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88)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87화(188/266)
187. 신의 손 (6)
감독들은 베테랑을 좋아한다.
당연한 이유겠지만, 경험이 쌓여 노련한 선수를 싫어할 리가 있겠는가.
그래, 경험.
‘꼭 좋은 경험뿐만은 아니지.’
스탠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호흡을 골랐다. 그 순간 눈앞에서 달려오던 선수가 시야에서 훅, 꺼지듯이 사라졌다.
파악!
“큭!”
스탠리는 또 한 번 발이 꼬였다. 눈앞에서 유령처럼 사라지는 존재.
―세뇨즈 마르케스가 라인을 찢어 버립니다!
공을 발끝에 붙이고 다니는 소름 끼치는 플레이.
우측 윙어 세뇨즈 마르케스의 화려한 발재간에 스탠리의 눈은 핑핑 돌았고, 몸은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수비의 자세를 보고 역동작을 유도하며 순간적으로 빠져나가는 돌파. 스탠리는 그 순간 직감했다.
‘억지로 따라가면, 몸이 아작 난다.’
그의 포지션은 본래 오른쪽.
제임스와 같은 우측 라인에 서 왔다. 그의 주발이 오른발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걸 알아.’
바르셀로나 출신의 세뇨즈 마르케스는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
자신에 대한 연구를 조금이라도 한 걸까. 역동작에 걸릴 수밖에 없이 파고들자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전부 아는 것처럼 약점만 공략하는 모습에 스탠리는 수비의 천재라는 주위의 평가가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드득!
포지션의 위치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그 점을 공략해 역동작을 유도하며 돌파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건,
‘막아야 한다.’
몸의 과부하.
왼쪽 무릎의 방향이 꺾이면서 몸을 돌려야 한다. 비단 이건 수비 상황뿐만 아니다. 주발이 오른발인 만큼 공격 때에도 한 번 더 몸을 꺾어야 공간과 각도가 나온다. 그만큼 몸에 부담을 안겨 준다. 아무리 몸 상태가 좋다고 해도 말이다.
감독은 경험 많은 선수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경험에는, 온갖 부상을 직면했던 끔찍한 기억도 포함된다.
끔찍함을 겪은 자만이, 그걸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스탠리는, 1년 전과는 다른 존재였다.
부상 트라우마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촤아아아악!
―스탠리의 태클! 공 끝을 살짝 건드립니다! 세뇨즈 마르케스, 주춤하지만 그대로 전진해요!
스탠리는 전력을 다해 몸을 틀었지만, 고작 공을 발끝 한번 밀어낸 게 전부라는 사실에 숨이 턱 막혔다.
격차.
자신의 반응을 보고 순간 가속을 내서 피해내는 움직임이라니.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는데, 공을 뺏기는커녕 툭 치는 것에 그쳤다니.
하나 놀랍게도, 그 감정은 스탠리만 느낀 게 아니었다.
‘뭐야, 얘?’
세뇨즈 마르케스는 적잖이 당황했다.
‘거기서 어떻게든 수비해 내겠다고 따라잡았다고?’
조금 놀랐다.
할 수야 있다. 그가 상대해 온 수비수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자신의 예상보다도 더 대단한 수비쯤이야 많았다.
하나 상대는 3부 리그의 수비수.
거기에.
‘…….’
슬라이딩 태클 후 일어나지 못하는 스탠리를 바라보며 세뇨즈 마르케스는 순간 멈칫했다.
달려 나가던 드리블에 제동을 건 것은, 분명 스탠리의 수비였다.
‘부상을 도외시해?’
물론 그런 투지 넘치는 플레이는 1부 리그에도 많지만, 도리어 감독의 격렬한 나무람을 듣곤 한다.
저런 수비는 사실 큰 손해다. 한 번의 실책은 그 경기에서 끝일 뿐이지, 부상은 리그 운영에 두고두고 문제가 되니까.
―아, 스탠리 선수! 수비 과정 중에 좀 충격이 온 것 같은데요!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그대로 진행되……세뇨즈 마르케스 선수, 신사적인 플레이입니다! 공을 밖으로 내보내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네요!
지공 상황이 아니라 빠른 템포의 공격 상황.
하나 세뇨즈 마르케스는 그대로 공을 터치라인 바깥으로 내보냈다.
