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68)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67화(168/266)
167. Captain Jenkinson (7)
훅.
들이마시는 한차례의 들숨.
“끄아악!”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 상대 공격수 잭슨.
젠킨슨의 동공이 좌에서 우로, 빠르게 훑었다.
상대 선수들의 위치. 동료들의 이동. 전부를 시야에 담으면서, 가장 중요한 건 심판의 표정을 살피는 것.
‘이 정돈, 반칙이 아니라 수비로서 이해할 만하다는 건가?’
휘슬은 불지 않는다. 살짝 아리송한 표정이지만 구두 경고도 주지 않는다.
젠킨슨은 눈을 빛냈다.
잭슨이 고통을 호소하는 건 꾀병도, 할리우드 액션도 아니다. 자신이 뒤에서 공을 향해 발을 뻗는 척, 무릎으로 허벅지 아래를 찍었다. 진짜 고통이다.
‘보이지 않았던 건가, 아니면 이 정돈 플레이에 허용된다는 건가.’
아직 확실치 않다.
그 경계를 잘 타야 한다.
후우.
뱉어내는 날숨.
잔디에 나뒹구는 잭슨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젠킨슨은 공을 몰고 전진했다.
훅.
다시 들이쉬는 들숨.
젠킨슨은 호흡을 골랐다. 최대한 많이 들이마셔 폐를 가득 채운 뒤.
타닷!
―젠킨슨, 공을 뺏고 그대로 전진합니다!
전진, 또 전진, 한 단계 나아가다가 압박해 오는 상대의 미드필더를 보고도 방향을 바꾸지도, 패스하지도 않는다. 아직은, 아니다.
젠킨슨은 어깨를 들이박으며 파고들었다. 쿠웅, 충격에 머리가 뒤흔들렸다. 이를 악물었다. 상대의 어깨에 귀가 부딪친 듯, 이명이 들렸다. 아니, 이명과 뒤섞인 과거의 목소리가.
‘팀을 위한 명령입니다.’
‘헌신하지, 말라뇨?’
자신에게 무얼 요구하고 싶은 거냐고 되물었을 때, 나왔던 팀에 헌신치 말라는 명령. 당연한 반문이었다. 헌신만이 늙어 버린 몸뚱이가 이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전부일진대.
‘리처드, 별로 안 좋아하시죠?’
‘……!’
‘유일하게 리처드를 안 좋아하는 선수는 당신입니다.’
‘아니,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모두가 리처드에게 의존하고, 안일해지고, 심지어 코치진도 간과할 때, 선수만은 리처드를 탐탁지 않게 여겼죠.’
‘그러니까, 갑자기 왜 리처드, 그게 무슨 소립니까. 대체.’
‘하지만 알면서도 리처드에게, 선수들에게 동료들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몸이 부서지라 뛰기만 했던 건, 본인도 아신 겁니다. 정작 자신이야말로 리처드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요.’
후. 내뱉는 호흡이 거칠어졌다. 어깨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상대 선수의 압박에 몸을 돌리며 버텨 내지만, 뚫어낼 수가 없었다. 반대쪽에서 또 다른 선수 한 명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두 명의 협력 수비라면, 한 명도 이겨 내지 못하는데……
‘이제 막 온 골키퍼를 누구보다 의지해 버린 건, 젠킨슨 선수, 본인이라는 걸요.’
이를 악물었다.
왼쪽도, 오른쪽도, 패스를 하기엔 늦다. 결론은 두 가지다. 이대로 뺏기거나, 도리어 전진하며 공격 전개에 고삐를 당기거나.
그 치열한 순간, 젠킨슨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귀신처럼,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초능력자처럼, 감독의 말이 옳다.
‘고작 선수 하나도 이겨 내지 못한 비루한 몸뚱이가 되어 버린 노장.’
누구보다 노력했고, 누구보다 투혼을 불살랐다고 자신하지만, 돌아보면 결국 뒤처져 있다.
‘감독 말대로, 나는 리처드에게 기대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알면서도 싫었던 거야.’
리처드를 아니꼽게 여긴 게 아니다. 아니, 아니꼽게 느껴졌던 그 이유는 자신이 더는 팀을 이끌어갈 수 있는, 수비 라인을 진두지휘하던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그래, 그게 현실이었다.
‘그러니 헌신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말은 저에게 주장 완장을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아니, 설마, 정말 그걸 원하시는 겁니까?’
‘제가 원하는 주장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그 주장 완장 때문이라면, 네, 맞습니다.’
