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02)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01화(202/266)
201. 하이 롤러(High Roller) (1)
사실 토마스 캐롤이 특별한 케이스였을 뿐.
방출 명단의 다른 이름들은 그 정도까지 여러 고민이 얽힌 상황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감정이겠지만, 여기는 프로의 세계.
영입과 방출이 일상과 같고, 언제나 늘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모두가 인식하는 세상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이와 부상이라는 문제로 팀을 찾기 어려워하는 캐롤과 달리, 다른 선수들은 여러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었다.
―감독님, 그 선수 방출 명단에 올렸다는 소문이 있던데, 매각 계획이시오? 그러면 우리가 데려가고 싶은데…….
―감독님이야 챔피언십 가시니 매각하는 거지만, 리그 원인 우리 팀에는 그만한 자원이 있나 싶네요. 매각 금액은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혹시 이적료 협상 전에 선수와 접촉을 해도 되는지 먼저 여쭈어…….
감독과 코치들의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광범위해지고, 공고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감독들이 먼저 다가와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건네고, 식사 자리를 초대하기도 한다. 높아지는 팀의 위상과 내 명성 덕분이다.
공식적인 거래와 의향 전달 이전에, 이렇게 물밑에서 감독과 코치들, 그리고 일부 프런트 직원들의 네트워크가 가동하며 밑바탕이 빠르게 그려졌다.
선수들에게도 어느 정도 뉘앙스를 전달했고, 선수들도 각자의 에이전시를 통해 들어오는 소문이 있는지 대개 납득했다.
캐롤만큼은 아니어도 팀에 남고 싶어 하는 의향을 드러내는 선수도 있긴 했다.
맨스필드라는 팀에서 이뤄낸 성적, 경험, 그리고 분위기.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조건이니까.
하지만 그런 이들도 어렵지 않게 단념했다.
“뭔가 좀 섭섭한데.”
방출 명단의 여섯 명 전부가 이적에 대개 동의한다는 반응을 들은 릴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만 그래? 우리는 가족이라고, 막 그랬던 선수들이-”
“정작 쫓아내려던 건 우린데, 섭섭함을 느껴야 할 건 저 선수들이지.”
“아, 뭐, 그렇긴 한데…….”
“결국 돈 문제거든.”
“응?”
“저 선수들 주급 상당히 짠 편이야. 우승팀 치곤.”
“아…….”
릴리가 면목 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주는 주급이 상당히 적잖아. 우승했는데도. 몇몇 선수들은 우승까지 만들어 냈는데, 받는 대우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 다른 팀들은 그 이상의 주급을 대개 제시할 테니까.”
“그 이상?”
“우승팀 선수라는 프리미엄은 무시당할 게 아냐.”
“하긴…… 불만이라, 생각을 못 했네.”
“승리 수당도 사실상 없었고, 우승 수당도 없고-”
“흠흠, 크흠, 그, 그건!”
“뭐, 그거야 차차 바꿔가면 되니까. 여하튼, 결국 돈 문제야. 프로판에선. 그러니 내가 젠킨슨 같은 선수를, 은퇴해야 하는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1년 계약 연장을 한 이유고.”
젠킨슨은 캐롤과 조금 다른 케이스다.
대체 불가한 선수.
실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팀의 역사와 현재. 그 모든 것을 지켜 주는 원 클럽 맨. 감독으로선 찾기 어려운 희귀종과 같으니까.
“아무튼 한 명은 자유 계약으로 풀리고, 나머지 다섯 명은 이적료가 발생할 거니까.”
릴리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 선수들 몸값이, 이렇게나?”
“2년 연속 우승 프리미엄이지.”
“이, 이 정도 몸값은 되리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이것도 예상치야. 이적시장 열리고, 본격적으로 매물로 올라오고 경쟁팀이 붙으면 더 받을 수도 있어.”
“유진.”
“응?”
“우리가 선수 팔아서 수익을 낸다니, 나 믿기지가 않아…….”
하물며 그 돈을 이적료로 활용할 수 있다니.
나도 감회가 남달랐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가는 선수가 있다면 들어오는 선수도 있는 법.
하물며 챔피언십.
46라운드의 경기 수는 동일하지만 각 경기의 치열함과 폭력성, 난이도는 차원이 다를 터.
나가는 선수보다 더 많은 숫자가 필요했다.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는 6월 중순은 아직 한 달쯤 남았지만, 그 전에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 이사회에서도 이번엔 다들 작정한 것처럼 만장일치로 결정됐어. 대출금 전부 이적 자금으로 배정될 거야.”
