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86)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85화(186/266)
185. 신의 손 (4)
비공식 맨스필드의 응원단장이 된 프레디는 매번 경기를 준비할 때마다 여러 얘기를 듣는다.
고생한다, 열심이다, 수고한다. 같은 작은 응원부터.
간혹 냉소적인 사람들이 툭 던지고 마는 차가운 말까지.
“경기 준비는 선수랑 코치가 하는 거지, 서포터즈가 뭐 할 거 있나? 그냥 소리 지르는 게 다 아냐?”
“응원이랄 것도, 그냥 골 넣으면 환호하고 못 하면 야유하거나 좀 힘내라고 외쳐 주고, 그러면 다 아닌가?”
물론 프레디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라, 반박조차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랬으면 세상의 무수한 스포츠팀의 팬들이 뭣 하러 그렇게 열심히 응원해?’
프레디는 필드 위에서 직접 뛰어본 적이 없어 그 응원을 들은 선수들의 심정이 어떤지 말해 줄 수도, 느껴 본 적도 없지만.
안다. 보인다. 느껴진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닿을 때마다, 선수들의 표정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다들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도, 이를 악물며 힘을 쥐어짜 내는 그 처절한 모습도.
홈 어드밴티지는 단순한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대개의 팀이 홈 승률이 높은 것은 이미 수많은 통계로 증명된 사실이다.
어디 그뿐이던가.
홈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평균보다 40% 이상의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동물들도 제 영역을 지키려고 맹수한테도 이빨을 드러내는데.”
“선수들도 마찬가지야. 그냥 그건 본능이라니까. 홈그라운드를 지키기 위해 자세 자체가 달라진다고.”
뒷받침해 주는 여러 연구 결과를 떠나서도 프레디는 당당했다.
“우리의 홈 무패가 53경기에서 깨졌지만, 그 역사적인 기록은 우리가 다 같이 만들어 낸 거야!”
물론 이렇게 말해도 정작 유진이 팀을 이끌어서 그런 것 아니냐- 같은 반응이 나오곤 했지만, 프레디는 제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두가 다 같이 뜁니다. 그리고 다 같이 이깁니다.
유진이 직접 경기장에서 했던 그 말은.
분명 그런 이유이리라.
홈 팬들의 열렬한 응원과 분위기는 맨스필드의 또 다른 무기라고.
그러니 프레디는 이번 경기 단단히 준비했다.
FA컵 16강 진출은 20년 동안 맨스필드 최고 성적이었다.
이번 시즌 영국의 모든 축구 구단 중에 최고인 열여섯 팀에 꼽혔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는 좋은 성적. 하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딱 한 발짝만 나아가면 8강전이기에.
그리고 가장 큰 난관, 맨시티전을 앞두고 모두가 회의적인 가운데.
프레디는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려고 했다.
“일만 명의 관중이 한목소리로 소리치고, 노래하고, 환호해요. 미리 준비된 내용을 숙지한 사람들이 경기장 곳곳에 자리 잡아서 모두 약속된 시점에서 응원가 내지를 수 있도록 철저히요!”
상대가 맨시티면 뭐 어쩐단 말인가.
여기는 오로지 맨스필드의 홈구장, 필드 밀인데.
“저놈들이 와서, 하부리그라고 무시 못 할 정도로 매서운 분위기를 보여 주자고요!”
적어도 분위기.
관중석의 분위기만큼은 경기력과 상관없이 저들을 찍어 눌러야 한다는 것이 프레디의 생각이었다.
하나 그런 그의 당당한 자신감도, 경기가 열리는 당일.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Blue moon, Now I’m no longer alone(블루문, 난 더 이상 혼자가 아냐)”
“Without a dream in my heart, Without a love of my own(내 가슴 속의 꿈 없이, 내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
하늘색 물결이 원정석을 뒤덮고, 날아오르는 하늘색 풍선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
프레디는 메가 클럽이 보여 주는 응원과 단결, 분위기를 보면서 깨달았다.
맨시티의 원정 승률 76%.
홈과 원정의 구분 따위는.
―에두아르두 실바의 벼락같은 슈- 고올! 골! 전반 3분만에 득점포를 쏘아 올리는 맨시티!
맨시티에게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맨시티의 감독, 주앙 로드리게스는 터져 나온 득점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골망이 흔들린 순간 터치라인의 부심이 깃발을 들어 올린 걸 봤기 때문이다.
“이런, 오프사이드였어?”
“허. 중계에 잡힌 VAR 보니까 진짜 한 발짝 차이도 안 나네.”
코치와 대기 선수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아쉬운 탄식.
