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29)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28화(229/266)
228. 위플래쉬(Whiplash) (6)
결론부터 말하자면 클라라니는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
[유진 감독, 11라운드에서 클라라니 선발 제외 암시]이어진 11라운드에서 선발은커녕 벤치에도 앉지 못했다.
이는 명백한 신호였고, 그 어느 때보다 맨스필드에 더듬이를 세운 기자들이 캐치 못 할 리가 없었다.
[클라라니, 4경기 연속 결장, 부상도 아닌데……? 떠오르는 의문] [취중 인터뷰 이후 선수단에서 자체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맨스필드의 절대자, 유진 감독의 눈 밖에 났나? 훈련장에서 고성이 오갔다는 얘기가…….]클럽 내부의 갈등, 내홍 따위가 밖으로 흘러간다는 건 꽤 좋지 못한 소식이다.
외부에서 팀을 흔들기 가장 쉬운 소스니까. 무엇보다도 맨스필드는 지금 밖에선 의외로 꼭 좋은 시선을 받는 팀은 아니었다.
본래 언더독의 특성상 여러 응원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맨스필드 6승 1무 3패 승점 19점으로 리그 7위 순항!]백투백 우승에 이어 챔피언십 초반 호성적을 그리는 상황.
이제 어떤 팀도 우리를 언더독으로 여기진 않았다.
[여름에만 9명을 영입하며 프리미어리그 승격의 진심을 드러낸 유진 감독, 알짜 선수들만 대거 영입해……]이적시장의 행보부터 맨스필드는 여러모로 승리자였다.
루소폰 그룹은 시작부터 좋은 모습을 보였고, 포레스트의 로테이션 멤버들도 하나같이 준척급의 자원이었다. 영입에 성공했단 말은 역설적으로 경쟁에서 이겼단 뜻이며, 그 말은 여러 경쟁자를 협상장에서 때려눕혔단 얘기.
많은 클럽과 이적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우리 팀을 언더독이나 아랫급이 아닌, 상당히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팀으로 평가가 올라간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 같은 상황을 억지로 막거나 해결하려고 하진 않았다.
[클라라니 결장은……] [맨스필드 내부 선수단에 충돌이……] [유진 감독과 이적 선수 간의 고성, 선수단 장악 능력에 의문]우선은 그 어떤 기사에서도 이젠 알바로 카스티노에 대한 얘기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 관심을 순전히 맨스필드 자체로 옮기는 데 성공한 셈.
어디 그 이유뿐일까.
―클라라니 선수가 오늘도 결장한 라인업입니다만,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앤서니 로우! 팬들을 안심시키는 화려한 선제골을 터뜨리는군요!
결정적으로 클라라니는 충분한 압박을 느낄 테니까.
* * *
“이거지이이이!”
앤서니 로우는 흥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툭, 툭!
“미친!”
“욕하지 마!”
앤서니는 수비수의 황당함에 물든 얼굴을 바라보며 툭, 페인트를 넣고 다리 사이로 공을 빼냈다. 소위 말하는 알까기, 넛메그(Nuemeg). 흘끔 돌아본 수비수의 얼굴이 수치스러움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앤서니의 광대가 더욱 크게 씰룩였다.
“이익!”
비웃음을 느낀 것일까. 선수가 눈에 불을 켜며 손을 뻗었다. 옷자락을 잡고 끌어서 차라리 반칙을 내주겠다는 분노가 치민 판단. 이대로 넘어져서 데드볼 찬스를 만들어 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 뒤에서 스탠리가 눈을 빛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앤서니는 그러지 않았다. 잡힐 듯 말 듯 몸을 휘청거리다가 수비수가 콰당, 잔디에 얼굴을 박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듯 히죽 웃었다.
“바-보! 난 욕 안 해!”
선수를 완벽히 농락하고 순간적으로 앞으로 전진. 그리고 촘촘히 막아서는 협력수비 사이를 노려보며.
“공 줘, 애송아!”
오랜만에 투톱으로 출전한 오스카의 외침에 패스를 줄 듯한 모션을 툭.
“……!”
수비수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속여 넘기는 페인트를 준 뒤, 우측의 달려가는 제임스에게 길게 뻗어주는 스루패스.
투웅-!
그 짧은 시간 이어지는 패스만으로 상대 수비가 허물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특이한 광경이었다. 박스 안에는 수비수들이 더 많았다. 빽빽하다 싶을 정도로 때려 박은 수비의 숫자.
하지만 이는 급조된 숫자였다.
