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화(2/266)
02. 돌아온 탕아 (2)
맨스필드로 다시 돌아오기로 결단을 내렸다.
곧바로 움직였다. 감독대행 건을 거절했다. 그리고 사직서를 냈다.
다음에는 보훔에서 살던 집과 기반을 모두 정리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한 말씀 하셨다.
“네 어머니 성격을 그대로 닮았구나.”
“내 성격을 닮았다니?”
“뭐든 하나 정해지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움직이는 거.”
“어머, 그건 내 성격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대체로 다 그러네요. 아저씨.”
부모님은 내가 맨스필드로 돌아가는 사실에 의외로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환영하는 기색을 보였다. 두 분 모두 런던에 거주하시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맨스필드가 요즘 많이 어렵다지만, 그래도 역사가 깊은 구단이다. 이번 위기만 이겨내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거야.”
“보훔에서 감독대행을 했다가, 잔류에 실패하면 오롯이 책임을 다 져야 할 텐데. 힘들더라도 맨스필드에서 시작하는 게 나쁘지 않을 거야.”
“고향 팀이고, 네가 유소년 생활했던 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릴리, 고 아이가 있잖아?”
아마 어머니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던 마지막 말이 큰 이유일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맨스필드로 가려는 건, 고향 팀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애정이라기보단 그건 애증이었으니까.
단지. 릴리의 끝 때문이다.
무수한 성공을 거듭했다. 하지만 나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우승 샴페인을 터뜨리고 집에 와 홀로 누워 있노라면.
마치 초콜릿을 먹는 것처럼.
달콤함 속에 뒤늦은 씁쓸함이 입안에 맴돌았다.
공허 속 과거를 유영했다.
유소년 시절 뛰던 그때의 경기장과 펜스 너머에서 조잘대던 릴리의 목소리만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하나 릴리만큼은. 그녀만큼은.
그래서 지금은 선택했다. 성공한 커리어를 보내면서도 머릿속 화인처럼 남은 고통을 다시는 느끼지 않기 위해서. 후회하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다행히도 첫 단추는 잘 끼웠다.
독일에서 정신없이 정리를 하고, 보훔이 끝내 강등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무렵.
릴리에게 연락이 왔다.
“대장암이라니. 네가 병원에서 정밀검진 받으라고 억지로 하지 않았으면, 정말 몰랐을 거야.”
심각한 병이다. 끝내 릴리의 목숨마저 앗아간 병.
돈을 다 써서 병원비가 부족해 죽었다기보단, 그땐 이미 증상이 너무 악화하여 어찌 손쓸 도리가 없었다는 게 더 컸으리라.
다행히 일찍 발견했다. 첫 검진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계속 채근했다. 이 병원, 저 병원, 결국 런던까지 갔다.
릴리는 이 황당한 일에 어처구니없어했지만, 내가 감독을 맡을 조건이라고 억지로 우기니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계속 검진받았다.
끝내 종양을 발견했다.
완전히 극초기라서 병원에서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치료가 끝날 거라고.
덕분에 릴리는 단순히 놀라기보단, 아예 신기한 눈치로 날 바라봤다.
“감독 맡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내 생명의 은인이 되었네?”
“당분간 구단 일 신경 쓰지 말고, 치료에 전념해.”
“명색이 회장인데 내가 어떻게 신경을 꺼. 너, 코치진한테 소개해야 하고. 선수들 이적 문제도 있고. 법정관리 절차는 다행히 어찌어찌 해결하겠지만…….”
“걱정 마. 코치진이나 선수들은 내가 알아서 할게. 어차피 팀에 단장도, 제대로 된 수뇌부도 없잖아? 이적에 관한 전권은 나한테 줄 거지?”
그녀는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유진. 와 줘서.”
그 웃음이면 족했다.
계약 조건으로는.
그렇게 감독 계약을 마쳤다. 시간은 빨랐다. 보훔 강등 소식이 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부터 새 시즌을 시작하는 한여름의 무더위가 한층 다가왔다.
하부리그일수록 일반적으로 리그에 소속팀이 많다.
