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39)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38화(239/266)
238. 명분 (3)
팀 내 분란의 시초가 될 ‘뻔’했던 클라라니가 제압당한 이후.
라커룸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더구나 노리치를 2대 1로 제압한 직후의 라커룸이라면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오늘도 1등으로 샤워했군.”
훅, 코를 찌르는 은은한 바디 워시 향에 테셰이라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물었다.
라커룸에서 가장 먼저 씻고 나오는 사람이 누군지는 안 봐도 뻔했으니까.
갈랑이 제 라커룸에 붙어있는 거울을 바라보면서 답했다.
“그럼, 그럼. 땀 냄새를 풍길 수는 없잖아. 이 정도 생겼으면, 향도 좋아야지.”
“축구 선수가 경기 후에 땀 냄새 말고 풍길 게 더 있나-”
테셰이라가 소처럼 눈을 끔뻑거리자, 아직 물기가 반짝이는 머리칼을 툭툭 털어내며 갈랑이 씩 웃으며 라커에서 향수를 꺼냈다.
“내가 SNS로 광고하는 향순데, 써볼래?”
“저녁에 데이트라도 있어?”
“그럼.”
테셰이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용히 앉아서 꼼지락거리며 스트레칭하던 간지뉴의 움직임도 뚝 멈췄다. 말은 없지만 조그마한 뒤통수에 숨겨진 귀가 쫑긋하고 있었다.
“경기장 밖에 바로 있어. 너희도 곧 볼 거야.”
“밖에?”
갈랑은 더는 설명하지 않고 머리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90분을 뛰고 나면 어지간한 선수들도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대개 샤워만 빠르게 끝내고 지친 몸을 겨우 가누면서 버스에 올라타지 않는가.
한데 갈랑은 가장 먼저 씻고 와서 온갖 화장품은 물론, 머리까지 완벽하게 세팅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매만지는 그 모습에선 지친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도리어 반짝일 정도였다.
테셰이라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이상한 놈이야.”
물론 그리 툴툴대며, 90분 풀타임을 뛰고 몸 풀어줘야 한다고 푸쉬업을 오십 회 넘게 하는 테셰이라도 다른 선수들이 보기엔 똑같은 괴짜였다.
* * *
홈경기가 끝난 직후 퇴근길은 팬들과 선수들이 접촉할 수 있는 일종의 비공식 행사였다.
선수단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곧장 돌아가지 않는다. 씻고, 스트레칭하고, 간단한 마사지 및 코칭스태프와 짧은 경기 내용 리뷰.
거기에 몇 선수의 도핑 테스트와 감독의 믹스트 존 인터뷰……
전부 다 끝내고 나면 선수단은 아무리 빨라도 족히 한 시간은 넘겨서 퇴근한다.
즉, 그 시간까지 퇴근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은 정말 골수팬이란 의미였다.
하물며 지금은 12월 중순, 옷을 껴입고 벌벌 떨면서 기다리는 팬들은 퇴근 버스가 대기하고, 선수들이 한 명씩 나오기 시작하자 소리를 질러댔다.
“와아아아-!”
“앤서니!”
물론 당연히 모든 선수가 골고루 공평하게 환호를 듣는 건 아니다.
그 경기의 최고 선수, 평소 인기가 가장 많은 선수, 핵심……
당연히 오늘도 두 골을 넣으며 득점왕은 이미 따 놓은 당상에 역대급 골 기록을 내달리고 있는 앤서니를 외치는 목소리가 가장 크……
“꺄아아아아악- 갈랑!”
……진 않았다.
작년과 달라진 모습이라면 바로 이 장면이었다.
지친 기색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애써 피로를 떨쳐내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사인해 주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갈랑은 실로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머리부터 화장까지 완벽한 세팅을 마친 그는 조금 전 90분 풀타임을 뛰었다고는 생각도 안 될 만큼 생생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여자 팬 한 명이 방방 뛰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선수가 아니라 흡사 배우의 레드카펫 같았다.
테셰이라가 헛웃음을 쳤다.
“데이트가 이거야?”
“내 팬들을 만나는데, 5분이라도 행복하면, 그건 데이트지. 안 그래?”
