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80)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79화(180/266)
179. 맨스필드 병동 (3)
헤일러는 가슴이 뛰었다.
설렘, 아니, 그건‥‥.
‘초조해?’
설렘과 초조함, 그 한 끗의 차이.
이유가 무엇일지는 그도 잘 알았다.
‘내 경력에서 첫 임대야.’
빅클럽의 유망주들은 유소년 아카데미를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여러 구단으로 임대를 간다.
임대를 가지 않는 예외는 하나다.
너무 뛰어나서 17살, 18살에 성인 무대에 데뷔하고 스쿼드를 차지하는 경우. 하나 첼시는 유스 선수들을 적극 임대 보내는 정책을 오랫동안 진행해 왔기에 그런 케이스는 거의 없었다.
헤일러도 마찬가지였다.
연령별 유스를 거치고 성인 무대로 들어서지만, 2군에서조차 헤일러는 막막함을 느꼈다. 정말 특별한 재능이 아니고서야 성인 무대에서 자리 잡기는 어렵다. 결국 임대는 유망주에게 기회이자 동시에 증명해야만 하는 시험이었다.
헤일러는 이번 임대 이적이 처음이었다.
즉.
첼시가 아닌 다른 팀으로의 이적.
유스 무대도, 2군 무대도 아닌, 비록 3부 리그라지만 엄연히 ‘성인 무대’
가서 경기에 못 뛸 수도 있지 않냐고?
그럴 리가.
[맨스필드 유진 감독이 직접 지목한 클라베르 랑데르와 헤일러 선수. 앤서니, 리처드에 이어 맨스필드의 핵심이 될까?]무려 감독이 직접 자신을 불렀다.
프런트나 단장, 그 윗선에서 픽한 것이라면 감독과 때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이적일 때도 있긴 하나.
전권을 쥔 감독이 부르지 않았는가. 하나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듣자 하니 앤서니를 꽉 잡고 있다는데.’
그 망할 놈을, 아주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해 그게 더 놀랍다.
‘얼마나 무서우면…….’
유스에서도, 첼시의 내로라하는 코치도, 임대 갔던 팀들의 감독들도.
단 한 명도 제어하지 못한 그 앤서니의 성향.
그걸 쥐락펴락하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할까. 헤일러는 그 담담한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보이던 감독을 떠올렸다. 모두가 흥분하는 필드에서도 차분하기 짝이 없던 친선전의 모습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원래 대단한 감독은 성격이 싸이코 같은 구석이 다 있다고 하던데-’
아니, 수만 명이 야유를 보내는 경기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지?
‘설마, 때리진 않겠지?’
아니, 무슨 반백 년 전 이야기도 아니고.
선수를 두들겨 패는 감독이 어딨다고-
‘진짜로?’
헤일러는 작게 몸을 떨었다.
평생 첼시의 정형화되고 체계적인 시스템에서만 자라온 헤일러는 생각보다 귀가 얇았다. 몇몇 임대 갔다 온 친구들의 푸념을 여러 번 듣지 않았던가.
‘어휴, 훈련장 잔디도 개판이더라. 진짜. 선수들은 거칠고.’
‘담배도 뻑뻑 피는 사람도 있는데, 감독이 그걸 제어를 안 해.’
‘아니 감독부터가 꽉 막혀서 라커룸에서 사람 하나 때리려고 방방 뛰더라니까.’
‘하부리그 팀들 거칠다더니, 어후. 나는 첼시에서 데뷔하고 말 거야.’
세계적인 클럽과 하부리그 팀들 사이의 편차는 클 수밖에 없다.
또 어린애들 특유의 호들갑과 난 그런 곳에서도 임대로 활약해 왔다- 같은 은근한 자랑이 뒤섞인 과장이었지만 헤일러는 이상하게 그 말들을 다 믿어 버렸다.
‘앤서니 이 자식, 두들겨 맞고 사는 거 아냐? 거기 선수들 진짜 무섭게들 생겼던데.’
그런 긴장감에 헤일러는 저도 모르게 같이 걸어가는 랑데르의 뒤에 찰싹 붙었다.
‘선배랑 같이 가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검은 탱크라는 별명처럼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묵직함, 그 자체였다.
옆에서 아무리 달려들어도 막을 수 없는 전진. 철조망을 짓밟고 참호를 깔아뭉개며 전진, 또 전진하는 그 묵직함은 단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하지도 않았고, 말 한번 섞지 않았으며, 선수로서의 위상도 하늘과 땅 차이.
한데 같이 임대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든든할 수가 있을까.
‘저 과묵함. 믿음직해.’
그래서일까. 의지가 됐다. 훈련장에 도착한 순간. 헤일러가 랑데르의 곁에 찰싹 달라 붙었으니까.
“존나게 느려터진 새끼들아. 발바닥하고 잔디하고 찐하게 키스를 처박고 있냐? 아주 이불도 깔지 그래? 조명도 켜고 촛불도 켜 줄까? 빨리빨리 안 움직여!”
쩌렁쩌렁 울리는 험악한 목소리.
