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36)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35화(236/266)
235. 클라라니 덕분에 (5)
“슬슬, 선수들 교체가 필요해 보이는데.”
막스가 말했다.
전반전, 클라라니의 어시스트, 오스카의 선제골로 앞서간 후반전인 지금.
스코어는 그대로였지만 솔직히 말해 경기 양상만 떼어놓고 보면 본머스가 이기고 있는 경기나 다름없었다. 중원의 조합은 본머스의 미드필더를 이겨낼 수 없었고, 스탠리가 가세하는 순간만 반짝 팽팽해질 뿐이었다.
본머스의 베스트 일레븐 퀄리티는 확연히 좋았다. 로테이션 멤버와 스쿼드의 질적 차이가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받는 구단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베스트 일레븐이 훌륭하단 뜻이다.
본머스 미드필더 무뇨탕의 패스는 날카로웠고, 콘도르바의 차단 능력은 빛났으며, 전진패스를 쏘아 보내는 랄프로손의 킥은 강렬했다.
문제는.
“저 늙은 개를 죽여버려!”
“반칙을 몇 번이나 했는데 이제 경고 주는 게 맞냐고-!”
“우우우우우!”
본머스는 특이할 정도로 원톱 지향적이었는데, 공격의 방점을 찍는 스벤 다익트라에 몰빵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런 스벤 다익트라가 젠킨슨의 지독한 맨 마킹에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저 늙은이 백업이라면서?”
“누가 보면 회춘한 줄 알겠네.”
스벤 다익트라는 ‘vliegende eekhoorn’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일명, 날다람쥐.
잽싸고 통통 튀는 움직임으로 수비를 파고드는.
굳이 따지면 젠킨슨과는 상극이었다. 움직임이 둔해진 젠킨슨이 쫓기에는.
하지만 그 말은 반대로도 해석이 된다. 스벤 다익트라가 젠킨슨의 거친 플레이에 정면으로 부딪치면 이겨내기 어렵다는 뜻도 성립된다.
젠킨슨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벤 다익트라만 노렸다. 패스고, 차단이고, 라인 조정이고 나발이고- 오로지 전부를 다익트라에게 걸었다.
“하지만 이젠 한계야. 슬슬 놓치고 있어. 체력적인 문제도 있고, 체력은 결국 집중력으로 연결되잖아?”
막스의 말대로였다.
후반전 들어서 젠킨슨은 다익트라를 완벽하게 마크하지 못했다.
이전처럼 교묘하게 무너뜨리지 못해서 반칙을 일삼았고, 몇 번의 파울 끝에 결국 경고받았다.
“저러다 퇴장이라도 당하면……”
전체적으로 주도권이 완벽하게 넘어갔다. 대니 스콧은 45분 이상 뛴 것이 기적이었다. 물론 거의 뛰지 않고 시즈 모드를 박은 채 패스만 쏘아냈지만-
그의 맹견들도 지친 게 확연한 가운데,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막스의 조언은 상황에 적절했다.
“젠킨슨 대신 갈랑, 톰 뉴톤, 대니 스콧 대신 테셰이라, 간지뉴, 오스카 대신 앤서니- 계획했던 대로 투입하지.”
특히 앤서니에게 따로 한마디를 더 했다.
“앤서니.”
“네에에.”
“딱히 말이 필요 없겠지만, 오늘은 원래대로 플레이해도 됩니다.”
“원래대로오요?”
“내려오지 마요. 압박하지 마요. 활동 범위 크게 가져가지 마세요.”
“흐으응.”
“골문 앞에서, 족족 오는 패스만 받아서, 족족 넣기만 하세요.”
앤서니의 광대가 꿈틀거렸다. 하나 희미한 걱정 어린 기색이 떠올랐다.
“대니 스콧 교체 중인데에에.”
“걱정 마세요. 패스는 갈 거니까. 들어가면서 클라라니한테 전달해요. 시킨 대로 하라고.”
“네에!”
앤서니가 싱글벙글 웃었다.
* * *
“헤이.”
“……헤이?”
클라라니는 헛웃음을 치면서 손가락 두 개를 피는 앤서니를 바라봤다.
“나 두 골 넣어야 해.”
“넣을 거야가 아니라, 넣어야 해?”
“저 근육 아저씨가 한 골 넣었으니까, 나는 두 골은 넣어야지.”
“……그래서?”
“시킨 대로 해.”
