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38)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37화(238/266)
237. 명분 (2)
맨스필드는 수비력이 약하다-
라는 명제를 다른 구단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아닌데?”
“맨스필드가 실점률이 높은 팀이 아냐.”
“도리어 낮은 편이지. 리그 6위인데, 이 정도면 뭐- 선방한 거 아닌가?”
챔피언십 구단이 맨스필드에 경계하는 요소는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어떻게 막는가였지, 꽤 준수한 수비력을 어떻게 뚫느냐가 아니었다.
하나 맨스필드 팬들은 조금은 다른 반응이었다.
“스읍. 우리 왜 이렇게 매 경기 조마조마하지?”
“그러게.”
“딱히 우리가 실점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팬들은 알쏭달쏭했다. 현실과 느껴지는 분위기의 괴리감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챔피언십 통계, 득점 1위, 맨스필드 파괴력 넘치는 공격력. 실점률 중하위의 준수한 수비력. 승격 가능성 UP!]여러 지표와 통계, 수치는 명확했다.
맨스필드의 수비력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 도리어 준수하다는 점 말이다.
하나 팬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은 달랐다.
“어후. 지는 줄 알았네.”
“리처드가 진짜 보물이다, 보물!”
“앤서니가 또 골 넣었죠, 이겼잖아, 한잔해.”
결과만 보면 완벽한 승리. 막았고, 넣었다. 하지만 팬들은 경기 내내 느꼈던 불안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우리가 색안경 끼는 건가?”
“색안경?”
“젠킨슨이 없으니까, 그냥 그가 그립다고 생각하려고 일부러 불편한 시선으로 수비를 바라보는 거 아니냐고.”
“음, 그럴지도.”
“아니, 근데 정말 젠킨슨 출전하면 불안한 건 없지 않아?”
“……그러게?”
당장 리그컵 16강에 이어 리그컵 8강전에도 젠킨슨은 선발로 나섰다.
리그컵 8강의 유일한 리그 원 구단인 크루 알렉산드라를 홈에서 맞이했다.
젠킨슨은 왜 자신이 홈구장 필드밀의 수문장이라고 불렸는지, 그 능력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존 젠킨슨의 슬라이딩 태클! 걷어냈습니다!
저러다 잔디에 피부가 쓸리는 게 아닐까, 찢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로 주르륵 넘어지는 슬라이딩 태클.
―박스 앞 혼전 상황, 슛! 막혔어요! 세컨볼 슛! 오, 젠킨슨 허벅지로 막고, 다시 슈웃! 젠킨슨 얼굴로 쳐냅니다!
몸을 날려서 막고, 다시 벌떡 일어나서 또 몸을 날리고,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끝끝내 피를 흩뿌리며 공을 막아버리고 포효하는 젠킨슨의 모습에서 팬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거지!”
“젠-킨-슨!”
“기어코 막잖아, 든든하잖아!”
물론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젠킨슨을 그리워하는, 팀이 사랑하는 수비수, 역사, 전설, 그에 대한 관대한 시선 덕분임은 틀림없었다.
우선 리그컵 8강전 상대는 격차가 분명한 리그 원 소속.
무엇보다도 조금 축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젠킨슨의 수비가 결코 효율적인 측면에서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니, 그건 그냥 차단했어야지. 뺏어야지.”
“그걸 슈팅 허용하는 게 말이 되나? 몸으로 막는다고 다 수비야?”
“그냥 걷어내는 게 아니라 앞에 미드필더한테 패스, 패스해야지!”
일종의 과한 액션이 사람들의 시선을 훔친 셈이다.
더구나 전술 성향도 바뀌었다.
“감독이 확실히 로테이션 멤버를 활용할 땐 안정적인 전술로 가네.”
“라인 높이 안 올리고 밸런스 유지하면서 말이야.”
“굉장히 안정적이야.”
굳이 젠킨슨의 수비 덕이 아니라, 전술적 변화가 더 큰 안정성을 불러왔단 점이다.
종합하자면 약팀 상대로 밸런스 유지형 전술을 택하여 전체적인 경기력이 안정적으로 느껴졌을 뿐. 젠킨슨이 지휘하는 수비 라인이 대단하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하나 어쩌겠는가.
“그래, 수비라면 저렇게 해야지!”
얼굴에 붕대를 감고, 몸으로 슈팅을 막아내며 벌떡 일어나 포효하는 젠킨슨의 모습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팬들에게 ‘든든함’이란 감정을 안겨주는 데에 충분했으니까.