온갖 짜증과 화를 집어삼킨 표정으로 소리치는 주장의 고함에 헤일러는 굳어 버리고 말았다.
‘뭐, 뭐야. 왜 이렇게 격해.’
훈련에서, 저렇게……?
첼시의 엄하다는 선배들도 저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느껴지는 지독한 폭력적인 분위기와 목소리에 헤일러는 움직이지 못하고 랑데르의 곁에 붙었다.
흘끔 랑데르를 바라봤다.
랑데르는 속을 알 수 없는 과묵한 표정 그대로였다.
그 얼굴을 보고 나니 그나마 안심이 됐다.
거칠고 폭력적인 언사에도 훈련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도리어 웃고 있는 선수들도 보였다. 그 장면이 뭐라고 할까. 헤일러에게는 조금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흐으으음. 헤일러어어.”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헤일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앤서니…….’
사이가 좋지 않은 앤서니와의 만남은 각오했지만, 이렇게 한 팀으로 다시 뛰게 될 줄은 몰랐고, 심지어 앤서니는 지금 새 팀의 핵심 선수니까.
무어라 말할지, 어떻게 인사할지, 잠깐 각오를 다지고 고개를 돌린 헤일러는 우뚝 멈췄다.
“앤……서니?”
트레이닝복이 땀에 푹 젖어 딱 달라붙은 모습.
그리고 드러나는 세밀한 근육까지.
‘앤서니가…… 땀을 흘리고…… 훈련해?’
믿기지 않는 광경에 헤일러가 잠시 당황했다.
“앤서니. 음. 오, 오랜만이야.”
“첼시에서 쫓겨 났어어어?”
“……!”
나른한 웃음을 지으며 툭 들어오는 시비조의 말.
‘지금, 처음부터 싸우자는 건가? 아니지. 얘 원래 이랬으니까…….’
헤일러는 헷갈렸다. 시비 거는 건지, 아니면 그냥 악의 없이 저렇게 말하는 건지. 앤서니니까. 무엇보다 시비조면 어쩔 것인가.
‘임대로 온 첫날에 선수랑 싸워?’
저 험악한 주장이 있는 이 팀에서?
다행히도 앤서니와의 대치에서 헤일러를 구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앤서니의 어깨에 툭 하고 올려진 큼직한 검은 손.
순간 같이 온 랑데르가 도와준 건가- 싶을 정도로 유사한 느낌을 풍기는 사내.
“이 빌어먹을 자식.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또 어디로 내뺐나 했더니, 여기서 시시덕거리고 있어?”
“치, 친구 만나서, 인, 인사하는 중인데에에”
대롱대롱 매달린 앤서니가 처연한 목소리로 울어 대는 모습에 헤일러는 적잖이 당황했다.
전신에 드리워진 그림자.
햇빛을 가린 그 흉악한 얼굴이 헤일러에게 향했다.
“너는…….”
오스카가 눈알을 굴렸다.
“친선전, 터널에서 같잖은 소리 지껄이던 그 애송이?”
“……!”
“너였군. 새로 온다던 애가.”
“아, 그, 그건!”
헤일러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친선전 때, 앤서니에게 시비를 걸다가 오스카와도 잠깐의 마찰이 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다급해진 헤일러가 울상을 짓자, 오스카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너도.”
“……네?”
“수비수라면서? 몸이 비실비실한데? 나랑 붙으면 이겨낼 수 있겠어? 어디 한번 해볼까?”
“네?”
“그러니까 따라와. 너, 이 빌어먹을 놈하고 같이. 몸은 두 배로 불려주마.”
아니, 그, 그렇게까지 몸을 키울 필요는-
그때 툭, 헤일러의 앞으로 랑데르가 걸어 나왔다.
순간 오스카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헤일러는 두 명 사이에 껴서 곤혹이었다. 서로 비슷한 체격에 흑인 선수. 그리고 겉으로만 봤을 땐 눈도 마주치기 어려운 거친 외모.
“…….”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는 그 시선 속에서 느껴지는 침묵은.
어쩌면 영입 선수와 기존 선수의 신경전과 같은 것일지도 모를-
“……나도.”
“……응?”
“같이, 운동.”
잔뜩 긴장했던 분위기가 확 풀렸다. 오스카는 눈을 끔뻑이다가 헛웃음을 켜곤 말했다.
“아, 뭐, 그래. 그렇지. 오늘 방문이 처음이지? 훈련장하고 트레이닝 룸하고 어디인지 알려줄게. 따라와.”
“그럼 나는 나중에에.”
“너는 어딜 갈려고. 어이, 꼬마. 헤일러? 너도 오라고.”
헤일러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랑데르를 바라봤다.
여전히 과묵한 얼굴. 하나 그가 아주 미약하게, 안도의 숨을 내뱉는 모습을 봤다. 그것도 식은땀이 흥건한 두 주먹을 살짝 쥐면서.
무언가 안도의 빛이 서리는 얼굴, 해냈다는 표정.
“…….”
순간 눈이 마주치자, 랑데르는 거짓말처럼 표정을 지웠다.
‘……뭐지.’
