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190)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189화(190/266)
189. 신의 손 (8)
맨스필드 홈 관중들은 그야말로 숨이 막히다 못해 허탈할 지경이었다.
“이 정도였나…….”
“차원이 달라.”
“첼시하고는 비겼었는데. 그건 친선 경기였고.”
“상대는 첼시도 아냐. 맨시티라고. 맨시티. 10년 동안 챔피언스 리그를 세 번이나 들었던, 그 맨시티.”
어느새 떠들썩했던 응원가는 잠잠해졌다.
들리는 건 오로지 블루문을 열창하는 원정 팬의 응원가.
이런 상황일수록 더 크게 목소리를 내야 함은 알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괜찮은 경기여야 가능한 법. 늘 포기를 모르는 응원단장, 프레디도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다.
“이런 적이, 있기야 했었나……?”
몇 번의 안 좋은 경기력. 심각했던 경기 내용. 무기력하게 당했던 패배의 기억이 없진 않다.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한다고 한들, 불패의 팀은 아니었고 얇은 스쿼드라는 가난한 팀의 한계는 지울 수 없기에.
하나 그래도 그 경기들은 기회가 보였다.
설령 밀리더라도 어떻게든 뒤집을 수 있겠다는 감정.
그간 보고, 느껴왔던 유진에 대한 신뢰.
그의 지휘라면, 결국 무언가 해 줄 거라는 기대.
하나 지금 팬들은 기대를 갖기 어려웠다.
“아무리 유진이어도, 저 선수들로 뭘 어쩌겠어?”
“우리 선수들 정말 좋아하긴 하는데…… 인정하자고. 우리 리그 원이야.”
“그간 눈이 확 돌아 버린 거지. 맨시티는 차원이 달라. 아니, 프리미어리그의 강등권 팀조차 우리는 어쩔 수 없을걸?”
“지금 번번이 오프사이드 걸리는 저 에두아르두 실바, 몸값만 6.1m 파운드(한화 1천억 원)라고. 우리 구단 가치보다 높아!”
“첼시는? 첼시는 비겼었잖아!”
“그거야 걔들 방심했고, 후반에 2군으로 다 나왔고.”
“친선 경기였잖아?”
“이건 FA컵이고. 로테이션 멤버조차도 한 명, 한 명이 다 소름 끼칠 정도로 대단하다고.”
“지금 스탠리 갖고 노는 세뇨즈 마르케스, 쟤가 로테이션 선수라고? 미친.”
어느 정도 비등하면서 밀리는 게 아니다.
찍소리도 내지 못하게 당하는 상황.
선수들의 몸을 날리는 투지조차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팬들은 분명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방향이 달랐다.
할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는 간절하고도 절박한 마음이 아닌.
힘을 내라는, 그저 무너지지만 말라는 격려의 목소리.
지금, 이 순간. 아무리 잘 막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잘 활용한다 해도 결과는 눈에 훤히 보였다. 리처드의 선방도 결국 끝날 테고, 오프사이드 트랩조차 파훼 될 것이며, 강력했던 밀집수비는 종잇장처럼 찢겨 나갈 것이 명약관화했다.
그저 더 버티기를. 참사가 벌어지지 않기를. 다른 팀들의 놀림거리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
프레디는 그런 마음을 품고 응원가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화가 났다. 하나 어쩌겠는가. 압도적 격차는 분명한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공을 걷어내기만 급급한 상황. 튕겨 나온 세컨 볼은 무조건 맨시티에게 넘어가는 경기.
슈팅 수 16대 1이라는 누가 주도권을 손에 쥐었는지 명백한 내용.
점유율 84대 16이라는 압도적 격차.
전반 40분까지, 맨스필드는 딱 한 번의 역습을 제외하곤 센터서클을 넘지 못했다.
경기장이 절반으로 줄어든 듯한 양상이었다.
도리어 첫 역습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맨스필드에겐 반작용으로 돌아왔다. 한번 당할 뻔했던 맨시티는 방심으로 풀어지기는커녕, 과연 프로 의식의 화신들답게 바짝 긴장으로 조여 더 확실한 방법으로 몰아붙였다.
이전처럼 마구잡이로 슈팅을 난사치 않았다.
마치 뱀이 천천히 먹이를 졸라 죽이듯이.
말려 죽이려는 듯 가둬 놓고 공을 돌리며 철저하게 압박했다.
하나 미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다.
점유율 84대 16.
그 말은 곧.
