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82)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81화(182/266)
181. 맨스필드 병동 (5)
병실 안에는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아, 감독님.”
“감독님!”
가느다랗고 듣기 좋은 미성은, 나에게 그림을 선물해 준 캐롤의 부인이었다.
캐롤의 병실에 그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 놀랄 일도 아니지만.
“감독님.”
“스탠리 선수도 와 있었군요.”
스탠리가 위문을 와 있는 건 의외였다. 둘 사이가 친했었나.
하긴, 둘 다 조용한 스타일이긴 하니.
그는 내 시선에 담긴 감정을 읽었는지, 멋쩍게 웃었다.
“저도 최근에 좀 자잘하게 발목이나 무릎이 계속 걸려서요. 병원에 체크하러 왔다가…….”
그는 흘긋 침대를 바라봤다. 병상 위. 웃고 있는 토마스 캐롤이 인사해 왔다.
“감독님, 일어나서 인사해야 하는데, 제가 발이 이래서-”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다행입니다.”
“하하, 그럼요.”
더비전.
노츠 카운티와의 FA컵에서 부상으로 실려 나갔던 토마스 캐롤은 큰 수술을 받았다.
내가 랑데르의 영입을 결정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토마스 캐롤은 준주전으로서 필요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는 선수였으니까.
전형적인 그런 유형이었다.
‘있을 땐 모르지만, 막상 없으면 그 빈자리가 느껴지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에 가까운 부류.
물론 그의 활약이 없으면 팀이 흔들릴 정도로, 대단한 부분을 차지하진 않았다.
다만 팀이 적어도 삐걱거리는 정도의 상황이긴 했다. 나는 그의 다리를 가만히 쳐다봤다. 어색해진 분위기에서 스탠리가 조용히 말했다.
“음, 그럼 저는 이만, 캐롤. 훈련장에서 빨리 보자고.”
“어, 어. 들어가. 너도 몸조심해.”
둘의 대화는 조금 어색했다.
나는 흘끔 스탠리의 등을 바라보곤 말했다.
“둘이 친했습니까?”
“아, 하하. 아뇨. 뭐, 서로 그냥 동료죠. 제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그런데 제가 부상당하고, 수술 끝나고 가장 먼저 달려와 준 친구기도 해요. 캡틴보다도 먼저 왔더라고요.”
“음.”
“의외였죠. 아무래도 뭐, 동질감을 느꼈나 봐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리를 가리켰다.
그리곤 옆에서 어두운 얼굴로 서 있는 그의 부인에게 말했다.
“나 감독님하고, 대화할 게 있는데…….”
“아, 응응. 가서 마실 거라도 좀 사 올게!”
그의 부인이 병실을 나가자, 착 정적이 가라앉았다.
어색한 침묵은 아니었다.
그저 무겁기만 한 불편함. 그 불편함을 초래한 건 애석하게도 나였다.
“감독님.”
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
“6개월 아웃이랍니다.”
그는 억울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다리를 바라봤다.
붕대로 감싸 보이지도 않은 발끝을.
“시즌 아웃이에요. 저는 이번 시즌, 정말 작년보다도 더-”
“압니다.”
“……!”
“선수의 노력, 헌신, 크리스마스에도 훈련장을 찾아왔던 그 절박함. 모두 압니다.”
“…….”
어두웠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빛이 번졌다.
아주 미약한 빛이다. 촛불처럼 일렁이지도 않는, 흐릿하게 부서지기만 하는 작은 빛이었지만 어쩐지 눈이 부셔서 쳐다보기 힘들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나는 알았다.
“복귀, 하면, 제 자리가 있습니까?”
묵직하게 흘러나오는 질문.
그리고 그 답을 알기에, 차마 얼굴에 번지는 희망이란 빛을 쳐다보기 어려운 것이겠지.
그의 계약 기간, 올해 6월 종료.
그의 나이 33살.
모든 면에서 애매했던, 언성 히어로라고 치켜세워 주지만 충분히 ‘대체 가능’한 실력과 포지션.
그리고 6개월이라는 장기 부상.
“선수의 자리는 쟁취해 내야 합니다.”
“……!”
“저는 그 무엇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선수가 해야 할 일은, 성실히 회복하고 재활에 성공하여 필드에 선수로서 복귀하는 일뿐입니다.”
그의 얼굴이 복잡해 보였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기에.
나는 묵묵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쾌유를 빕니다. 토마스 캐롤.”
* * *
“문 바깥에서 이야기를 엿듣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닙니다.”
“……감독님.”
“다행히 제 사무실보단 병실이 방음이 잘되는 것 같네요. 표정을 보니 아무것도 못 들으신 것 같군요.”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냥―”
“스탠리 선수.”
나는 스탠리의 복잡한 표정을 바라봤다.
흘끔, 시선을 내려 아주 미세하게 절뚝이는 듯한 발목까지도.
