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23)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22화(223/266)
222. 이적시장은 차갑다 (5)
침묵은 여러 이유로 발생한다.
항의를 표하기 위한 무언의 시위라든지, 때론 장황한 말보단 침묵과 차분한 눈빛이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라든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적막은 그런 이유와는 전혀 달랐다.
충격, 당황, 당혹, 단어로써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충격적인 감정의 집합.
그래, 그저 말을 잃었을 뿐이다.
프런트 직원들도, 데일 스틸 단장도, 심지어 릴리까지도.
모두가 침묵한 채 날 바라봤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말을 이었다.
“절대로 우리가 데리고 올 수 있는 선수가 아닙니다. 하늘이 쪼개지고,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이 가능해도, 알바로 카스티노 급의 선수가 우리 팀에 올 상황은 불가능합니다. 마치 지구가 둥글고 태양을 도는 것처럼 명확히요.”
“…….”
팀 위상, 명성, 주급, 이적료, 수당, 그 외 제시할 수 있는 조건, 연고지의 환경…….
어떤 것도 절대로 만족시키고 데려올 수 있는 조건이 없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상황이 바로 지금입니다.”
“……감독님.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만, 스포츠 도박이에요. 스포츠 도박. 아스날이 발을 뺐다는 건, 거의 확실하단 의미입니다. 설령 아닐지라도 최소 반년은 출장 정지 징계로 활용 못 해요!”
“우리 팀에게 그 반년을 허비한다고 해도, 문제가 됩니까?”
“……!”
“압니다. 걱정과 우려 이해합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도 없이, 절대로 알바로 카스티노만 한 선수를 영입할, 기회조차 없을 겁니다.”
“감독님, 이건 기회가 아니라 뻔히 보이는 지옥 앞으로 달려들어 가는 모양새-”
“진짜 지옥은!”
“……!”
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저 단호하고, 간결한 호흡으로 말을 끊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눈앞에 놓인 기회를 위험하다며 애써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지옥에 기어 들어가는 꼴입니다.”
“……도박입니다.”
“네. 맞습니다. 잃으면 전부를 잃죠. 하지만, 얻으면요.”
“…….”
“전부를 얻습니다.”
나는 후, 숨을 내뱉었다.
“판돈 걸어 봅시다.”
이적시장 데드라인까지.
2시간.
* * *
프런트는 고요했다.
늦은 밤까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지 않았는데도,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몇 명의 전화 소리, 서류 넘기는 소리, 마우스 딸깍, 키보드 두들기는 타건음-
그 사이로 파고드는 데일 스틸의 목소리.
“감독님, 맨시티도 발 뺐습니다.”
데드라인 1시간 45분.
“레알 마드리드도 다른 선수 영입했다는군요. 철수했습니다.”
1시간 20분.
“바이에른 뮌헨은 도르트문트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방향을 선회……”
1시간.
“마지막, 뉴캐슬도, 아예 철수했답니다.”
그리고 30분.
“모든 팀이 알바로 카스티노 영입을 포기했습니다.”
데일 스틸은 피로한 얼굴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의 휴대폰은 불붙은 난로처럼 뜨거웠다. 그가 인맥을 활용하며 무수히 돌린 전화는 실시간으로 이적 정보를 파악해 냈다.
“알바로 카스티노가 최소 6개월, 어쩌면 1년 한 시즌 통째로 출장 정지 징계는 받을 수 있다는 루머가 퍼지고 있습니다. 설령 무죄더라도, 검찰에 기소당하고 조사받는 동안은 출장할 수 없음이-”
그래, 무죄라는 완벽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만일 유죄면 선수 자격 박탈까지 고려되는 사항입니다.”
데일 스틸은 그 말을 내뱉곤 흘끔 시간을 바라봤다.
시계의 초침과 분침이, 쉼 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데드라인을 향해서,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하지만 지금, 우리는 멈출 수 있다. 데일 스틸은 그 사실을 강조했다.
“감독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조나단 퉁, 계약서 팩스로 보내서 작성하고 등록할 수 있어요. 제가 해내겠습니다. 그러니-”
“알바로 카스티노 연락처 주세요.”