‘원하는 주장이 뭡니까! 이렇게 피를 흘려도, 따라 주지 않으니 몸을 던져서라도, 이 투혼이, 팀을 향한 이 마음이 안 느껴지는 겁니까?’
‘하아. 젠킨슨, 폐하.’
‘……!’
쿵.
두 명의 선수가 앞뒤에서 압박해 오자 젠킨슨은 반쯤 몸이 둥실 떠올랐다.
수비수 한 명이 전진 플레이를 펼친 상황. 공을 빼앗기면 도리어 공격적으로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있는 맨스필드는, 꽤 곤혹스러워진다.
젠킨슨은 이를 악물었다.
‘국왕 폐하. 이게 당신을 부르던 명칭이었습니다. 지금의 당신은 늙고, 약해지고, 느려졌으며 병들었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일 년이 지나고, 아니, 반년, 한 달, 심지어 하루.’
‘…….’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오면, 당신은 느낍니다. 체력이 떨어지는걸, 몸싸움이 더는 안 된다는 걸, 뛰면 숨이 막히고, 어깨를 부딪치면 근육이 비명을 내질러 댄다고.’
안다.
지금도 숨이 막힌다. 지금도 무너지려고 한다. 정신력으로, 온몸이 바스러지는 극한의 투혼으로도, 헌신으로도 고작 선수 하나 이겨 내지 못하는 늙은 몸뚱아리라고.
‘그런데요. 당신의 무기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임스 같은 스피드도, 오스카처럼 강력한 괴력도. 대니 스콧처럼 명확한 상황 판단도 아니었으며, 모두가 놀라는 스탠리의 엄청난 수비 능력도 아니었습니다.’
제임스였으면, 여기서 빠른 속도로 치고 제쳤겠지.
오스카였으면,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르며 상대 선수를 밀어뜨렸겠지.
대니 스콧이었으면, 애당초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 거고.
스탠리였으면 대단한 수비와 동시에 날카로운 오버래핑을 펼쳐 이들을 탈탈 털어먹었으리라.
그렇다면.
젊을 적, 전성기의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그저 투혼과 몸이 부서지는 헌신이 아닌, 무엇을 했을 것인가.
‘늙었다고 이제 그런 무기가 없으니. 오로지 몸이 부서지는 헌신만이, 당신이 꺼낼 수 있는 무기라고, 착각한 겁니다. 원래부터 그건 당신의 무기가 아니었죠.’
‘내 무기…….’
그때, 젠킨슨은 유진의 목소리, 그리고 유진의 눈을 기억했다.
늘 담담하고, 흔들림 없던 초점이 아닌.
어딘가 아련한 과거를 더듬는 듯한, 옛날을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희미한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캡틴. 내가 어릴 적, 당신을 봤을 때는 나는 무서웠습니다. 지독히도 두려웠습니다.’
‘…….’
‘그 눈빛, 표정, 험악하고도 폭력적인 언어. 필드 위에서 상대 팀을 때려눕히고, 동료의 조그마한 실책조차 죽일 듯이 노려보고, 멱살을 잡고 뒤흔들던, 그 폭력성이.’
그 순간.
흡, 들이마시는 들숨과 함께.
‘왜 이렇게, 늙고, 약해졌습니까? 캡틴.’
상대방과의 경합에 살짝 떠오르던 젠킨슨의 발바닥이 다시 지면으로 향했다.
상대 선수의 발이 내 다리 사이의 공을 잡아끌고 가려는 순간.
‘당신의 무기는.’
훅, 내뱉는 날숨 사이로, 젠킨슨의 두 눈빛이 스산하게 번뜩였다. 앞에서 자신의 공을 뺏어가려는, 그 승냥이 같은 놈의 눈을 지독하게 노려보면서.
콰직.
“커헉!”
스터드가 놈의 발등을 짓이긴다. 공을 뺏으려던 승냥이 같은 발을 붙잡고 쓰러진다.
‘오로지, 분노.’
협력 수비를 펼치던 동료가 무너지자, 뒤에서 압박하던 미드필더의 힘이 순간적으로 빠진다.
“――!”
그 모든 것이, 어깨와 등, 근육을 통해 모조리 전해진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 분노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 반칙은 아니다. 몸이 떠올랐다가 내려앉으면서 ‘불가피’하게 된 것이고, 무엇보다도 심판은 발이 아닌 부딪치는 어깨와 서로의 옷자락을 잡아끄는 두 손을 보고 있으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주장은 팀의 중심, 팀의 핵심, 그리고 팀의 대표. 그러기에 버렸을 겁니다. 결혼하고, 과거와는 멀어졌을 겁니다.’