16이라는 숫자만큼, 맨스필드가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저 힘내라는 격려로 가득했던 맨스필드의 목소리가, 한순간 뒤바뀌는 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의미였다. 모두가 늘 경기 전에 마음에 품은 기대.
유진이라면, 무언가 해 줄 거라는.
그 막연한 기대가 아무도 모르게 불꽃을 틔우고 있었다.
―클라베르 랑데르, 공을 잡았습니다!
* * *
차악!
공을 잡은 순간. 랑데르는 이걸 걷어 내지 않아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니, 본능이 아니었다.
명확하고도 객관적인 근거가 순식간에 도출해 낸 결론이다.
“뛰어!”
본인에게 한 말일까. 아니면 동료들에게 향한 외침일까.
둘 다였다.
랑데르가 그리 외친 순간. 그간 내려앉아 웅크리기만 했던 맨스필드의 수비진이 일제히 동시에 나아갔다. 마치 오프사이드 트랩을 발동할 때처럼. 차이점이 있다면, 공의 소유권이 랑데르에게 있단 부분.
그 차이점이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 냈다.
웅크리기만 했던, 그저 두들기면 당연하듯이 맞기만 하던 약해빠진 짐승조차.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든다면,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을 터.
지금 맨시티의 심정이 그러했다.
랑데르의 외침과 함께 선수들이 일제히 라인을 끌어올리는 모습.
맨시티 선수들은 당황도 잠시 다시금 자리를 잡았다.
“역습 허용치 마!”
“역습 한 방에 약팀에게 무너지는 경우 많아!”
“실컷 두드리다가 한 골 먹고 지는 거 얼마나 억울한데!”
슈팅 수 10대 1이어도, 1의 슈팅 수가 득점을 만들어 내고 결과를 내는 것이 축구.
맨시티 같은 강팀은 내려앉은 팀에게 그런 식으로 일격을 맞은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때의 허탈함과 충격이란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 때문에 역습을 차단하려는 맨시티의 노련한 움직임 역시 빛을 발했다.
그저 가둬 놓고 패는 것이 아닌, 맨스필드가 설령 역습에 나서더라도 순식간에 차단하고 끊을 수 있는 위치. 패스 루트에 서 있었다.
주앙 로드리게스가 만들어 낸 그 환상적인 포위망은 감히 역습을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가 뚜렷이 느껴졌다.
한데도, 랑데르는 공을 차고, 나아갔다.
―오프사이드 트랩은 함정입니다.
투웅.
발끝에서 퉁겨나간 공이, 한 발짝 디딘 발 앞에 다시 도달하는 감각을 느끼며.
랑데르는 수없이 들었던 유진의 지시를 다시 떠올렸다.
―아, 이런. 표정을 보니 잘못 이해하신 것 같군요. 오프사이드 트랩(Trap) 말 그대로 함정인데, 단순히 오프사이드를 만드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들이 오프사이드 트랩으로만 랑데르 선수의 역할을 착각하는 것이, 함정이죠.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최후방 수비수의 전진 드리블. 가장 뒤에서 가장 앞까지 달려 나가야 하기에 시간이라는 리스크가 있다. 저들이 충분히 보고, 막고, 대응할 시간을 주니까.
하나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
촤아악!
랑데르를 가장 높은 위치에서 막아서려던 압둘라 메이르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충분히 보고, 막아설 시간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착각.
랑데르는,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엄청난 속도로 그 시간이라는 리스크를 지워 버렸다.
압둘라 메이르의 발끝이 허무하게 잔디를 가르고, 툭, 제쳐 내는 우아한 몸놀림.
저돌적인 탱크 같은 돌진과 달리 공을 다루고 제쳐 내는 솜씨는 우아한 오페라와 같았고.
―처음엔 저들은 경계할 겁니다. 랑데르 선수의 돌파력, 저돌적인 파괴력, 저 콧대 높은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가장 경계할, 치명적인 무기가 바로 이 선수의 돌파죠.
랑데르는 양발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왼발로 공을 툭 잡아끄는가 싶더니, 오른발로 대각선으로 툭 차 버리며 맨시티의 5천만 파운드의 커닝햄을 제쳐 내는 순간 블루문을 열창하던 원정석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래서 대비하고 또, 대비할 겁니다. 주앙 로드리게스 감독은 위협이 될 만한 걸, 절대 가만히 두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함정을 팔 겁니다. 오프사이드 트랩 활용에만 매달렸다는, 판단이라는 함정이요.