헤일러는 애써 시선을 피하는 느낌까지 받았다. 하나 더 생각할 틈도, 오스카를 따라 운동할 상황도 아니었다. 훈련장이 조금 어수선해지더니, 유진이 잔디 중앙으로 걸어왔다.
“모두 모이세요.”
“…….”
그 한마디에 귀신처럼 조용해지며, 순식간에 한자리에 모이는 선수단.
물론 감독의 지시와 목소리는 절대적이긴 하나, 언제 떠들썩하게 훈련하고 있었냐는 듯.
‘뭐야 이거…….’
거짓말처럼 조용해지는 광경에 헤일러는 놀람을 넘어선 희미한 공포마저 느꼈다.
그리고.
“새로 온 선수가 있습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다들 알겠지만, 팀에 빠른 적응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순간 일제히 돌아가는 고개.
“……!”
십수여 쌍의 시선이 향하자 헤일러는 헛숨을 들이켰다.
어떻게, 자기소기라도 해야 할까.
아니지. 헤일러는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딜 가든 텃세는 있고, 임대 선수들에겐 어차피 팀을 떠날 녀석들이니 살갑기는커녕, 말도 제대로 안 거는 경우가 있다고-
“드디어!”
“새 선수가!”
“받들어 모셔! 쟤들 다치면 우리가 또 90분 뛰어야 해! 쉬지 않고! 일주일에 두 경기, 세 경기씩!”
“혹시 어디 아픈 데는 없지? 어?”
하나 예상과 달리 선수들은 두 명을 반겼다. 그것도, 눈에 언뜻 광기를 띄우며.
‘이게 뭐야…… 무서워, 여기…….’
헤일러는 미약한 공포를 느꼈다.
* * *
[맨스필드 29라운드 칼라일 상대로 0대 1 패배] [팬들 앞에서 첫 선보인 영입 선수들. 24분 뛴 랑데르 Good, 41분 헤일러 Not Bad] [지친 맨스필드에 새 연료를 주입하는 영입 선수들의 활약은 고무적] [패배에도 새 선수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찬 맨스필드 타운]* * *
랑데르의 출전은 계획했던 바였지만, 많은 활약을 보여 주기엔 출전 시간이 짧았다.
불가피한 일이었다.
필드의 잔디, 3부 리그의 템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무엇보다도 장기 부상에서 회복한 후 프로 무대에 다시 뛰는 건 거의 1년 만이다. 이런 상황에 마음이 급하면 선수도, 나도, 그리고 첼시나 우리 팀에도 좋지 못하니까.
후반전에 지친 대니 스콧 대신 들어간 랑데르는 꽤 괜찮은 활약을 보여 줬다.
인상적이었는지 코치진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짧지만 꽤 좋았어요. 볼 다루는 스킬하며, 처음 호흡 맞추는 동료인데도 움직임이 정말 대단했죠.”
“다음 경기는 바로 선발로 넣어도 될 것 같은데요?”
“어차피 톰 브룩스는 레딩 전에서 부상, 이럴 때마다 늘 도움이 됐던 토마스 캐롤은 수술 중이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려 쓸 수도 있는 톰 뉴톤도 이번 경기에서 지쳤으니…….”
“쓸 수밖에 없는데, 그 20분 정도의 플레이를 계속 보여 줄 수만 있다면.”
“대체가 아니라, 그냥 업그레이드입니다.”
팬들이 모두 환호할 정도로 골을 넣거나, 어시스트를 올리는 환상적인 플레이는 아니었다.
하나 벤치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가슴이 간질거릴 법한 플레이가 번뜩였다.
“역시, 클래스는 다르다는 건가…….”
나직한 탄식.
2부, 3부리그 선수들만 봐 왔던. 심지어 엄청난 재능이어도 타고난 게으름 때문에 조금 내려치기 당해서 평가받는 앤서니만 봐 왔던 코치진 모두가 감탄할 정도로 말이다.
“랑데르는 선발로 출전하겠습니다. 적응력이 문제지만, 그런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칠 정도라면 문제없겠죠.”
“랑데르와 대니 스콧의 조합이라니!”
“허허. 이게 3부리그 팀이라니, 상대 팀들이 하소연하겠군요.”
“문제는 수비인데.”
젠킨슨의 경고 누적 우려로 데리고 온 헤일러.
상황이 묘하게 됐다. 톰 뉴톤이 부상을 당했으니.
다만 랑데르와 달리 헤일러는 아직 의문이 있었다.
앤서니처럼 빛나는 재능도 아니고, 프로 경험이 사실상 장점이 전무한.
지난 톰 뉴톤의 부상 아웃으로 교체 투입된 40분 플레이도 딱히 번뜩이는 모습은 없었다.
무난함에서, 살짝 못 미치는.
하나 어쩌겠는가.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한 영입이니, 철저하게 활용해야죠.”
그리고 코치진은 굳은 신뢰의 눈을 보였다.
어떤 우려도, 염려도.
결국 두 선수 전부.
“감독님이 영입하신 선수니까요.”
믿음의 이유로 충분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