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62)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61화(162/266)
161. Captain Jenkinson (1)
“자일슨 팀장님.”
“아, 수석코치님.”
사무실에 들어온 막스는 다크서클이 입꼬리까지 내려온 자일슨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첫 만남 때 모습하고는 너무 달라진 얼굴.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좋지 못한 얼굴이지만, 막스는 차마 무어라 염려를 표하지 못했다.
눈빛만큼은 젊은 사람을 보는 듯 반짝였으니까.
“노츠 카운티전 분석 보고서에 약간 의문이 생겨서요.”
“아, 앉으세요.”
“다름이 아니라 상대 공격수 잭슨이 측면 배치될 거라는 예측이…….”
막스와 자일슨은 의외로 합이 잘 맞았다.
본래 비선수 출신의 무명의 전력분석관이었던 막스. 회계일에 종사하며 아마추어로 활동했던 전직 칼럼니스트 자일슨.
선수 출신 코치에 자격지심이 있는 막스에겐 능력도 있으면서 비선출인 자일슨에게 미약한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출신 때문만은 아니다.
나름 전력 분석 쪽으로도 어지간한 빅클럽 분석관보다 낫다고 자신하는 막스조차 자일슨의 실력에 어디 감탄을 한두 번 했던가.
“직전 경기까진 중앙에 있었죠. 2선으로 내려와 봤자 쉐도우 스트라이커 정도 소화했으니, 수석코치님의 의문은 합당합니다만, 작년에 치렀던 일부 경기를 보면 전방 압박을 해 오는 상대에게는…….”
“……작년 경기까지 분석하신 겁니까?”
“네.”
“맙소사…….”
막스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덧붙여 이해할 수 없는 성실함까지.
아니, 그건 성실하다는 표현과는 궤가 달랐다.
좋아서.
이 일이 좋아서 개인 시간까지 전부 쏟아부어서 멈출 수가 없는.
소위 말하는 ‘즐기는 자’ 모드에 들어간 자일슨은 훌륭한 인재였다.
코치진 사이에서는 이번 시즌 최고의 영입은 앤서니와 리처드가 아니라, 자일슨의 스카웃이란 소리가 있을 정도니 오죽하겠는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해가 가는군요. 유진, 아니 감독님께 해당 코멘트까지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좀 쉬면서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제 새해인데요. 프런트에서 신년 홈 파티도 여는데.”
“하하, 예, 하던 일만 하고요.”
“예? 1월에 치르는 경기 대부분 전력 분석 끝나지 않았나요? 설마 2월 경기까지……?”
“아, 그건 아닙니다. 상대 팀이 아니라, 우리 팀이요.”
“우리 팀?”
막스가 호기심을 보이며 뿔테 안경 너머로 흘끗거렸다.
자일슨이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기에, 책상 건너편에서도 조금은 읽을 수 있었다.
하나 그 순간, 흘깃거리던 막스의 동공이 우뚝 멈췄다.
“잠깐, 팀장님.”
“네?”
“그거, 좀 자세히 봅시다.”
막스는 대답도 듣지 않고 자일슨의 곁으로 가서 빠르게 내용을 살폈다.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동공이 멈춘 순간.
딱딱하게 굳어 버린 얼굴에서 착 가라앉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팀장님. 이거 들고, 나랑 유진한테, 아니 감독님한테 같이 좀 갑시다.”
“예?”
“당장요.”
* * *
“…….”
사무실은 고요했다.
태블릿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내리고 있는, 유진의 평온한 숨소리만이 들릴 뿐.
막스와 자일슨은 긴장한 얼굴로 유진이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고 침묵을 깨는 순간을 기다렸다.
“자일슨 팀장께서, 분석하신 내용입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낸 건 아니고”
그는 그러면서 흘긋 막스의 눈치를 봤다.
막스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받았다.
“단순히 숫자로 드러나는 통계지만,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엿보였어요. 미처 캐치하지 못한…….”
“수석코치.”
“네?”
“저는 필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런 부정적인 놈입니다.”
막스는 입을 다물었다.
유진은 태블릿을 책상에 착, 내려놓곤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이건, 너무 선명한 단점이었죠. 아니, 어쩌면 약점.”
순간 막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알고 있던 내용입니까?”
“이렇게 명확한 숫자의 통계로는 몰랐습니다. 다만 대충은 느끼고 있었죠. 보고서로 보니 확실하네요.”
“…….”
“자일슨 팀장, 이건 아무래도 제가 한 말 때문에 작성하기 시작한 내용 같은데, 맞습니까?”
“네, 저번에 말씀하신 그……아.”
그 질문에 자일슨은 대답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유진에게 이제 당신의 팀이 완성된 것이냐고 물었을 때 나왔던, 그 대답.
