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09)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08화(209/266)
208. 축구라는 인생 (4)
포레스트 그린의 팬들은 대개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다.
“억울해!”
다만 그 소릴 듣는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억울하긴 뭐가?”
“뭐, 심판 판정이라도 나쁘게 받았나?”
“그것도 아니지. 쟤들 결국 플레이오프 거쳐서 승격했잖아?”
“억울한 건 우리지! 쟤들만 아니었으면 승격은 우리였다고!”
남들이 보기엔 어처구니없는 그들만의 불만이었다.
대체 뭐가 억울한가.
리그 투에서 다이렉트 승격.
리그 원에서 플레이오프 승격.
물론 실력이지만, 때때로 헐뜯고 싶은 사람은 다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준 것 아니냐고 할 정도였고, 실제로 포레스트 팬들도 일부 동감하는 내용이었다. 애당초 승격은 운도 따라줘야 하니까.
다만 바로 그 부분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점이 포레스트의 불만 이유였다.
“우리도, 대단하다고!”
“2년 연속 승격인데, 왜 우리 기사는 안 떠?”
“왜, 왜 다 맨스필드만 찾는 건데!”
그랬다.
그들은 소외당하는 기분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2년 연속 승격은 소수의 팀만 이뤄 냈던 대단한 성적이다.
아무리 하부리그라지만, 아니, 도리어 하부리그라서 더욱 빛나는 업적이다.
“하부리그는 지옥이 아니야, 그냥 진창이야! 늪이라고, 늪! 한번 빠지면 못 빠져나와! 맨유도 4부리그에 처박히면 승격 못 할걸?”
조금은 우스운 예시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가 아예 없진 않았다.
늪이라는 표현대로 이상할 정도로 계속해서 가라앉고, 쉽게 올라오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하부리그다. 그런 하부리그를 연속으로 깨부수면서 올라갔다는 사실.
포레스트 그린은 분명 대단한 업적을 세웠지만-
[맨스필드, 리그 원 올해의 팀 선정!] [영국 축구 역사상 처음, 백 투 백 우승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맨스필드 시즌 리뷰] [역사를 만들어 낸 맨스필드, 그들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무수히 쏟아지는 기사 어디에도, 포레스트의 이름을 찾기 어려웠다.
사실 우리는 승격했고, 우리끼리 즐겁고, 만족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야 있겠지만, 어디 세상이 그리 속 편하게 살 수 있던가.
인정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숨겨야 할 정도로, 부끄럽고 저열한 감정은 아니다.
도리어 드러내고,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아니 그런가. 그만한 위업인데. 하지만 이렇게 인정받을 시즌을 보내도, 막상 인정받지 못한다면, 팬들의 마음이 어떠할까.
“억울해!”
하물며 스포트라이트를 뺏어가는 맨스필드.
“오스카도, 스탠리도 우리 거였는데!”
“우우-!”
“이 정도면 포레스트한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30골을 넘게 넣어 놓고도 득점왕을 차지 못한 해리 오스카.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브랜들리 스탠리.
모두 포레스트 선수였지 않은가.
하나 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관심과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다만, 팬들의 예상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유클리드 그룹, 맨스필드 인수에서 포레스트 그린 인수로 선회?] [빚더미 맨스필드에 부담 느꼈나, 유클리드 2년 연속 승격, 포레스트 그린 인수 협상 돌입] [포레스트 그린 서포터즈, ‘추이 지켜보는 중’ 조심스러운 반응]우선 구단 인수가 급물살을 탔다.
기존 포레스트 구단주는 팬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다. 하부리그에 처박혀도 투자금을 도리어 늘렸고, 2년 연속 승격엔 그런 구단주의 영향이 컸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하부리그는 좋은 성적을 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은 적자 행진이란 점이다. 하필이면 그때, 구단주의 개인 사업도 여러 불운이 겹쳐서 흔들리던 터. 결국 구단 인수는 빠르게 진행됐다.
사실 이건 애매하긴 했다. 좋아하기에도, 또 그렇다고 무작정 싫어하기에도.
좋아하기엔 새로운 구단주로 바뀌는 영향에 대한 걱정과 우려.
싫어하기에는 맨스필드 대신 포레스트가 인수 대상으로 꼽혔다는 그런 은근한 인정.
하지만 다음 사건은 서포터즈에게 운석이 떨어진 꼴이었다.
