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01)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00화(201/266)
200. 언제나 맨스필드에 있다 (3)
난 술을 즐기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마…… 부상 이후가 아닐까.
당시 부상에서 회복하려면, 재활에 성공하려면, 술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술이 만들어 내는 염증에 학을 떼는 의료진의 말을 철저하게 따랐으니까.
그때부터 술을 의식적으로 멀리했고, 그리고…… 그래. 시간이 흐르고 내가 맨스필드에서 도움을 바라는 릴리의 문자에 답하지 않고, 애써 외면한 이후로.
그녀의 장례식에서 돌아 나온 이후로, 아예 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뭐, 여러 이유다. 릴리는 술을 좋아했다. 양조장을 운영했으니까. 내 기억으론 어릴 때부터 마셨다. 앤서니가 어린 나이에 술 마신다고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단 말이지.
아무튼, 술 한잔 마시고, 정신을 잃고 곯아떨어진 뒤에 우습게도 과거로 돌아온 것만 봐도.
난 술을 못한다. 즐기지도 않는다. 딱히 마시려고도 하지 않았다.
종종 바른 생활만 하는, 독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다-같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릴 듣곤 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눈앞이 핑핑 도는 걸 보니, 과거로 돌아온다고 해도 나는 술과 친해질 수 없는 족속이었다.
“자자. 이거 마셔!”
“……릴리?”
“왜, 신기해?”
찌뿌둥한 몸, 안개가 잔뜩 낀 듯한 머릿속, 눈앞에 아른거리는 릴리, 따뜻한 냄새가 올라오는 차…….
“뭔가, 기시감이 들어서.”
“기시감?”
“술 때문에 곯아떨어졌다가 눈 떴을 때 말야. 그때도.”
“내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고?”
“…….”
그녀가 놀리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 얄밉긴 한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과거로 돌아오는 순간도. 술에 취한 그 상태에서도 그 문자만을 바라만 봤으니까.
나는 미간을 좁혔다. 잠깐,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데, 저 얄미운 웃음은 뭐야.
“선수들 회식 자리 안 간다더니. 신나게 달리셨네요. 아주, 응?”
“어쩌다 보니.”
“술도 못 마시면서, 선수들이 주는 술 넙죽 받아 마시고.”
“논 알콜이라 그랬는데…….”
“그러게, 선수들한테 평소에 잘해주지 그랬어. 골려 먹으려고 진짜 술을 줬나 보네.”
“아무튼, 왜 여기 있어?”
“이 작은 동네에, 감독님 일거수일투족은 다 내 귀에 들어오는 거 몰라?”
“그건 좀 무서운데.”
“서포터즈 조합 회장을 너무 얕봤어, 유진. 거기 펍 주인 아저씨도 우리 조합 이사님이잖아.”
“아주 FBI 저리 가란데?”
“딱 봐도 숙취에 찌들어서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아서 아침 일찍 왔지.”
홀짝, 그녀가 내민 차를 마시면서 찻잔 위로 흘끔 릴리를 바라봤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내가, 뭔 실수 했나?”
“아니, 뭐어. 가자. 운전 못 할 거 아냐. 선수단 해단식인데.”
“불안한데…….”
그리고 그 불안의 이유는 얼마 가지 않아 알게 됐다.
1년 전.
리그가 끝나고 휴식기에 돌입하면서 선수단 해산을 선언했던 그 미팅룸에 들어가는 순간.
휘이익-!
“오오오오-!”
휘파람을 불면서 박수를 치는 선수들을 보니, 내가 어제 술에 취해서 무언가 단단히 실수했구나, 깨달았다.
나와 릴리를 향한 은근한 눈빛들 역시.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 줄래?”
내 괴로운 신음을 들은 릴리가 놀리듯이 웃었다.
“뭐, 나를 구해 주고 싶어서 맨스필드에 왔다니, 뭐니, 이 망한 팀에 찾아온 이유가 다 나 때문이라니- 그런 얘기를 했다던가?”
나는 헛웃음을 켜곤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나를 바라보는 선수들의 눈에 서린 장난기 어린 미소. 은근한 눈빛까지.
나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앞으로…… 선수들은, 음주는 금지입니다.”
“아하하하하!”
“감독님만 금지하시면 되실 것 같던데요!”