“의사가 뭐라고 합니까?”
“아, 괜찮대요. 며칠 휴식만 취하면 된다고.”
“경미하지만 자잘한 부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혹시, 옛날처럼 조급하십니까.”
“아뇨, 옛날처럼은―”
“그럼 그 표정은,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토마스 캐롤 때문인가요?”
“…….”
그는 그대로 말을 잃었다.
나는 몸을 돌려 병원 복도를 터벅 걸었다. 스탠리가 한 발짝 뒤에서 따라왔다.
“캐롤에게서 자신이 보인 건가요.”
“그건…… 후우.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모르게, 가장 먼저 병실에 찾아오게 되더군요.”
“동료로서도 걱정이 되고, 그런 거군요.”
“그게, 아무래도 심각한 부상이니까요. 필드에서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고, 들것에 실려서는 안 된다고, 부상은 안 된다고 절규하던 모습에서 제가 겹쳐 보였습니다. 저 순간의 실망감과 좌절, 절망이 무엇인지 아니까요. 그런데 제가 동료로서 할 수 있는 건, 그냥 찾아오는 것밖에-”
“시즌 아웃입니다.”
“……!”
“이번 시즌 토마스 캐롤은 더는 뛰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건.”
내년에도, 마찬가지겠죠. 적어도 맨스필드에서는요.
뒷말은 내뱉지 않았지만 스탠리는 내 표정과 말투만으로 알아챘다.
“안 하실 생각이군요. 재계약을.”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표정, 눈빛. 익숙해요. 감독님들은 다 그런 눈빛이더군요. 심각한 부상을 당한 선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어떻게 다 …….”
그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순간 흥분했다고 여겼는지 침묵이 다소 길어졌다.
“죄송합니다. 그 또한 감독님의 결정이실 텐데요. 하지만, 부상 회복 후 경과를 보고-”
“부상 회복 후, 원래의 폼을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거라 봅니까?”
“그, 그건. 그래도 기회는 줘야 하지 않습니까. 저한테는 주어졌습니다. 무수한 기회가요. 감독님도 그 기회를 저한테 다시금 주셨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뛰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리 역설하는 스탠리의 눈을 바라봤다.
“그건 스탠리 선수였기에 그랬습니다.”
“……!”
“기회를 줘야만 하는 실력과 재능이 있었으니까.”
스탠리의 얼굴이 복잡하게 변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자신에 대한 칭찬이자, 본인의 과거를 투영하고 있는 토마스 캐롤에 대한 안타까움이 뒤섞인.
“그리고 의지가 있었습니다. 한없이 감탄만 나오는, 거듭된 부상을 이겨내려는 의지요.”
“의지는, 토마스 캐롤도!”
“그리고 때론 의지는 사람을 배반합니다.”
“……!”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거, 서른 즈음 넘으면, 우리 모두 알게 되잖아요? 스탠리.”
“하지만 저는-”
“부상에서 모두 스탠리 선수처럼 회복하고, 이겨 내지 못합니다. 성공적으로 이겨 내는 스탠리 선수 같은 예시도 있지만, 무너지고 마는 예시도 있습니다.”
굳이 그 예시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줄 필요는 없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불편한 다리로 서 있으니까.
흠칫한 스탠리의 두 동공이 잘게 떨렸다.
“……그러면 이제 토마스 캐롤은, 더 기회 없이 이제 우리 필드에서 볼 일이 없다는 건가요? 감독님. 적어도 부상 회복하고 그 예후를 본 뒤에-”
“스탠리 선수. 무언가 오해하고 있습니다.”
“네?”
“나는 부상 하나 때문에 토마스 캐롤을 앞으로의 플랜에서 제외한 게 아닙니다.”
“……!”
“부상이 방점을 찍은 것뿐이죠.”
선수와의 사적인 감정. 유대감.
그 모든 건, 감독에겐 제약이 된다.
그러니.
“내년, 챔피언십의 나의 플랜에 토마스 캐롤은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가혹할 정도로 무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 * *
하나 스탠리는 그 가혹함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감독님이 그렇게까지 냉정하시지 않은 것 잘 알아요.”
“그렇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정말 그랬다면, 병실에 굳이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코치만 보내서 몸 상태 체크하면 그만이니까요.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니 병원 찾을 시간도 없단 핑계면, 누가 납득 못 하겠어요?”
“…….”
“캐롤에게 기회를 주라는 건 아니에요. 캐롤만 특별히 더 생각해 달라는 것도 아니죠. 제가 캐롤하고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무슨 자격으로 그러겠어요?”
스탠리는 단지 하나였다.
“선수에겐 희망이 필요할 뿐이에요. 희망임을 알면서도, 그걸 쥐기 위해 뛰니까요. 저처럼요.”
“……동료로서 캐롤을 생각하는 겁니까?”
