 뛰는 장면에서 시선을 떼며 대답했다.
“큰 문제는 아냐. 어차피 이번 경기는 앤서니를 배제하고 준비했으니까.”
플랜A는 오스카를 중심으로 한 공격 전개.
“하지만 플랜B를 가동하지 못하잖아. 벤치에 앤서니가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 팀에게 위협인데…….”
막스의 걱정은 비단 앤서니 하나 때문만이 아니었다.
실컷 앤서니를 향해 분노를 표출해 낸 뒤 몇 년은 더 늙어 버린 듯한 얼굴의 알롭이 다가와서 공통된 걱정을 토로했다.
“선수들 기강이 다소…… 허허, 크리스마스의 힘이란 참.”
“이해가 가는 일이긴 하지만…….”
크리스마스.
가족, 친지, 친구들과의 파티와 휴일.
선수들의 몸 상태를 체크하던 알렌스키가 조심스레 말했다.
“음. 선수들 컨디션도 전부 좋다고 볼 순 없습니다. 심지어 대니 스콧도 좋지 못해요. 딸하고 놀아 주다가 그게…… 발목이 살짝 삐끗했나 봅니다.”
“맙소사, 대니 스콧도…….”
“크리스마스 때 딸하고 놀아 주다 다친 거니, 무어라 할 수가 없군요.”
“하루 이틀이면 다 나을 부분이긴 합니다만, 물론 플레이 스타일을 생각하면 오늘 경기도 뛸 수 있습니다. 다소 무리만 하면요.”
“쉬라고 했더니, 다들 놀고 온 건지, 허허. 감독님. 이번 경기는 한번 재점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약간의 징벌적인 의도도 필요하고…….”
알롭 코치의 얘기는 일리가 있었다.
물론 아직도 알롭과는 간혹 각을 지는 막스가 미약한 반대를 했다.
“경기 당일에 일부라지만 선발 명단에 변화를 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아니, 없습니다.”
나는 막스에게 경어를 썼다.
친구로서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말하겠다는 뜻.
막스는 하던 말을 멈추고,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친구로선 당신의 조언을 듣는 데 문제없다.
하나 감독으로서 코치의 조언을 듣고, 수용할지는 오로지 내가 판단한다는, 의미.
“문제없습니다. 적어도 ‘이번’ 경기는요.”
“으음?”
“기존 선발 명단에서 바꾸는 선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커다란 전술 보드를 바라봤다.
필드가 그려진 포메이션에 예정된 선발 명단의 자석들이 붙어 있었다.
선수의 번호가 적힌 유니폼 자석.
“누구를……?”
나는 필드의 포메이션 바깥, 벤치의 위치에 있는 자석 하나를 중앙으로 딱, 옮겨 붙였다.
No. 16
토마스 캐롤.
* * *
“Oh- when the Stags go marching in(오, 숫사슴이 전진할 때).”
“I want to be in that number, Oh when the Stags go marching in(그 대열에 함께 할 거야, 오, 숫사슴이 나아갈 때)!”
리그 21라운드 포트 베일FC 전.
홈구장에서 원정팀을 맞이한 맨스필드의 응원가가 귀를 찔렀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경기장에 들어선 팬들은 대개 가족들과 함께였다.
가족들과 함께 찾아온 경기.
팬들은 더 재밌고, 확실한 승리를 원했다.
“Fuxxing Stags!”
반면 그런 즐거움에 똥물을 뿌리겠다는 듯이 포트 베일은 맞대응을 해왔다.
빠른 공수 전환과 기동력으로 승부를 볼 셈.
그간 맨스필드를 상대로 그나마 효과를 본 공략법이었다.
평균 연령이 높고 강력한 전방 압박을 고수하는 탓에 빠른 체력 저하를 보이는 맨스필드를 상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포트 베일은 여지없이 그 공략법을 시도했다.
물론 그간의 성적, 무패 행진이 말해 주듯이.
투웅!
―맨스필드의 토마스 캐롤, 허리에서 패스를 끊어 냅니다!
그 공략이 꼭 통한다는 장담은 없다.
하지만 분명 효과는 확실했다.
―맨스필드, 박싱데이에 이르러 체력적인 부하가 온 듯한 모습입니다! 포트 베일의 기동력에 공격 전개를 원활하게 펼치지 못하는데요!
포트 베일의 템포는 남달랐다.
중원에서 몸싸움으로 버텨 주는 포트 베일의 중앙 미드필더, 켐벨의 공간 장악에 토마스 캐롤은 이겨 내지 못했다.
