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72)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71화(172/266)
171. 유진의 이적시장 (2)
클라라니의 이적은 우리에게 상당히 유리했다.
사실 그의 불화가 더 심해진 건, 내가 희미한 양념을 쳐 둔 게 있었으니까.
“아, 그때 설마 기사 한 단락?”
생각하던 릴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작년 릴리의 협상이 결렬됐을 때.
‘협상 종료 선언하고, 은근슬쩍 기사로만 흘려 줘.’
‘기사?’
‘영입을 시도했다가 철회했다는 식으로. 메인 뉴스로는 삼지 마. 그냥 토막 뉴스로.’
릴리의 입이 벌어졌다.
“그거 때문이라고?”
“어차피 마음이 붕 떴던 선수야. 그때 하필 자신의 이적이 무산됐다는 기사를 봤을 거고.”
“고작 토막 기산데?”
“에고서칭.”
“응?”
“원래 자기 이름 검색해 보는 건, 당연한 일이거든.”
무조건 그 기사를 봤을 거다.
사실 그게 큰 불만은 아니었으리라.
당시 협상은 비밀 협상은 아니었다. 진즉 클라라니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고, 기사 전에 결렬됐단 사실도 알았으리라. 하지만 딱히 클라라니는 큰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맨스필드는 매력적인 팀이 아니었으니, 도리어 이적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나 지금.
“두고두고 생각날걸? 나는 여기서 감독하고 사이가 안 좋아서 벤치만 데우는데, 그것도 강등권 팀에서. 날 영입하려 했던 맨스필드는…….”
“우승에 가깝네?”
“그리고 자기하고 늘 싸우기만 하고 마음에 안들기만한 감독인데, 날 영입하려던 감독은 지금…….”
“리그에서 최고로 꼽히고 있고?”
릴리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반즐리 감독도 알아. 우리가 여기서 언론 통해서 여론전 펼치면, 당장 내가 기자 불러서 클라라니를 데리고 오고 싶다, 이 한마디만 하면.”
“난리 나겠지! 클라라니는 당장 일어나서 또 시위할 거고!”
“분위기 망가지는 건 금방이지.”
“음음, 그렇지만 이미 벤치에 앉혀 둔 상태인데, 그 정도는 감수하지 않을까? 도리어 우리랑 저쪽 사이만 나빠지는 거면…….”
“저쪽 강등권이야.”
“어?”
“강등권 팀에겐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해. 선수만 잘한다고, 감독만 잘한다고, 아니, 모든 게 좋아도 이기기 힘든 것이 강등권에 빠진 팀이야. 왜겠어?”
릴리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망울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기세.”
“우리가 기세를 타고 끝도 없는 무패 행진을 벌였던 것처럼. 저쪽은 강등이라는 암울하고도 참혹한 기세를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야.”
릴리가 조금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진창, 발버둥 칠수록 더 빨려 들어가는 느낌의 늪 말이지. 맨스필드처럼.”
“뭐, 그 정돈까진 아냐.”
어쨌거나 반즐리는 우리와 함께 승격한 팀이고, 승격 팀이 늘 그 시즌의 강등권으로 유력한 게 애석하게도 승강제의 잔혹한 점이다.
1년 전에는 압도적 강팀으로서 승리의 쾌감을 누렸는데, 고작 1년 만에는 매 경기 패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야. 반즐리가 강등권으로 빠진 것도, 바뀐 현실과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한 영향이 커.”
“으음.”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건 팀의 단결이야. 그런데 지금 단결을 헤치는 선수가…….”
“클라라니.”
“맞아. 내가 인터뷰하고, 이적이 원활하게 안 된다는 걸 클라라니가 알면, 또 한바탕 난리를 부리고, 팀 내 분위기도 더 나빠지겠지.”
“아…….”
“보내 줄 수밖에 없는 상황. 값을 깎은 것도, 많이 쳐준 거야.”
“……뭔가 반즐리의 안 좋은 상황을 이용하는 거라 미안하네.”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왜 웃어?”
“릴리, 아니, 회장님.”
“어?”
“맨스필드가 진창에 처박혀, 파산의 불구덩이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칠 때, 우리에게 손 내민 사람이 있어?”
“……!”
“다른 클럽들이 연명으로 맨스필드를 비호하기라도 한 적이 있나?”
내 표정이 차가웠을까.
릴리의 표정 또한 굳었다.
나는 후, 숨을 내뱉었다.
“당연히 없어. 마땅한 일이야. 무슨 이유로? 어떤 이유로 다른 클럽이, 다른 축구인들이, 우리 클럽을 보호해 주려고 하겠어?”
“…….”
“그걸 원망할 이유도 없어. 이게 프로판이니까. 누군가의 강등은 누군가의 승격이야. 누군가의 패배는, 또 다른 이의 승리지. 릴리. 나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똑똑히 말했다.
