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1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14화(215/266)
214. 선수의 마음 (1)
지난 시즌 후반기.
그리고 지금 프리시즌 친선전.
이어지는 흐름에서 대두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코칭스태프 모두 일치한 의견을 내보였다.
“대니 스콧이 이젠…….”
막스가 안쓰러운 표정을 짓다가, 두 손으로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감쌌다.
“힘들죠.”
나는 그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끝맺었다.
훈련장이든, 친선전의 필드든.
대니 스콧은.
“명백히 1인 몫을 하지 못합니다.”
그 말에 부정이라도 하는 것일까.
뻐엉-!
친선전 경기. 전반 11분, 대니 스콧의 패스가 단 한 번에 페널티 박스로 연결됐다.
그 사이에 여섯 명의 선수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수비를 허물어뜨리는 킬패스였다. 앤서니 로우는 가볍게 골문 구석을 정확히 노려 찼고, 득점에 성공했다.
알롭 코치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1인 몫은, 충분히…….”
“아뇨. 아시잖습니까. 대니 스콧,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요.”
“하지만 그건 감독님이 그렇게 지시를-”
“맞습니다. 제 지시입니다. 움직이지 말라고. 움직이면, 20분은커녕, 10분도 못 뛸 테니까요.”
대니 스콧의 패스만큼은 나이를 먹어도, 체력이 떨어져도, 반응 속도가 떨어졌다고 한들.
아름다웠다.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함, 그 자체였다. 하나 어쩌겠는가. 대니 스콧은 20분 이상 뛰기 힘들어했다. 물론 방법이 없진 않다.
“저번 시즌처럼 다른 선수들이 희생해 주면 불가하진 않습니다.”
팬들이 우스갯소리처럼 붙였던 대니 스콧의 맹견들이란 별명.
쓰리 톰을 비롯해 미드필더 라인부터 대니 스콧 몫만큼 더 뛰고 압박하면서 그를 보호하는 플레이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대니 스콧은 번뜩이며 상대를 번번이 허물었다. 압박도, 견제도 받지 않는 대니 스콧은 필드를 한눈에 담은 것처럼 어디든 완벽한 패스를 전달했다.
20경기가 넘었던 무패행진은 그 발끝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후반기, 대니 스콧은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였다. 몇 번의 패배와 무승부가 이어졌고, 랑데르가 임대 이적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팀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런 식으로 못 할 건 없습니다. 프리시즌 동안 체력을 철저하게 보충한다면, 시즌 초반은 꽤 쌩쌩할 테니까요.”
미드필더 톰 브룩스는 여전히 체력적으로 왕성했고, 투지가 넘쳤다.
영입생 간지뉴 역시 회귀 전 미래에선, 은골로 캉테의 재림이라고 불렸던 선수인 만큼 재능이 넘치고.
거기에 어느 포지션이든 뛸 수 있는 영입생 테셰이라는 그래도 미드필더 자리를 가장 많이 뛰어본 만큼, 대니 스콧의 맹견들을 새롭게 재현하는 게 어렵진 않다. 꽤 효과도 있을 것이다.
“정정하죠. 정확히는 우리가 활약할 무대가 리그 원이었다면 말입니다.”
투웅!
지금 친선전 상대는 같은 챔피언십의 왓포드였다. 2년 전만 해도 프리미어리그에서 싸웠던 왓포드는 강등으로 많은 주전급 선수가 떠나도 여전히 막강했다.
그들은 짧은 패스로 중원을 장악하더니, 순간적인 압박으로 단숨에 공간을 허물고 슈팅까지 연결되는 찬스를 만들어 냈다.
리처드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영락없는 실점 상황.
나는 코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보셨듯이요.”
“…….”
“다른 선수들이 대니 스콧의 몫만큼 더 뛰고 더 활동량을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개개인의 몫을 하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치는 상대들이 즐비하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대니 스콧의 효용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분명 강력한 패스를 할 줄 안다.
그 패스는 상대의 허를 찌른다. 다만.
“주전은 이제 무리라는 겁니다.”
비단 대니 스콧뿐일까.
젠킨슨은 주장 완장도 내려놓고 스스로 물러섰으며, 해리 오스카는 날이 갈수록 앤서니를 더 다그치는 데 힘을 썼다. 본인의 기량이 떨어짐을 인식하니, 앤서니를 더 대단한 선수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뭔가, 울적하네.”
막스가 중얼거렸다.
맨스필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보냈던, 노장들이 서서히 물러나야 하는 순간이 왔으니까. 물론 그들은 여전히 필드, 그리고 벤치, 맨스필드에 있을 것이다.
