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66)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65화(166/266)
165. Captain Jenkinson (5)
―맨스필드,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축구에서 ‘운’이라는 단어만큼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있을까.
운 때문에 졌고, 운 덕분에 이겼다. 축구에서 툭하면 튀어나오는 말이다.
토마스 캐롤의 끔찍한 부상 아웃은 우리에겐 최악의 운이었다.
“이거 완전히 꼬였는데.”
“감독님. 어떻게 대응을?”
냉정하게 보일지라도 코치진은 선수의 부상에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수만은 없다.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전술을 수정해야만 했다.
“수비수로 출전했던 톰 브룩스를 원래 자리로 올립니다. 젠킨슨을 캐롤 대신 교체로 수비에 투입합니다. 우선 큰 변화는 없습니다. 전반전 종료까지 10분 남았으니, 최대한 안정성을 중시합니다.”
그럴 때가 있다.
때때로 좋지 못한 일들이 닥친다고 느낄 때.
갑자기 예상치 못한 변수와 온갖 좋지 못한 일이 연이어 벌어질 듯한 흐름.
캐롤의 부상 아웃은 그 흐름의 시작이었다.
부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고는 악의적 의도로 보이진 않았다. 설령 그게 반칙인 것은 분명 할지라도.
경기의 분위기와 필드의 상황이 만들어낸 악운에 가까웠다.
과열된 분위기에선 그 누구도 쉽게 공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실점을 내어준 노츠 카운티는 명백히 득점으로 연결될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수비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내던졌다. 수비에 있어 간혹 반칙을 해서라도 틀어막는 것은, 무조건 비난할 행위는 아니다.
사실 수비수가 좀 더 가까웠고, 수비에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 상황이라면 공격 측이 피하거나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 일반적.
하나 절박한 건, 토마스 캐롤도 마찬가지였다.
팀의 유스 출신은 아니지만, 젠킨슨과 더불어 가장 오래 맨스필드에서 뛴 선수.
이 더비전의 중요성을 몸으로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기 짝이 없는 로테이션 멤버의 절박함까지.
양보할 수 없는 두 감정이 충돌한 결과가 바로 캐롤의 부상 아웃이었다.
“큰 부상이 아니어야 할 텐데요.”
“후. 일단 우리들은 경기에 집중합시다. 캐롤이 저렇게 된 이상 이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하나 악운은 절대 한 번만 오는 법이 없다.
삐빅, 삑!
―토마스 캐롤 선수의 부상으로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던 톰 도허티가, 어, 어, 심판 따로 호출하더니, 카드를 꺼냅니다! 잠깐만요, 이러면 톰 도허티 선수 경고 두 장이거든요? 이런, 레드카드, 경고 누적으로 퇴장입니다!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톰 도허티의 퇴장!
―하아, 심판이 좀 과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구두 경고로 끝내 줘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데……
과열된 분위기에서 양 팀은 엄청난 파울을 범했고, 경고만 다섯 장이 나온 상태.
캐롤의 부상에 흥분한 톰 도허티가 왜 상대방 수비수에게 퇴장을 주지 않느냐며 강력하게 항의하다 두 번째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
그것이 흐름의 두 번째 파도였으며.
―토마스 캐롤의 부상 아웃, 톰 도허티의 퇴장으로 잠시간의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맨스필드, 지금 필드 위에 아홉 명만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악운이, 좋지 못한 흐름이.
상대에겐 행운이고, 좋은 흐름의 시작임이 명백할 때.
―노츠 카운티의 잭슨!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점 골을 쏘아 올립니다!
―흐음, 네, 멋진 골이네요. 음.
―8년 전, 6대 1의 스코어를 기록했던 그 맞대결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렸던 잭슨이 지금도 또 한 번 맨스필드의 심장에 비수를 박고 있습니다!
―뭐, 이제 동점이니까요……
―하지만 맨스필드, 이제는 한 명이 없다는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합니다!
그 흐름을 끊어 줘야 한다.