[크리스탈 팰리스, 포레스트의 거스 밀러 감독, 일명 ‘불독’ 전격 선임!] [거스 밀러 감독은 포레스트 그린을 이끌고 리그 투 2위, 리그 원 플레이오프 승격을 이뤄낸 하부리그의 명장으로 손꼽히며……] [익명의 관계자, 크리스탈 팰리스의 본래 감독 후보는 유진 피셔였다고 밝혀] [불독 감독 떠나보낸 횡액을 맞은 포레스트 그린 서포터즈, 망연자실]인정받았다.
인정이 아니고서야, 프리미어리그의 런던 팀, 크리스탈 팰리스가 감독을 데려가겠는가.
그거야말로 확실한 인정이었으나, 포레스트의 억울한 마음은 더욱더 커졌다.
“억울해-!”
“왜 감독을 데려가는 거냐고!”
“우리는 이제 뭐 어쩌지……?”
비단 팬들만의 마음은 아니었다.
“……어쩌지.”
포레스트 그린의 단장, 데일 스틸 단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구단주의 지시를 떠올리고 그저 넋을 놓고 있었다.
* * *
새로운 구단주는 젊은 사람이었다.
그 점에서부터 데일 스틸 단장은 희미한 불길함을 느꼈다.
물론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되지만, 사업과 구단 운영에 있어서 젊다는 것은 대개 장점보단 약점이 될 때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면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불길함이 정확하단 사실을 깨닫고 쓸데없이 예민한 감각을 저주하고 싶어졌다.
“이 선수들은 주급이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그만큼 대단한 활약을 해 오는 선수라서…….”
“아니, 활약한다고 주급이 비싸기만 하면, 업무를 제대로 못 하는 거 아니에요?”
“예?”
“좋은 선수도 싸게 계약해야, 그거야말로 단장이 일 잘하는 거 아닌가?”
“…….”
그 순간 깨달았다.
‘낙하산.’
이 구단주는 기업의 오너도 아니었다. 이사 직함을 달고 있기야 하지만, 분명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구석이 존재했다.
“아니, 원가 절감이 괜히 있는 말입니까. 좋은 선수를 말로 설득하든, 어떻게 몰아붙이든, 최대한 저렴하게 계약해야 구단이 적자를 면하죠. 내가 좀 봤는데, 재정 상태가 영 엉망이야.”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축구 구단은 원래 적자가 일상이다.
특히나 매 시즌 승격과 더 높은 곳을 향해야만 하는 하부리그 구단은 맞닥뜨려야 하는 운명이다.
“재정을 정상화해야겠어요.”
“…….”
정상화라니.
지금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 작자?
대체 축구 클럽 운영이 어떤 건지 알고 오기라도 한 걸까? 당장 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불독, 그 사람이 왜 제의 왔다고 홀랑 가버렸나 했더니. 별명답게 냄새도 잘 맡는 거였어.’
어째서 왜 도망간다는 표현을 썼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나만 두고 가 버렸다 이거지.’
새삼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래, 뭐, 단장 경력 20년. 이런 구단주 유형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다.
사실 축구에 관심 많고 열의 있는 구단주가 도리어 적은 편이지, 이런 케이스는 꽤 많다. 그래, 투자만 잘해 준다면야, 말은 저러지만 이적료 지원만 잘해 준다면야…….
“일단 재계약할 선수는 명단 드릴게요.”
“네?”
“비싼 선수는 팔아넘겨야죠. 그래야 재정이 정상화될 거 아닙니까?”
“아…….”
하지만 선수단 운영에 간섭하겠다는 뜻을 신임 구단주가 드러낸 순간.
데일 스틸은 아예 말을 잃어버렸다.
그것을 수긍이라고 받아들이기라도 한 걸까. 신임 구단주는 의욕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감독도 새로 골라야죠? 난 그 원래 감독, 있었으면 했는데, 나랑 전화까지 해 놓곤 홀랑 가 버리더라고? 참나.”
“…….”
그 전화 받고 바로 결심하고 날아가 버린 거였군.
그의 선택이 처음에는 정말 미웠지만, 이젠 이해가 됐다.
“그래서 말인데, 유진 피셔 감독, 어떤가요?”
“……네?”
순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데일 스틸은 얼빠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구단주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 핫한 친구 말이에요. 나이도 젊고. 나도 젊은 감독이랑 같이 일하면 힘도 날 거 같고. 일도 잘하고. 선수들도 싼값에 잘 후려치면서 다루고-”
“그, 유진 감독은 최근 구단과 재계약을 해서-”
“알아요, 알아. 근데 그게 못 빼 온다는 말은 아니잖아?”
