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04)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03화(204/266)
203. 하이 롤러(High Roller) (3)
“자네, 대체 언제까지 그 취미를 계속하려고 그려나?”
호주 태생의 사업가, 카이 블랙스랜드가 주위에서 자주 듣는 말이었다.
일흔에 이르는 고령.
동료 사업가들이 이제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한적한 곳에서 요트를 타거나 골프 같은 취미를 즐길 때.
“말이 취미지, 그게 어디 취미 생활인가? 축구팀 하나 운영한다는 거, 그거 기업 하나 일구는 거랑 뭐가 다른가?”
그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어디 작은 구단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었다.
첫 시작은 미국 보스턴부터였다.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팀을 인수했고, 성공적으로 운영하다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에 진출했다. 비록 우승컵은 없었지만 유럽에서도 연일 성공 가도였다.
스페인에서 1부 리그 구단을 인수해서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성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래도 블랙스랜드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흥? 취미라고? 이것이야말로 내 두 번째 사업 인생이야.”
블랙스랜드는 주위 반응에 콧방귀를 꼈다.
그는 타고난 사업가였다. 그리고 사업가는 때때로 큰 판에서 큰돈을 베팅하는 도박사기도 했다.
사업가와 도박사.
그 교집합만으로 이뤄진 듯한 사내가 바로 카이 블랙스랜드였다.
한번 부딪쳤으면, 기어코 쟁취해 내야만 갈증이 풀리는 남자다.
‘우승. 그것도 제대로 된 우승컵.’
솔직히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당장 변방 리그, 하부리그 구단 하나 인수해서 엄청난 자금을 투자한다면, 못 할 게 무언가. 트로피를 무자비하게 휩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했다간 여전히 같은 소리를 들을 거다.
늙은 부자가 제 취미 생활에 돈을 뿌려 댄다고.
남들이 노인의 괴짜 취미 정도로 치부했지만, 블랙스랜드는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결정을 내렸다.
‘지구에서 가장 위상 높은 리그.’
당시 십여 년간 리그컵만 두 번 들어 올린 첼시를 인수, 구단주로 부임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중소리그도, 아니 다른 4대 리그도 아닌 프리미어리그의 첼시.
단순히 ‘부자들의 취미’라고 보기 어려운 행보였다.
프리미어리그는 그저 취미로만 팀을 굴릴 수 있을 그런 규모가 아니었다. 소위 쩐의 전쟁. 당장 뉴캐슬과 맨시티는 중동 왕가의 자금이지 않은가.
그때까지 승승장구하던 블랙스랜드는 처음으로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자금력? 소용없었다. 여기서는 그의 자금력으로 우승컵을 사겠다는 건 비웃음이나 살 법한 얘기였다. 블랙스랜드가 지갑을 꺼내면, 저 중동 왕가의 구단주들이 코웃음을 치고 헬기로 돈을 뿌려 댈 것이다.
무엇보다도 돈의 전쟁터나 다름없는 이 리그는, 역설적으로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월드 클래스 선수, 최고의 감독, 최고의 코치진, 최고의 시설……. 그 전부를 지원해도, 우승은 쉽지 않다―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전부 바꿔야 했다. 처음부터 모조리. 끝까지!
“이왕 하게 된 거, 새 역사를 쓰고 싶은데.”
블랙스랜드는 그런 소망을 품었다.
새로 온 구단주, 수년간 서서히 무너져 내린 과거의 영광을 가진 명문.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롭게.’
가슴이 끓어올랐다. 어려운 상황이라 인식하자, 이겨 내고 싶은 사업가의 기질이 타올랐다.
하나 상황은 좋지 못했다.
‘고여 버렸군.’
클럽 전체가 말이다.
선수단을 이르는 게 아니다 구단의 직원들, 조직들, 그들의 자세와 마음까지, 전부.
거대한 빅클럽인 만큼, 혁신이나 개혁을 하기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만한 클럽은 구단주라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엔 힘들었다.
‘당장 감독부터 말이지.’
자신이 구단으로 부임하기 전에 이미 계약까지 결정된 사항.
무르고 싶었지만, 프런트의 격렬한 반응에 돌이킬 수 없었다.