켐벨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패스 줄기는 뭉툭하고, 정교하진 않으나 방향성은 옳았다.
좌우로 한 박자 빠르게.
투웅!
완벽하진 않아도 된다. 다섯 번 패스해서, 한 번, 또는 두 번만 통하면 된다.
왼쪽에서 달려가는 윙어 잭슨이 공을 잡고, 막아서는 스탠리를 흘긋 바라본 뒤 망설이지 않고 크로스.
뻐엉-!
스탠리와 일대일로 붙으면 공격이 불리하다는 걸 감안한 빠른 크로스는 날카롭게 중앙으로 파고들었지만-
“Yeeeeeeeeeea-!”
골키퍼 리처드가 한 발짝 더 빨랐다. 날아오는 공을 보고 뛰어올라 두 손으로 잡아내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완벽한 타이밍에 정확한 위치에서 긴팔을 쭉 뻗어 공격을 무위로 만들어 버리는 골키퍼의 존재감이란.
“Wuuuuuuuuuu-!”
“리-처드!”
“뚫어봐라, 이 머저리들아! 리처드란 벽이 너희 앞에 있노라!”
실로 든든했으니까.
―포트 베일이 공세를 펼칩니다! 평균 연령이 높은 맨스필드, 박싱데이를 맞아 경기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네요. 또 한 번 우측 측면에서 흔들기 시작하는 포트 베일!
경기의 양상은 분명 포트 베일의 우세였다.
대니 스콧의 결장은 치명적이었고, 패스 배급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팀이 전체적으로 느릿하고 발이 무거운 듯한 모습.
평소에도 빠른 기동력에 종종 당하곤 했던 맨스필드는, 지금 가장 취약한 상태임이 분명했다.
―포트 베일의 공세가 멈추지 않고 이어집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포트 베일이 맨스필드에게 승리라는 선물이 아닌 패배를 안겨 주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데 그런데도.
뻐엉!
“――!”
“Wuuuuuuuuuuu”
스코어가 그대로인 이유는.
―벌써 네 번의 슈팅을 전부 막아 내는 리처드! 중거리 슛, 굴절 슛, 페인트 슛, 강슛 상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포트 베일의 어떤 선수도 리처드와의 심리 싸움에서 이기지를 못하고 있어요!
리처드의 압도적 활약 하나였다.
“빌어먹을, 탈 리그 원급 골키퍼를 데리고 오는 건 사기 아니냐고!”
“저 정도가 고작 첼시의 써-드였다고? 리그 간 격차가 이 정도야?”
“아니, 저걸 뚫고 어떻게 넣냐고!”
원정석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경악과 비명이 말해 주듯, 포트 베일은 골을 위한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다.
단순히 리처드의 선방률이 대단하기만은 아닌, 복합적인 이유였다.
―포트 베일의 공격수 빌리 마쉬! 또 한 번 리처드 골키퍼와 정면 대결입니다!
‘빌어먹을.’
포트 베일의 스트라이커 빌리 마쉬는 이를 악물었다.
심리전.
공격수와 골키퍼의 대결은 심리전과 같다.
어디에 슈팅, 어떻게, 누가 초조하고, 누가 급하고, 먼저 심리를 읽고, 선점하고.
찰나의 스포츠.
서로의 숨소리가 귓가에 천둥처럼 울리고, 눈이 마주치고, 온갖 생각이 시선으로 주고받는 그 순간의 싸움에서.
‘웃어?’
빌리 마쉬는 또 한 번 시야에 환한 웃음이 잡히자 복장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포커페이스는 스포츠에서도 중요하다.
골키퍼가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면, 실점하고 만다.
반면 공격수가 골키퍼를 앞두고 초조해하는 표정을 짓는다면, 슈팅은 골문 안으로조차 향하지 못하고 소위 ‘홈런’이 나올 때가 있다.
그랬다.
지금 리처드와 빌리 마쉬의 일대일 상황은, 오로지 심리전이었다.
때문에 빌리 마쉬는 미칠 지경이었다.
‘또 웃고 있다고?’
무슨 생각인지, 어떤 감정인지, 단 하나도 읽히지 않는다.
아예 감조차 잡을 수 없다. 어디로 움직일지, 느낌조차 오지 않는다.
저 웃는 얼굴이 모든 시선을 빼앗아서, 리처드의 몸짓에 집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일대일 상황이, 절대적으로 공격수가 유리한 이 상황에서, 웃어?’
속이 뒤집힐 것만 같은 용암이 저 안에서부터 솟구친다.