클라라니는 열 살은 족히 어린 이 맹랑한 꼬마를 쥐어박고 싶었다.
하지만 클라라니는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자타공인 앤서니가 팀의 에이스임을 누가 모른단 말인가. 어느 팀이나 그렇듯, 에이스에겐 조심해야 한다.
“시킨 대로-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한다고?”
그래서 최대한 참고 물었다.
“아니. 감독님.”
“아.”
“시킨 대로 하래. 알겠지?”
클라라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앤서니를 보면서 불쑥, 아니꼬운 마음이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흘끔, 앤서니 얼굴 뒤의 벤치에서 유진이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래, 시킨 대로.”
클라라니는 후 숨을 내뱉었다.
* * *
플레이 메이커, 대니 스콧의 부재.
지금 맨스필드의 필드에는 창의적인 패스를 만들어 줄 선수가 없었다.
물론 테셰이라도 꽤 괜찮은 패스를 할 줄 알고, 스탠리 역시도 훌륭한 패스를 보내곤 하나.
경기의 향방을 뒤흔들 패스는 어렵다.
이 패스란 것이,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툭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전술을 아무리 잘 짠다고 해도, 필드의 상황과 타이밍을 읽어내며 소름 끼치는 패스를 보여주는 건 선수의 재능이 절대적인 영역을 차지하니까.
그러니 지금 맨스필드는 일종의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라고 본머스의 감독, 빅터 랜슨은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주도권을 다시 가져와서 골도 노리고, 여차하면 이대로 끝내겠다는 노골적인 모습이군.”
도리어 완전히 수비적으로 가면, 주도권을 넘겨준 상황에서 아예 무너질 수도 있다.
차라리 선수들을 균형 있게 배분해서 때때로 위협적으로 공격도 할 수 있으면서, 철저하게 틀어막을 수 있는 밸런스를 조정한 것이다.
빅터 랜슨은 나직이 감탄하고 말았다.
“경기 운영이 절정에 달했군. 백투백 우승이 괜히 나온 건 아냐.”
승격이나 우승을 위해서 필요한 건, 전 경기의 승리가 아니다.
비길 경기는 이기고, 질 만한 경기는 기어코 무승부를 만들어 내는 끈질김과 노련한 경기 운영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빅터 랜슨은 유진이야말로 수준 높은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빅터 랜슨도 그에 곧장 대응했다.
“그래, 하지만 아직 시간은 30분이나 남았어. 두 골이 들어가기 충분한 시간이지. 애당초 오늘 경기, 우리는 오스카가 아니라 앤서니를 목표로 대비했다고!”
두 골이면 역전할 수 있다. 빅터 랜슨은 베스트 일레븐을 출전시킨 이상, 결과를 가져가야 했다.
놀랍게도,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30분 동안, 두 골이 터졌으니까.
“시발…….”
물론, 본머스가 넣었다는 뜻은 아니다.
두 골째를 넣고 관중 앞에서 이상한 춤을 추는 앤서니를 바라보면서, 빅터 랜슨은 절망했다.
* * *
“이게, 되네?”
대니 스콧의 부재 속에서 앤서니가 최전방에 틀어박힌 채 골만을 노리는 플레이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유진이 이 악물고 티모 코르넬리스 영입을 노렸던 점도, 알바로 카스티노 영입을 성사한 이유도 결국 완벽한 플레이 메이커야말로 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나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으로 흉내 낼 방법은 있었다.
클라라니는 자신이 만들어 낸 두 개의 어시스트가 앤서니의 득점으로 연결된 것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그냥 더 뛰고, 약속된 공간으로 파고들고, 윙어가 아니라 인사이드 포워드로 스타일을 바꾼 것뿐인데.”
정확히는 유진이 시킨 대로 했다.
따로 불러내서 며칠이고 훈련했던 그 방식과 지침.
그저 했다.
슈팅을 하지 않고, 기회가 생겨도 오로지 패스만 했다.
물론 모든 패스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막히거나, 차단당하거나, 튕기거나, 뺏기거나-
패스가 막힌다고?
―패스 성공률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우세요. 테셰이라, 간지뉴가 공을 뺏고 차단하고 계속해서 공급해 줄 테니, 무조건 많은 패스를 하세요.
그 무수한 패스 중에 단 두 번.
어떻게든 발끝에 연결된 그 두 번의 패스는, 대니 스콧의 소름 끼치는 패스만큼 득점에 근접하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좁은 공간. 최전방. 골키퍼 앞.
