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06)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05화(206/266)
205. 축구라는 인생 (1)
오랜만에 찾아온 런던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릴리도 함께 왔다.
릴리는 여러 인수 희망자와 미팅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맨스필드보단 런던에서 이야기를 나누기가 편하니까.
때문에 저녁 식사를 내 본가에서 같이하는 것도, 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네? 네? 네? 왜요? 응, 왜요? 대체 왜?”
식사가 끝나고 가볍게 담화를 나누던 중 걸려 온 전화에 릴리의 눈이 점점 동그래졌다.
한쪽에서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시던 어머니가 걱정을 담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전화를 끊은 릴리는 한참 동안 멍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어머니가 불쑥 말했다.
“무슨 일이니, 얘. 안 좋은 전화야?”
“아, 아뇨. 오히려 좋은, 좋은 소식인데.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좋아서, 더 무섭달까요.”
그녀는 그리 말하곤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진.”
“응.”
“혹시, 첼시 관계자들 만나려고 런던 온 거야, 오늘? 쉬려고 온 게 아니고?”
“응.”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빤히 쳐다보자 릴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양팔을 살짝 펼치고 흔들었다.
“론 팀장한테 전화가 왓는데, 리처드 이적료를 절반만 받겠다네?”
“역시 첼시야. 빅클럽의 배포에 감격스러울 정도야.”
“나, 그, 이해가 안 돼. 우리가 사겠다는 금액보다, 파는 사람이 더 깎아서 팔겠다는 이유가 대체 뭐지. 혹시 총 들고 협박하고 왔니, 유진?”
답변은 내가 아니라 거실에서 들려온 어머니의 비명과 같은 외침이 대신했다.
“아-들!”
그 다급한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화들짝 놀랄 외침이라, 릴리도 나도 대화를 멈추고 황급히 거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거실에는 어머니뿐만 아니었다.
아버지도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세-”
“아들, 정말로, 첼시로 가는 거니?”
“네에?!”
내 대답보다 먼저 반응한 사람은 릴리였다.
그녀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첼시는 오늘 슈바이처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고 발표했으며…….
―슈바이처 감독은 첼시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듭 보이며 팬들의 인내심을 잃게 했고…….
―한편 첼시의 차기 감독 후보로는 의외의 인물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리그 투, 리그 원 백투백 우승이라는 업적을 기록한 맨스필드의 유진 피셔 감독이 카이 블랙스랜드 회장과 미팅했다는 소문이 자자…….
릴리의 목이 고장 난 인형처럼 끼긱, 거리면서 나에게 향했다.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니지? 설마, 너 데리고 간다고, 리처드 싸게 보내 주는, 뭐 그런 거, 아니지……?”
* * *
하여튼, 고약한 사람이라니까.
카이 블랙스랜드, 그 작자 얘기다.
“감독 선임 미팅인 줄도 몰랐어. 나도 거기서 슈바이처 감독이랑 맞닥뜨리고 직감했거든.”
“……경질한 감독이랑 다음 감독 후보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불렀다고? 경질과 선임을 동시에?”
릴리의 입이 쩍 벌어졌다.
“고약하지?”
“……엄청.”
슈바이처 감독은 담담히 인사해 오는 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그나마 그가 인격자라서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도, 도리어 구단주가 어떤 사람인지 조언을 해 준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기를 쫓아내고 앉힐 새로운, 젊은 감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호텔 앞에서 맞닥뜨렸을 때?
다만 블랙스랜드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나는, 도리어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내 기억과 다르지 않다면, 그만큼 대화를 나누는 데 변수가 없다는 뜻이었으니.
“뭐,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거야. 그냥, 그 사람에겐 노인네의 심술 맞은 장난인데, 당하는 처지에서 고약하기 짝이 없어서 그런 거지.”
지금 저 뉴스도 그렇다.
확실한 비밀이 보장되는, 남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런던 최고의 호텔 스위트 룸에서 만났다. 감독 선임 전까진, 언론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랐다는 의도였으리라.
하나 내가 확실하게 선을 긋자.
“유력 후보로 나오는 거, 그 구단주가 흘린 소스겠지?”