분명 이어갔으면 좋은 찬스였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공이 아웃되면서 의료진이 빠르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스탠리는 그대로 표정이 굳었다.
* * *
‘그딴 같잖은 공놀이가 뭐라고, 네 몸이 그렇게 박살이 나는데도 계속하겠다고?’
‘재활? 웃기는 소리 마라. 지금 네 상태는 걸을 수 있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빌어야 하는 순간이니까! 때려치워야 한단 소리다!’
‘그딴 몸으로, 어떻게든 다시 공을 차겠다면, 난 결코 널 다시 보지 않을 거야.’
기억난다.
냉혹했고, 야멸차던 그 얼굴이.
스탠리는 다가오는 그 얼굴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한 것일까.
감독님은, 어떻게 저 사람을 데리고 왔을까.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훈련장에서도, 선수들과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모두 자신을 쳐다보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말에도, 그저 감독이 불러왔단 사실에 애써 상관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표정이 코앞에 다가온 순간.
야멸차고, 냉혹한 그 표정이 찌푸려지는 찰나.
퍼억!
“악!”
스탠리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자기 무릎을 타박하듯 때려 버린 제 아버지, 닥터 스탠리를 바라봤다.
그토록 냉혹하고 야멸차던 얼굴은 그대로일진대, 그저 심술궂게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가 퉁명스레 소리쳤다.
“무릎이 부서져도 뛰던 놈이, 왜 이거 갖고 쓰러져? 꾀병을 부리는 거냐?”
“……!”
“도슨, 여기 허벅지 이쪽하고 골반 쪽 만져 주고 스트레칭시켜.”
닥터 스탠리와 함께 팀에 온 도슨이라는 물리치료사가 엄지를 치켜세우곤 거침없이 스탠리의 몸을 건드렸다. 그때마다 악, 악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왔지만, 스탠리는 기이하게 몸이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스탠리는 선수 이송을 위한 들것도 없이 들어온 의료진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순히 마사지한다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경험상 이건.
“이건 경험상 부상인-”
“어쭙잖은 소리 마라. 꾀병이니까.”
툭.
닥터 스탠리가 약품을 무릎에 바르곤 관절을 몇 번 우둑, 소리 나게 틀곤 퉁명스레 대꾸했다.
“으윽!”
“아무것도 아냐. 무릎을 펼 때, 이쪽이 뭉쳐져서 늦게 반응한 것뿐이다. 지금 이렇게.”
우둑!
“윽!”
“이래도, 못 일어나겠냐?”
“……!”
순간 윤활유를 부은 것처럼 무릎이 매끄럽게 위아래로 펴졌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말이다.
그랬다.
2주간 닥터 스탠리가 선수단에 들어와서 가지고 온 변화.
스탠리는 시원한 느낌마저 드는 무릎을 매만지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주섬주섬 의료 물품을 가방에 집어넣는 닥터 스탠리가 쳐다도 보지 않고 툭, 던지듯이 말했다.
“부상 교체할 필요 없다.”
스탠리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닥터 스탠리는 입을 오물거리다가 시선을 피하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스탠리는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미처 끝맺지 못하는 물음.
시선을 피하던 닥터 스탠리가 잠시 망설이더니, 후 한숨을 내쉬곤 눈을 마주쳤다.
언제였을까.
스탠리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렇게 눈을 마주쳤을 때가.
아마, 정말 어렸을 때, 아니, 아니다. 부상당했을 때, 매번 저 눈을 마주했었다.
그저 자신이 기억하기 싫어했을 뿐. 그리고 그 눈은, 변함이 없었다. 여러 감정 속에 뒤덮여 숨겨져 있는, 일렁거리는 걱정이라는 빛은 그때도, 지금도.
“그래, 뛰어도 된다.”
“……!”
“교체 없이, 계속 뛰어도 된다고.”
스탠리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곤, 다시 한번 물었다.
“그건, 팀닥터로서 의견입니까. 아니면…….”
닥터 스탠리는 등을 돌렸다.
“네가 듣고 싶은 대로 들어라.”
그 순간 스탠리는 마음속 쌓였던 응어리가 한 꺼풀 풀어졌다.
그건, 떨쳐 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그의 마음에 잠재되었던 마지막 트라우마의 한 조각이.