평범한 패스조차 어시스트로 만드는, 앤서니의 결정력이 있었으니까.
“이제 8강이다-!”
“앤-서니!”
응원하는 관중들 앞에,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모였다.
당연히 가장 이쁨받는 앤서니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컸고, 전반전 오랜만에 선발 출전했던 존 젠킨슨의 이름이 그다음, 오스카, 대니 스콧-
모든 선수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연호하고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클라라니가 나온 순간.
누군가 외쳤다.
“MOM!”
맨 오브 더 매치.
경기의 주인공.
아니다. 오늘 공식 MOM은 두 골을 넣은 앤서니인데-
“오늘 최고였어!”
“어시스트 해트트릭 했잖아!”
“경기 못 나온다고 마음고생 좀 했지? 그러니까 유진한테 처신 똑바로 하고 계속 출전하라고!”
팬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꽂혔다.
솔직히 말하면, 단 한 번도 귀를 기울여 본 적 없는 팬들의 외침이었다.
클라라니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네 덕분에 이겼다고!”
그 마지막 외침이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 * *
[맨스필드, 리그컵 16강전에서 본머스 3대 0 완파!] [본머스 킬러, 앤서니의 발끝 빛났다.] [로테이션 멤버의 대활약, 맨스필드의 뒤엔 노장이 버티고 서 있어. 젠킨슨 최고의 수비력으로 클린시트 견인!] [어시스트 해트트릭, 이적 후 최고의 활약을 펼친 클라라니. 팬들의 환호에 눈물 글썽여] [주전도, 로테이션도, 전부 강하다. 유진의 맨스필드, 리그컵 우승 레이스에 진심으로 임하나?] [챔피언십 6위, 리그컵 8강. 승격팀이란 사실이 무색하게 훌륭한 모습을 보이는 맨스필드. 다시금 피어오르는 구단 인수설, 미국 자본 유입된다는 루머]* * *
클라라니는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다.
시킨 대로 잘해줬다.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서 칭찬도 해줬다.
별 같잖은 소리 정도로 치부했으리라. 과거의 클라라니였다면.
하지만 클라라니는 묵묵히 그 칭찬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수단의 분위기도 좋았다. 승리는 마력이다. 아무리 좋지 않은 감정마저도 씻겨내는, 팀 스포츠의 강렬한 마약이라고 할까.
물론 끝난 건 아니다.
[리그 18라운드, 리즈 유나이티드와 2대 2 무승부를 기록한 맨스필드.] [맨스필드, 선수 모두가 강해. 리그컵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클라라니 두 경기 연속 제외하고도 19라운드 노리치 1대 0 격파! 1승 1무!] [A매치 기간 돌입, 찾아오는 박싱데이에 대비하는 챔피언십 구단들.]기세등등했던 클라라니는 이후 두 경기에서 결장했다.
클라라니가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제 감히 따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시킨 대로, 여전히 아직도 클럽하우스에서 상주하며 잡일을 하고 있었다.
뭐, 이쯤 되면 풀어줄 만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경기 못 할 때도 기세등등했던 친구를, 한 경기 잘했다고 풀어주면 어디까지 거만해지겠습니까?”
나는 그런 말로 코치들의 의견을 묵살했다.
아무튼, 클라라니는 그렇게 ‘로테이션 멤버’로서 팀에 녹아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전에 가까워지겠지.
그거야 이제 클라라니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박싱데이라는 고통의 기간 전에 클라라니라는 좋은 카드를 활용하게 됐다는 사실만큼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고무적이었다.
“리그 7위라.”
승격 플레이오프는 3위부터 6위까지다.
다이렉트 승격은 2위 자리고.
우리 성적은 분명 훌륭하다. 많은 전문가나 팬들도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고 다들 만족하고 있으니까. 하나 나는 결코 이 순위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패배와 무승부가 문제인데.”
공격력은 문제가 없다. 앤서니는 지금 리그 최고 공격수 페이스였고, 그 뒤를 받쳐주는 오스카는 여전히 든든하기 짝이 없다.
즉, 더 높은 순위에 오르려면 공격이 아닌.
“수비.”
젠킨슨의 부재는, 수비 라인을 진두지휘하던 리더의 목소리는…… 생각보다도 더 컸다.
“문제점이 있으면, 고쳐야지.”
나는 대형 전술 보드, 그리고 보드의 최후방에 자리한 자석을 바라봤다.
4번의 등번호.
갈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