“아니, 우리 구단 메인 스폰서가 구단주님 양조장인데-”
와, 하고 웃는 분위기에서 나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래.
때로는 이래도 된다.
그저 멀어만 보이고, 벽이 쳐져서 쉬이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
나는 그런 관계를 신봉하고, 일부러 유지하곤 하지만. 단단하기만 하면 깨지고, 올곧기만 하면 부러지는 것처럼, 가끔은 이런 모습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갈 때가 있어도 된다.
뭐, 선수단의 단합에 감독이 포함되는 것도 좋은 일이니까.
나는 선수들의 웃음과 놀림에 어깨를 으쓱이며 묵묵히 받아들였다.
“예. 그간 그렇게 씹고 싶었던 감독이 술에 취해서 주정을 부렸으니, 놀리고 싶은 맘 이해합니다. 다만 이게 더 길어지면 선수단 해산 없이 다음 시즌까지 훈련만 할지도 몰라요.”
“우우우-!”
겨우 분위기가 잦아든 뒤에 나는 선수단 해산을 선언할 수 있었다.
“모두 자랑스러워하세요. 가서 가족들, 아이들, 아니면 키우는 강아지든 고양이든, 무릎에 앉혀 놓고 말하세요. 나는 맨스필드의 우승을 만들어 냈다고.”
“…….”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자부해야 하고, 당당하실 자격이 있습니다. 예, 뭐, 차갑다 못해 사람 같지도 않은 감독 밑에서 일 년 고생하시고, 괴상한 술주정도 보셨으니, 그 정도 자격은 있으십니다.”
희미하게 번지기 시작하는 은은한 미소.
나는 잠깐의 침묵을 가진 후, 한동안 적막만이 가라앉을 공간을 쭉 둘러보았다.
“늘 그렇듯이 클럽하우스의 문은 상시 개방입니다. 휴식기 중에도 운동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찾아주세요. 그럼, 다음 시즌에 뵙겠습니다.”
맨스필드의 35-36 시즌.
공식 종료.
* * *
“저녁?”
“응.”
“레스토랑이라도 예약했어?”
“아니, 집에서.”
“……!”
릴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순간적으로 당황해하는 기색.
나는 피식 웃었다.
“무슨 생각인데?”
“아, 아니, 갑자기 저녁 식사를 집으로 초대하는 건-”
“오늘 아침 나도 모르게 문 따고 들어와서 차를 타 준 사람이 갑자기?”
“그거야 그거고, 이거는 이건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토마스 캐롤 선수 부부 초대했어.”
“어?”
“캐롤 선수만 초대했는데, 부부가 온다고 해서. 혼자 맞이하기 좀 그러네.”
“아아.”
그녀는 실망한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표정을 바로 하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어디, 솜씨 좀 발휘해 볼까!”
애석하게도 양조장 운영과 구단 운영까지 겸임하는 그녀가 직접 음식을 해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워낙 바쁘니까.
“으, 으음. 이게 왜 탔지.”
“……내가 할게.”
그렇게 저녁 정찬을 준비하는 사이.
마당 넘어, 문 앞에 차량이 정차하는 끼익, 소리가 들렸다.
“왔나 보다.”
내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은, 적어도 맨스필드에 온 이후론 처음이다.
릴리야, 뭐 자기가 알아서 툭툭 쳐들어오곤 하지만.
선수를 초대하는 건, 옛날에는 간혹 했어도 여기선 처음이었다.
그래. 단순히 친목만 다진다는, 그런 교류의 목적이 아니다.
나는 과거, 수없이 내 앞에서 소리치고, 분노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식탁을 거침없이 때리던 몇몇 선수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 가는 듯했다.
캐롤은 아마…….
“…….”
차가 멈춘 소리가 들린 지 한참이 지나도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는 없었다.
슬쩍 창밖을 보니,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두 인영이 보였다.
하나는 캐롤이었고, 그보다 왜소한 체구는 일전 홈파티에서 봤던, 나에게 그림을 선물해 줬던 그의 부인이었다. 둘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실랑이하는 것인지, 난처한 느낌을 풍기며 서성거렸다.
“무슨 문제 있나?”
릴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조용히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마당에서 서성이던 두 명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들어오지 않고 왜 여기서-”
턱!
“…….”