“……!”
데일 스틸 단장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어렵지 않게 알바로 카스티노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나는 전화기를 옆에 번호가 적힌 종이를 놔두고 시계를 바라봤다. 분침과 초침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30분, 25분, 20분…….
데드라인까지 남은 시간이 시시각각으로 흘러가는 시곗바늘 소리는 적막한 사무실에 울렸다. 데일 스틸이 흘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감독님. 지금 시간이 촉박-”
“아니, 조금 더요.”
나는 쳐다도 보지 않고 말했다. 실로 짧은 시간이다. 10분이든, 5분이든. 유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긴 시간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시곗바늘 소리가 천둥처럼 울릴 정도로, 그 째깍거리는 소음의 간격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남은 시간 15분.
나는 마침내 번호를 누르고, 스피커폰으로 설정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우우, 뚜우우
통화 연결음이 다 끝날 동안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순간 데일 스틸도, 프런트 직원들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다.
끝내 연결음이 지나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때, 나는 담담히 말했다.
“맨스필드의 감독 유진입니다. 당신의 스포츠 도박 건으로 기사 캐내려는 기자 아닙니다. 선수, 이적시장 데드라인까지 15분, 아니 이제 14분이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칵―
건너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사무실은 고요했다. 모두 소리라도 새어 나갈까 입을 꾹 다물고, 수화기 스피커로 들리는 옅은 숨소리에 집중했다. 나는 말했다.
“올라(Hola). 알바로 카스티노 선수.”
―진짜, 감독입니까?
조금은 어색한 뉘앙스지만 매끄러운 영어. 조심스럽다 못해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
“잉글랜드 챔피언십 맨스필드 타운 FC의 감독 유진입니다. 걸려 온 전화번호를 맨스필드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시죠.”
―……챔피언십?
그의 목소리에 어안이 벙벙한 기색이 가득했다.
감독이라는 소리만 듣고, 맨스필드가 챔피언십인지는 생각도 못 하고, 아니 찾아볼 생각도 안 하고 전화를 받았단 소리다. 그만큼 지금 그가 몰려 있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예, 챔피언십입니다. 그럼요. 아스날, 맨시티, 레알 마드리드, 뮌헨, 파리, 뉴캐슬, 전부 손 뗄 정도로 상황이 그러신데, 챔피언십에서 전화가 온 것만 해도 감지덕지 아닙니까.”
―하, 이봐요. 저 알바로 카스티노라고요. 어디 스페인 2부리그, 3부리그에 즐비한 알바로 말고, 스페인 국가대표, 골든볼 알바로 카스티-
“예. 압니다. 알바로 카스티노. 스페인 국가대표의 황금기를 다시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 천재. 그리고 지금은 스포츠 도박 혐의를 받고 팀을 찾지 못한 채 몰락을 앞둔 스타.”
―……빌어먹을. 영국 2부리그까지 소문이 났답니까?
“당신의 스포츠 도박 혐의는 어지간한 전 세계 축구 클럽에서 허, 그런 멍청한 놈이 다 있나, 스포츠도박을 해? 같이 맥주 안줏거리로 신나게 까이고 있을 겁니다.”
내 말이 신랄했을까. 수화기 건너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나는 흘끔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 날 조롱하려고 전화를 한-
“그러니 이 제안을 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합니다. 카스티노 선수. 맨스필드로 오시죠.”
―……!
“13분 남았습니다. 팩스 보내는 데 2분, 당신이 받고 사인하는 데 3분, 다시 우리에게 보내는 데 2분, 그리고 등록하는 데 3분. 결정 내리셔야 합니다.”
우리가 잡을 수 없는 사냥감을 잡아야 할 때.
그것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물로 붙잡아 포획해야 할 때.
조금이라도 건들면 휙 도망쳐 버리는 동물이라면.
몰아야 한다. 도망칠 구석도 없이. 구석에 몰린 쥐가 이빨을 드러내고 물려고 하면 어떡하냐고? 글쎄. 그러면 이빨조차 보일 생각을 못 할 정도로, 상황을 궁지까지 몰아버리면 되는 일이다.