* * *
[맨스필드 리그컵 8강전에서 크루 알렉산드라 1대 0으로 꺾고 4강 진출!] [팀의 원 클럽맨, 노장의 역할. 존 젠킨슨 선발 출전 두 경기, 모두 클린시트 이끌어.] [팀의 정신적 지주란 무엇인가, 존 젠킨슨이 보여주는 노장의 경험과 철학] [맨스필드 타운, 21세기 들어 구단 역사상 최초 리그컵 4강 진출 성과!] [웸블리까지 단 한 팀 남았다, 맨스필드. 4강 전 상대는 프리미어리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 *
리그컵 8강전은 중요한 경기다.
아무리 상대 팀이 리그컵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리그 원 팀이라고 한들.
결국 8강에 올랐다는 건 설령 대진 운이 있다고 해도 엄청난 성과고, 그만한 능력을 갖췄단 뜻이다. 리그 투에서부터 기계적인 조직력으로 경쟁해 왔던, 정말 기계 같았던 크루 알렉산드르는 특유의 두 줄 수비로 토너먼트에서 훌륭한 성과를 보였다.
리그라는 장기 레이스에서는 어려울지라도, 단판으로 결정되는 토너먼트에서는 실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이었다.
그런 팀을 상대로 한 단계 낮은 리그라고 로테이션을 돌리는 건, 사실 위험한 일이다.
“그랬다가 번번이 우리한테 FA컵에서 여러 팀 무너졌지.”
그래. 상위 팀의 로테이션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토너먼트는 특성상 이변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니까.
한데도 늘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해야만 하니까…….”
막스가 피로에 짓눌린 눈을 비볐다.
“영국은 산타를 싫어하는 게 틀림없어.”
그의 자조 어린 목소리처럼, 박싱데이가 찾아오고 있었다.
아니, 그 여파는 벌써 왔다.
박싱데이는 크리스마스 전후로 무조건 경기가 치러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지만.
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선 앞뒤로 거의 한 달간 경기를 연속해서 뛰어야 한다.
그렇기에 리그컵 8강전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로테이션이었다. 사실 리그컵도 하부 팀에겐 중요한 대회기야 하지만, 승격 경쟁하는 리그보다 중요할까.
“앤서니가 사실 그런 요구를 안 했어도, 리그컵 8강은 출전 안 시켰을 거야.”
다행히 오스카는 점점 몸이 느려지기야 하지만, 아직은 쓸모를 증명했다.
8강에서도 그가 넣어 준 득점 덕분에 간신히 승리했다.
리그와 리그컵 포함해서 곧 두 자릿수 득점이 코앞이었다.
“최대한 많은 경기에서 이겨야 해.”
“으으, 너무 끔찍한 목표인데.”
“어려울 것 없어. 득점력이야 앤서니가 공언했고, 닥터 스탠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근육을 너무 잘 쓰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수비를 좀 더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알잖아, 유진. 수비수가 못하는 게 아니야.”
막스는 뿔테 안경을 올려 썼다.
“우리가 만든 전술 때문이라고.”
팬들이 소위 느끼는 체감.
그건 실체 없는 허상이 아니었다.
“우리, 라인 엄청나게 올리잖아, 지금. 불가피해. 도리어 이 정도로 틀어막고 있는 것만 해도, 나는 갈랑의 볼에 뽀뽀하고 싶어지는걸.”
예전부터 그랬듯이 막스는 공격적 성향이 짙다.
수비적인 알롭 코치와 번번이 부딪쳤던 것처럼.
하지만 늘 막스는 의도치 않게 알롭의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공격 지향 전술의 역설.
“수비가 완성되어야 공격이 시작된다. 참, 진짜 어렵단 말이야.”
“젠킨슨으로선 무리였으니까.”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갈랑의 발 기술은 미드필더라고 봐도 될 정도야. 위치 잡고, 상대 패스길 읽는 시야는 무서울 정도고. 발재간이 좋으니 전진 수비해도 무리가 없어.”
“그래서 손댈 게 없다?”
“유진. 전술을 바꿔야 해. 하지만 라인을 다소 내리고 밸런스를 유지하면 골 넣기 쉽지 않아. 우리에겐 90분을 뛸 수 있는 대니 스콧이 없다고.”
전체적으로 라인을 높게 설정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대니 스콧의 부재다. 정확히는 90분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대니 스콧이 없다는 뜻이지.
질 좋은 패스를 공급할 선수가 없으니, 불가피하게 라인을 끌어 올려, 최대한 패스를 전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니까.
“애당초 유진, 네가 영입한 선수들 아니었으면 못 해. 간지뉴의 볼 차단 능력, 테셰이라의 멀티 포지션 활용, 그리고 갈랑의 수비력과 전진 능력, 이것 덕분이라고.”
“그러니까 전술 바꾸는 것밖에 답이 없다?”
막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뿔테 안경을 벗었다.
“유진. 이게 최선 아닐까. 이 정도면, 플레이오프권에선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
“여기서 수비적 불안감, 준수한 실점률도 더 강화한다면 순위야 올라갈 수 있겠지만, 무리했다간-”
“알아. 전술 안 바꿔.”
