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28)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27화(228/266)
227. 위플래쉬(Whiplash) (5)
클라라니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적잖은 당혹스러움.
나아가 희미하게 넘실거리는 분노의 실마리.
순간 훈련장의 시선이 꽂히는 감각을 느끼며 말했다.
“프로 무대입니다.”
“…….”
언뜻 떠오른 의문. 그 말과 자신의 요청이 무슨 상관이냐는 혼란스러운 표정. 나는 실소하며 말했다.
“프로무대에는 프로가 뛰어야죠. 어설프게 프로인 척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
순간 훈련장에 아연한 기색이 흘렀다. 흘끔, 눈치껏 쳐다보고 귀를 열고 들으면서 훈련하던 다른 선수들조차 입을 벌릴 정도로.
아니 그럴까.
선수의 면전에서 프로가 아니라고 깎아내렸는데.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클라라니도 마찬가지였다. 타투가 새겨진 그의 목과 얼굴은 울긋불긋 붉게 달아올랐다. 희미하게 떨리는 입술이 열리면서 애써 꾹 눌러 참은 듯한 답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그거, 말실수, 아니시죠?”
“말실수이길 바라는 겁니까, 아니면 애써 아니라고 부정하는 겁니까.”
“……내가, 프로 자격이 없다고?”
“프로선수의 의미는 여러 가지죠. 축구를 하고, 돈을 받는다. 이런 사전적인 요소만 생각하면… 예, 프로는 맞겠죠. 근데 내 기준에서는 아냐.”
“……!”
한 발짝.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키가 컸다. 내 눈높이보다 살짝 위.
그는 브라질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과 잉글랜드 축구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은 꽤 특이한 유형이었다.
건장한 체격은 킥 앤 러쉬에 어울리는 폭발력을 선보였고,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 같이 공놀이하며 배웠던 무수한 개인기들은 브라질리언 특유의 테크니션을 느끼게 했으니.
그래, 클라라니는 분명 프로선수다. 실력도 있고, 그 실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것에도 능한. 프로라면 프로겠지.
“선수가 무슨 야심을 품었든, 이 맨스필드를 발판으로 여기고 더 큰 팀으로 가고자 하든, 난 상관 안 합니다.”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주친 눈빛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흘렀다.
“아니, 나는 그런 걸 원합니다. 헤어질 땐, 깔끔하게 헤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당신뿐만 아닙니다. 저기 테셰이라 선수는 나한테 맨유로 가겠다고 공언부터 했거든요. 그 욕심, 그 야망, 환영합니다.”
“환영, 한다구요?”
“선수는 목표와 야심이 있으면, 골인을 위해서 미친 듯이 내달리는 존재니까요.”
“…….”
클라라니의 얼굴에 희미한 혼란이 떠오른다.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표정이다.
“더 높은 곳, 더 좋은 클럽, 자신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것. 무어라 할 수 없습니다. 프로선수로서의 가질 마음이니까요. 목적을 향해 내달리는 거, 좋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프로가 아닙니다.”
이번엔 그의 얼굴이 붉다 못해 꿈틀거렸다.
이번만큼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그의 눈이 시퍼런 빛을 토했다.
하나 그가 입을 열어 분노를 토해내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선수는 골인을 향해 달리지 않습니다. 같잖은 수작질로 정치를 하죠.”
“……정치?”
“Achou mesmo que eu não sabia disso?(내가 정말 모를 줄 알았다고 생각한 거야?)”
툭 튀어나온 포르투갈어.
한쪽에서 흘끔거리던 루소폰 그룹 선수들의 시선이 당혹으로 물들여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시선들조차도, 울긋불긋하던 얼굴이 어느덧 새하얗게 질려버린 클라라니만 할까.
“독일에 있을 때, 브라질 선수들이 많았거든요. 독일은 외국 선수들 로스터 등록에 관대하다 보니, 포르투갈어쯤은 해야, 그 자유분방한 브라질 선수들 제어할 수 있겠더라고요.”
“…….”