툭.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계속 뛰어도 됩니까?”
“당신이 데리고 온 팀닥터 말 못 믿을 거면 왜 묻소?”
틱틱, 심술궂게 대답하는 닥터 스탠리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저는 스탠리 선수를 빼 줄 생각이 없었거든요.”
“흥. 나랑은 상관없소. 난 그냥 일할 뿐이니까.”
“덕택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말은 아주…….”
나는 필드를 바라봤다.
사실 모든 선수가 체력적 과부하를 겪고 힘들어하는 와중.
고작 팀닥터 한 명이 들어왔다고 그들이 갑자기 완벽한 몸 상태로 탈바꿈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하겠지만, 때때로 불가능한 일을 실현케 하는 극소수의 천재들이 있곤 하다.
닥터 스탠리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손이 닿은 선수들은 거짓말처럼 몸 상태가 극적으로 나아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착각이오. 체력은 다들 빠져 있소. 다만 남은 체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 그것에 따라 다를 뿐이지.”
당장 스탠리가 뛰는 것부터가 그랬다.
주 포지션이 아닌 왼쪽의 위치.
그간의 경기 습관과 주발의 사용으로 몸의 방향이 계속해서 꺾일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그 과정이 매끄러웠다. 마치 유연함이 갑자기 증가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어디 스탠리뿐일까.
삐비빅!
올라가는 부심의 깃발. 이제는 더는 웃지 못하고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에두아르두 실바.
그리고 그 앞에서 흔들림 없이 두 눈을 번뜩이는 클라베르 랑데르.
“가장 중요했던 시기였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랑데르 선수요.”
“…….”
“흔히 하는 말이죠. 정신력은 체력에서 나온다고요. 틀린 말 아닙니다. 지금 랑데르 선수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은 극한의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무려 맨시티 상대로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해야 한다.
그 말은 수비 라인의 총책임자라는 뜻.
한마디로 모든 실점의 원흉으로 낙인찍힐 수 있는 부담스러운 역할과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은 어떤 선수도 소화해 내기 어려운 임무였다.
“양날의 칼, 그런 거 말이오?”
“축구 자주 보시나 봅니다.”
“허, 웃기는 소리. 영국인 중에 오프사이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가 애써 날 선 말로 말을 돌렸지만, 그조차 알 정도로 오프사이드 트랩은 부담스럽다.
성공해봤자 상대는 연이어 공격해 올 테고,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도리어 수비가 엉망으로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엄청난 정신력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몸이 받쳐 주지 못하면, 온전히 집중하지 못합니다. 무릎이 아리고, 허벅지가 아프고, 관절이 삐그덕거리면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죠.”
더구나 랑레드는 장기 부상에서 돌아온 상황.
본인조차도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의식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덕분입니다.”
하지만 단 2주.
닥터 스탠리가 바꿔놓은 변화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와 함께 온 수제자라고 불리는 물리치료사 도슨이 몇 번 몸을 꺾어 주고 마사지를 해 주니 훨씬 향상된 모습을 보였던 것.
랑데르 본인조차도 몸이 달라진 거 같다면서 놀라워했다.
“사람은 모든 근육과 뼈마디를 골고루 쓰지 않소. 쓰는 것만 쓰지. 그래서 쓰던 건 닳고 약해지고 비틀리는 반면, 안 쓰는 건 먼지가 잔뜩 쌓여 딱딱해지고 굳어 버리고 마오. 나는 그것만 만져 준 것뿐이야. 기적 같은 치료의 손길을 건넨 게 아니라.”
닥터 스탠리는 애써 겸양을 부렸지만, 절대 아니다.
“다 한 번씩 닥터의 치료실에 들어갔다 오면,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더군요.”
“……?”
“신의 손이시라고요.”
“허, 공 차는 놈들은 하나같이 예의는 없는 줄 알았건만.”
2주.
닥터 스탠리가 선수들을 일일이 체크해 준 시간.
그것만으로도 선수들은 지금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필드에서 뛰고 있었다.
그 신의 손이, 맨스필드를 상대할 우리의 무기였다.
그리고.
뻐엉!
―리처드 골키퍼가 에두아르두 실바의 슛을 막아 냅니다!
신의 손은, 필드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