‘아직은요, 한 팔십 프로쯤.’
유진의 답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이미 그런 얘기를 한 순간부터, 유진은.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말했다시피 이렇게 숫자로 명확하게는 몰랐습니다. 그저, 알았죠.”
감독의 직감.
순간 자일슨은 헛웃음이 나왔다. 유진의 대답으로부터 의문이 생기고 나서야, 팀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 이후에 겨우 보일 듯했던 희미한 균열을.
‘그냥 눈치채고 있었다고? 그게 감독의 감이란 말이야?’
자일슨은 자타공인 맨스필드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해박한 사람 중 하나다.
아마추어로 활동할 적에 이미 유진이 감탄해서 스카웃할 정도로, 그 이해도와 식견은 프로 레벨 이상이었다. 경기장 바깥. TV 중계 너머로 맨스필드를 보는 것만으로 그 정도였으니, 내부 구성원이 된 지금은 오죽할까.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간 본 유진 감독의 철학, 감독님이 끝내 바라보는 목표에 팀은 부합하고 있다. 분명히.’
선수 한두 명에 의지하지 않는, 선수들이 모두 하나의 팀에 종속된 팀.
그래, 이건 완성된 팀이다.
퀄리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진이 추구하는 바.
절대적인 감독의 지시에 선수들이 단일 개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팀. 선수가 바뀌어도, 그 흐름 자체가 뒤집히지 않는.
‘그런데 이게 80%라고?’
질 만한 경기, 이기기 어려운 경기조차 매번 승점을 얻어 올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
‘왜 리처드라고 했을까? 저렇게 잘 막는데, 왜 80%라고 했을까?’
그래서 자일슨은 따로 시간을 내서 분석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태블릿에 나와 있는 결과였다.
유진의 얘기를 듣던, 막스가 찡그린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알고 있었다는 겁니까. 우리 팀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압니다.”
그 대답을 들은 순간, 막스는 팀의 문제점을 발견했다는 불안함과 동시에 유진이 ‘이미’ 알고 있었단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원인도요.”
“……!”
“무수히 많은 빅클럽이 수천만 유로, 몇억 유로를 들여서 소위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영입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래 놓고도 강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
“물론 복합적인 이유입니다. 선수의 적응, 잘못된 코칭, 단결하지 못한 팀 분위기, 맞지 않는 전술…….”
“우리와는 좀 다른 이유 아닌가요? 일단 팀의 성적을 보면 우리는 그들과 달리 확실히 강해졌음을…….”
“착각입니다.”
“……!”
“강해진 것처럼 보이는 착각. 한 선수의 활약이 다른 선수들의 실책을 가려 버리는 괴현상.”
“……리처드.”
“압도적인 선방 능력으로 무실점을 이뤄내는 통곡의 벽.”
“…….”
“어차피 리처드가 막아줄 테니까. 이 실책도 리처드가 막아주니까. 여기서 패스가 끊어져도, 리처드가 막으니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유진이 후, 짧게 숨을 내뱉었다.
“리처드가 활약할수록, 우리 팀은 안일해지고, 약해지고 있습니다.”
* * *
―22경기 연속 무패에 도전하는 맨스필드의 경기입니다!
―레이튼 오리엔트를 상대로, 맨스필드는 로테이션을 가동했습니다!
―3일 전에 포트베일을 겨우 이겼고, 이제 3일 후엔 또 가장 중요한 더비전, FA컵 3라운드 노츠 카운티전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하지만 맨스필드의 서포터즈들은 로테이션에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스탠리와 톰 뉴톤이 결장한 수비진으로 파고드는 레이튼의 스트라이커!
―기습적인 슈팅, 그러나 안정적인 선방! 리처드, 춤을 춥니다! 로테이션 가동에도 맨스필드 팬들이 걱정하지 않는, 그 이유를 그대로 보여 주는 리처드의 선방 쇼가 시작됐습니다!
* * *
“너튜브나 우리 팬포럼에 올라온 리처드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허어, 장난 아니네요.”
“리처드가 이적 시장 마지막 날 이적해 왔음을 고려하면, 그리고 이제 열 경기를 조금 넘게 치렀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이라이트라고 보기엔 너무 깁니다.”
“하지만 나오는 장면, 장면이 모두 하이라이트인데요?”
“그럼요. 하나같이 다 선방이니까요.”
“리처드의 선방 쇼라…….”
“선방을 잘한다, 선방이 많다, 이건, 조금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죠.”
* * *
투웅, 대니 스콧의 패스가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패스의 한줄기 궤적은 레이튼 오리엔트 선수들에게 혼란을 불러왔다.
최전방.
버티고 서 있는 해리 오스카의 머리냐, 그도 아니면 유령처럼 파고들고 있는 앤서니냐.