“어, 어어-”
순간 주위에 무거운 적막이 가라앉았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뒤늦게 나오던 릴리가 우뚝 멈춰서고, 나에게 인사하려던 캐롤의 몸이 그대로 돌처럼 굳어 섰다. 오로지 나만, 그 사태를 명확히 직시했다.
“무슨 일이죠?”
캐롤의 부인.
그녀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직 저녁 날씨는 차다. 땅은 딱딱하다. 한데도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캐롤은 부인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놀라고, 당황하는 한편 왜 이러는 것인지 짐작이라도 한 듯 씁쓸한 기색이 동시에 아른거렸다.
간곡한 목소리가 숙여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감독님, 부탁, 부탁이에요. 이이를, 방출하지 말아 주세요.”
“…….”
“부상 당해서 고통을 악물고 걸어 나온 사람이에요.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계약이 해지되면, 아무도 찾지 않을 거예요. 아무도……. 부상에, 심지어 감독님이 재계약하지 않고 팽했다는 얘기가 돌면…….”
나는 답하지 않았다.
“…….”
묵묵히 듣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서 점점 말이 줄어들고 희미한 흐느낌만이 가득해질 때, 캐롤이 씁쓸한 얼굴로 부인을 일으켜 세웠다. 릴리가 다가와 그런 부인을 살짝 안으면서 따뜻한 곳으로 이끌어갔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제 와이프가 조금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충분히요.”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없다.
지금 토마스 캐롤은 장기부상에서 회복해 가고 있는 상태.
어느 선수나 마찬가지로, 부상 이후 본래의 기량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상 희박하다. 이건 의지와 좋은 재활이라는 조건이 성립된다고 해도 당연한 일이다.
“부상에서 회복한 선수. 재계약 실패. 그리고 그를 방출하려는 감독은, 리그에서 가장 선수를 잘 보는 눈을 가졌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
“…….”
“위험도가 클 겁니다. 토마스 캐롤 선수를 영입하려고 하는 것은. 그래서겠죠. 그래서…….”
그의 부인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리라.
세상엔 의외로 뛸 팀을 찾지 못하는 선수가 많다.
부상이든, 기량 저하든, 여러 사정으로 말이다. 토마스 캐롤의 나이도 선수로선 적지 않다. 이제 서른넷. 부상에서 회복해도 본래의 폼을 되찾기는커녕, 자연스러운 노화로 기량 저하가 의심스러운 상황이지 않은가.
하나 축구를 떠난다면.
그는 이제 34살의, 사회에서 가장 젊은 구성원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평생을 몸담았던 직업에서 물러날 수 있을까.
“캐롤 선수.”
“……네.”
“방금 일로 저는 고민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내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일전보다는 한층 더 차분해졌다.
그걸 느낀 건지, 캐롤은 마음의 준비를 다 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캐롤 선수. 맨스필드의 유니폼을 더 입지 못합니다.”
“…….”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저는 원래, 지독한 놈입니다. 선수를 방출할 때, 그 선수의 미래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내 선수가 아니니까요. 내가 부릴 선수가 아니니까. 그저 내보내기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잔인하고, 냉혹하고, 감정 없는 기계 같단 소릴 듣곤 합니다만, 저는 제 방식이 옳다 굳게 믿습니다.”
캐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감은 눈 너머로 감정을 삭이는 것만이 보였다.
“그런데 캐롤 선수는, 이상하게 고민이 됐어요. 이상했습니다. 왜 이렇게 고민이 되는가, 방출 명단에 선수들의 이름을 적는데, 가장 마지막까지 망설이면서 적었는가.”
“…….”
“값싼 동정심 따위였다는 걸 방금 깨달았습니다.”
“……!”
“그거야말로 선수에게 실례입니다. 당신에게 재계약을 제의했던 이유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가 아닌, 그저 동정심과 안타까움, 그런 것이라면, 내 철학에도 맞지 않고, 선수 본인에게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토마스 캐롤은 후, 깊게 숨을 내뱉었다.
“변명, 예, 선수 방출하는데 그저 변명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이것이 옳다 믿습니다.”
“그게 팀에 대한 사랑이겠죠.”
“…….”
내가 바라보자,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제 술에 취하셨을 때, 이 구단에 온 이유를 선수들이 물어봤을 때요.”
“…….”
그건, 릴리 얘기를-
“다들 감독님의 처음 보는, 그런 허술한 모습에 놀리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다른 말도 하셨어요.”