자연히 치를 경기도 그만큼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상위리그에 비해 선수들의 휴가가 짧다. 프리시즌이 일찍 시작된다는 얘기였다.
독일에서의 기반을 전부 정리, 맨스필드로 왔을 때는 이미 프리시즌 선수 소집이 이뤄진 지 나흘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훈련장을 찾았다.
훈련장을 향하는 차창 너머로 소수의 군중이 보였다.
<맨스필드 타운을 구합시다!>
<맨스필드는 맨스필드의 것으로>
<10센트씩 모아, 구단을 지킵시다!!>
각종 팻말과 유니폼을 입은 채 소리치는 팬들.
맨스필드 타운은 재정난으로 수많은 매각, 인수 루머. 구단 소유권 분쟁과 표류 문제로 무척이나 복잡한 상황이었다.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고, 청산 명령이 떨어지면 4부리그에서 강등이 문제가 아니라, 프로리그에 참여 자체를 못 할 수도 있게 됐다.
다행히도 팬들이 구단을 지켰다.
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서포터즈 조합이 구단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조합에서 가장 큰 유력자였던 릴리의 가문이 공식적인 회장으로 추임되었다.
어떻게든 최악은 피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애당초 가난한 구단, 도시 자체도 부유한 도시가 아니다.
절대적인 인구수도 적고, 거기에서 서포터즈 숫자는 더 적다.
팬들이 운영하는 구단이라는 낭만은 가슴 뛰긴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돈은 어디서 구할 것이며, 구단이 진 수많은 빚은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봐도 구단의 미래는 암울했다. 선수들에겐 전혀 매력이 없는 팀이었다. 코치진도 마찬가지다. 어떤 감독도, 어떤 코치도 맨스필드에 오려 하질 않았다. 가라앉는 배를 지휘하려는 미련한 선장은 없다.
‘내가 미련한 선장이 됐군.’
쓴웃음을 지으며 훈련장에 도착했다. 이미 릴리가 연락해 놨는지, 경비원은 조용히 문을 열어 뒀다.
“새로 오신 감독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맨스필드에 오신 걸 환영…… 유진?”
늙수그레한 뚱뚱한 남성은 창문 너머로 인사를 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랜만이에요, 잭 아저씨.”
“유진! 오, 유진? 진짜 그 유진이야? 학교도 안 가고 허구한 날 공만 차다가 된통 깨졌던 놈?”
“부끄러운 기억을 굳이 들춰 내시는 거 보니, 잭 아저씨는 여전히 괄괄하십니다, 참.”
“잠깐만. 아니 잠깐만, 이거 구단 차량이잖아? 그러면!”
잭 아저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살에 조금 눈이 파묻힌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눈이 아예 튀어나올 듯하다.
“맞아요. 저예요.”
“맙소사! 독일에서 코치 노릇 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감독이라고? 오 이런……!”
“어우, 잠깐만요. 아저씨. 자, 잠깐만.”
잭 아저씨가 뚱뚱한 상체로 창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숨이 턱 막히는데.
“맙소사. 우리 유소년 스타가 감독으로 온다고?”
“실망하셨나요? 감독 경력이 없어서?”
잭 아저씨는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억세고 큰 손을 내밀었다.
“그럴 리가! 고향에 어서 오게, 유진.”
“…….”
“왜 그런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니요. 반가워서요.”
“아이고, 그때 훈련밖에 모르던 꽉 막혔던 놈이, 독일 갔다더니 오히려 사람이 말랑말랑해졌네?”
말랑말랑은 무슨.
한때 알던 사람의 얼굴을 이십몇 년 만에 다시 보게 된다면.
그것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났던 사람의 얼굴이라면.
그 사람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오히려 지금 내 반응은 너무 딱딱하다 못해 건조한 게 아닐까.
“도넛 그만 드세요.”
“뭐라고?”
“홍차에 도넛. 그거 안 좋아요. 안 좋아. 홍차도 설탕을 얼마만큼 넣는 거예요? 병원 다녀오세요. 쉬는 날에.”
“홍차에 설탕을 안 넣고 어떻게 마셔?”
