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3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34화(235/266)
234. 클라라니 덕분에 (4)
맨스필드가 사랑한 수비수.
존 젠킨슨.
그의 선발 출전에 관중석이 들썩였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리그 17라운드, 리그컵 3라운드까지, 총합 20경기 동안 교체로 몇 번 얼굴을 드러냈을 뿐.
선발 출전은 처음이었으니까.
사실 그간 팬들은 아쉽고 안타까워했다.
“우리 캡틴이 이제는 은퇴할 때가 온 거구나…….”
“캡틴 없는 맨스필드라니.”
“오래 뛰었지. 챔피언십에서 활약하기엔 지난 시즌에도 갈수록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전 세계 축구 클럽으로 확대해도 유스 출신 원클럽맨 주장이란 케이스는 이젠 흔치 않다. 비단 선수의 충성심뿐만 아니라 구단의 재정, 환경, 새로 부임하는 감독마다의 스타일, 그리고 꾸준히 하락할 수밖에 없는 기량 저하.
선수가 스스로 다른 팀으로 떠나거나.
아니면 구단에서 매몰차게 내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구단도, 선수도 모두 공통된 마음으로 원클럽맨으로서 뛰려면 정말 여러 조건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젠킨슨은 그런 선수였다. 하나 그랬던 선수가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폼 저하가 뚜렷해지더니, 이제는 아예 출전조차 못 하는 상황에 사람들은 울적해했다.
다들 어쩔 수 없음을 알았다.
챔피언십 무대에서 노쇠한 젠킨슨이 활약한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젠킨슨 선발?”
“맙소사!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젠-킨-슨!”
그러니 라인업이 발표된 직후, 팬들이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오랜만에 필드에 모습을 드러내는 젠킨슨에 팬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한편으로는.
“본머스 얘네 리그에서 우리한테 지기야 했지만, 공격수들 발 빠르잖아?”
“너무 상극 아닌가?”
“쟤들 스트라이커 진짜 빠른데- 그, 다람쥐 같은 놈. 생긴 것도 그렇고.”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팬들은 무너지는 젠킨슨, 늙어서 수비를 하지 못해 자책하는 그들의 영원한 주장을 시야에 담고 싶지 않았기에.
하지만 사람들이 일부 착각하는 요소가 있다. 유진이 젠킨슨에게 1년 계약 연장을 제시한 일은 단순히 원클럽맨, 주장에 대한 대우라는 생각 말이다.
틀린 얘긴 아니다. 유진 역시 대단한 역사가 없는 이런 클럽에 원클럽맨이라는 상징성이 가지는 무형의 영향력을 이해했다.
다만 그런 상징조차, 유진은 팀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치워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즉.
젠킨슨의 계약 연장에는 존중의 의미뿐 아니라-
“Wuuuuuuuuuuu-!”
“저 개같은, 경고를 줘! 레프리!”
“퇴장, 퇴장 주라고!”
선수로서의 활약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본머스 원정 팬들이 쏟아내는 야유가 그 증거였다. 젠킨슨은 본머스의 발 빠른 스트라이커 스벤 다익트라를 말 그대로 날려버렸다.
날카로운 패스를 받고 파고드는 모습에 날다람쥐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스벤 다익트라는, 길목을 막아서는 젠킨슨을 비껴가지 못했다.
한번이 아니었다.
“커헉!”
전반 10분은, 스벤 다익트라의 수난이라고 제목을 붙여야 할 정도였다. 젠킨슨의 플레이는 간단했다. 그의 반사 속도, 동체시력, 근육의 유연성은 결코 발 사이를 비켜 가는 빠른 패스의 공을 차단하진 못했다.
그건 파트너인 헤일러가 담당해야 할 몫. 젠킨슨은 오로지 하나.
“빌어먹을, 쫌, 그만!”
스벤 다익트라만 막았다.
