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2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24화(225/266)
224. 위플래쉬(Whiplash)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포츠 도박 혐의는 확정.”
“어머, 아들이 바쁜 와중에 런던까지 왔으면 안부라도 먼저 묻고 일 얘기하지 그래요? 무슨 잘 왔니, 같은 말도 없이-”
“크흠. 이 녀석은 그런 살가운 말이 필요 없는 놈이야.”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아니, 바쁜 아비를 도와주질 못할망정 갑자기 일을 시키질 않-”
“아들 도와주는 게 그렇게 생색낼 일이에요? 그 당신이 좋아하는 잘난 아스날에서 우리 아들이 노리던 선수 뺏어가서, 다 그렇게 된 건데!”
음.
집에 온 느낌이 좀 드는군.
아버지는 어머니와 한바탕한 후에, 지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몸은 괜찮니. 바쁜데 런던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전화로도 될 일이었는데.”
어머니한테 백기 올리셨군. 나는 쓰게 웃었다.
“네. 괜찮아요. 제가 갑작스레 일을 부탁드렸으니 오히려 죄송합니다.”
“뭐, 그것도 다 내 탓이라고 하지 않나. 네 어머니는. 내가 구너(Gooner)니까 아스날이 하이재킹한 거 때문이니 등쌀을…….”
“북런던 더비가 집에서 열렸나 보네요.”
“매일 열리지.”
어머니는 토트넘 팬이다. 정확히는 원래 팬은 아니었다. 어머닌 축구를 안 보는, 한국 국대 경기나 한 번씩 보던 축구에 문외한이셨던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분이 아버지와 결혼하고 런던에 온 뒤, 토트넘 팬이 되셨다.
뭐 여러 이유일 거다. 어머니가 젊을 적만 해도 토트넘의 레전드로 활약했던 손흥민 선수는 축구에 문외한이던 어머니에게도 유명했었고, 당시 런던 한인 중에 손흥민 선수 응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 한인 커뮤니티에 녹아들면서 자연스럽게 토트넘 팬이 되어버린-
“흥. 아니야. 자기 남편이 허구한 날 주말마다 축구 보러 데리고 간다고, 반발심에 토트넘 놈들 팬인 척하는 거다. 나 골 아프게 하려고.”
“이젠 진심인 것 같던데요.”
“아무리 가짜 팬 노릇이라도 십 년 넘게 하면 진짜가 되는 거지. 마음에 안 들어.”
아버진 툴툴대고는 시계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사족이 길었다. 안 그래도 나도 바쁘고, 너도 바쁜 것 같으니, 본론만 빠르게 얘기하자.”
“네.”
“스포츠 도박 혐의는 확정, 알바로 카스티노가 인정했다. 당당하게.”
“…….”
“증거가 차고 넘치니 발뺌했으면 더 큰 일이었겠지만. 그리고 가장 우려됐던 점. 승부조작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절대로 아니다. 의뢰인도 그 점만큼은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어.”
스포츠 도박은 합법이다.
무수한 배팅 업체가 대놓고 축구 구단의 메인 스폰서인 경우도 즐비하고, 전광판, 경기장 보드……가릴 것 없이 노출되고 광고가 진행된다.
오죽하면 축구 전문가들 예측보다 배팅 업체 도박사들의 경기 예측의 신뢰도가 높다던가.
몇몇 방송에서는 대놓고 도박사들의 배당과 예상을 기준으로 경기 프리뷰를 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그래, 스포츠 도박이 지탄받는 행위는 아니다.
다만 스포츠 종사자에게만 엄격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해관계자니까. 그것도 내가 뛰는 경기의 패배에 베팅했다?”
“그리고 실제로 패배해서 돈을 따면, 예. 사실상 승부조작이죠.”
“브로커를 끼고 무슨 범죄 조직이 연루된 것만이 승부조작이 아냐.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경기에 영향을 끼치면, 승부조작 결론이 나와.”
그러니 스포츠 업계 종사자들의 스포츠 도박은 엄금되는 상황이었다.
비단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 코치, 단장이니 구단주니-
모두 경기 결과에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히 말했다.
“승부조작, 아니다.”
“확실히 하죠. 본인은 승부조작의 의도가 없다고 해도, 스포츠 도박에 베팅하고, 의도치 않게 승부조작의 혐의를 뒤집어쓸 수도 있는 상황-”
“절대 아니다.”
아버지는 변호사다.
그리고 변호는 확언을 하지 않는다. 의뢰인에게 승소한다고 정확히 말하지 않는 법이다. ‘가능성이 있다’가 주된 답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확언했다. 아버진 무어라 말하려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내뱉곤 말했다.
“이 의뢰인 말이야. 자기 경기에만 베팅했어.”
“네.”
그러니까 승부조작 우려가 있다.
하지만.
“자기가 출전하는 경기는 무조건 승리에 베팅.”
“…….”
“출전하지 않는 경기에는 무조건 패배에 베팅.”