동시에 낭만과 이상이 아닌, 현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대니 스콧의 자리, 채워야 합니다.”
이번 시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 * *
챔피언십 우승도 조기 우승이었지만, 사실 다이렉트 승격 자체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서 아예 확정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알롭, 막스와 챔피언십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
여전히 다른 두 명의 성향 때문에 여러 의견이 충돌했지만, 단 하나만큼은 나를 포함해 일치했으니.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해. 정확히는 해리 오스카, 젠킨슨, 그리고 대니 스콧.”
서서히 팀에 녹아들고, 팀의 분위기에 젖어 들며, 알게 모르게 프로의식이 장착되어 가고 있는 앤서니 로우.
순수한 수비적 역량만 따지자면 젠킨슨 이상의 갈랑의 영입에도 성공.
하지만 대니 스콧의 대체자는-
“테셰이라는 결이 다른 선수죠. 여러 포지션 소화하고, 강하고, 단단하고, 창의성보단 성실성으로 승부하는 선수고.”
“간지뉴 이 선수도 창의적인 선수는 아니잖아?”
“그러면 다른 선수를 감독님이 고려하고 있다는 건데-”
코치들의 의문에 나는 답했다.
“대니 스콧은 다시 말하지만, 우리 팀에서는 영입할 수 없던 수준이 분명합니다. 그의 패스 실력과 경기장 파악 능력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상위였을 테니까요.”
“…….”
“즉, 그 말은, 대니 스콧을 대체하고자 하면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창의성 넘치는 플레이메이커가 필요하단 뜻입니다.”
맨스필드는 챔피언십으로 승격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프리미어리그 급 선수를 쉽게 영입할 수 있다는 자격증이 발급됐단 소린 아니다. 대니 스콧이 늙은 나이와 은퇴한 선수였단 치명적인 리스크를 가졌기에 우리가 영입할 수 있었듯이.
아무리 챔피언십이라도 모든 면에서 뛰어난 대니 스콧을 영입하겠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주거나, 그 이상의 비전을 제시해야만 했다.
아니, 그 전에.
“매물 중에 그런 선수들이…….”
현대 축구에 이를수록, 무수한 과거의 축구 스타일이 사라지곤 한다.
전형적인 10번.
전방 플레이메이커 역시 그렇다. 없는 건 아니지만, 그 풀이 넓진 않다고 할까.
그렇다고 급격하게 팀의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긴 쉽지 않다.
2년간 코치도, 선수들도 팀에 이식된 그 특유의 스타일은, 중심은 유지하되 여러 변주를 두는 쪽으로 발전해야 하니까.
“이적 시장 매물 중엔 없습니다. 하지만, 찾아야죠. 아니, 찾았습니다.”
“네?”
“오라녜(Oranje), 오렌지 군단의 10번. 티모 코르넬리스입니다.”
“……!”
“네덜란드, 국가대표?”
“티모 코르넬리스면, 그 페예노르트의 핵심…….”
“국대에서도 주전급인, 지금 네덜란드 저번 월드컵에서 4강 갔다고. 4강! 저번 유로에서는 준우승팀이고…….”
제방이 터져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충격과 부정이 휘몰아쳤다.
하나 의외로 장내의 혼란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제 입으로 말도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그게 말이 되냐-라고 소리치던 두 코치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이 레퍼토리 여러 번 하는 것도 좀 그러네. 영입 방법이 있으니까, 말 꺼낸 거지?”
막스가 실소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예. 우리에게 새로운 단장이 오니까요.”
“……?”
“그 단장이, 저 선수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영국으로 데리고 온 단장이거든요.”
* * *
“그러니까, 이러려고 나를 스카웃 한 겁니까, 감독님?”
“어, 선수 영입과 계약 문제는, 단장의 업무지 않습니까?”
데일 스틸 단장은 헛웃음을 켜며 화면에 띄워진 선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 친구도 나이를 좀 먹었군. 수염도 안 났던 그 하얀 얼굴이 선한데 말이야.”
“단장님이 저 선수의 첫 해외 진출을 끌어내셨습니다. 가장 먼저 발굴하고, 가장 먼저 그 재능을 알아보고요. 아직 대단한 선수라고 알려지지 않았을 때 말이죠.”
“그건 대체 어떻게 알았어요? 나 지금 좀 무서워지려고 합니다.”
“예. 뭐 하다 보니…….”
유진이 가볍게 말을 흘리자, 데일 스틸은 후, 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저 선수를 다시 영입해 오라? 네덜란드 국가대표 미드필더. 월드컵 4강의 주역, 유로 준우승의 핵심 멤버를?”
“물론입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요, 주어지는 이적료는?”