“최소한 6개월 이상은 뛰지 못할 겁니다. 혐의가 밝혀지기 전에 어느 리그든 출장 정지 징계를 유지할 테니까요. 자, 그러면 그동안 몸을 만들고 훈련하며, 코치의 조언과 훌륭한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속된 구단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
“뭐, 혼자 직접 트레이너 고용하시고, 경기장 빌리고, 그러면서 동시에 법원과 경찰서 들락날락하시고, 변호사 만나시고- 운동,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훈련장을 쓰게 해 주겠다?
“우리 선수니까요.”
―……!
나는 휴대폰을 열고 스피커폰으로 놓은 채, 사무실 전화기 옆에 뒀다.
궁지에만 몬다면,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일수록 자신감에 흠집이 나기 마련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보단, 감정적으로 치우칠 수 있단 의미다.
궁지에 몰되.
“전화 하나 받으시죠.”
―네?
달콤한 과실이 있는 길목을 열어 둔다.
―반갑습니다.
휴대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라울 정도로 사무적이면서도, 묘한 믿음이 안겨 주는 변호사 특유의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피커폰과 스피커폰이 서로 연결되는 상황.
―누구……?
―피셔 앤 오스틴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리암 피셔입니다.
―……!
―자세한 사항은 전해 받지 못했습니다만, 의뢰인에게 하나만 묻겠습니다. 스포츠 도박이 아닌, 승부조작. 했습니까?
―아, 아니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 무슨, 절대, 절대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의뢰인이 원하신다면, 본 로펌은 전력을 다해 의뢰인의 보호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 드릴 것입니다. 설령 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어디, 싸워 보면 될 일이니까요.
당당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그때 내가 끼어들면서 아버지와의 통화를 끊었다.
“네. 감사합니다. 런던, 아니 영국, 아니, 영연방에서 손꼽히는 로펌의 대표 변호사가 직접 선수의 혐의와 싸워줄 겁니다. 맨스필드가 소속 선수에게 제공하는 복지라고 생각하세요.”
―복지, 라고요?
“맨스필드는 확정되지도 않은 혐의를 두고 선수에게 퇴짜 놓는 그런 클럽과는 다릅니다. 적어도 나는, 내 선수면.”
―…….
희미하게 떨리는 건너편의 그 숨소리에, 나는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사람은 궁지에 몰릴수록 정상적인 판단이 어렵다. 충동적이고, 별것도 아닌 일에 크게 반응하며,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큰 안정감을 느끼며, 감동한다.
“믿고, 보호합니다. 알바로 카스티노. 다시 묻겠습니다. 맨스필드에 오겠습니까?”
―당신, 아니 감독님……이거, 무슨 상황인지, 몰라요? 미쳤어요?
“네, 반쯤은요.”
―하, 자, 잠깐만요.
“오지 않으면 범죄자로 낙인찍힌 채, 팀도 없이 시간을 허비해야 합니다. 아무도 당신을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무직으로 날리는 그 시간은, 당신 커리어에 치명적이겠죠.”
―하지만 나를 영입하면, 당신도, 당신 팀도 비난을 피할 순……
“리스크는 감수해야죠. 세계 최고의 선수를 영입하는데, 그깟 비난이 대숩니까.”
―……!
“그리고 그 질문은 잘못됐습니다. 나는 감독입니다. 감독이니까. 내 선수는 믿고, 지켜주는 것. 그게 감독입니다.”
침묵 사이로 나는 말했다.
“다만 돈은 많이 못 줍니다. 당신이 받던 주급에 비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터무니 없이 후려치는 금액일 겁니다. 하지만 나는 제공할 거예요, 선수에게.”
―…….
“당신이 몸을 만들 훈련장,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 줄 코치, 부상과 체력을 관리해 줄 최고의 닥터, 그리고 당신의 결백을 믿어 줄.”
후, 숨을 내뱉고 단호한 마지막 한마디.
“유일한 믿음.”
이적시장 데드라인까지 7분.
사무실의 팩스로 알바로 카스티노의 싸인이 담긴 계약서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