“아뇨. 같은 선수로서요. 전 그래서 캐롤의 부상 회복을 도울 겁니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부상 전문가이기도 하니까요. 제 경험과 노하우 같은 걸…….”
“그렇습니까.”
나는 잠깐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도 최선을 다하죠.”
“……?”
“캐롤은 여전히 제 플랜에 없습니다. 하지만 선수에게 기회는 주어져야겠죠. 최소한이요.”
“……!”
“스탠리.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걸 왜 저한테…… 당연하죠. 캐롤은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어요. 부상 회복만 하고 재활만 잘 된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부상, 그리고 그 재활을 위해서.”
“……?”
“스탠리 선수의 이해와 양해가 필요해서요.”
“제 양해요?”
고개를 갸웃하는 그를 보며 나는 뜬금없이 물었다.
“요즘 가족분들과는 관계 좋으십니까?”
“네? 그럼요. 전에 홈파티에서 보셨듯이 누나랑도, 할머니도 상태 좋으실 땐 경기장 찾아오시-”
“아뇨. 그분들 말고요.”
“……네? 저에게 가족은 그 둘인데.”
그리 중얼거리던 스탠리의 눈이 이내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그래서 양해가 필요합니다. 선수.”
스탠리의 얼굴에 혼란이 떠올랐다.
* * *
“여기에, 병원이 있다고요?”
거동이 불편하지만 휠체어를 타곤 움직일 수 있는 토마스 캐롤은, 차창 밖에서 보이는 광경에 조금은 불안한 낌새를 보였다.
“네. 여기 있습니다.”
“으음. 차라리 런던의 병원을 찾는 게…….”
“런던의 유명한 재활의들, 닥터들은 무수히 많은 빅클럽을 담당하고 있죠.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선수. 우리는 그만한 돈이 없기도 해요.”
“…….”
“아, 물론 캐롤 선수에게 그만한 돈을 투자할 수 없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거든요.”
백미러에 비치는 캐롤의 얼굴의 희미하게 밝아졌다.
수술은 맨스필드 병원에서 했을지라도, 재활은 또 다른 문제다.
스포츠 재활 전문의가 괜히 있겠는가.
캐롤은 내가 그를 위해 재활 전문의를 직접 찾아다닌단 사실에 고무된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골에 있으리라곤 생각을 못 했네요. 유명하신 분인가요?”
“네. 지금은 아니지만요.”
“네?”
“엄청나게 유명해지실 분이거든요. 예를 들어 잉글랜드 국가대표 팀닥터라거나, 미국의 미식축구 최고 선수나 NBL 스타들도 영국으로 찾아올 정도로.”
“……그건, 미래에 그렇게 될 거라고, 감독님이 예측하시는 건가요?”
“예측…… 확신이죠.”
토마스 캐롤은 내 대답에서 미약한 불안감 속에서도 눈을 반짝이며 안도했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 작은 호수를 낀 병원에 도착했다.
작은 병원이었지만 호수를 빙 둘러싸는 산책로에 걸어 다니는 노인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캐롤이 조금 당황해 말했다.
“다, 연세 있으신 분들이…….”
“요양 재활 병원이니까요.”
“……!”
나는 차에서 내려 토마스 캐롤의 휠체어를 직접 밀면서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은 작지만 내실이 느껴졌는데, 돌아다니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밝은 얼굴만 봐도 그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환자 예약으로 원장님과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어, 환자분 성함이-”
“토마스 캐롤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접수원은 노인이 아닌 젊은 캐롤을 보곤 좀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원장과 예약이 되어있는 걸 확인하곤 곧장 안내해 줬다.
“원장님이요?”
“네. 그분이 재활의십니다.”
“근데 보니까 여긴 재활뿐만 아니라-”
“조금 특이하죠? 진료 부문에 심장 쪽도 있으니까요.”
“어르신들에겐 좋은 병원 같네요. 재활에, 심장에…….”
그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었다. 하기야 요양 재활 병원에서 스포츠 전문의를 찾는다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지.
나는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약간의 우려가 있긴 했다.
하나 불신에서 오는 염려가 아닌, 혹여 내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하는 데에서 오는 작은 걱정일 뿐.
똑똑.
“네, 들어오시죠.”
노크 후 들리는 늙수그레한 음성.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경을 쓴 장년인이 흘끔, 고개를 숙이고 안경 위로 바라본다.
“어……?”
캐롤이 순간 뜻밖의 탄성을 내뱉었다.
누가 봐도 익숙한 얼굴. 적어도 나도, 캐롤은 어딘가 본 듯한 기시감.
마치 누군가 늙으면 딱 저렇게 될 것 같을 정도로 닮은 얼굴.
“예약이 상당히 어렵더군요.”
“…….”
“제가 바로 선생님 아드님의 보스인 맨스필드 감독입니다. 닥터, 스탠리.”
원장, 스탠리라는 성을 가진 그 의사의 눈가가 씰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