릴리의 말은 달리기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권총 소리였다.
* * *
“생각보다도 훌륭했습니다. 랑데르 선수는요.”
“……감사, 합니다.”
여전히 과묵한 얼굴이고, 나 역시도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눠 보지 못했다.
세 번, 네 번 이상 이어가는 대화가 없을 정도로 단답으로 가득 찬 사내.
영어가 아직 숙달되지 않은 건지, 그도 아니면 다소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그가 보이는 것과는 꽤 다른 사람이란 점이다.
“훈련장에서의 모습은 물론, 필드에서 보여 준 충격은 대단했죠. 후반기 잠깐 뛴 걸로 리그 올해의 선수가 된 임팩트는, 어마어마한 겁니다.”
“…….”
낯 뜨거운 칭찬에도 그는 과묵했다. 검은 얼굴의 검은 동공. 희미하게 한쪽으로 시선을 피하는 듯한 부끄러운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다시 보자 과묵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여러모로 대화하기 힘든 상대였다.
“음, 이런저런 얘기를 길게 하긴 했습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휴식기에 프랑스로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 확실히 하고 싶어서요. 다음 시즌, 임대 연장을 통해 우리 팀에서 함께 뛰겠습니까?”
클라베르 랑데르.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재활에 실패해 번번이 실패만 하던 선수.
하나 그는 여기선 차원이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처음엔 닥터 스탠리의 영향 때문인 줄 알았다.
‘아니, 그 친구 몸 상태는 문제없어. 오히려 부상 이후에는 근육이 굳어진다거나, 그런 건 당연한데, 뼈 자체가 통뼈야. 그냥 타고나기로 강한 놈이라고. 내가 뭐 할 것도 없이 스스로 뼈가 붙고 나을 친구야.’
하지만 닥터 스탠리는 예상치 못한 평가를 내놓았다.
즉, 자신이 굳이 손봐 주지 않았어도 재활에 성공했으리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당연히 따라붙는 의문.
‘본래 랑데르는 왜 몰락한 거지?’
나 역시 당시 남의 팀 선수에 대해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부상과 재활 실패 같은 이유가 가장 합당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한 퀄리티의 선수가 그렇게 몰락하는 이유론 당연히.
하지만 직접 본 랑데르는 그 이유가 틀렸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줬다.
‘그러면 다른 문제가 있다는 건데.’
솔직히 말해 랑데르는 대단한 선수다. 내 손에 넣고 싶다는 욕심이 들끓을 정도로.
그러나.
“저는, 도전하러, 왔다.”
“…….”
“증명, 할 겁니다.”
그는 떠듬거리면서도 명확한 악센트로 대답했다.
예상했던 답.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표, 런던에선 꼭 이루길 바랍니다. 선수.”
“……merci(고마워요).”
.
실망한 일은 아니었다. 랑데르는 첼시 스쿼드 한자리를 당연히 차지하리라는 소리를 들었던 선수다. 그에게 투자한 이적료만 해도 첼시에서도 상당한 수준.
첼시에서도 어떻게 활용하고 싶어 하고, 랑데르 본인도 소위 ‘먹튀 논란’에서 증명하려고 하리라. 아무래도 우리 팀에서 뛴 경기들이 몸 상태에 자신감을 붙여 준 것 같으니,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는 잘 해낼 것이다.
그래, 특별한 이유. 나는 종종 랑데르 소식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선수를 불렀다.
“헤일러 선수.”
“아, 네. 네. 감독님.”
헤일러는 성격상 딱히 모난 데가 없었다. 딱 그 나이대답게 질투심도 있고, 허영심도 있고, 아직은 메마르지 않은 감수성도 있고…….
워낙 독특한 캐릭터의 선수들, 앤서니 로우라거나 앤서니 로우라거나, 로우라거나- 아무튼 그런 선수를 보다가 본 헤일러는 감독으로선 대하기 좀 편한 상대였다.
개성이란 색채가 옅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유형이다. 이런 선수야말로 온갖 색으로 다채롭게 빛나는 필드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니까.
“선수도 임대 연장에 동의하시는 거죠?”
“네, 네. 저도 챔피언십에서 더 뛰어 보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본인이 원하는 것에는 확실한 의사 표현까지.
헤일러의 선택은 랑데르와 달랐지만, 또 다른 방향으로 옳았다.
어차피 헤일러는 복귀해도 첼시 스쿼드에는 들어가기 어렵다.