―대기심 전광판을 들어 올립니다! 부상으로 아웃당한 토마스 캐롤과의 교체로 보이는데, 오……
그 어느 때보다도 얼굴을 단단히 굳힌 젠킨슨의 무거운 발걸음이, 필드의 잔디를 밟았다.
* * *
“이미 돌이킬 순 없는 거지만, 유진, 아니 감독님. 나는 젠킨슨이 선발이었어야 했다고 봐요.”
“…….”
“톰 도허티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한 지금, 이런 더비전의 중요성을 피부로 아는 선수, 그리고 주장이라는 책임감, 헌신과 투혼이라면…….”
유진은 막스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냈다.
“그저 예상일 뿐입니다.”
“…….”
“젠킨슨은 오늘 경기에서 오히려 무너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무너진다고요?”
“젠킨슨에게 온 문제는 일종의 과부하죠.”
“과부하?”
유진은 코치진을 흘긋 바라보고 필드로 시선을 돌렸다.
수비 라인에 아무 말 없이 굳은 얼굴로 서 있는 젠킨슨.
여러모로 혼란에 빠져 어수선한 분위기를 유진은 피부로 느꼈다.
그리고 젠킨슨의 어깨에 지고 있는 온갖 것들의 감정들도.
“혼자서 수비 리딩, 대인 마크, 공중 볼 제압… 그 모든 걸 해내려는 데서 오는 부하가 체력을 고갈시킵니다. 아니,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정신의 고갈입니다.”
“체력과 정신력…….”
“체력과 기량의 저하가 뚜렷해지니, 스스로 알게 되는 거죠.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습니다. 평생을 맨스필드의 주장으로서 뛰어온 그에게는 더욱이요.”
“…….”
“과거에는 가능했습니다. 팀의 수준이 낮았고, 그는 젊었으니까. 기대치의 절묘한 균형이었죠. 하지만…….”
“달라져 버렸군. 한 남자만 바라보던 필드가요.”
이제는 모든 선수의 필드가 되어 버렸다.
관중석과 벤치, 모두가 한 사람을 바라보던 필드는 이제 없다.
“젠킨슨이 있어야만 한다고요? 주장인 그가 필드에 있어야만 했던 곳은.”
유진은 짧게, 후, 숨을 내뱉고 단호하게 말했다.
“과거의 맨스필드입니다.”
그 말은 곧, 현재.
지금의 맨스필드. 오직 유진이 다시금 세우고 만들어 가고 있는.
“내 팀에 대체 불가능한 건 없습니다.”
“……!”
코치의 질문을 한마디로 정리한 유진이 필드를 바라봤다.
젠킨슨이 여전히 굳은 얼굴로 수비 라인을 지휘하고 있었다.
여전히 열심히, 여전히 성실히, 여전히 투혼을 불사르며, 헌신하는 그 자세.
그는 여전히 주장다웠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이를 악물고 뛰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내겠다는 그 감동할 정도의 헌신적인 태도.
“…….”
대체 불가능한 선수는 없다.
그것은 유진이 평생을 쌓아 온 가장 확고한 신념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오직 단 하나.
‘팀의 정신.’
그것을 젠킨슨이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그의 선택에 달렸다.
* * *
축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90분이라는 플레이 시간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길고, 한 번의 흐름이 쭉 유지되지 않는다.
아무리 약팀이라도 공세를 주도하는 순간이 온다.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양손으로 꽉 쥔 채 결정지어야만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노츠 카운티는 과연 챔피언십에서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 온 저력을 보여줬다.
강등당하지 않고 10년간 살아남았다는 사실.
이겨 내야만 하는, 지지 않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기어코 흐름을 쥔 채 결정을 지었다는 의미.
지금 노츠 카운티는 넘어온 흐름을 절대로 경시하지 않았다.
―전반 종료 직전, 잭슨의 역전 골이 터집니다! 8년 전 맞대결에서 그가 해트트릭을 터뜨렸던 악몽이 맨스필드 팬들의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명의 퇴장. 한 명의 부상.
급격하게 어수선해진 필드의 분위기. 완전히 넘어간 흐름.