“…….”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어. 심지어 컵대회에서 만난 3부리그 팀과의 경기라, 주전이 나오지 않는 경기라서 출전하지 않고 벤치에 앉았거든? 누가 봐도 바르셀로나가 이기는 경기잖냐. 그런데.”
“3부리그 팀에 베팅했답니까?”
“그래, 맞아. 그 경기는 바르셀로나가 승리했고, 이 의뢰인께서는 돈만 잃으셨지. 그것도 엄청난 고액을. 자기가 나오면 무조건 이긴다는 거고, 자기가 빠지면 무조건 진다는 거지.”
“…….”
“승부조작범이 아니라, 그냥 미친놈이야. 너, 미친놈 하나 영입한 거다.”
아버지가 웃었다. 마치 재밌다는 듯이, 어디 관리할 수 있냐는 듯.
하나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뭐, 정신 나간 친구들이 이미 팀에 잔뜩 있어서요.”
새로운 미친놈이 오기 전에, 이미 데리고 온 친구들을, 슬슬 길들여야 할 듯했다.
* * *
알바로 카스티노의 영입 소식은 충격적이었고, 이후 터져 나온 스포츠 도박 뉴스는 큰 스캔들도 비화하여 연일 화제였다.
어수선함은 필드에도 영향을 끼칠 법했지만, 맨스필드 선수들은 의외로 이슈에 휘둘리지 않았다.
외부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고 중심이 잡혀 있다기보단-
“왜, 좀! 방금 줬어야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해야 할까.
리그 7라운드.
4승 2패의 맨스필드는 분명 호성적을 그려내고 있지만 필드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후반 11분.
앤서니 로우가 별안간 소리를 빽 지르며 참았던 화를 터뜨렸다.
그 말에 갈랑이 조금 짜증 난 표정을 지었다.
앤서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패스 줬어야지! 내가 달라고 했잖아! 못 알아들어?”
“기다려. 말해줄게.”
클라라니가 진정시키려는 듯이 손을 들어 올리곤 갈랑에게 포르투갈어로 통역했다.
“저 건방진 꼬마가 똑바로 패스 안 하면 엉덩이를 차주겠다는데?”
“뭐라고? 나보고 그런 패스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위치만 좋으면 다야? 앞에 선수가 있는데 그 사이로 보낼 수가 없잖아?”
“이해해. 저 녀석, 다 지 중심으로 흘러가야 하는 그런 놈이잖아.”
“짜증 나.”
클라라니는 고개를 끄덕이곤 앤서니에게 통역했다.
“알겠대.”
“그렇게 짧게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에에.”
“포르투갈어가 원래 그래.”
한가로이 더 잡담을 나눌 시간은 없었다. 앤서니도, 갈랑도 뭔가 풀리지 않은 얼굴로 다시금 자리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끼어서 클라라니는 내심 씩 웃었다.
‘쉽군.’
클라라니는 팀을 망치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저 단 하나였다.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받아야지.’
팀의 승리보단 자신의 가치가 더 빛나야 한다. 그래야 더 높은 팀으로 갈 수 있다. 이 맨스필드와 챔피언십을 벗어나 프리미어리그로 간다고?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꿈이야 크게 꾸는 법이니까.
‘하지만 더 좋은 팀으로 가는 게 낫지.’
이런 시골 구단. 딱히 놀 것도 없고, 뭐, 특별한 것도 없는.
‘발판으로 삼는다.’
오직 그 생각 하나뿐이었다.
더 높은 명성의 팀으로 스텝업 하는 것이야말로 선수의 목적 아닌가.
주목받아야 한다.
일부러 앤서니를 못살게 구는 건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내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줘야지.’
루소폰 그룹.
영어와 포르투갈어 두 언어를 할 수 있는 그는 루소폰 그룹과 기존 선수들과의 중간에 낄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두 그룹이 갈라질수록, 루소폰 그룹의 주도권은 클라라니가 잡았다.
‘간지뉴 저 친구 영어 할 줄 알지만, 그냥 아예 말을 안 하는 수준이니 상관없고, 테셰이라 얘는 영어 좀 하지만- 간단한 소통 정도지. 적당히 조심만 하면 되고.’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갈등과 충돌의 이유는 분명 사소한 오해다. 앤서니는 대니 스콧 정도의 패스를 원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그런 패스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앤서니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해 짜증을 내는 상황. 클라라니가 좀 더 과하게 통역을 해 버리면 사소한 일로 사이가 갈라지는 건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리된다면.
“패스 줘!”
앤서니가 외치며 뛰어드는 순간.
라인을 한껏 끌어올려 공격적으로 나온지라 센터서클까지 올라온 갈랑이 공을 툭 차올렸다.
앤서니가 아닌.
투웅-!
왼쪽에서 파고드는 자신의 발끝에.
물론 그닥 좋은 위치는 아니었고, 득점으로 연결되기엔 어려웠지만.
뻐엉-!
“아아아-!”
아무렴 문젠가. 득점은 아닐지라도, 골키퍼가 간신히 막아낸 그 슈팅은.
“클라라니, 쟤 물건인데?”
“좋았어! 다음엔 골 넣으라고! 그렇게만 해!”