상대 팀은 애당초 앤서니 원톱을 감안하고 나왔지만, 막상 경기는 앤서니-오스카라는 투톱 조합. 원톱과 투톱의 박스에서의 파괴력과 무게감은 차원이 다른 법이다. 때문에 수비수를 급하게 늘릴 수밖에 없었다. 미드필더를 한층 내리거나, 풀백의 전진을 제한하거나.
한마디로 급조한 티가 팍팍 나는, 숫자만 늘린 수비벽이란 의미.
보이는 것과 달리 허술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 줘!”
“꼬마야, 나한테!”
앤서니와 오스카가 동시에 소리쳤다. 수비의 얼굴에 혼란이 떠올랐다.
앤서니라면 아래로 깔리는 빠르고 낮은 패스, 또는 컷백.
오스카라면 높은 타점을 목표로 하는 고공 크로스.
워낙 극과 극인지라 수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짧은 혼란에 빠졌다.
뭐, 사실 상관없는 얘기다. 설령 알고 대처해도.
투웅!
“뛰어!”
아직 자신만큼은 전성기, 그 시절의 육체라고 자랑하듯 오스카의 고공 점프는 다른 수비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높이 날아올랐으니.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물론 수비가 그렇게까지 손 놓고 있지 않았다. 견제할 수 없다? 그러면 두 명, 세 명이 달라붙어서 몸을 밀치고 손을 뻗어서 끌어내리면 된다.
분명 효과는 있었다.
터엉-!
약간 빗나가는 타점. 골인이 아닌 골대에 맞고 튕겨 나오는 공.
만일 집중 견제가 없었다면 골인이었을 테니, 그래, 성공적인 수비였다.
이어지는 세컨볼을 향해 기습적이면서도 정확한 구석을 노리는 앤서니의 슈팅이 없었다면 말이다.
“Anthony- Lowe-!”
“Yeeeeeeeeea-!”
앤서니의 골에 맨스필드 팬들의 관중이 벌떡 일어났다.
붉게 달아오른 채 함성과 비명을 내지르는 그들에 얼굴에는, 경기 전, 클라라니의 결장과 선수단 내홍이니 같은 기사의 헤드라인에 걱정스러워했던 기색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필드에서 그 누구도, 클라라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 *
[맨스필드 타운 FC, 번리 상대로 2 대 1 승리!] [앤서니 로우의 독무대, 동점골, 역전골 기록해 내며 승리 견인!] [번리 감독, “맨스필드는 승격팀이 아니다. 챔피언십의 강팀이라는 교훈을, 너무 뼈아프게 치렀다. 맨스필드와 팀을 이끈 유진 감독에 찬사를.” 겸허한 패배 인정] [번리 수비수 칼리슨, “앤서니 로우에 대해 경계하고 대비했지만, 해리 오스카와 투톱으로 나선 공격에 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투톱 카드를 꺼내든 유진 감독, “팀의 모든 자원을 다양하게 활용할 것. 어떤 방식으로든 팀은 강해질 수 있다.”] [클라라니 4경기 결장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유진 감독 “늘 그렇듯이 최고의 선수가 필드에서 뛴다. 스포츠에서 당연한 사실이다.”] [클라라니의 빈자리? 클라라니 없는 4경기 3승 1패, 맨스필드의 상승세는 선수가 아닌 팀의 조직력!]* * *
“너무 심한 거 아닐까요?”
알렌스키 코치가 불쑥 물어왔다.
흘끔, 쳐다보자 그는 시선을 피하려다가도 이내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클라라니요.”
“그새, 클라라니하고도 친해졌습니까?”
“흠흠, 저야 뭐…… 아무래도 만만해 보이니 선수들이 쉽게 다가오는 면이 좀 있죠.”
알렌스키 코치가 겸손하게 말했지만, 간단히 여길 얘긴 아니다.
알롭 코치도 선수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코치지만, 지긋한 나이와 앤서니를 유일하게 미친 듯이 갈구는 면모에서 보이듯이 때때로 불같은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전형적인 베테랑 코치다운 모습이다. 선수들이 마음까지 드러낼 정도로 친근하게 대하긴 어려운 유형이고, 그리고 감독인 나야 뭐…… 알잖는가.
선수들이 때때로 진솔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장난스럽게 툭툭 코치진에게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하는데, 알렌스키 코치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알렌스키의 피지컬 코치로서의 능력은 팀닥터 스탠리와 그의 수제자이자 조수인 도슨 씨가 와서 빛바랜 감이 있지만, 이런 외적인 요소 덕분에 알렌스키 코치의 중요성은 내 사단에서 의외로 가장 중요했다.
때문에 나는 그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클라라니가 와서 말 좀 해달랍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저하고 말도 안 해요. 여러모로 고민이 많은 얼굴이던데.”
알렌스키는 멋들어지게 관리한 수염을 살짝 긁고는 말했다.