“당연하지.”
“대체 왜……? 거절했다면서?”
나는 가볍게 손에 든 핸드폰을 흔들었다.
손난로라도 된 것처럼 뜨거웠다.
검은 화면 위로 주르륵,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고생 좀 해 보라 이거지.”
“와…… 얼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생겼을지 느낌이 온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
“그래도 참, 리처드 이적료는 깎아 주긴 하네.”
내가 아는 그라면.
내 눈빛을 보고, 내 마음을 사고 싶으면 프러포즈하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깨달았으리라.
“……왜 갑자기 그렇게 쳐다봐?”
“아냐. 아무튼 내 휴대폰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릴리가 작은 주먹을 눈 옆에 갖다 놓고 우는 제스처를 취했다.
“일단 유진 감독과 계속 다음 시즌 동행할 거라는 내용 발표할게. 으으. 나는 휴대폰을 꺼 놓을 수가 없는데!”
그간 믹스트존에서 만난 기자들이나 다른 감독과 코치들에게 연락이 쏟아졌다.
아니 그러겠는가.
“첼시가 요즘 성적 안 좋아도, 빅클럽은, 빅클럽이구나아.”
흘끔거리는 릴리의 시선이 여러모로 낯설다.
“뭐야, 그 눈빛.”
“으응?”
“왜, 이제야 내가 얼마나 헐값에 맨스필드에서 고생하고 있는지 알겠어?”
“그, 그건!”
릴리가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나는 웃었다.
“괜찮아. 어차피 맨스필드 계약 조건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응?”
나는 릴리가 고개를 갸웃하고, 좀 더 과거를 떠올리기 전에 말했다.
“재계약, 진행하자.”
“……!”
“주급 올려 주는 거야 당연하겠지. 그리고 그 외 특별한 조건은, 여전히 첫 계약 그대로.”
릴리의 미소가 반짝였다.
* * *
―안녕하세요, 감독님. 크리스탈 팰리스의 코스마 콘티 단장입니다. 감독님과 만나서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하하, 예, 맞습니다. 감독님과 함께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아, 아직 기사 못 보셨군요.”
―네? 아, 첼시 차기 선임 유력 후보라는 뉴스 말입니까? 그거 봤습니다. 보고 저도 다급하게 움직이는 거죠. 첼시가 빅클럽이지만 우리 크리스탈 팰리스도 런던 소재의 프리미어리그 구단이고……
“기사 방금 올라왔네요. 확인해 보시죠.”
―그, 네? 아니, 어? 잠깐……
[맨스필드 타운 FC, 유진 감독과 3년 더 함께! 재계약 확정!] [맨스필드의 유진 감독은 구단과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첼시의 차기 감독으로 선임이 유력하다는 루머를 일축……]* * *
릴리는 지금은 구단주로서 정체성이 더 크지만, 어쨌든 근본은 사업가다.
“제 사비로라도 내줄 거니까, 걱정 마세요.”
전화 건너편.
운영팀장은 릴리의 단호한 목소리에 잠깐 말을 잃은 듯했다.
그 침묵의 공백 사이로, 릴리의 선명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조금의 반론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 강렬한 목소리.
그녀는 몰랐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유진과 비슷한 어조와 호흡이었다.
“단순 루머가 아닌, 첼시 구단주가 스위트룸으로 유진을 불러서 대화를 나눴어요. 첼시 감독의 연봉이 얼마인지는 아시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전화 건너편의 운영팀장은 더 반대하지 않았다.
사실 그도 애당초 약간의 걱정이었을 뿐, 이 사안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프런트에서 최연장자이면서도 경력자인 운영팀장은 가끔 팀 전체가 경험이 부족해 과도하게 폭주하려는 순간 부드럽게 제동을 거는 현명한 조언자였으니까.
[맨스필드 유진 감독, 챔피언십 감독들 중에 최상위권 연봉] [가난한 구단, 맨스필드. 감독 재계약에 화끈한 베팅!] [서포터즈 조합, 우리들이 조합금을 더 기부해서라도, 내내 연봉에서 8할을 떼서라도 주겠다! 재계약 지지.]운영팀장의 우려가 무엇인지 릴리는 잘 알았다.