손을 뻗는다. 어깨를 밀친다. 속에서 용암같이 들끓는 강렬한 감정이 혈관을 타고, 내뱉는 호흡을 타고, 심장이 멈추지 않고 뛰고, 또 뛰며.
‘오, 젠킨슨 국왕 폐하.’
터져라, 터져라, 터져라.
‘팀을 위한 명령입니다. 헌신하지 마세요.’
차라리, 터져 버려라.
쾅!
―젠킨슨 선수, 두 명의 압박을 무너뜨리고, 때려눕히며, 전진합니다!
* * *
“뛰-어!”
귓가를 찌르는 비명. 험악한 얼굴로 선수 두 명을 때려눕히며 전진하는 그 괴성.
동시에 한줄기 궤적이 붉은 하늘을 갈랐다.
앤서니는 전신의 긴장감이 팍 솟구쳤다. 그는 뛰었다. 후반전, 점점 부치는 체력 탓에 어슬렁거리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오스카는 괜찮다. 솔직히 이제 친하다. 자신이 막 뭐라 해도 맹랑한 놈, 이 조그마한 놈이! 같이 화를 내는 척하면서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무서워!’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눈빛. 팀 내 최저 체지방을 자랑하는 촘촘한 근육 밀도.
당장이라도 이 여리고 불쌍한 앤서니의 몸을 양쪽으로 찢어 버릴 것 같지 않은가.
‘으아아아.’
놀랍게도 젠킨슨의 분노는 앤서니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투웅!
“빌어먹을!”
“저 새끼는 무조건 막아!”
젠킨슨의 패스는 결코 정교하지 않았다. 빨랐으되 강했고, 강했으되 부정확했으나, 어쩌겠는가.
공을 받는 사람이 겁에 질린 앤서닌데. 도리어 설렁설렁, 어슬렁거리는 그 플레이 스타일이, 이 시간에도 체력이 보전된 상태라는 역설을 낳았으니.
투웅!
발등으로 공을 가볍게 갖고 놀 듯이 굴린 뒤.
촤아아악!
“비켜, 비켜, 비켜! 무서운 아저씨가 쫓아 와아아!”
슬라이딩 태클은 가볍게 날 듯이.
“부딪치면 아파아.”
숄더 차징은 물 흐르듯이 흘려보내며.
“이, 이 미친놈!”
얼굴이 하얗게 질린 골키퍼만이 그의 앞에 있었다.
그 순간, 앤서니의 시간이 느려졌다.
‘한번 접어? 아까처럼 접고 또 접어? 아니면 가랑이를 노려? 그도 아니면 좀 더 가까이 가서 잡힐 듯할 때 칩슛?’
본래라면 상대를 농락하듯이 화려한 플레이를 펼친 끝에 골을 넣는.
소위 슈퍼스타의 자질.
그게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이유는 화려해서다. 화려하다는 건 곧 어렵다는 뜻.
하지만 앤서니는 누구보다 쉽게 공을 차는 방법을 감각으로 아는 천재였다.
‘지금 여기서 내가 차면, 칠십, 팔십 퍼센트.’
느껴지는 그 감각.
때리면 들어간다는 선수만의 본능.
그 정도만 돼도 앤서니는 때릴 것이다. 그도 아니면 골키퍼를 또 제치는, 그 농락 쇼를 펼쳐서 100%를 만든 뒤에 때리든지.
“못 넣으면, 반드시 죽여 버릴 거다-!”
하나 그 무시무시한 고함이 메아리치듯 귀에서 울렸기에.
앤서니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삼촌처럼 의지하게 되어 버린 오스카를 바라봤다.
오스카가 손을 들었다.
‘으음, 내껀데에에.’
골에 대한 탐욕.
앤서니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투톱 호흡을 맞추는 오스카에게조차 득점에 연결되는 어시스트를 쌓지 않을 정도로.
일반적인 오스카가 앤서니에게 떠먹여 주는 괴상한 투톱 조합이었지만.
지금 앤서니는 젠킨슨이라는 공포에 질려 택했다.
투웅-!
가장 완벽한.
“이건 100프로지.”
찬스로.
뻐엉!
오스카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그대로 공을 후렸다.
존 젠킨슨 기점.
앤서니 로우 도움.
해리 오스카 골.
한 명 빠진 맨스필드가 흐름을 가져왔다.
아니, 젠킨슨이라는 ‘개인’이 경기의 판을 뒤집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