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을 사랑한다고. 이 맨스필드를 사랑했었다고.”
“…….”
“그래서라고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전부 바칠 정도로 사랑했던 팀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온 거라고. 사랑하는 전부를 지키기 위해서.”
토마스 캐롤은 도시의 정경을 둘러보듯 주위를 크게 둘러보았다.
“이 팀을 사랑하기에 때때론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그 얘길 듣고 저도 깨달았습니다. 전 이 팀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감수할 겁니다. 이 팀이 더는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사실 조차도요. 그간 감사했습니다, 감독님.”
“……캐롤 선수.”
“아, 미안하단 말은 안 하셔도 됩니다.”
“…….”
“어제, 술에 취하시고 저한테 계속 미안하다고 하셨거든요. 하하.”
* * *
“응, 응. 우리 팀 쓰리-톰 에이전시고, 알롭 코치님이 속한 에이전신데. 평이 좋아.”
“정말?”
“우선 여기랑 얘기해서 계약해 보자. 이 에이전시가 하부리그 팀들 잘 연결해 준다고 하거든?”
“그래, 부상도 회복했고, 자기,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알아주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야!”
시즌이 끝나고 휴식기에 돌입한 지 나흘.
토마스 캐롤은 부인의 응원에 힘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약간의 부담을 느꼈다.
‘정말로?’
사실 응원하는 부인의 얼굴에도 미약한 불안함이 서려 있는 걸,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는 남편인 그가 어찌 모를 수가 있는가.
안 그래도 여러 팀이 찾지 않을 나이. 거기에 끔찍했던 부상. 하물며 최종전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모습까지.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의 팀에, 아니, 그가 있었던 팀인 맨스필드에서 젠킨슨도, 대니 스콧도.
그 나이에도 열정을 불사르며 뛰는 모습은, 늘 평범하기만 한 선수였던 토마스 캐롤의 마음에도 불씨를 틔웠다.
‘아직은, 더, 조금만 더.’
하고 싶었다.
축구가.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토마스 캐롤은 밀려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애써 밀어냈다.
그때였다.
띵동.
“응?”
“오늘 오기로 한 택배라도 있었나?”
초인종 소리에 토마스 캐롤과 부인이 눈을 마주쳤다.
흘끔, 렌즈 밖으로 보이는 얼굴을 알아본 토마스 캐롤의 얼굴이 일순 당혹으로 물들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어? 어…… 아는 사람이긴 한데, 저 사람이 왜.”
토마스 캐롤은 얼떨떨해하며 문을 열었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장년인이 반갑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었다.
“오, 토마스 캐롤? 필드가 아니라 이렇게 보니, 더 잘생겼네요.”
“……반즐리 감독님이 왜 우리 집에.”
“하하하. 감독이 남의 팀 선수 찾아오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
“에이, 다 아시면서.”
토마스 캐롤의 얼굴에 희미한 빛이 번졌다. 그건, 설렘이라는 감정이었다.
“얘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으니, 혹시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아, 예. 예.”
“하하. 다름이 아니라, 제가 가장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감독님께 선수 추천을 받아서요.”
“……!”
“정말 훌륭한 선수가 있다고, 그것도 자유 계약이라고,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리그에서 선수 보는 눈이 가장 대단하다고 알려진 감독님의 추천을 듣고, 엉덩이를 가만히 둘 순 없었습니다.”
“자, 잠깐만요. 그 말은…….”
“유진 감독님의 추천을 받고 왔죠. 부상 예후나 약간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코치들은 반대 의견이 있기야 하지만, 뭐 지들이 유진, 그 사람보다 잘났나? 으하하.”
“…….”
“어디, 우리 반즐리에서 어떤 축구를 해 볼지, 잠시 얘기해 보시겠습니까.”
토마스 캐롤은, 그리고 그의 부인은, 저도 모르게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 * *
띠링.
―도움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독님.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
나는 담담히 답장했다.
―클럽하우스는 휴식기 내내 열려 있습니다. 닥터 스탠리도 상주해 있고요.
나는 메시지를 두들기다가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봤다.
캐롤의 부인이 선물해 준 숫사슴 그림.
―맨스필드 유니폼을 벗었다고 해도, 당신의 마음에서 맨스필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그림에는 캐롤이 여전히 있었다.
―선수는 늘, 언제나, 맨스필드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