그야말로 징그러울 정도로 끈질긴 맨 마킹은 젠킨슨이 그간 쌓아온 경험으로 한층 노골적으로 다익트라를 괴롭혔다. 이는 본머스의 모든 공격의 방점이 스벤 다익트라의 발끝에서 이뤄지는 점을 정확히 노린 것이다.
물론 고작 맨 마킹 하나로 무너질 정도로 형편없는 팀은 아니었지만-
일단 10분 동안 젠킨슨은 자신이 왜 맨스필드에 남아 있는지, 그 이유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속된 말로 스벤 다익트라를 발라버리는 사이.
거듭된 공격 전개가 막히면, 분위기는 반대편에 넘어가기 마련이다.
투웅-!
공이 중앙의 톰 뉴톤에게 향했다. 톰 뉴톤은 본래 수비수지만 한 단계 올라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소화했다. 그는 짧은 패스로 좌측의 톰 브룩스에게 보냈다.
쓰리 톰 중 두 명의 톰 미드필더 조합은 조직력과 호흡 면에서는 많은 단점을 불식시킬 정도로 훌륭했다.
투웅-
툭, 툭!
짧게 패스하고, 나가고, 다시 뒤로 돌고, 패스, 패스, 패스.
본머스의 두터운 중원을 부수기 위한 맨스필드의 중원은 짧은 패스와 왕성한 활동량으로 승부를 보았다. 그간 리그와 리그컵 경기로 어느 정도 피로가 쌓인 본머스의 주전과 달리, 맨스필드의 로테이션 멤버들은 시즌 초반 팔팔하고 왕성한 체력을 그대로 보유 중이었다.
“이 귀찮은-”
“파리같이, 그냥 눌러버려!”
물론 체력과 활동량만으로, 맨스필드의 미드필더 조합이 본머스를 이겨내는 건 불가능이었다.
간지뉴와 테셰이라가 없는 지금의 중원은 확실히 밀렸다. 하물며 활동량이라고는 0에 가까운 대니 스콧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여기서 유진이 꺼낸 카드가 바로 인버티드 윙백, 브랜들리 스탠리였다.
“마, 마크해!”
“자리 지켜!”
중앙과 어태킹 서드(Attacking third)까지 파고들면서 때때로 미드필더, 윙어, 공격수-
그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스탠리는 말 그대로 물오른 기량을 여실히 뽐냈다.
왕성한 활동량은 물론, 젠킨슨도 질투하면서 탄식했던 수비 능력.
거기에 본래 윙어로서 활약해 왔던 빠른 발과 공격적인 성향. 나아가 제2의 베컴이라고 불렸던 킥 능력.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스탠리는 자신의 축구 인생, 아니 그냥 인생 자체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아버지와 화해, 경기장에서 늘 보이는 사랑하는 가족.
거기에 신의 손이라 불리는 닥터 스탠리의 꾸준한 케어. 모든 선수에게 공평한 신의 손이라지만, 그래도 자식을 좀 더 세심히 챙기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닥터 스탠리의 손길로 스탠리는 전 경기 출전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성된 몸 상태였다.
누군가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안경을 벗고 봤다간, ‘어? 마르셀루?’라고 착각할 정도의 플레이.
앤서니와 영입 선수들의 활약에 가려졌지, 전 경기 출장에서 알 수 있듯이 스탠리야말로 유진이 라인업에 가장 먼저 올리는, 만능의 열쇠였다.
투욱!
스탠리가 중원 조합에 가세하자 순식간에 승부의 추가 기울어졌다.
중원에서의 볼 장악 능력, 공간 장악까지.
스탠리가 가세하면서 주도권이 딱 한 차례 넘어오는 순간.
툭!
지금까지 주시하고, 또 주시하고, 끝없이 필드를 머릿속에 담고, 또 담아왔던.
한 선수.
“…….”
대니 스콧의 발끝에 공이 왔다.
본머스 선수들의 털이 일순 빳빳하게 쭈뼛 섰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각.