‘지금 슈바이처 감독, 확실히 엘리트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엘리트가 아니라, 미쳐 날뛰는, 그러면서도 실력도 확실한, 그런 생생한 친구여야 하는데.’
그런 블랙스랜드의 눈에 유진이 들어오는 건, 여러 운이 겹친 요소였다.
프리시즌 친선 경기.
그 경기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친선 경기에서 한번 비겼다고, 블랙스랜드가 유진에게 군침을 흘리게 됐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다만.
‘맨시티도, 맨유도, 아스날도, 토트넘도.’
하나같이 굵직한 빅클럽들이 모두 유진에 대한 보고서를 받을 정도였다는 것.
‘고작 친선 경기였을 뿐이야.’
그런데도 맨스필드와 그 감독에 대해서 진지하지는 않을지언정, 관심을 끌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신경이 쓰일 만한, 무언가가 유진에게서 느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여러 정보망으로 확인한 블랙스랜드는, 이후 유진이 리처드 영입과 제휴 구단을 체결하며, 그가 내밀었다는 조건들을 듣고 확신했다.
“이놈 봐라?”
앤서니를 홀랑 가져가 놓고, 그 앤서니를 미끼로 삼아서 제휴 구단을 체결하겠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우리 보드진은 다 혹해서 매달리고, 자신에게 요청안을 올렸다고?
“이게 감독이야, 아니면 사기꾼이야?”
단순한 흥미에서 시작된 관심은 유진에 대한 상세한 분석까지 곁들여졌다.
“파산 위기의 구단을 우승으로 이끌어…… 0.06%의 확률? 하? 거기에 팀 재정 정상화는 물론, 뭐, 유스 아카데미 해체 결정? 이런 미친놈이…….”
세간에서 괴짜라고, 젊을 적 사업할 때는 미친 캥거루라는 별명도 있던 블랙스랜드는 기함했다. 단순히 성적만이 대단했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으리라.
블랙스랜드는 그 내부에서 벌어졌던 한차례 폭풍의 흔적을 보고 전율했다. 유진의 개혁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팀을 다 부순 뒤에 개조하는 과정이었다. 그걸 개조라고 할 수 있을까. 바닥부터 새로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재건.’
150년 역사.
온갖 악습과 폐습,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이어져 온 관성.
그 위대한 물리 법칙조차 제 손으로 끊어 내버리는 단호한 결단과 행동력.
그것이 단지 시도에 그쳤다면, 개혁가는커녕, 철저한 실패자라고 낙인찍혀 축구계에서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런 위험성.
하이 리스크.
‘감독으로서 첫 데뷔에, 자신의 미래 인생까지 전부 걸었다. 이거야말로 진짜 하이 롤러.’
그리고 하이 리턴.
결과는 어땠는가.
전부를 걸었고, 모든 것을 얻었다.
“백투백 우승? 으하하하. 온갖 괴상한 것들 넘쳐나는 이 영국 축구에서도 본 적 없는 단어를 만들어 내?”
단순한 관심에서 시작했던 블랙스랜드는, 어느새 유진에게 흠뻑 빠졌다.
그건 인간적으로, 사업가의 기질로도, 모두 해당하는 말이었다.
“역사를, 쓰고 있어?”
비록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저 시골의 작은 구단이지만.
엄연히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남자다.
그 같은 사실을 깨달은 순간, 블랙스랜드의 두 눈이, 혈기 넘치던 젊은 사업가 시절 때보다 더욱더 불같이 타올랐다.
“딱, 그놈이다.”
언제였던가.
뉴잉글랜드를 인수한 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멕시코의 젊은 감독과 계약했을 때.
모두가 우려를 표할 때, 오로지 자신만이 그 남자의 가치를 알아보고 밀어붙였을 때.
그리고 현재는 능력을 인정받아, 저 무시무시한 맨시티의 사령탑이 된 주앙 로드리게스 감독.
“내가 찾는. 그런 놈.”
블랙스랜드는 작게나마 몸을 떨었다.
그놈이, 끝내 자신을 찾아왔다.
직접 자신을 찾아오라는 그 말에 담긴 저의를 알아듣고.