“1천만 유로(150억 원가량), 쯤 될 겁니다.”
“……최근 네덜란드의 골든보이가 1억 유로에 첼시 간 건 아시지 않나요. 듣기로 감독님이 거기 개입하셨다고.”
“네. 맞습니다.”
“아니,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 아무리 나이가 32살이라 해도, 1천만 유로로 살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에요!”
“조건을 더 추가해 보죠.”
유진은 종이에다가 펜으로 끄적였다.
“12개월 후 한 2천만 유로 추가 지급, 프리미어리그 승격 시 또 얼마- 대충 그렇게 몸값 채우면 됩니다.”
“……승격 이후 자금이 들어오니까?”
“네.”
“……그거, 빚 돌려막는 거랑 비슷해 보이는데요.”
유진이 씩 웃었다.
“들켰네요.”
“…….”
데일 스틸은 저 희미한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이거 참. 승격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신감은 분명 위험한 건데, 아, 또 그게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닌 것 같고…….”
“우선, 가능하다면 그런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티모 코르넬리스의 몸값을 맞출 겁니다. 다만, 그의 이적료가 그렇게까진 비싸진 않을 거예요.”
“……?”
“첫째, 그의 페예노르트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 남았습니다.”
“재계약하지 않을까요? 페예노르트 핵심인데?”
“예. 그렇지만 아직까지 재계약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말은, 재계약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거겠죠. 가령 선수가 재계약을 원치 않다거나-”
순간 들어나 보자는 느낌으로 비스듬히 등받이게 기댔던 데일 스틸의 눈이 빛났다.
유진이 저런 식으로 운을 띄웠다면, 진짜 재계약에 문제가 있단 의미다.
특히 선수가 원하지 않는다는 추정.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측의 영역이지만, 유진이 하는 거라면 다르다. 유진은, 선수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영입해 내는 데 귀신같은 솜씨를 보여 왔으니까.
“재계약을, 선수가 원하지 않는다?”
“티모 코르넬리스는 의외로 축구 팬들이 많이 모릅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10번인데도요. 그 이유는.”
“네덜란드 리그에서만 활약하니까.”
“맞습니다. 아, 물론 네덜란드 리그도 훌륭한 리그죠. 아약스, 페예노르트……챔피언스리그에서 매번 좋은 활약을 펼치며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해 내지만…… 리그 비하는 아닙니다. 4대 리그에 비하면, 분명히 변방이죠.”
“…….”
“그럼, 이유를 보죠. 왜 네덜란드 리그에서만 뛰었는가.”
“……실패했으니까.”
데일 스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첫 해외 무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선 먹튀 논란에 시달리며 방출당했습니다. 두 시즌 동안 28경기 1어시스트에 그쳐서요.”
“…….”
“이후 독일, 프랑스, 스페인- 가리지 않았지만.”
데일 스틸이 한숨을 쉬며 끼어들었다.
“적응 실패. 맞아요. 완벽히 실패했어요. 프랑스에서는 나름 좀 잘하고,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들었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었고…… 네덜란드로 돌아갔죠.”
“네. 그렇게, 지금까지 네덜란드에 있죠.”
그쯤 말하자 데일 스틸은 유진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확실히 알았다.
“지금 선수는 네덜란드에 남아 재계약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해외 진출을 원한다…….”
“거기에 여러 실패를 겪었던 기억이 있는 최상위 리그는 아니고, 그의 실력이라면 아무리 대충 뛰어도 활약할 수밖에 없는, 조금 낮은 레벨의 리그라면 부담이 덜할 테고요.”
“…….”
“아니, 알 겁니다. 네덜란드에서 그는 인정받는 선수지만, 해외 적응은 하지 못하는 선수. 그렇게 인식되어 있다는걸요. 즉,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이뤄내려면.”
“일단 해외로 나가서, 약팀이든, 하위 팀이든, 거기서 적응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얘기고요.”
“선수는 말입니다. 특히 전성기에 이른 선수는요. 자신의 실패를, 설욕하고 싶어 하거든요.”
유진이 그리 말을 마치자, 데일 스틸은 참아 왔던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유진을 바라봤다.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의지를 품은 선수라면, 때때로 구단, 에이전시, 그 모든 상황보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고 그걸 관철합니다. 즉, 선수의 마음만 뺏어올 수 있다면요.”
“…….”
“데일 스틸 단장님. 처음으로 티모 코르넬리스 선수를 발굴하고 해외 진출을 도왔던, 단장님이라면.”
유진이 씩 웃었다.
“그 마음, 뺏어올 수 있겠죠?”
유진이 테이블 위로 네덜란드행 항공권을 내밀었다.
“뺏어오세요. 선수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