분노는 스포츠에서 양면성이다.
적절한 분노는 괴력, 자신도 모르던 잠재력까지 끌어내지만.
지금, 이 순간에선.
―리처드! 일대일 상황에서 튀어나와 또 한 번 골문을 지킵니다! 엄청난 판단, 환상적인 슈퍼 세-이브! 빌리 마쉬, 또 리처드를 넘지 못합니다!
리처드가 춤을 추게 만드는 요인에 불과했다.
* * *
“괜찮아, 괜찮아! 좋았어! 아무 문제 없어-! 나만 믿어!”
등 뒤에서 울리는 리처드의 목소리는 든든했다.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상황에서, 수비수로서 최악의 실수를 범한 장면에서.
“내가 다 막고 있으니까, 자책하지 마!”
거침없이 선방을 해내고, 긍정적으로 격려해 주는 그 목소리가.
‘빌어먹을, 리처드.’
듣기 힘들었다.
정작 실책을 범한 건 자신인데, 그런 수비수를 구원해 준 건, 말도 안 되는 선방을 보여 준 리처드일 텐데. 젠킨슨은 왜인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멍청한 놈.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젠킨슨은 애써 리처드에게 이상한 마음이 드는 자신을 타박하며 머릿속에서 떨쳐 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젠킨슨. 정신을――.’
젠킨슨은 후, 숨을 내뱉었다.
고작 전반전 2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벌써 턱밑까지 숨이 가빴다. 자리에서 멈춘 채, 허리를 숙여서 호흡을 골랐다. 무릎에 올려 둔 양손의 손등에서 시퍼런 핏줄이 두드러졌다.
희미하게 떨리는 손.
‘두 번의 실책은 오로지 내 문제다.’
두 번의 치명적인 실책이 자신의 발끝에서 터져 나왔다.
자신의 수비 영역에서. 내가 마킹해야 할 상대에게서.
‘리처드가 아니었다면.’
두 눈이 질끈 감겼다.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결과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꽈악.
악무는 이빨이 으스러질 듯했다. 잇몸이 비명을 내지르며 핏방울을 내뱉었다. 수비 라인을 이끌어야 하는 놈이, 팀의 최고참이라는 놈이, 주장 완장을 차고 있다는 놈이, 팀을 무너뜨릴 뻔했다.
죄책감 따위는 아니었다. 저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분함.
이것밖에 못 했다는 아쉬움을 넘어선.
투웅!
“뛰-어!”
하나 자괴감에 빠질 시간조차 없었다. 필드 위의 공은 그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젠킨슨은 머릿속에서 몰아치는 상념을 치워버렸다.
턱 막히는 가쁜 호흡, 쥐어짜는 것 같은 근육통 따위도 씹어 삼켰다.
좁아지는 시야를 억지로 크게 뜨고, 입술을 질끈 깨물어 새로운 고통으로 정신을 일깨우고, 젠킨슨의 정신은 다시 치열한 필드 위로 돌아왔다.
돌아온 순간.
온갖 함성과 야유, 그리고 선수 사이의 고함들이 귀를 찔렀다.
“캐롤! 밀리지 마!”
센터서클 부근.
“캐롤!”
“전진! 전진해!”
“도와줘! 옆에 가서 공 받아 주라고!”
“뺏기지 마! 공 지켜!”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는 선수들의 틈바구니.
악을 써 대며 버티고, 서로의 유니폼이 찢어질 정도로 잡아당기고, 어깨로 때리듯이 밀치는 가운데에서 어떻게든 공을 지키고자 버티는 한 선수.
그 순간.
어떻게든 공을 지켜 낸 뒤에 전방으로 패스를 뿌리려던 토마스 캐롤은 젠킨슨과 눈이 마주쳤다. 어떤 외침도 없었지만, 젠킨슨의 발은 움직이고 시작했다.
투웅!
백패스.
그건 토마스 캐롤이 이겨 내지 못하고, 물러서고 회피했다는 의미.
하나 캐롤의 눈빛을 본 순간.
어제, 훈련장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나는 포기 안 해, 캡틴.
투웅-
“…….”
발끝에 착 달라붙는 공의 매끄러운 질감.
그 질감을 느끼며, 젠킨슨은 투웅,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해야 할 건 오로지.
―하세요, 그 역할.
경기 전, 유진이 했던 그 지시를.
―주장답게요.
온전히 수행하는 것.
―백패스를 받은 젠킨슨, 곧장 패스하지 않고 거침없이 전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