필드에서 불어오는 바람, 피부에 닿는 땀이 섞인 그 공기의 질감이 확연히 바뀌는 순간.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공이 발끝에 닿는 순간 대니 스콧은 차올렸다.
뻐엉-!
마치 모든 길을 이미 보고 있었다는 듯이.
그리고 그 궤적의 끝에는.
“클라라니-!”
그가 뛰고 있었다.
* * *
솔직히 말해 클라라니는 유진에게 한마디 따지고 싶었다.
16강 전 선발.
가슴에 희열이 차올랐다.
하위 팀에게 리그컵의 중요성이 크다는 걸 고려하면, 그래. 중요한 경기다. 그런 경기의 선발 출전이라니 긴장되면서도 클라라니는 어떻게든 보여주고자 절치부심했다.
‘옛날로 돌아간 것 같군.’
코치들은 그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여러 지침과 훈련을 진행했다. 자신만 콕 찝어서.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다. 코치 앞에서 개인 훈련을 진행하는 건 압박감도 장난 아니니까.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했다.
자신이 한창 어렸던 때.
모든 팀의 막내가 그렇듯 허드렛일을 하고, 끝까지 남아서 훈련하고-
거칠 것 없던 그에게도 그런 과거쯤은, 특이할 것도 없이 당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가 가장 순수했던 시절일지도 모른다.
클라라니는 불쑥 드는 감상을 애써 털어내고 집중했다.
그가 이를 악물고 유진에게 굽히고 철저하게 인내하는 것도.
지금의 이 순간을 위해서니까.
‘활약하고, 이기고, 팬들에게 완벽히……받아들여지는 거야.’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
이는 감독조차 섣불리 건들기 어렵다. 클라라니는 그 목표를 세웠다.
하나.
‘왜 다 로테이션, 아니 백업인데?’
스탠리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로테이션과 백업 멤버로 이뤄진 라인업.
‘상대는 같은 챔피언십이라고.’
이런 라인업으로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팀이 부진하면, 그 경기에 뛰는 선수들 개개인의 평가도 박해지기 마련이다.
클라라니는 끝까지 저를 괴롭히려는 유진의 악의를 느낀 듯했다.
하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15분쯤 지나는 순간까지.
클라라니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대체 왜?’
전체적으로 밀리는 경기 양상이지만, 팽팽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였다.
“빌어먹을!”
“뛰어, 런, 런-!”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중요한 경기긴 하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경기는 아니지 않은가.
클라라니는 봤다.
모든 면에서 벅참을 느끼면서도, 이를 악물고 공격수를 막는 젠킨슨을.
전체적으로 밀리는 게 분명한데도, 바닥을 구르고 넘어지면서라도 대니 스콧을 보호하며 중원을 지키려는 톰 뉴톤과 톰 브룩스를.
무언가 달랐다.
‘절박해서?’
저들은 로테이션이니까, 백업 멤버니까.
주어진 기회를 잡으려고 발악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실력이 확 뒤바뀌진 않는다. 주전은 주전이고, 백업은 백업이다. 주전이 하고 싶으면 다른 팀을 가야 한다. 어지간해서, 그렇다.
‘그걸 모를 정도로 순수해?’
누가 알아준다고. 그래, 잠깐 환호받고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결국 며칠 내내 환호를 듣는 건, 기사에 승리의 일등 공신이라는 문장이 새겨지는 건…….
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공격포인트를 기록해 내는 선수일진대.
그 순간.
클라라니는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이 달라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봤다.
저를 향한 단호한 눈빛을.
대니 스콧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왜?’
잠깐의 의문은 찰나에 불과했다. 생각은 잇지 못했다. 그 순간 대니 스콧의 발끝에 공이 왔고, 동시에 떠났다.
―간단합니다. 당신은 왼쪽 윙어로 출전해서 기회가 오는 순간 달려가면 됩니다.