필드에서 집중을 받는 건 충분한데. 그는 갈랑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며 말했다.
“좋았어! 다음엔 꼭 어시스트 하나 하게 해줄게! 아니, 경기 끝나고 오늘 술 한잔 사지!”
물론, 포르투갈어로.
* * *
[맨스필드, 리그 7라운드 헛심 승부, 0대 0 무승부!] [4승 1무 2패, 호성적 기록하며 리그 8위에 올라선 맨스필드.] [알바로 카스티노 출장 정지 징계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 이적 선수들의 활약.] [기존 선수들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맨스필드의 영입생들, 알바로 카스티노 스캔들에도 이상 없다!]* * *
성적만 보면 팀이 삐걱거리는 느낌은 없다.
일전에 자일슨 팀장이 분석했듯이, 여러 지표로도 팀은 상당히 잘하고 있다.
언뜻 보면 팀에 갈등이 있는가, 그것이 필드에서 경기에 악영향을 끼치는가-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앤서니가 짜증을 부리는 빈도는 늘어났지만, 그래도 꾸준히 활약해 주고 있었고.
루소폰 그룹도 대놓고 앤서니와 충돌하지 않았고, 그 특유의 짜증도 표정만 찌푸릴 뿐 묵묵히 받아내고 인내하고 있었다.
“새로운 캡틴인 리처드가 제법 활약해 주고 있습니다.”
알롭 코치가 말했다.
“경기 끝나고 선수들 데리고 밥도 같이 먹고, 젠킨슨과 달리 필드가 아니라 필드 밖에서 노력하더군요. 허허.”
“필드에서 풀고 화해하려고 하면, 잘 안 되니까요.”
“허허, 네 그렇죠. 서로 흥분한 상황이고, 말도 안 통하고 그러니. 밖에서 좀 진정되고 서로 얼굴 마주하면서 밥도 먹고 그러다 보면, 또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게 미스터 쿼카니까요.”
리처드 특유의 낙천성과 헤실거리는 웃음은,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데 효과적이었다. 필드에서 쌓인 분노와 짜증도, 경기 후에 쉽게 풀어지고 그게 사적인 감정의 충돌까지 나오는 걸 막고 있었다.
“지금까지는요.”
그래, 아직까지는, 이 정돈 어느 팀에서나 존재하는 선수들의 불화 정도일 뿐이다.
모든 선수가 친하게 지내진 못하고, 데면데면하는 관계는 존재하며, 필드에서도 유난히 친한 선수들끼리만 연계가 좀 더 원활한.
솔직히 지금 상태로는 딱히 큰 문제는 없다.
여기서 저의 사욕만 채우려는 미꾸라지만 없다면 말이지.
“감독님. 감독님!”
그때 알렌스키 코치가 사색이 된 얼굴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허둥거리더니, 태블릿으로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어디 SNS에 올라온 영상인데…… 술에 취한 듯, 붉은 얼굴의 클라라니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스포츠 도박?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뭐, 도박, 했을 수도 있지. 하면 안 되나? 승부조작만 아니면 되지 않나? 승부조작도 했으려나?
―선수들에게 많은 걸 강요하잖아요, 성실하고, 열심하고, 헌신하고, 그런데 도박? 이거 범죄인데, 그런 선수를 우리 선수라고 감싸 준다? 아니 언제부터 우리 선수였다고……
―몰라요. 이유가 있어서겠죠. 잘하는 선수니까. 유명한 선수니까. 실제로 무혐의일 수도 있는 거고, 뭐……우리가 잘해야죠.
영상은 여러 번 재게시 되고, 댓글과 추천 등으로 꽤 많이 퍼지고 있었다.
아니 그럴까.
소속 선수가 알바로 카스티노 영입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고, 대놓고 불만을 드러낸 것인데. 팬들을 알기 어려운 선수단 내부의 분위기를 보여주듯이 말이다. 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클라라니 개인의 생각이라고 치부할까, 아니면 선수단 내부에 흐르는 분위기라고 여길까.
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단 건 문제가 아니다. 이해할 수 있는 불만이고.
“…….”
“잔뜩 취했네요.”
“그, 취해서 아무 말이나 튀어나온 거일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조치를…….”
순간적으로 차가워진 장내 분위기.
알롭 코치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술에 취해서 속에 있는 얘기를 꺼낸 것 같습니다. 선수로선 아예 이해하지 못할 속뜻은 아니지만, 이걸 술에 취해서 얘기하는 건…….”
글쎄. 술이라.
경기가 끝난 직후, 팬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신 뒤에 저런 얘기를 한다?
영상 속 반응은 하나였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이, 약간 흥겨운 반응. 도리어 말 잘했다는 듯이 손뼉 치고 휘파람을 불어 대는 팬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예. 이제 조치 취해야죠. 저렇게 술 먹고 인터뷰를 할 정도니, 뭐, 적응도 끝난 거 같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수든 뭐든- 빌미를 제공해 준다면야, 이용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 클라라니 호출해요.”
이적시장은 끝났다.
이젠, 새로 온 선수들을 하나씩, 채찍질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