“…….”
데일 스틸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눈앞이 막막했다.
“그, 설령 가능해도 위약금부터 해서 엄청난-”
“괜찮아요. 괜찮아. 그 정돈 감당해야지. 듣자 하니 이전에 선수 거래도 한 적도 있고 해서, 서로 연락도 하고 지낸다면서요? 한번 만나 봐요.”
아니, 구단 재정 정상화를 방금 운운해 놓고, 또 무슨 엄청난 위약금을 감수한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데일 스틸 단장은 입을 오물거리다, 이내 툭 고개를 떨어뜨렸다.
“……일단, 만나보겠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파트너가 떠나간 이후.
데일 스틸은 정말로 힘들었다.
* * *
“여긴, 여전하군.”
카페 창밖을 바라보면서 데일 스틸은 가벼운 감상을 내뱉었다.
시즌이 끝나고, 이제 곧 이적 시장이 열리는 시기가 됐건만.
여긴 아직도 우승의 기쁨에 젖어 있었다.
그게 피부로 전해질 정도로. 온 동네가 팀을 사랑하고, 그 팀을 이끈 유진을 한없이 좋아하는 그 분위기가 온전히.
‘이런 팀의 감독을, 대체 어떻게 데려오라는 거야?’
첼시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루머도 듣지 못한 건가.
이건 친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데일 스틸은 이번 일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알았다. 하나 뭐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터. 그는 그냥 이 기회에 유진을 만나고 싶었다.
‘환기 좀 할 겸 말이야.’
원래 지금쯤이면.
―아, 단장, 이 선수 사달라고, 사 줘, 사 줘, 사 줘!
같은 소리를 해대며 바닥에 드러누운 불독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어야 할 터.
“…….”
새삼 그가 엎는 빈자리에 외로움을 느끼며 유진을 기다렸다.
유진이 도착했다는 사실은, 굳이 창밖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위가 부산스러워지고 술렁이는가 하더니, 유진을 발견한 사람들이 마치 비틀즈라도 만난 것처럼 소리치며 환호했기 때문이다.
여러 팬의 공세에 시달리며 걸어오는 유진을 보며, 데일 스틸은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분명 상대 팀의 사람이고, 번번이 협상장에서 자신을 골탕 먹였던 작자지만.
어쩐지 밉지만은 않은 상대.
그래, 솔직히 말해서 데일 스틸도 신임 구단주의 황당한 요구에 귀가 솔깃했다.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불독의 저 빈자리를, 유진이 맡아 준다면…….
그렇다면, 시즌이 재밌지 않을까- 같은 감상.
그 유진의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찍 오셨네요. 단장님.”
“시간이 남아서요.”
“포레스트 소식은 들었습니다.”
“하하, 예. 여러모로 흥미롭죠?”
“네. 불독 감독님이 전화로 나는 먼저 프리미어리그에 가니까, 내가 이긴 거라는 소릴 듣는 것만 빼면요.”
“참, 그 양반, 원래 그런 사람이니 이해해 줘요.”
“압니다, 알아요. 그래서 그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못 했습니다.”
순간 유진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묘한 화법이었다.
담담히 안부를 전하며 신변잡기를 하는가 하더니, 훅 분위기가 변했다.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은 그 둘만이 공간에서 따로 분리된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 순간, 데일 스틸은 깨달았다.
왜 선수들이 유진의 제안을 받고 다들 하나같이 이적을 해 버리는지.
“단장님, 저한테 기회가 왔습니다.”
“네?”
“정말 바랐던 기회가요. 물론 그 기회가 아닐지라도, 나는 억지로라도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지만, 그러진 않았습니다.”
“갑자기 무슨?”
그리 반문하면서도, 데일 스틸은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귀에 선하게 들리는 듯했다.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격류, 온기가 떠오르는 얼굴까지.
“스탠리, 오스카도 뺏어갔는데, 이젠 친구마저 뺏어 갈 거냐고 방방 뛰는 불독의 이빨이 무서웠거든요.”
그리 말하는 유진은 평소보다도 더 크게 미소 지었고, 두눈은 별처럼 반짝였다.
고요한 호수에 비친 별처럼, 반짝이는 그 눈을 보는 순간.
“단장님.”
그리고 그의 입에서 자신을 부르는 말을 듣는 순간.
“맨스필드의 단장이 되어주시겠습니까?”
그 선수들은, 하나같이 이 경험을 느꼈으리라.
유진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강렬한 직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