초반 앤서니의 환상적인 골이 무색하게 노츠 카운티는 동점 골과 역전 골을 연이어 넣었다.
1대 0의 스코어가 1대 2로 뒤집히며 전반전이 끝나는 순간. 터널로 향하는 양측 선수단의 표정은 현격히 대비됐다.
“허어, 다 늙어서 이제 못 나오는 건가 했는데, 그래도 출전은 했네?”
굳은 얼굴의 젠킨슨은 툭 찔러 오는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러자 두 골을 넣은 노츠 카운티의 스트라이커, 잭슨은 젠킨슨의 앞을 막았다.
“왜 그래? 저번 맞대결 때 사람 하나 죽이려고 들던 그 갱스터는 어디 갔나?”
“……너도 그때와 달리 나이를 좀 먹었을 텐데.”
“아하, 이제 나이 좀 먹고 점잖아졌다, 이건가. 하, 그래도 더비전이잖아. 난 댁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고 싶어서 이 경기만을 기다렸는데.”
“…….”
잭슨은 8년 전을 회상하듯 눈을 굴렸다.
“하긴 늙긴 늙었나 봐. 이렇게 찔러 대는 데도 잘 참고. 선발로도 못 나온 거 보니 댁도 많이 늙으셨어. 참, 나한테 해트트릭 처맞고 분해서 내 얼굴에 주먹 꽂아 넣은 그 싸움꾼은 어디 갔나 모르겠네.”
“또 맞고 싶어서 까부는 거냐.”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도 잭슨은 전혀 위협을 못 느낀 듯 웃었다.
“글쎄. 늙어서 그때처럼 주먹이나 제대로 휘두를지나 모르겠어. 뭐, 나한테 주먹 꽂아 넣은 것 때문에 퇴장당하고 6대 1로 우리가 이긴, 맨스필드의 참사를 똑똑히 기억할 텐데. 미쳤다고 주먹질하겠어?”
“……!”
“하하, 그냥 받아들이라고. 겸허히. 좋네. 후반전 댁이 지키는 수비 라인 잔뜩 괴롭혀 줄 생각에. 후반전, 필드에서 보자고.”
젠킨슨은 그 얄미운 목소리와 얼굴을 보고도, 주먹을 쥐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서 새삼 놀랐다.
화가 나지만 참는다. 주장이니까.
짜증이 솟구치지만 애써 털어 낸다. 주장이니까.
경기 중에 온갖 트래쉬 토크로 성질을 긁어 대는 놈들에겐 그저 노려만 볼 뿐, 절대 맞대응하지 않는다. 주장이고, 그는 가장이니까.
관중석에 찾아온 부인과 귀여운 아들에게 보여 줄 수 없는 모습이니까.
참아야 한다.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한.
젠킨슨이 입 밖으로 다짐을 내뱉은 찰나.
“아니요.”
“……!”
순간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이었다. 젠킨슨은 기대듯 서 있는 모습에서, 유진이 진즉부터 그 자리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보셨습니까?”
“잘 참으시더군요. 저라면 이빨을 다 털어 버렸을 겁니다.”
“…….”
“이런, 제가 싸움에 영 소질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보네요. 믿지 않는 눈치시니.”
유진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가장 중요한 더비전에서 선수가 한 명 퇴장당하고, 2대 1로 역전당한 팀의 감독처럼 보이지 않는 그저 담담한 태도.
그랬기에 유진의 목소리는 늘 확고하게 귀에 꽂혔다.
“참을 필요 없습니다.”
“……!”
“감정을 억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주장이라는 무게감에 스스로를 지워 버리고, 감옥에 가둘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짊어지는 헌신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 말입니다.”
젠킨슨의 동공이 흔들렸다.
유진이 다가왔다. 그의 팔을 툭 쳤다.
“어떻습니까?”
“……?”
“지금 당신의 팔에는 주장 완장이 없습니다.”
순간 젠킨슨의 시선이 팔에 향했다. 급하게 교체 투입되고 어수선한 분위기라서 완장을 건네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면 당신은 젠킨슨 선수가 아닌 겁니까?”