“야망이란 핑계로 선수는 같잖은 짓거리를 한 겁니다. 더 큰 팀을 가기 위해서 좋은 플레이를 펼친 게 아니라, 좋게 보일 구도를 짠 거죠.”
“보여질 구도…… 나, 성적 좋습니다. 1골 3어시스트도 했고, 팬들도 나를-”
“클라라니. 그래서 지금 당신이 뛰지 않는 필드는 어떻습니까?”
“……!”
나는 흘끔 이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앤서니를 바라보곤 말했다.
“어쭙잖게 상황을 속여 만든 것일 뿐, 그저 속은 텅 빈 것에 불과했습니다. 내 수석코치가 만든 전술, 내가 조직한 선수단,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내 팀을, 선수는 이용한 것일 뿐인데, 본인이 잘하고 팀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한심하게 착각한 것뿐이죠.”
“……하.”
이어지는 독설에 클라라니는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그리 잘못했습니까?”
“팀의 균형과 조화를 헤쳤습니다. 선수단의 사이를 갈라 본인의 이득을 챙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건, 뻔뻔한 건지 멍청한 건지 구별이 안 되네요. 알려주시겠습니까?”
훈련장이 숨 쉬는 소리만이 들릴 것처럼 조용해졌다.
어느새 모두 훈련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피식 실소했다.
“어때요, 당신의 계산이 틀린 상황이.”
“……!”
“홀로 내 집무실을 찾아올 용기조차 없어서, 지금 훈련이 한창인 가운데 나에게 말을 꺼낸 거 아닙니까? 참 어쭙잖네요. 일반적인 감독이라면, 동료 선수들이 보는 와중에 선수 한 명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겠지. 라는 선수의 생각이 느껴집니다.”
그가 입을 다물었다.
부끄러운 기색이 떠오른다.
“선수는 선수 편이니까. 일방적으로는 그렇죠. 감독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선수라는 구도, 그걸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또는 이런 선수들의 시선에서 본인이 원하는 걸 쟁취해 내려고 수작질을 부린 거겠지.”
“…….”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압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야망이겠죠. 팀의 얼굴로 떠오르고 스카우터들의 눈도장을 받고……뭐, 이해 못 할 처사는 아닌데요. 선수. 말했잖아요. 목적을 향해서 내달리기만 하라고. 지름길을 찾지 말라고.”
그가 입술을 깨물며, 변명을 주워 삼키듯 소리쳤다. 손가락으로 앤서니를 가리키면서.
“그렇게 선수단 규율을 중요시해요? 어? 그러면 저 녀석, 저놈, 툭하면 지각하는데, 아무 말 안 하잖아? 징계? 벌금? 감독님은 그냥 선수가 필드에서 잘기만 하면 다 용납하는 그런-”
“그 손가락 꺾어버리기 전에 치워.”
“……!”
확 굳어버린 그의 얼굴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부러웠나? 필드에서 플레이가 좋다고, 지각 같은 건 눈감아주는, 그런 게 부러웠어?”
“……형평성이 안 맞잖습니까. 내 잘못 알겠어요, 오케이. 그런데 나를 이렇게 몰아세울 거면 감독님도 다른 선수를 공평하게 대해야-”
“왜?”
“…….”
툭 튀어나온 반문에 그의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실소하며 말했다.
“내가 왜 공평하게 대해야 해?”
“……뭐라고요?”
“당신과 앤서니, 당신과 오스카, 젠킨슨, 대니 스콧, 스탠리, 제임스……. 내 선수들이 같아?”
“……!”
“감히 같다고 생각해?”
“감히……?”
“리그 투, 리그 원. 그 좆 같은 리그에서 나와 같이 모두 이겨왔던 선수들이야. 빌어먹을 정도로 낡은 훈련장, 팀닥터도 없던 그런 팀에서, 그 망할 것 같은 팀을 이렇게까지 만들어낸 내 선수들이야.”
“…….”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난 순간에 와놓곤, 내 선수들이 만들어놓은 트로피 위에 앉아서, 감히 네가 저들보다 낫다고 거드럭대며 공평해야 한다고 외쳐대?”
그가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실소하듯 말했다.