결국 2군에서 증명하거나, 아니면 또 한 번 임대를 전전할 것인데.
어차피 임대할 거라면, 이미 팀에 적응하고, 챔피언십이라는 무대인 맨스필드가 더 좋지 않겠는가.
“다만 저는 여기에 하나의 조건을 더 걸고 싶습니다.”
“조건이요?”
헤일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완전 이적 조건.”
“……!”
“첼시라는 거대한 빅클럽의 후광이 아닌, 이 작은 구단, 맨스필드라는 선택지를 포함할 겁니다.”
헤일러의 동공이 흔들렸다.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동시에 인정받았다는 희미한 기쁨까지 드러났다.
“물론 선수에게 지금 선택하란 건 아닙니다. 1년 더, 우리 팀에서 뛰고, 제 생각과 선수의 생각이 일치했을 때, 이 조건이 발동될 겁니다.”
“……네.”
“그러니 다음 시즌에도, 맨스필드 선수로서 잘 부탁합니다.”
헤일러의 눈빛이 반짝였다.
임대 선수의 한계.
결국 떠날 선수라는 정해진 결과. 이는 필드에서 뛰는 선수에게 무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선수는 무조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동기부여를 비롯한 마음가짐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니까.
책임감.
이 팀에 대한 책임감은 소속감에서 나온다.
나는 그런 임대 선수의 한계에, 약간의 안전장치를 걸어 놓은 셈이다.
랑데르는 임대 복귀.
헤일러는 임대 연장 및 완전 이적 조건 삽입.
그리고 마지막 임대생.
“하나 묻겠습니다. 첼시에서 뛰던 것이 즐거웠습니까, 여기가 즐거웠나요?”
리처드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음, 전 뭐든 즐거운데요!”
“힘들지 않습니까. 골키퍼라는 책임감이, 서드 키퍼가 아닌 주전 골키퍼에겐 존재할 텐데요.”
“그렇긴 한데…… 이 팀에선, 누군가 한 명의 책임으로 경기가 끝나지 않으니까요.”
“…….”
“아무튼, 좋다는 말이에요!”
선수들이 붙여 준 미스터 쿼카라는 별명처럼, 행복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임대 연장 안 합니다.”
“……어, 그래요?”
하지만 갑작스러운 말은 예상치 못했는지, 늘 웃는 얼굴에도 당혹스러운 기색이 흘렀다.
애써 웃어 보이는 입꼬리가 흔들릴 정도로.
됐다.
저 반응만으로도 우려는 없다.
리처드는 맨스필드에 남고 싶어 한다. 그것이면 내가 원하는 전부다.
“대신 정식 이적을 제안할 겁니다.”
“……!”
“알아요, 이적료 우리 구단 수준에선 상당히 비싸다는 것을요.”
그랬기에 임대 이적으로 데려왔다.
사실 지금 임대 연장은 좀 쉽지 않다. 리처드는 계약 기간이 첼시에서 2년이 남았고, 여기서 1년을 임대해 버린다면 첼시로서는 난처한 상황.
연장에 동의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지만 근래 돈이 좀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돈을,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데에 사용할 겁니다. 설령 비싸더라도요.”
“…….”
“첼시의 임대 선수 리처드가 아니라, 맨스필드의 핵심 골키퍼. 리처드로서 다음 시즌, 같이 뛰겠습니까?”
리처드는 웃었다.
늘 웃는 얼굴이기에 그저 익숙한 웃음.
하지만, 이번만큼은 더 뚜렷했고, 진한 미소였다.
“서핑하고, 선탠하고 올게요. 맨스필드로요.”
* * *
첼시 임대 선수들에 대한 입장 정리가 끝났으니 곧장 움직였다.
임대와 이적 제안 공문을 첼시로 보냈다.
헤일러의 완전 이적 조건은 116만 파운드(한화 21억 원)
리처드의 이적료는 355만 파운드(한화 64억 원)
첼시에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정말 통 큰 투자였다.
이젠 첼시의 답변만 기다리면 될 일.
하나 첼시의 답은 예상외였다.
이적료가 적다던가, 임대 연장은 어렵다던가, 더 협의할 조건이 있다던가-
같은 내용이 아닌.
―감독님이 직접 런던에 한번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온 연락이었다.
그것도, 기존에 통하던 첼시의 이적위원회나, 슈바이처 감독은 물론, 어떤 직책도 아닌.
―회장님께서 만나보고 싶다고 하시는군요.
첼시 구단주 비서의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