와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고요하고도 그저 힘없이 응원하던 맨스필드 관중들이 속에서부터 토해 내듯 내지르는 격한 함성이.
경기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진동하고, 응축된 무언가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버텨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합니다. 결국 기회는 옵니다. 그 기회를 판단하는 건, 그 필드에서 랑데르 선수뿐입니다.
맨시티 선수들은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랑데르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최후방에서 최전방까지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검은 탱크의 폭발적인 질주는 실로 시원한 쾌감의 극치였다.
―아무리 약팀이라도, 아무리 약해 빠져도, 모든 상황이 암울하고 절망적일지라도, 살포시 기회라는 이름의 나비가 내 손바닥 위에 한번은 반드시 날아듭니다.
랑데르는 봤다. 그 나비가 자신의 손바닥에 올라가는 순간을.
온몸에 오돌토돌 올라오는 소름이라는 감각. 마치 이리될 줄 알았다는 듯이, 정확한 어조로 말했던 유진의 목소리까지.
―제가 주목하는 건, 당신의 판단력, 그리고 시야, 그리고 뛰쳐나갈 수 있는 과감함.
누군가 보기엔 저돌적인 탱크에 맨시티라는 거함이 우그러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적어도 유진은 랑데르의 진정한 능력을 엿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하기 위해선 선수는 끊임없이 집중하고, 극한까지, 체력이 전부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경기에 모든 걸 쏟아 내면서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선수 한 명도, 그들의 시선과 몸의 방향도, 그 모든 게 시야에 온전히 들어오는 순간.
―랑데르 선수는 반드시, 손바닥 위에 날아든 나비를, 힘껏 붙잡을 것입니다. 기회라는 그 이름을요.
모든 것이 눈 안에 담기고, 맨시티 선수들의 위치와 동선까지 전부 머릿속에서 헤아려지는 순간.
랑데르는 봤다.
어디로 달리고, 어디로 질주하며, 공을 어느 방향으로 차 내야 할지.
거기에 그의 타고난 축복받은 육체가 쏟아내는 파워, 스피드. 그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얽혀지는 순간.
랑데르의 질주는 가속에 가속을 거듭하며 순식간에 맨스필드의 선수들을 떨쳐 내고 그동안 여유롭게 경기를 관람하던 골키퍼 앞에 도달하고 있었다.
―랑데르 선수를 임대해 온 순간. 나는 알았어요.
4년 전 야신상을 수상했던, 폴란드 국적의 프셈코 시만스키가 자리를 지키며 몸을 낮춘 채, 랑데르를 노려보며 간격을 좁혔다.
―우리도, FA컵을 한번 뒤흔들 수 있겠구나. 하는, 감상이요.
뻐엉.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일제히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청명하고, 강렬한 임팩트의 슈팅이 골키퍼의 엄청난 반응속도보다, 조금 더 빠르게 스쳐 갔기에.
―어디,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첼시는 아니지만, 프랑스의 국가대표가 영국 최고 권위 무대에서 화려한 쇼케이스를 보여 주는 걸요.
철럭!
슈팅 수 19대 2.
스코어.
맨스필드 1 : 0 맨체스터 시티
득점자: 클라베르 랑데르(41’)
닥터 스탠리의 신의 손.
리처드 골키퍼의 신의 손.
그 모든 걸 넘어.
전술 보드판에 랑데르의 자석을 붙였던, 유진의 신의 손이 기적을 그리고 있었다.
* * *
가슴이 뛰었다.
어째서 윌리엄 테디가 정신 나간 것 같으면서도, 대단한 감독이라고 치켜세웠는지.
랑데르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저 하부리그의 감독이 아니다. 선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그 이상을 보여 주게 만드는 마법 같은 언어를 가진 남자.
그 일면을 엿보는 순간.
랑데르는 어쩌면, 정말로,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만일, 내가, 그 기회, 잡아서 성공한다면.”
우리는.
“이길 수 있, 습니까?”
그 말에 유진은 쓰게 웃었다.
“아니요. 못 이깁니다.”
.
랑데르가 선제 득점을 터뜨리고, 충격에 빠진 경기장과 선수들을 둘러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릴 때.
“아프잖아…… 지금 실점.”
맨시티의 벤치에서 한 명의 선수가 유니폼을 갈아입고 투입 준비 중이었다.
―발롱도르 2년 연속 수상자, 시대의 이름, 이반 두브냐크 선수가 휴식을 깨고 교체 투입합니다.
일격을 맞은 맨시티는 결국 2페이즈에 돌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