블랙스랜드는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 * *
“사업가들은 말이야. 어떤 순간을 알아.”
불같은 눈.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순간 드러나는 욕망.
유진은 똑바로 직시했다.
“그게 뭔 줄 아나?”
“모든 걸 걸어야 할 때가 찾아오곤 하죠.”
담담한 대답에 블랙스랜드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고령이라고 여기기엔 너무도 화통한 웃음이었다.
“이런 대답이 감독직 수행하는 사람에게 올진 몰랐지. 맞아. 바로 베팅의 순간이지.”
“…….”
“얼마면 되겠나.”
그가 툭 말을 던졌다.
잠깐의 침묵을, 참기 어렵다는 듯 그는 말을 덧붙였다.
“자네가 싸인만 하면, 오늘부터 첼시 감독은 슈바이처가 아니라 유진 피셔네.”
유진은 대답 없이 블랙스랜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또 블랙스랜드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아직 3부 리그의 2년 차에 불과한 초짜. 그런 그에게 구단주가 직접 빅클럽의 감독직을 제의하는데, 놀라지도, 그렇다고 불신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호수처럼 고요하게 담담한.
마치.
‘이 상황을 예견했다는 듯이?’
블랙스랜드는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치워 버렸다.
그 정도로 유진은 예상치 못할 정도로 담담한 반응이었고, 동시에 그 모습이야말로 블랙스랜드의 마음에 쏙 들었다.
“고약하시군요.”
“고약?”
“오면서 슈바이처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그래, 오늘 경질 통보를 했네.”
“그리고 같은 시각에 새로운 감독 후보를 불러냈다는 건,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요. 더구나 여러 임대 거래로 저와 슈바이처 감독님 사이가 꽤 호의적인 걸 고려하면…… 네, 고약하십니다.”
“허, 그게 그렇게 되나? 나야 런던 온 김에 한 번에 처리하려고 했지.”
경질당한 감독과 새로운 감독 후보를 마주치게 하는 것.
블랙스랜드 감독의 고약한 행동은 패를 까기 전에 기를 누르는 도박사의 행동이자, 사업가의 모습이었다.
카이 블랙스랜드는 유진을 원했다.
그래서 그를 얻기 위해 행동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은근한 압박감을 주어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하나 한편으로는 유진이 한없이 담담하기를 원했다. 압박감을 느껴 자신이 내민 손을 잡기를 원하면서도, 도도하게 그 손을 흘긋 쳐다보고 말기를 원하는 모순이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자신이 바라는 모습은 후자다. 어떤 압박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 개혁가.
그러나 그런 개혁가의 손을 잡기 위해선, 마음을 얻기 위해선, 내가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선 내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지독한 패러독스.
이런 난처한 상황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대범하게 행동하기를 바랐다.
자신의 같잖고 고약한 수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유진은 그랬다.
“뭐, 상관없었습니다. 다만 의외네요.”
이 모든 환경과 동선, 그리고 분위기까지. 자신이 주도하는 판 위에 올라선 유진은, 고요한 호수 같은 눈빛으로 담담히 말했다.
“슈바이처 감독님은 훌륭한 분이신 거로 아는데요.”
“암, 엘리트지. 전형적인 엘리트 축구인.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성적이라도 잘 내면 몰라. 2년 연속 유로파가 내 투자금에 합당하다 생각하는가?”
“…….”
“내가 부임하기 전에 이미 계약이 다 오간 내용이라 차마 무르기에 어려웠지만, 적어도 그는 완성된 팀의 리더일 순 있어도, 팀을 완성하기 위한 리더는 아닐세.”
“첼시는 훌륭한 구단입니다. 저력도 있고요. 슈바이처 감독의 지도력이라면 충분히 원하시는 걸 이루실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원하는 거 말인가?”
한참 웃던 블랙스랜드의 웃음이 멎는 순간.
그의 눈이 번뜩였다.
“내가 갖고 싶은 거 말이지, 애매한 순위의 첼시 따위가 아냐.”
“…….”
“새로운 시대.”
그 불꽃 같은 안광이 담담한 유진을 꿰뚫었다.
유진의 입술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