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31)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30화(231/266)
230. 위플래쉬(Whiplash) (8)
정정한다.
“늦은 밤까지 퇴근 안 하셨다니! 감독님은 정말 팀을 사랑하시는군요! 역시!”
팀에서 클라라니 편일지도 모를 사람이 막스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쾌활한 웃음과 함께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리처드였다.
“팀을 위해 이렇게 야근까지 하시다니, 좋네요!”
“좋다고요?”
“이렇게 늦은 밤 찾아와도 면담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면담 요청하는 문자 때문에 지금까지 퇴근 안 하고 있다면요?”
“헉. 그래도 나쁘지 않죠! 감독님이 일하실수록, 우리 클럽은 더 강해지니까요! 제가 주장으로서 결국 감독님을 이 자리에 앉혀놓고 더 일하게 했으니, 역할을 다했군요!”
음.
솔직히 말해서 이 팀에서 내가 대화하기 힘들어하는 몇 안 되는 상대 중 한 명이 리처드였다.
저 답 없는 쾌활함과 낙천성은 나하고는 영 맞는 코드가 아니라-
아, 또 한 명 있다.
아예 말을 못 하고, 둘이 있노라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온몸을 비틀면서 불편한 티를 팍팍 내는 간지뉴도.
이런 상대들에게 말이 길어지면 힘들어지는 건 나다. 나는 가볍게 테이블을 두들기곤 말을 멈추게 한 뒤, 말했다.
“면담 요청 이유가 뭐……예. 클라라니 문제죠?”
그러자 웃음기 가득하던 클라라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여전히 미소는 걸려있지만 어두운 표정이라.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조금 전 낙천적 태도와는 비교될 정도로 극히 조심하는 모습.
“감독님, 클라라니, 얘가 여러모로 심기를 거슬렸죠. 그렇죠. 암, 그럼요. 그런데…….”
“팀에서 겉돌겠네요.”
“……네.”
그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 온 친구들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고, 뭐 다른 선수들도 굳이…….”
“친하게 지내고 싶은 유형은 아니겠죠. 그것도 우리 팀 선수들이라면.”
팀의 분위기가 애당초 클라라니와는 거리가 멀다.
기존 선수들하고 색깔도 몹시 다르다. 그나마 놀기 좋아하는 앤서니가 있기야 하지만-
그래도 애는 착해. 악독한 클라라니랑은 궤가 다르지.
“으흠, 제가 주장 역할을 잘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선수들끼리 사이좋게-”
“리처드. 학교 다녀 보셨죠.”
“네, 물론이죠?”
“한 학급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친하게 지냅니까?”
“…….”
“누군가는 따돌림당하고, 누군가는 소외받고, 누군가는 괴롭힘까지 당하죠.”
나는 리처드의 미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치의 이상할 것도 없는 평범한 현상입니다.”
“감독님, 하지만 그런 애들까지 다 품어줘야…….”
“그리고 여기는 축구단입니다. 성인이고, 프로 선수죠.”
“…….”
“솔직히 우습지 않나요? 제가 클라라니 데리고 가서 선수들한테 친하게 지내라, 이 한마디 하는 거?”
리처드의 입가에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면, 클라라니 쟤는…….”
“신경 안 씁니다.”
“……!”
리처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을까. 그가 황급히 말했다.
“엄청 혼내시고, 어떻게든 깨달음을 주려는, 그런 것 아니었나요?”
“혼낸 건 맞는데요, 깨달음이요?”
“…….”
내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를 내뱉자, 리처드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무슨 말 하는지 알겠네요. 이것저것 얘기 많이 들으셨겠어요. 주장으로서. 가령 앤서니가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뛰게 됐는지, 스탠리가 부상 트라우마를 떨쳐낸 이유도, 제임스가 포기하지 않고 재능을 발휘하게 된 사실도.”
“……감독님이 다 선수들을 그렇게 끌어와 주셨다고.”
“네. 맞습니다. 다만 그 선수들은 따라왔어요.”
“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기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힘껏 따라왔습니다.”