“주제를 알아. 이 새끼야.”
* * *
클라라니는 정신이 훅 날아갈 것만 같았다.
평소 선수들에게 경어를 쓰며, 예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진이 쏟아내는 신랄하다 못해 날 선 비속어는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선수를 모두 고루 공평하게 대해야만 하는 팀의 리더가 말하는 형평성의 역설은…….
“…….”
솔직히 말해 클라라니는, 유진이 제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해서 충격을 받았다. 굳이 그의 집무실을 따로 찾아가지 않고 훈련 중 출전 요구를 한 건, 그래, 그의 말대로다. 선수단이 지켜보는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서.
하지만 유진은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수들 앞에서 한 선수를 나무라는 건 감독에게 큰 리스크를 준다.
선수는 어지간해서 선수 편이니까.
괜히 감독들이 선수와 면담할 때 따로 불러서 진중한 얘기를 하겠는가.
그런데 유진은 조심하기는커녕, 도리어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숨이 절로 막혔다.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었는가.
그가 흘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의 시선을 똑바로 느꼈다.
앤서니를 비롯해 기존 선수들은 유진이 말한 형평성의 역설에 공감한 듯, 도리어 약간의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고.
늘 저의 편이었던 루소폰 그룹은-
‘……엿같은.’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은, 루소폰 그룹은 소수란 점이다.
고작 네 명.
그 네 명은 훈련장에서 몰아치는 분위기에 압도당한 듯 보였다.
하물며.
갈랑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진이 포르투갈어로 순간 쏘아붙인 바람에, 눈치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꼬집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갈랑은 클라라니의 통역이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옆에 간지뉴에게 물어보는 표정이었다.
간지뉴는 곤혹스러운 얼굴이었고-
그 순간 절감했다.
‘내가 만든 상황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 상황을 유진이 도리어-
‘이용했어’
소름 끼친다. 그래. 지금 유진은 순식간에 기존 선수들에 대한 신뢰를 한층 더 높이 끌어올렸고, 루소폰 그룹과 본인 사이에 의심의 씨앗을 심어놓았으며 무엇보다도.
“…….”
완벽하게 클라라니 본인을, 휘어잡았다.
클라라니는 등이 흥건하게 젖었음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훈련하느라 뛰어서가 아닌,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어서 흘리는 땀이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분노와 모멸감, 수치스러움과 창피, 그리고 절박한 마음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자신의 행동을 전부 예측하고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감독 앞에서, 자신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허리를 굽히며 용서해달라고 빌거나.
그도 아니면.
“선수도 인격이 있어요.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당신이 뭘 안다고-”
“어쭙잖게 주둥이 계속 놀릴 거면 그냥 순순히 입 닥쳐요.”
발악뿐.
“말이 심하다고? 엿같이 심한 건 그 병신같은 플레이지. 안 그래? 동료 선수를 이간질하고 속여넘기면서 제 혼자 잘난 척하는 거 말야.”
하나 발악의 결과는 처참했다.
클라라니는 압도당한다는 기분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딴 플레이를 감히 내 앞에서 해놓고, 내 필드에서 해놓고, 내 선수들 사이에서 저질러 놓고, 인격을 운운해? 뻔뻔함이 도가 지나치지 않나?”
“…….”
“내가 대우하는 선수의 인격은 제 한몫하는 선수야. 프로선수라고. 제 몫도 못 하는 선수?”
유진은 그리 말하고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눈은 웃지 않고 차갑게 빛났다.
“까라고 해. 그딴 놈, 나는 사람 취급도 안 할 거니까.”
터져 나오는 독설에 클라라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거, 선수 협회에 당신 고발하면-”
유진이 피식 웃었다.
“왜, 내가 실력 좆도 안돼서 감독에게 욕 한 바가지 먹었다고 쪼르르 뛰어가서 꼰지르기라도 하려고 합니까? 잘하네. 어울려요. 감독에게 실력으로 보여주고, 증명하겠다는 그런 마음도 품지 못하는 애새끼란 거 말입니다.”
“!”
“내 눈앞에서 당장 꺼져.”
유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심장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