“마시지 마세요.”
“허?”
“그리고 병원 가세요. 아니다. 선수들이 이용하는 병원 있죠? 거기 얘기해 놓을 테니까,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하세요.”
“아니 잠깐…….”
잭 아저씨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로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사실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다.
반갑기야 하지만…… 이 구단에 좋은 기억만은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어설프게 웃어 보이곤 천천히 서행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잭 아저씨가 또렷하게 소리쳤다.
“우리 팀 감독을 맡아줘서 고맙네. 정말 고마워, 유진!”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직 팀을 이끌고 성공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고맙단 인사부터 들려온다. 그 외침이 이곳에 온 순간을 후회하지 않게끔, 명확히 상황을 인식하게 해줬다.
‘돌아왔구나.’
맨스필드에.
그리고 과거, 이 시점에.
사실 맨 처음 혼란스럽지 않았던 건 아니다.
휴대폰 너머로 죽었던 릴리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액정의 날짜는 과거고.
머리가 멍한 가운데, 무작정 영국으로 달려왔고, 릴리의 얼굴을 보는 순간에서야.
나는 과거로 돌아왔음을.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 소리치며 떠났던 맨스필드에 돌아왔음을 절절히 깨달았다.
이제 더는 부정할 것도 없다.
언젠가 당뇨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들었던 잭 아저씨와의 대화 이후에, 나는 크게 심호흡했다.
“보훔에 남았으면, 이미 한번 겪었던 것처럼 승승장구하겠지.”
지금이라면, 더 잘할 자신 있다. 실패했던 선수의 이적, 잘못된 선수 기용, 앞서나간 미래 전술의 트렌드까지. 그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있는 이상.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하나 나는 그 모든 걸 저버리고 맨스필드로 돌아왔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탑승객 모두가 떠나려고 하는 난파선의 선장으로.
이곳에 내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로.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뚜렷이 떠오르는 의심.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었다.
미래의 유망주? 메시의 뒤를 이을 천재? 아무도 모르는 진흙 속 진주?
그걸 알면 무엇하나.
“이 팀에 오려고 하지 않을 텐데.”
그런 팀이다. 적어도 지금의 맨스필드로는.
‘혼자서는 무리다.’
냉정하자. 냉정하자고.
챔피언스리그 우승 감독 유진은 아직 없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른바 통칭 4대 리그의 우승컵을 쥐었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첫 감독 커리어를 4부리그의 막장팀에서 시작하는 초짜 감독.
그 같은 명확한 현실을 인정하고 또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야만, 대비하고 이겨낼 수 있다.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른세수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기를, 예민하고 매사 부정적이라서 꺼려진다던가.
그래, 맞다. 내 성격이 으레 그렇다. 매사 부정적이다.
하지만 그런 내 성정이야말로 감독으로 성공했던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부정적인 이유는, 확실하고 톡 불거지는 단점을 너무도 쉽게 찾아내고, 인식하기에.
그 단점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지워내지 않는 한 몸에 두드러기가 돋는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건 단 하나다.
‘나 홀로 맨스필드라는 배로 항해하는 건 무리야.’
선장에겐 자고로 훌륭한 조타수와 갑판장이 필요한 법.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작성했다.
―어이. 아직도 수당 받고 보고서나 쓰고 있어?
답은 없다.
하지만 문제없다. 다음 내용을 보고도, 답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아니까.
―이젠 본격적으로 코치진으로 뛰어야 하지 않겠어?
징.
역시, 답이 왔다.
―무슨 소리?
미끼를 물었다.
하면.
―화끈하게, 수석코치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때?
낚싯대를 당겨야 하는 법.
그것도 뜸 들이지 않고, 단번에 홱.
낚아채야 한다.
그래야 잡을 수 있다. 대어를.
징, 징, 징.
문자 대신 전화가 왔다.
액정 위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름.
막시밀리안.
현재 세미프로팀의 계약직 전력분석관.
임시 계약으로 수당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
하나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미래의 레알 마드리드 감독.
‘진짜 전술 천재.’
지금부턴 내 곁을 보좌할 수석코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