“……”
“클라라니와는 많이 다르죠?”
리처드가 말을 잃곤 침묵했다. 나 혼자 말을 천천히 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때의 맨스필드와 지금은 다릅니다. 그땐 정말 힘들었거든요. 사정도 좋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는 구단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말 그대로 알뜰살뜰입니다.”
“알뜰, 살뜰?”
“단점을 지우고, 장점만을 살려서, 전술을 수없이 고치고, 막스 수석코치와 머리를 맞대면서 고민하고 또 고심하고, 그렇게 새로운 방식을 만들고……네,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어깨를 으쓱였다.
“왜 그랬냐고요? 선수 한 명, 한 명이 소중했으니까. 필요했으니까. 선수의 기량, 잠재력, 전부, 그 사람의 모든 걸 바닥까지 긁어서 써먹어야만 했으니까. 우리는 그런 팀이었으니까.”
그랬다. 과거의 맨스필드는.
그러나 지금.
“우리는 포기할 수 있는 팀이 됐습니다.”
“……포기요?”
“포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절박한 팀은 포기할 수 없어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어떻게든 해야만 합니다. 포기는 말이죠.”
나는 후, 한차례 숨을 골랐다.
“있는 자들의 것입니다.”
“……!”
“포기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그냥 잠깐 타격을 입고 마는, 아무렇지 않게 훌훌 털어낼 수 있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용기고 미덕이 아니다. 없는 자의 간절함일지도 모른다.
“클라라니를 포기하는 거 말이죠. 예. 우리는 이제 해도 됩니다.”
“……!”
뭐, 구체적인 이유를 들면 자유계약이었고, 리그 원에서 계약했기에 주급도 높은 편이 아니며……
“우리는 이제 챔피언십 구단. 알바로 카스티노라는 월드클래스가 소속된 클럽. 앤서니 로우라는 희대의 천재성을 지닌 잠재력의 선수가 성장하는 소속팀.”
“…….”
“그리고 나 유진이 지휘하는 맨스필드니까요.”
잠시간의 침묵이 있었다.
나는 아무 말 못 하는 리처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클라라니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
“자신 정도는 포기할지라도, 이 맨스필드는 타격 입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리처드 뒤.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열린 문틈을 향해서.
“알겠습니까. 클라라니 선수?”
클라라니가 굳어진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 * *
“리처드 선수. 이만 가보세요. 나가실 땐 문 꼭 잘 닫고요.”
클라라니는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봤다.
리처드는 확실히 좋은 주장이었다. 훈련장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계속 챙겨주는 선수였고, 지금도 감독을 따로 찾아와 얘기할 정도니.
하나 클라라니는 고마움을 느끼긴 어려웠다. 정확히 말해서는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포기, 해도 아무렇지 않다고?’
순간 가슴이 팍,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그 말은, 자신의 모든 걸 부정하는 대답이었다.
그가 반즐리에서 태업할 수 있던 이유.
어떤 감독도, 클라라니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력뿐만 아니다. 클라라니는 그 간극을 잘 알았다. 무작정 태업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감독이 안 쓰고 배길 수는 없는 최선의 플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일종의 밀당에 가까운-
그것으로 클라라니는 하고 싶은 걸 다 이뤄냈다.
하지만 지금의 감독은, 저 테이블 앞에 앉아 무심한 시선을 던지는 저 감독은.
“……가혹하시네요, 정말.”
“예. 맞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죠.”
“이번 시즌 영입한 새 선수를 몇 번 써보지도 않고 포기를 한다, 아무리 자유계약이라도-”
“선수. 감독이 쓰지 않겠다면, 필요 없는 겁니다.”
“……!”
“적어도 내 구단에선 그래요. 그 같은 결정을 막을 수 있는 건, 감독과 선수 사이의 신뢰, 그 이상의 밀접한 관계, 유대감입니다.”
“…….”
“당신과 나 사이엔 없는 거죠. 그러니 제가 당신을 포기한다고 해서 내가 감정적으로 아프거나, 클럽 측면에서 손해인 점은 없습니다.”