오로지 주앙 로드리게스만이 달랐다. 그는 흘끔, 올라간 부심의 깃발을 보고도 아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자만은 독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경계하고, 상대를 과대평가하는 것도 결코 좋지 못하지. 신중과 머뭇거림은 한 끗 차이다.’
주앙 로드리게스는 에두아르두 실바의 오프사이드 득점 장면만 보고도 모든 흐름을 관통하듯, 꿰뚫어 봤다. 그의 시야에 노란 유니폼을 입은 맨스필드 선수들이 담겼다.
‘짜임새는 좋아. 상당히 수준급이다. 약속된 움직임은 철저히 이행하면서도 절대 투박하거나 딱딱하지가 않다. 이는 이 짜임새를 만들어 낸 감독의 능력이겠지.’
감독은 느낄 수 있다.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상대 감독이 어떤 준비를 해왔고, 어떻게 팀을 조직해 내고 만들어 냈는지.
언제였을까.
‘유진 감독.’
고작 3부 리그의 감독이지만, 들어 본 적 있는.
첼시와의 친선전 결과는 어지간한 빅클럽이 전부 관심을 가졌던 내용이었으니까. 당시 도출된 결론 역시 깜짝 놀랄 친선전의 내용도 결국 감독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사실까지도.
‘하부리그의 과르디올라라…….’
딱히 특별한 별칭도 아니다.
과거 ‘명장’의 대명사로 퍼거슨을 꼽았던 것처럼, 이제는 펩 과르디올라라는 이름이 대표적일 뿐.
조금만 잘하고 번뜩여도 오, 과르디올라 아냐? 같은 말이 튀어나올 정도니 흔하다.
어디 프랑스의 과르디올라, 한국의 과르디올라…… 온 세상이 펩 과르디올라니까. 당장 주앙 로드리게스조차 신인 감독 땐 멕시코의 과르디올라였으니, 오죽하겠는가.
어차피 그런 별칭으로 불렸던 감독 중에 과르디올라의 발끝이라도 따라온 사람은 없다. 그러나 주앙 로드리게스는 자신했다.
오로지 자신만이, 그 별명에 어울리는 남자라고.
그래서인지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유진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
‘……영 맹탕은 아니군.’
주앙 로드리게스는 편협한 사고에 갇힌 사람이 아니다.
애당초 그랬다면 유연한 사고가 통해야 하는 축구계에서 명장으로 꼽히지 못했으리라. 그는 감정에 휘말려 제대로 된 인식조차 못 할 정도로 멍청이가 아니었다. 때문에 주앙 로드리게스는 유진에 대한 불쾌감이 옅어지는 걸 느꼈다.
그의 눈에 비친 맨스필드는 확실히.
‘하부리그라고 보기엔 만듦새가 느껴져.’
주앙 로드리게스는 특히 오늘 맨스필드의 포지션의 맥을 꿰뚫어 보고 살짝 감탄했다.
‘미드필더인 클라베르 랑데르를 센터백으로 세웠단 말이지. 쓰리백이라.’
3-5-2의 포메이션.
공격수 오스카, 앤서니 로우.
미드필더 헤일러 대니 스콧 톰 브룩스
좌우 날개, 윙백 스탠리, 제임스
중앙 수비 젠킨슨, 랑데르, 톰 뉴톤
‘전문 미드필더인 랑데르를 센터백으로, 수비수인 헤일러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거기에 부상 복귀한 톰 브룩스가 미드필더에 들어와 톰 브룩스-대니 스콧-헤일러라는 중원 조합이 이뤄졌다.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조합을, 우리 맨시티를 상대로 한다?’
누가 보기엔 실수요, 주제 파악도 못 한 짓이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역설적으로 그 이유가 있는 거겠지.’
안정적이고 검증된 조합이 아닌 새로운 조합의 이유.
‘랑데르는 어릴 때 수비수를 뛰어 본 적이 있고, 본래 자리가 수비형 미드필더일 정도로 수비력에 손색이 없어. 전문 센터백은 아닐지라도, 그의 퀄리티 자체는 적어도 저 팀에선 최고니까.’
거기에 헤일러를 전진해서 미드필더로 세운 건.
‘톰 브룩스, 이 친구도 수비수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 한마디로 지금 저쪽 포메이션엔 수비수만 다섯 명이 있는 셈이다. 아니지. 윙백으로 세운 스탠리와 제임스. 이리 따지면 수비부터 중원까지 순간 8명이 포진하는 건데.’
이중으로 수비수로 벽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다.