며칠이고 코치진에게 따로 불려 가 훈련을 따로 받았지만…….
막상 내려진 지침이라곤 그리도 간단한 것이었다.
시킨 대로 한다지만, 툭 튀어나오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봤을까.
유진이 실소하며 말했었다.
―대니 스콧이 패스를 해줄 겁니다. 한번 느껴보세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클라라니는 뛰고 있었다. 오로지 이것만 훈련했다. 순간적으로 상대 라인을 허물고 뛰어가는 움직임과 동선. 그리고 소름 끼칠 정도로, 자신이 나아가는 궤적으로 뻗어가는 패스의 곡선까지.
―패스는 정확하고 정교하며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울 겁니다.
그랬다. 실로 그랬다. 클라라니는 오소소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훅훅 스쳐 가는 바람의 역류가 그의 몸을 뜨겁게 덥혔다.
―그 패스에 오답은 없습니다. 오류도 없습니다.
그리 말하는 눈은 신뢰로 빛났었다. 클라라니는 우습게도, 그 눈빛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무기질적이고, 차가운 시선과는 다른 확신의 눈빛.
유진에게 그런 신뢰를 받는 패스라는 게, 그런 선수라는 사실이-
부정했지만, 부러웠다.
그리고 이젠 이유를 알았다.
“……!”
“미친!”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욕설. 쏟아지는 관중의 야유. 들썩거리는 경기장. 그리고 자기 발 앞에 뚝, 떨어지는 궤적의 끝.
―그러면 잘하시는 걸 하면 됩니다. 달리고, 흔드세요. 수비수를 속이고, 농락하세요.
그간 클라라니가 자존심 상하는 허드렛일이나 도왔다지만, 그의 실력은 진짜배기였다.
성큼성큼 뛰어가는 전진성.
거기에.
툭, 툭, 툭!
“――!”
수비와 극히 좁은 간격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팬텀 드리블과 유연하게 들어가는 페인트 동작.
한 명, 두 명-
브라질리언의 특유의 테크닉도 갖췄다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극한의 집중력 끝에 클라라니는 수비를 허물었다.
그리고 골키퍼-
‘지금!’
클라라니는 알았다. 선수로서 필연코 오는 감각. 찬스의 타이밍이라고.
―슈팅, 하지 마세요.
“……!”
하나 그 순간, 클라라니는 유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하지 말라고?’
그래, 맞다. 그런 지침은 흔하다. 슈팅을 자제하라, 패스에 집중하라.
슈팅력이 다소 부족하거나, 전술 성향상 정확한 찬스와 슈팅을 노리면서 슈팅에 신중하라는,
그래, 그런 지침이다.
―아니요.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더라도, 아니 골키퍼가 없는 빈 골대라도, 하지 마세요. 슈팅.
공격수에게 실로 치욕적인 발언이자 지침.
무시하면 그만이다. 아니, 유진도 알 것이다. 지금은 슈팅해야 한다고. 못 넣더라도 일단 때리고 봐야-
‘아.’
그 순간.
클라라니는 일순 시야가 넓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공과 바로 정면 골키퍼만으로 좁혀졌던 시야가, 마치 180도, 240도, 그 이상으로 벌어지는, 와이드 모니터로 앞이 보이는 듯한 감각.
툭.
클라라니가 공을 찼다.
자신을 향해 튀어나온 골키퍼의 옆으로, 달려가고 있는 해리 오스카를 바라보며.
보다 더 ‘완벽한 찬스’의 패스를.
철렁-!
“고오오오오오오오올-!”
“오-스-카!”
클라라니는 득점을 넣고 자신을 향해 어깨동무하는 오스카에게 꽉 안기며, 봤다.
유진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음을.
그래, 했다.
클라라니는 시킨 대로.
차갑고 무기질적이었던, 평소 자신을 바라보는 유진의 눈빛이 조금은 달리 보인 건, 결코 착각이 아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