“……!”
흔들리는 동공을 보면서, 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나서기 전까지.”
잠깐의 호흡, 그리고 담담함을 넘어 강렬한 눈빛.
그건.
“필드 위에서, 팀의 모든 선수를 움직일 자격이 있는 건.”
신뢰였다. 담담함 속에 가려졌던, 무엇보다도 단단한 믿음.
“오직 주장뿐입니다. 아니, 주장이라는 완장에 가려진 젠킨슨 선수, 당신 한 명뿐입니다.”
주장이라 부르지 않고, 다른 선수처럼 똑같이 이름을 부른다.
하나 어째서인지, 젠킨슨은 느꼈다.
더 강한 신뢰를.
“자신을 위해 팀을 믿으세요. 이 팀은 강해졌습니다. 한 사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지 않아도 될 만큼.”
“아니……”
젠킨슨은 터널로 걸어 들어가는 유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과거와 지금.
바뀌었을 뿐이다.
“팀을 짊어지고 있는 건.”
그는 머릿속, 무언가가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깨달음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깨달음에 단초일지 모를.
머릿속이 열린다는 감각.
질끈, 깨문 입술이 찢어져 핏방울이 맺히며, 두 볼살이 파르르, 희미하게 경련했다.
“나는……주장인가, 수비수 젠킨슨인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무엇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지.
“나는……그저 선수인가, 아니면…….”
미스터 맨스필드.
그는 한 번도 맨스필드였던 적이 없었다.
그의 역할은 언제나 싸움꾼이었고.
사실 주장 완장을 받았을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잠시 맡았던 완장의 무게에 짓눌리며 망각했을 뿐.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 내려놓기만 하면 되었던 것을.
“……그랬나.”
젠킨슨은 홀로 중얼거리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유진은 터널의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내는 이미 너무 멀어져, 희미해 보였고.
흔들거리는 전등은 희미한 경계 탓에 이전의 것인지 새로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맨스필드를 위해 싸웠지.”
그렇다면 돌아가면 됐다.
‘맨스필드’가 아닌,
‘맨스필드를 위해’ 싸웠던, 그때로.
“그랬어.”
순간 깜빡거리는 전등 불빛 아래에서.
맨스필드였던 사내는 생각했다.
다른 한 사내의 어깨에 드리워진 불빛이 섬광처럼 눈부시다고.
젠킨슨은 그 등을 따랐다.
그리고.
“괜찮아, 우리 잘하고 있으-”
라커룸 문밖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콰앙!
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는 순간, 라커룸 안은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 속으로, 동그랗게 부릅떠진 십수여 쌍의 눈빛 사이로 거침없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뎌.
꽈악!
“컥!”
젠킨슨은 리처드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 끌어당겼다. 콧잔등이 닿을락 말락, 충격과 고통으로 혼란스러워진 그 눈을, 잡아먹을 것 같은 짐승의 눈으로 쳐다보면서.
“이 미친 새끼가, 허파에 구멍 났어? 웃음이 쳐 나와? 괜찮다고? 역전당했는데 괜찮다고?”
쾅!
젠킨슨은 거침없이 리처드를 밀쳐 낸 뒤, 선수들이 앉아 있는 벤치를 그대로 두 손으로 들어 올린 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
오직 침묵과 당황, 정적으로만 범벅된 고요.
그 속에서, 격하게 호흡을 내뱉는 젠킨슨의 분노만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똑바로 들어, 이 개자식들아. 필드에서 뒈지거나. 내 손에 뒈지거나.”
주장이 된 이후, 미스터 맨스필드.
그 이전에.
“너희들이 해야 할 건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뿐이다. 오늘, 여기서 살아 나가는 새낀, 단 하나도 없어. 내가 죽이거나, 필드에서 뒈질 거니까.”
맨스필드 선수단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유진의 기억에도 선명히 각인된.
주장이란 이름에 가려졌던 본체.
‘폭군’ 젠킨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