둘 다 동시에 막을 수는 없다. 둘을 다 막으려다간, 하나도 막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건, 그간 맨스필드의 성적이 보여 주니까.
“저 덩치 막아!”
“저놈 머리다!”
하지만 수비들의 판단은 절반만 맞았다. 공이 오스카의 머리를 노린 것은 맞았다. 하지만 오스카는 굳이 머리에 공을 맞히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은 공을 받기 위한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모습이라기보단.
“어?”
“으윽!”
도리어 같이 뛰어드는 수비들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그 누구도 공에 머리를 닿지 못하게 하는 ‘수비’에 가까웠음을.
모두 필드 위에서 뛰어오른 직후에 깨달았다.
후웅!
공은 누구의 머리에도 닿지 못했다. 오스카와 수비들의 그 엉킴이, 도리어 공이 자유롭게 넘어가는 결과를 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투욱.
“――!”
유령과도 같은 움직임의 앤서니가 있었다.
레이튼 오리엔트 선수들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달려드는 수비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내빼고, 각을 좁혀 오는 골키퍼를 끝까지 노려보다가, 가볍게 툭 차올리는 칩 슛.
“앤-서-니 로호오오오우!”
“Yeeeeeeeeea!”
앤서니 로우는 오스카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공도 못 따요오? 내가 공 못 잡았으면 아무것도 안 될 뻔 했네에에.”
“공 흘려 준 거라고.”
“흐으음, 나이 먹고 점프력이 줄어든 거 같은데에에.”
“하, 이 맹랑한 꼬맹이.”
* * *
“우리 팀의 강력한 공격력은 역설입니다. 높게 끌어올리는 수비 라인. 공격적으로 전진하는 미드필더. 수비 가담을 현저히 줄이는 최전방과 2선. 수비가 약해질 수밖에 없죠. 이런 선택이 가능한 이유?”
“리처드가 막아주고 있으니까…….”
“균형, 밸런스를 무시한 공격적 색채를 가질 수 있는 이윱니다. 문제는, 이 색채가 선수들에게 너무 심하게 묻어나고 있어요.”
“심하게요?”
“선수들도 무의식적으로, 수비보단 공격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수비에 힘을 실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수비 가담을 해 줘야 하는 부분에서도,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점에서도요.”
“그러면, 전술적으로 지시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 * *
앤서니 로우의 선제골에 레이튼 오리엔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맨스필드의 맹공은 확실히 무서웠다.
그러나 축구만큼 공수 양면의 균형을 잡기 어려운 스포츠가 또 있을까. 폭발적인 공격의 양면에는 부실한 수비가 돋보일 수밖에 없다.
맨스필드의 뒷공간.
레이튼 오리엔트는 단 한 번의 다이렉트 패스로 공략을 시도했다.
“기회다, 역습이야, 다들 뛰어!”
“Run- RunRun!”
그 한방의 역습은 확실히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뻐엉!
“Yeeeeeeeeeeeeea!”
“골문의 수호신에게 고개를 조아려라-!”
“리-처드!”
물론 리처드를 넘지 못했다.
리처드의 선방으로 간신히 넘긴 위기. 당연히 그런 상황을 벤치에선 두고 볼 수 없었다.
“라인 내리고 침착하게! 차분하게! 압박보단 자리를 지켜!”
유진이 나서서 선수들의 라인을 조정하고 침착하게 플레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리처드, 오늘 춤을 몇 번이나 출 거야?”
“또 막았다고! 어디 한번 또 와 봐라-!”
하나 그 이후에도, 그와 같이 뒷공간이 공략당하는 상황은 몇 번이고 거듭 반복했다.
* * *
“라인은 내렸습니다. 하지만 뒷공간은 번번이 열립니다. 이는 전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선수들의 반응이, 한 박자 느린 것 같은데.”
“덕택에 리처드의 하이라이트 영상에 추가될 만한 장면은 계속 늘어나고 있죠.”
“선방 쇼를 매 경기 펼친다는 것은…….”
“그만큼 선방을 많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뜻입니다.”
“선수들이 자만하고 있는 걸까요?”
“아뇨, 자만은 아닙니다. 단지 믿음이 강하다는 거죠.”
“믿음이라고요?”
“이 정도 위험한 패스는 해볼 만해. 최악이더라도 리처드가 막아줄 거니까. 조금 공을 몰고 올라갈 만하지 않나. 문제가 생겨도 리처드가 있으니까. 너무 깊숙이 내려갈 필요가 없어, 빠른 공격을 위해서라도 상대 진영에 들어가 있는 게 낫지 않나? 상대 역습? 리처드가 있잖아? 같은.”
“리처드에 대한 과도한 의지……?”
* * *
레이튼 오리엔튼은 미칠 지경이었다.