“감독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할 뿐이야.”
맨스필드를 위해서.
릴리는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이내 피식 웃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아. 누가 그거 갖고 뭐라 할 줄 알았어?”
“…….”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일일 뿐이야. 개인적인 감정이 그럴 순 있지. 하지만, 유진. 나도.”
그녀는 내 어깨를 잡곤 콧잔등이 닿을 거리까지 얼굴을 가까이 했다.
“맨스필드가 중요해.”
……번째로.
“응?”
“어?”
“뒤에 뭐라고 하지 않았어?”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곤 고개를 저었다.
“그래. 클라라니 영입은 그렇게 할 거고…….”
“너무 마음 쓰지 마. 안타깝게 여길 것도 없어. 이 거래는 우리뿐만 아니라 저쪽도 좋은 윈-윈이 될 거니까.”
“……반즐리 팬들이 보면 너무 뻔뻔하다고 말할 거 같은데?”
“정말이야. 이 거래는 반즐리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아니지, 굳이 따지면 우리 손해 아닌가.”
경기에서 졌는데, 이 정도는 뜯어 가 줘도 우리가 손해 아닌가.
“감독님이 그러시다면야! 선수단지원팀의 론 팀장이 협상 진행할 거야. 그러면, 이번 겨울 이적 시장, 더 노리는 매물이 있어?”
“음.”
“일단 이적 자금은…….”
아무리 우리가 가난한 구단이라지만, 여름 이적 시장에서 임대영입과 자유계약으로만 선수를 영입한 걸 생각하면 이적 자금이 적은 건 조금 아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 나는 모든 자금을 프런트의 확충과 더불어 훈련시설 개선에 힘썼다.
“훈련장 싹 갈아엎고, 훈련 기구들 다 좋은 걸로 바꿔서…… 당장 이적 자금으로 돌릴 수 있는 총알은 이 정도.”
릴리가 미안한 기색으로 숫자를 보여 줬다.
적다.
하지만 딱히 릴리에게 무어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빚을 변제하는 가운데 이 정도 자금이라도 융통할 수 있었던 건, 릴리가 여기저기 뛰어다닌 덕도 있으니까.
“다 나이 많은 선수들이니, 훈련이 중요하니까. 재활이나 체력 훈련 같은 것도 사실 결국 다 돈이 중요하거든.”
더구나 훈련장 개선은 내가 강력하게 추진한 바라서.
“괜찮은 선수 한 명 영입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자금이긴 한데.”
“한 명……?”
나는 릴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선수들 주급으로 전환하면, 얼마나 돼?”
“어? 잠깐만.”
그녀는 빠르게 계산을 마치곤 대답했다.
“확실하진 않은데, 앤서니 주급 줄 만한 선수 두 명쯤 나오는데? 이적료를 전부 주급으로 돌리면?”
“그러면 됐어. 다 주급으로 돌려.”
“……!”
릴리가 눈을 끔뻑였다.
“이적료는 필요 없으니까.”
“으응?”
이적 시장에 이적료가 필요 없다니, 얘가 조금 아픈가.
싶은 릴리의 눈빛에 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감독님. 저 맨스필드의 유진입니다.”
“…….”
“다름이 아니라, 선수 임대 요청을 드리려고요.”
“……!”
“네, 첼시는 우리 상위 구단이지 않습니까? 위성 구단의 진지한 요청입니다. 일단, 만나서 대화하시죠. 슈바이처 감독님.”
“…….”
나는 흘긋, 놀란 눈을 하는 릴리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시금 말하지만.
감독은 뻔뻔해야 한다.
* * *
사실 클라라니의 위치는 딱히 우리에게 급한 포지션은 아니다.
레프트 윙어.
현재 그 자리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있을뿐더러, 우리가 차츰 투톱으로 방향을 바꿔 4-4-2 포메이션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클라라니는 좀 더 공격수에 가까운 유형이지, 4-4-2에서 왼쪽 측면 자리를 소화할 만한 미드필더와는 거리가 다소 멀었다.
물론 쓰임이 있기에 그를 영입하는 것이긴 하나.
당장 필요한 포지션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가 급할 이유는 없었다.
때문에.
“지금 반즐리 구단에선 몸값 절반의 이적료에 처분한다는 게 조금 걸리는데…….”
“협상 결렬입니까?”
“아니, 아니. 그건 아닙니다. 다만 좀 더 협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곧장 도장을 찍기엔.”
“그러면 이적료를 조정하죠.”
“……!”
“원래 드리기로 했던 게 8만 파운드였죠?”
론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4만 파운드(약 7천만 원)로 제시하세요.”
“……네?”
그는 입을 쩍 벌리더니, 이내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지금 이적료도 난감해 하는데, 거기서 절반으로 또 깎는다고요?”