“지금 번번이 뜨는 기사들이나, 이런 것들, 전부 선수를 압박하기 위한 것들이잖아요?”
“네, 맞습니다.”
“일전에 훈련장에서의 사건도 그렇고, 선수를 너무 궁지로 몰아붙이는 게 아닐지……. 감독님이 물론 잘 케어하시겠지만요. 스탠리나 오스카나, 이랬던 선수들처럼.”
“아니요. 케어 안 합니다.”
“네?”
반문하며 눈을 끔뻑이는 그를 향해 나는 단호히 말했다.
“클라라니는 이기적인 선수입니다.”
“……!”
“그래서 도리어 고맙죠. 차라리 상대하기가 쉽거든요.”
“네?”
시선을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오늘 훈련이 끝났는데도 남아서 개인적으로 훈련을 이어가는 몇몇 선수가 보였다.
젠킨슨, 대니 스콧, 오스카, 제임스, 그리고 놀랍게도 앤서니까지. 물론 오스카의 시달림에 뚱한 얼굴로 참여하고야 있긴 하지만.
“이기적으로 굴겠다면, 나도 똑같이 이기적으로 굴면 되니까요.”
“…….”
“내가 가장 대하기 힘든 선수 유형들은 바로 저기 있습니다.”
“젠킨슨이요?”
알렌스키 코치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썹을 씰룩였다.
누구나 좋아할 법한, 팀 최고 프랜차이즈이자 주장이지 않았나.
젠킨슨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하나같이 코치 입장에선 고맙기 짝이 없는 그런…….
“팀에 헌신하고, 자신보다 팀에 가치를 두고……아무리 냉소적인 사람일지라도 나직이 감탄하게 만드는, 그 투혼과 헌신. 경기에 출전조차 못 하는 선수에게 나는 프리미어리그에 같이 가자고 말하며, 1년 계약 연장을 제시했고, 체결했죠. 신기하죠?”
“…….”
“그래요. 나하고는 맞지 않습니다. 제가 이 팀에 오자마자 코치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맥 헤럴드를 어떤 식으로 쪼아냈는지 기억하신다면요.”
알렌스키는 맨스필드 초창기를 떠올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감독님은 정말로, 크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으셨죠.”
“지금은 다른가요?”
“지금은…….”
그가 고민하는 표정을 보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향한 눈빛에 여러 감정이 묻어났다.
“네, 달라요. 선수들을 대하는, 그리고 토마스 캐롤을 반즐리로 연결해 준 것까지…….”
“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독선적인 건 똑같아요. 그래요, 수없이 고민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였으며, 뭐든지 칼같이 판단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도 고비였습니다. 젠킨슨의 재계약, 스탠리의 트라우마, 앤서니의 활용……토마스 캐롤, 그 친구의 이적까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 팀에 그런 선수가 너무 많아요.”
창문 밖 선수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마치 만화나 소설, 영화에서나 툭 튀어나올 법한, 현대 축구에서 보기 힘든 낭만적인 이상까지 품은 선수들을 두고, 나는 그래왔듯이 현실을 살아야 했거든요.”
“현실이요?”
“이 팀을 이끌기 위해서 해야 하는 현실이요.”
이 현실은 지독하고 냉정하다. 살얼음판 같으며, 여기서 나아가려면 감독은 이기적이어야만 한다. 선수 개개인의 가치보다, 팀을 더 높은 곳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어느 세상이나 그렇다.
“단체를 위해선 소수, 구성원이 희생해야만 하는 그 지긋지긋한 사실 말입니다.”
“…….”
“감독은 선수를 희생시켜야 합니다. 유도하고, 지지하며, 끌어내야 합니다. 본인의 희생이 팀을 위한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끔요.”
클라라니가 감독을 불신하고 왜 이기적인 선수가 되었는지 안다.
일부는 이해가 간다.
감독부터가 애당초 그런 직함이니까.
“부상, 아픔, 고통? 진통제를 투여하고 뛰게끔 요구할 줄 알아야죠. 감독이라면요.”
“……!”
“선수의 미래와 비전을 위해선 더 좋은 클럽의 오퍼를 거절해선 안 되죠. 네가 활약할 수 있는 곳은 이 팀이다, 라면서 오로지 팀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 감독의 현실입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 현실을, 나도 점점 잊고 있었어요. 좋은 선수들 덕분에, 현실이 아닌 다른 최선, 또는 차선을 찾아본 거죠. 쉬운 답을 두고요.”
“…….”
“클라라니가, 바로 그런 나를 현실로 다시금 끌고 왔습니다.”
나는 알렌스키 코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 방식대로, 가장 차가운 방법으로, 나는 클라라니를 다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