맨시티를 막기 위해서 지독히 수비적인 전술로 나온 것 아니냐는 소리는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나 주앙 로드리게스는 클라베르 랑데르의 능력에 주목했다.
‘검은 탱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그 아래에서부터 순식간에 위로 치고 들어가는 폭발적인 전진 능력.’
주앙 로드리게스는 턱을 쓰다듬었다.
‘수비에서 미드필더로 공이 연결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일 거다. 정확해. 저들은 공을 뻥뻥 걷어 내기만 해야 할 거니까.’
랑데르가 공을 잡고 전진하려면, 어쨌건 공이 발끝에 와야 한다.
하나 그게 쉬울까. 그저 다급하게 공을 걷어 내는 수비만 할 수 있고, 볼을 소유하지도 못하는 이 압도적인 격차에서?
‘하지만 수비수는 다르지. 단 한 번. 랑데르가 공을 걷어 내지 않고, 우리 라인이 끌어올려졌을 때, 순간적인 역습.’
다른 선수도 아닌 랑데르라면,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다.
한때 진심으로 랑데르 영입을 고려했던 주앙 로드리게스는 그 점을 순순히 인정했다.
‘훌륭한 선수. 3부 리그에서는 격이 다른 선수. 그 선수의 장점을 알아보고, 암울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수를 제시한 건, 그래. 나름 그 별명을 들을 자격이 있어. 감독.’
경기 전 악수를 하며 눈을 마주했을 뿐.
그 이상의 대화도 하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감독은 필드 위의 경기력으로 대화하는 법이니까. 그랬기에 지금 주앙 로드리게스는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최선의 수가 통할 확률이 적다는 건, 당신도 알 텐데.’
영입 고려만 했을 뿐, 결국 영입 시도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는, 이 필드 위에 녹아들었는가?’
주앙 로드리게스는 유진을 바라봤다.
철럭―!
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에두아르두 실바의 환상적인 슈팅! 정확히 빈틈을 노리는, 아름다운 슈팅이 골문에 꽂혔습니다!
무슨 수를 준비해 오든. 어떤 최선의 수이든.
압도적인 체급의 차이.
그건 감독으로서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니까.
주앙 로드리게스는 더 지켜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첫 번째 골이 오프사이드 취소가 되어도 아쉬워하지 않았던 이유.
저들은, 맨시티를 막지 못한다.
그 명제가 너무도 확연하게 보였으니까.
그는 몸을 돌려 코치에게 말했다.
“계획한 대로 스코어가 3점 차 이상 벌어지면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 주도록 하지. 아마 전반전 내에는 그렇게 될 거니까, 워밍업 5분 일찍 시키도-”
하나 지시를 늘어놓던 주앙 로드리게스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흘끔. 쳐다보는 벤치의 선수와 코치들의 표정,
벤치의 선수, 코치.
모두 자신의 입이 아니라 필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감독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위화감.
그뿐만 아니었다.
“우우우우우-!”
“와아아아아아!”
필드에서 탄식에 빠졌던 홈 팬들의 표정이 점점 다시 밝아지고, 반면 맨시티 원정석이 어수선해지는 분위기. 주앙 로드리게스는 피부의 털끝이 서서히 빳빳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몸을 돌렸다.
“…….”
주앙 로드리게스의 동공이 수축했다.
손을 번쩍 들고 항의하는 맨시티 선수단.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고 있는 에두아르두 실바.
―이런! 부심의 오프사이드 깃발이 올라갔습니다! 어깨가 랑데르 선수보다 조금 앞섰네요! 이런, 에두아르두 실바 아쉬운 마음에 웃고 맙니다!
두 번째 오프사이드 득점 취소.
득점 전에 오프사이드 선언이 떨어진 게 아니다. 첫 번째 오프사이드로 인한 골 취소 역시도.
들어가고 나서야 취소와 함께 튀어나온 판정.
즉, 이건 선수의 실수로 인한 오프사이드가 아니라-
‘오프사이드 트랩?’
주앙 로드리게스의 눈가가 씰룩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상대 팀, 맨스필드의 벤치.
그리고.
“……!”
허공에서 마주친, 그 시선.
유진의 담담한 시선이 정확히 주앙 로드리게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
감독의 대화는 오로지 필드에서의 경기로 이뤄진다.
주앙 로드리게스는 물었다.
‘당신의 최선이, 필드 위에 녹아들었는가.’
그에 대한 화답.
―아! 오프사이드 깃발이 또 올라갔습니다! 빨랐어요! 순간적으로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려 버린 에두아르두 실바 선수! 살짝 짜증 난 얼굴인데요!
유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보면, 모르나?’
주앙 로드리게스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