“어차피 저쪽 팔 만한 팀 없습니다. 제가 8만 파운드를 제시했던 것이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알려졌겠죠.”
“그렇죠……?”
“그럼 그걸로. 현재 몸값이 만들어진 겁니다.”
“!”
“무슨 트랜스퍼마켓에 올라온 16만 파운드라는 몸값은 그저 희망 사항일 뿐. 그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으면, 진짜 몸값은 실제 거래가 되는 가격으로 형성되죠.”
“하지만 그 이상을 부르는 팀이 있을지도…….”
“있을까요? 지금 겨울입니다.”
론 팀장의 눈썹이 씰룩였다.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는, 시즌 시작 전의 여름 이적시장과는 달라요. 대부분 자금은 여름에 소진됐고, 겨울에는 그간 리그를 치르며 나왔던 문제점을 고치거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죠.”
“그러니까, 함부로, 쉽게…….”
“예, 클럽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론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근데 저희야 원래 가난한 구단이니 늘 신중하게 움직이는지라,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지금 다른 구단도 이적 자금이 풍부한 건 아닙니다. 그러니 한 명, 한 명 선수를 영입하는 데 극도의 신중함을 보여야 하죠. 돈도 최대한 절약해야 하고요.”
“그런데 이미 8만 파운드에 제시된 가격이 있는 상황이면…….”
“굳이 거기에 얹고 또 얹어서 살 정도로, 클라라니가 핫한 매물은 아니죠. 강등권 구단의 벤치 멤버? 즉시 전력으로 삼기엔, 좀 아쉽죠. 그렇다고 선수가 리그 투로 갈까요?”
“……!”
“무엇보다도 우리 팀은 작년부터 클라라니를 노렸습니다. 확실한 건, 선수도 알아요. 그리고 선수는 현재 감독과 불화를 겪는 상황이죠. 여기서 우리의 제안을 거부하기엔 저쪽은 골치 아픈 상황입니다.”
“하, 하지만 4만 파운드는!”
“네, 너무 깎긴 했죠.”
“8만 파운드도 저쪽에서 난색을 보이는데, 제가 어떻게든 8만 파운드에서 거래 마쳐 보겠습니다.”
“아뇨. 4만 파운드로 하세요.”
“감독님!”
“단.”
“……?”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저쪽에 6개월 단기 임대를 제시하시죠.”
“……!”
“반즐리는 강등권 구단입니다. 선수 한 명이 급합니다. 그리고 되도록 클라라니를 활용하고 싶어 할 겁니다.”
“잠시만요, 불화 때문에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를 6개월 활용한다고 저쪽에서 좋아할까요?”
“불화 때문에 활용 못 할 뿐, 저쪽 감독도 클라라니의 실력을 압니다.”
“그러니까, 6개월 임대를 저쪽에 제시해도, 클라라니의 불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해결될 겁니다.”
“네?”
“6개월의 시간. 선수도 알 겁니다. 자신이 왜 다른 팀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는지.”
“그야 감독과의 불화……아!”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듯 론 팀장의 두 눈이 커졌다.
“그런 상황에서 작년부터 자신을 눈여겨본 감독과 팀. 그리고 그 팀은 압도적 1위를 달리고, 감독은 하부리그의 과르디올라라는 평가를 받는 유명 감독이죠.”
“잘, 보이고 싶어 하겠네요?”
“네. 이적이 확정됐다고 한들, 결국 선수를 출전시키고 활용하는 건 감독의 마음이니까요.”
“6개월의 시간 동안 반즐리에서 쌓은 불화를 접어 두고 열심히 뛸 거다?”
“제 눈에 잘 띄기 위해서요.”
“이미 이적이 확정됐으니, 굳이 반즐리 감독하고 척을 지울 필요도 없을 테니, 꾹 참고 그냥 열심히 뛸 수도…….”
“이 정도 사실은, 반즐리 감독도 이해할 겁니다.”
론 팀장의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감탄한 얼굴로 탄식을 쏟아냈다.
“감독님은 정말…….”
“협상은 일임하겠습니다.”
“반드시 성사하겠습니다. 못 하면 경기장 좌석 밑에 제 유해를 묻어 주세요.”
“아니, 협상이란 게 결렬될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까진.”
……좀 멀쩡해 보이던 론 팀장도. 조금, 음.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파산 위기의 맨스필드에서 엑소더스가 벌어질 때, 꿋꿋이 남아있었을까.
“네, 확실하게 해 주세요.”
릴리, 젠킨슨, 잭 아저씨, 그리고 론 팀장.
저런 사람들이 남아있었기에.
맨스필드가.
“아뇨, 이렇게 다 떠먹여 주셨는데 이걸 실패하면, 전 그냥 경기장의 거름이 되는 게 맞습니다! 차라리 잔디의 양분이 되는 게 훨씬 이로워요!”
……살아남을 수 있던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