클라라니는 여기까지 오던 각오가 모조리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권리를 얻어내려고 했던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나에게 특별한 실력을 강조하지도 못했죠. 적어도 앤서니, 대니 스콧 정도가 아니고서야 인상적이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어떤 감정적인 요소를 심어주지도 못했어요. 토마스 캐롤이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 선수는 제 감정을 끝까지 잡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죠.”
“감정…….”
“이쯤 하면 알아들었을 겁니다.”
클라라니는 이전처럼 언성을 높이거나 눈을 부라리거나, 지지 않고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패기 넘치던 그 기질 전부가 사라진 듯했다.
아니 그럴까.
“나는 당신에게 어떤 감정도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포기할 겁니다. 아무렇지 않게요.”
그 순간.
클라라니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한참 유진을 쳐다보곤.
쿵.
무릎을 꿇었다. 바닥은 차가웠다. 그리고 그 차가움을 한동안, 한없이 유진은 지켜봤다. 마치 클라라니가 얼마나 버티고 있을지 보겠다는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유진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말을 알아듣긴 했네요. 감정적 요소. 무릎을 꿇어서 내가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래 부채감이요.”
“…….”
“이제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독과 선수로서 말이죠. 아니, 정확히는, 보스로서 말입니다.”
* * *
제임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성실한 선수다.
그리고 축구단만큼 위계가 중요한 스포츠 문화에선, 막내에게 성실함이 더욱 강조되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때문에 제임스가 훈련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도 평상시의 일상과 같았다.
“으, 아침은 쌀쌀하- 어?”
제임스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훈련장엔 사람이 있었다. 요즘은 코치님들도 많이 바빠서 자기보다 늦게 훈련장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가 많았는데-
아무도 없는 훈련장이 익숙해졌던 제임스에겐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래, 자신보다도 먼저 오는 선수가 있을 법도 하지.
새로 온 선수 중에 간지뉴도 빨리 오는 편이고, 포레스트 패밀리들도 대개 성실한 편이고-
그런데.
“클라라니?”
“……뭐야, 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훈련용 콘을 바닥에 세우고 있던 클라라니는 제임스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작 당혹스러운 건 제임스였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출근한 거에요?”
“보면 몰라?”
표정 찌푸리면서 짜증 내는 거 보니 클라라니 맞는데…….
“왔으면 도와. 훈련 세팅해.”
“일찍 나와서 훈련장 세팅도 하고 있다……?”
그거, 팀 막내가 하는 거 아냐?
제임스의 흐려지는 말끝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 클라라가 화를 냈다.
“그걸 설명해 줘야 알겠어? 어? 네 일이잖아. 도와주는 거니까 그냥 입 다물고 와서 하라고.”
“도와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이게 진짜……!”
“감독님이 시켰어요?”
“……!”
클라라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대답할지언정 차라리 무시하겠다는 판단. 그러자 제임스가 옷을 갈아입곤 옆에 와서 콘을 세우고 라인을 그리고 세팅하는데 도와주기 시작했다.
“감독님이 시킨다고 이런 거 하시는구나…….”
“야, 너 진짜.”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클라라니는 고개를 확 돌렸다. 그리고 봤다. 제임스의 살짝 올라간 입꼬리. 그제야 생각났다. 자신이 이 팀에 와서 가장 먼저 분위기 파악 겸 희생양으로 생각했던 얘도…….
‘빌어먹을. 그 감독에 그 선수라더니.’
만만치 않았다.
“웃지 마.”
“안 웃었어요. 그런데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요, 정말 감독님이 시켰어요? 아침 일찍 와서 훈련 준비하라고?”
“…….”
“정말로요?”
“…….”
“그걸 시킨다고 진짜로 해요?”
“…….”
“저보다 열 살 정도 많지 않나?”
“……야.”
클라라니가 이를 아득 씹었다.
이젠 팀 막내에게 놀림거리까지 되는 신세라니.
클라라니는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대체…….’
그래. 그 감독.
유진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가 했던 말도, 목소리도. 전부. 머릿속에서 절대 잊히지 않을 것처럼 선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