최상위 연봉.
챔피언십부턴 물이 다르다. 여기선 프리미어리그급 감독이 적어도 서너 명은 존재한다.
퇴물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한때 프리미어리그에서 명성이 드높았던 감독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연봉은 간단한 숫자다.
그리고 모두에게 공개가 된다.
정확한 수치까진 아니어도, 대략의 연봉은 전부.
“유진이 그 정도 급이 안되는 것도 아니고.”
첼시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유진은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금액을 받았으리라.
물론 유진이 그 정도 연봉을 원하진 않았다.
당장 런던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한 유진의 이 본가도, 릴리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집값임을 잘 알지 않는가. 유진 역시 그런 유복한 가정 덕분인지 돈에 연연하는 모습은 보여 주지 않았고.
그러니까.
“내가 적은 연봉을 준다 해도, 받아들였겠지. 그런 애니까.”
사업가적인 측면에서 보면, 적은 금액을 투자해서 큰 효율을 낼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최고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릴리는, 다소 구단에 무리, 아니 사비를 털어서라도 높은 연봉을 책정했다.
누군가는 멍청한 짓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지만, 릴리의 마음엔 조금의 후회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단단했다.
어린 나이에 가업을 이어받아 노련한 베테랑들이 근무하는 양조장을 장악, 운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고난 사업가의 자질 덕분이다. 그녀는 사소한 눈앞의 이윤보다 먼 곳의 더 큰 이득을 직시할 줄 알았다.
확실한 점은 어떤 이유든, 술에 취해서 선수들에게 떠들었다던, 그 낭만적인 로맨티스트 같은 발언이 진심이든, 아니든.
‘유진의 호의’가 맨스필드를 살렸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그래, 호의 말이다.
“호의는 절대 당연한 게 아니니까.”
친구 사이니까, 좋은 관계니까, 이 정도는 돈 없어도, 충분히 호의로 해 줄 수 있는 거니까-
이따위 마음이 어느 순간 당연해져 버린다면, 고마워도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부탁을 해도 미안해하지 않으며, 결국 사이는 갈라진다.
단순히 미래를 본, 유진에 대한 투자만은 아닌 셈이다.
그 답 없을 정도로, 그저 헌신적이기만 하는(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유진의 호의를 지키기 위해선, 릴리는 최소한의 대우를 해 줘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사실 유진에게 받은 게 어디, 기적적인 구단의 변모뿐이겠는가.
“끄응. 그놈이나, 릴리 너나, 이 거대 로펌을 어디 후미진 곳의 탐정사무소로 아는 것 같단 말이지.”
“에이, 아니에요오. 가장 믿음직한 어른이니까요!”
릴리는 뚱한 얼굴의 중년인을 보며 싹싹하게 웃었다.
살가운 애교에 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씰룩였다.
한국인인 어머니의 외모를 닮아 아시안계가 뚜렷한 유진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영국 백인인지라 겉보기엔 닮은 얼굴은 아니다.
하지만 유진의 얼굴을 늘 꼼꼼히 집중해서 뜯어보는 릴리는 알았다. 저 입꼬리. 유진과 똑같다고.
“최고 로펌의 최고 변호사라고 하면 다들 피셔 가(家)를 거론하지. 나는 홈즈가 아니란다.”
말은 그리하면서도 그는 두툼한 서류를 내밀었다.
릴리의 눈이 반짝였다.
“좀 알아보니, 대개 다 여러 문제를 겪고 있다. 근데 뭐, 이런 것들은 어지간한 기업들은 다 안고 있는 문제긴 해서, 딱히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래요?”
“다만, 여기. 유클리드 그룹 말이다. 스페인계 금융 회사.”
“네.”
릴리는 눈빛이 또렷해지는 걸 느꼈다. 가장 먼저 구단 인수를 타전해 온 그룹.
그리고 누구보다 인수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당장 내일 저녁에 런던에서 미팅이 잡혀있는 상대고.
유진 아버지, 리암 피셔가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 저거. 유진의 미소랑 똑같은데. 담담한 듯하면서도, 다 알겠다는-
“여기, 문제 많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