상대는 지독히도 무서울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비단 라인을 올렸느니, 전술적으로 맹렬하게 나온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얘네들 뭐야? 뒤도 안 돌아봐?”
“아니, 뒤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앞으로만 내달려?”
“이 미친놈들! 너희 뒷공간 농락당하고 있다고!”
“그런데 얘들 왜 역습에도 겁을 먹지 않는 건데?”
“왜 이렇게 과감한 거야!”
상대하는 레이튼 오리엔튼 선수들은 숫제 기가 질려 버렸다. 이쪽에서 몇 번이고 뒷공간을 공략하고 있지만,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라인을 내리는가 싶었다가도, 선수들의 자세와 태도가 한없이 공격적이라는 건,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무서웠다.
“하! 너희가 공격을 해봤자지!”
“강 대 강, 서로 공격만 하는 난타전, 한번 해보는 게 어때?”
수비를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 듯한, 그 기세에 레이튼은 도리어 쪼그라들었다.
“Yeeeaaaaaaaa!”
측면에서 내달리는 제임스의 질주는 그런 레이튼 오리엔트의 심장에 찌르는 비수였다.
레이튼처럼 뒷공간을 공략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정면에서 전진해서 정석으로 파고드는 것.
측면에서 올라온 크게 휘어지는 크로스는.
“나한테 떨어뜨려 줘요!”
“웃기는 소리!”
해리 오스카의 헤더골로 연결됐다.
* * *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믿음이 있기에, 선수들은 좀 더 과감하게 플레이할 수 있던 거죠.”
“으음, 이게 좋은 건지…….”
“지금 상황에선 좋습니다.”
“지금 상황에선요?”
“리처드가 슬럼프를 겪지 않는 지금에서는요.”
“……!”
“10년이 넘는 프로 생활 중, 출전 경기가 80경기도 되지 않는 중고 신인입니다. 아직 슬럼프를 겪어 본 적 없는 특이한 유형이죠.”
“언젠가 슬럼프를 겪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그 순간이 오면, 리처드에 대한 의지와 믿음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 되어 버린 우리 팀은, 어떻게 될까요?”
“……!”
“선수에 대한 믿음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의지는 안 됩니다. 서로 함께하는 동료여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팀원이어야만 합니다.”
“어렵네요. 선수들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설령 그게 통할 리도…….”
“네, 선수 간의 문제입니다. 감독의 지시와 명령으로 조절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죠. 즉.”
“……?”
“선수가 해결해야 합니다.”
* * *
“캡-틴! 오늘 리처드가 저녁 쏜다는데?”
“오오-! 승리의 일등 공신이!”
“캡틴도 갈 거지? 어?”
“……허, 몸이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미안하군.”
젠킨슨은 타박상을 입어 멍이 든 허벅지를 흘깃 보여줬다.
얼음찜질을 해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붓기.
다가온 선수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아무렴. 늙은이는 빼주고, 젊은 친구끼리 놀지 그래?”
라커룸의 한쪽에선 리처드가 음악을 켜놓고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하나같이 환한 웃음.
젠킨슨은 후, 숨을 내뱉으며 경련하는 허벅지의 근육과 부서질 듯 아리는 무릎을 매만졌다.
승리는 기쁘다.
한데 어째서일까.
젠킨슨은 기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미묘했다.
결과는 좋다. 하지만…….
“우리 오늘 경기력은, 정말 실수하나 없이 완벽했나?”
툭 튀어나오는 불만.
하나 젠킨슨은, 승리의 기쁨에 웃고 있는 선수단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우리 캡틴, 젠킨슨은 왜 저렇게 피를 흘릴까요? 원래 몸을 아끼지 않는 건 알지만, 작년보다도 훨씬 더.”
“네?”
“작년과 달라요. 그땐 행동과 말, 두 가지로 선수단을 휘어잡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요?”
“음, 훈련장에서도 젠킨슨이 선수들을 두고 크게 소리치는 경우가, 생각해 보니 별로 없군요.”
“오로지 행동으로만 보여 줍니다.”
“행동이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확실하지 않나요?”
“오햅니다. 말하지 않으면, 사실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
“물론 뭐든지 리더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분명 선수단에게 영향을 줄지도 모릅니다. 다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서, 유진의 말을 끊었다.
유진은 필드를 바라봤다.
여기저기 웃으면서 손뼉을 치고, 서로 어깨동무하고, 또 한 번의 승리에 춤을 추는 리처드와 선수들 사이.
한 선수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완장을 찬 채, 양팔을 바닥에 짚고 엎드린 채로 고통스러운 호흡을 내뱉는 젠킨슨.
90분을 전부 쏟아 낸 그 불사르는 투혼을 바라보며, 유진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주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