세세한 지침, 전략은 계속 바뀌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도 혼란에 빠지며, 잘되던 전술 바꿨다가 몇 경기 흔들리기라도 하면 선수나 코치나 모두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수를 바꿔야지.”
“선수를 바꾼다고?”
막스가 눈을 끔뻑였다.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3옵션인 톰 뉴톤이 나쁘진 않긴 한데 갈랑 역할 못 해. 그냥 파이팅 넘치는 친구고. 잠깐 요즘 젠킨슨 뉴스 나온다고 쓰는 거 아니지? 냉정하게 4옵션, 그것도 힘들어. 절대, 절대 무-”
고개를 휘휘 젓던 막스가 일순 말을 멈췄다.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너 또 괜히 잘하는 선수 하나 괴롭히려고 그러지?”
“괴롭힌다니.”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교훈이지.”
막스가 이마를 짚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생하겠군.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야. 살살해.”
“난 늘 살살해.”
“클라라니가 그 소리 들으면 너한테 칼 들고 올 거야. 에휴, 우리 불쌍한 갈랑……. 잘하고 있는데 말야.”
* * *
―리그 21라운드, 노리치가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또 한 번 이어지는 공격 전개! 역습, 역습입니다!
라인을 높이 끌어올리는 팀의 숙명과도 같다.
단 ‘한 방의 역습’을 어떻게 차단하는가.
여러 방법이야 존재한다.
발 빠른 수비수를 배치하거나, 공격 때에도 최후방 수비수만큼은 뒤를 지키거나, 아니면 중원에서 강한 압박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카드를 각오하고 반칙으로라도 막거나.
그도 아니면.
투욱-!
―갈랑, 갈랑, 갈라앙! 깔끔한 차단! 맙소사, 그냥 발끝으로 공격수의 가랑이 사이로 공만 쏙 밀어내 버리는 깔끔한 역습 저지!
그냥 잘하는 수비수를 넣거나.
―긴 다리만 쭉 뻗어 공만 밀어내버립니다! 넘어지지도 않아요, 엄청난 신체 밸런스에 깔끔한 수비! 반칙하지도 않고 역습을 막아내다뇨!
그저 앞을 막기 위해서 잔디를 가르는 슬라이딩 태클?
거칠게 어깨를 밀고 몸으로 부딪치는 폭력?
옷깃을 잡아끌고 공격하는 반칙성 플레이?
그딴 게 필요한가.
갈랑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냥 공만 쏙, 빼내면 되는 거 아냐?’
갈랑은 놀라울 정도로 높은 태클 성공률, 패스 차단 능력 지표를 보였다.
미리 공격수가 나아갈 공간을 잡고 간단히 공을 차단했고.
패스길을 읽어 내서 그 자리로 뛰어 들어가 탈취하는 플레이까지.
그러면서 동시에 볼을 소유하고 나아가는 전진 능력은 거의 미드필더와 같았다.
덕분에 맨스필드는 공격 전개 때 갈랑까지 중원에 합세하며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모두가 폭발적인 득점 페이스를 보여주는 앤서니만을 주목하지만.
사실 팀의 공격적 전술 기조의 바탕은 바로 갈랑 덕분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 갈랑이 완벽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벌써 대단한 빅 클럽에서 뛰고 있었으리라.
상대 팀들은 매번 갈랑에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노리치 시티, 공격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지면 리그 17위로 추락하거든요! 그들은 절실합니다! 오, 이런, 공 튕겨 나온 상황, 세컨볼, 잡았어요! 박스에 갈랑이 있습니다!
축구는 팀 스포츠인 만큼 동료의 실수, 또는 상대 팀의 효과적인 연계 플레이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자신이 아무리 잘해도, 상대 팀이 작정하고 팀플레이를 펼친다면 하나가 셋을 상대할 수 없는 운명이다. 지금도 그랬다. 갈랑의 몸이 순간 삐걱거렸다.
‘멀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튕겨 나간 공. 자신이 자리 잡은 위치와 다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수비수라면 끈질기게 공격수를 방해하는 것이 숙명.
갈랑은 달려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공보다는 빠를 수는 없는 법.
퍼엉!
갈랑이 근처에 다가가는 순간, 제대로 임팩트 된 슈팅은 다행히도 리처드의 정면으로 향했다.
공격수가 좀만 더 노련했다면 득점에 가까웠을 슈팅은 리처드의 선방에 막혔다.
‘후, 다행이군.’
갈랑은 이 팀이 마음에 들었다.
‘슬라이딩 태클, 굳이 안 해도 되고 말이야.’
그는 흘끔, 흙이 살짝 묻은 유니폼을 툭툭 털어대면서 중얼거렸다.
“유니폼이 조금 촌스러운 게 흠이야. 이건 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