“그래, 그래에.”
“테셰이라. 남자는 나를 좋아해 주는 여자한테 최선을 다해줘야 하는 법이야.”
“그것도, 프로의식이라면, 프로의식이긴 한데-”
테셰이라는 스읍, 고개를 갸웃했다.
경기 끝나고 좋아해 주는 팬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저 모습은 실로 정신력에 감탄하고 싶지만.
‘축구 선수는, 경기장에서 최선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테셰이라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어쨌거나 갈랑은 오늘도 훌륭한 활약을 해줬으니, 무엇이 문제겠는가.
‘……근데 저럴 정신력이 있다는 건, 체력이 아직 남았다는 거 아냐?’
문득 떠오른 생각.
소위 철강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테셰이라 본인조차, 사실 지금은 두 발을 떼고 움직이는 것이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테셰이라는 휘휘 고개를 저으며 버스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어느새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유진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그 시선이,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팬 서비스를 해주는 갈랑에게 닿았음을 보고 테셰이라는 불현듯 서늘함을 느꼈다.
“……겨울이라 바람이 차네.”
* * *
“허허, 문제가 있습니까, 갈랑은 잘해주고 있는데요.”
알롭 코치의 말은 딱히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겉만 보고 나면, 갈랑은 무어라 할 수 없는 손색없는 선수였다.
클라라니처럼 팀에 분란을 일으키려고도, 팀에서 대놓고 파벌을 만들지도 않았다.
도리어 통역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부족하나마 영어로 소통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보였다. 훈련장에서도 평가가 좋았다.
지각으로 벌금을 낸 경우도 단 한 번도 없었고, 제때 지시에 맞게 훈련에 임했다.
“마케팅 팀에서도 아주 좋아합니다. 너튜브나 숏츠 영상이나, 여러 영상의 조회수랑 댓글 반응도 상당하다고요. 셀럽은 셀럽이에요, 우리 맨스필드를 어떻게 알고 브라질 팬들이 대거 늘어났는지.”
마케팅팀 직원들은 즐거움의 비명을 내지르곤 했다.
신규 팬 유입을 갈랑이 제법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당장 맨스필드 팬이라기보단, 갈랑 개인의 팬이었지만 아무렴 문젠가.
“경기장에서도요, 솔직히 힘든 역할인데도 잘해주고 있지요. 전진해서 압박하고, 나아가고, 패스길 막고.”
성적도 훌륭하다. 패스 차단, 태클, 지표를 보면 꽤나 훌륭한 수준.
전진 패스도 거의 미드필더 포지션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수치가 높았다.
“솔직히 이번 시즌 최고의 영입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리처드가 들었으면 그 웃음을 잃고 정색할지도 모르겠네요.”
“네?”
“리처드요. 리처드가 지금 갈랑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겁니다.”
“그게 왜…….”
알롭 코치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눈을 끔뻑였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부담감과 책임감, 그리고 압박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 * *
리그 22라운드.
전반전 20분이 지나는 시간쯤에, 리처드는 불쑥 감상이 들었다.
“……죽겠군.”
작년은 즐거웠다.
리처드는 자신이 주전으로 뛰면서도, 축구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주위 선수와의 경쟁이라거나 차가운 분위기와는 달랐다. 모두 하나 되고, 나아가는, 진짜 동료애가 무엇인지 리처드는 느꼈다.
그래서 완전 이적 제안을 유진이 했을 때, 조금의 고민도 없이 승낙했다.
이곳에선 첼시에서와는 달리 주전으로 뛰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자리를 원치 않았는데도, 여기서라면 조금은 다를 거라는 생각.
뻐엉-!
“리-처-드!”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했다. 잠깐의 상념, 놓칠 뻔했다.
짐승 같은 반사 속도로 손가락 끝으로 살짝 밀어냈기에, 틀어져 버린 궤적.
공은 간신히 골대 밖으로 튀어 나갔다.
리처드는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코너킥을 준비했고, 높이 솟구쳐서 공을 간신히 잡았다.
전방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뛰-어!”
뻥 차올린 공이 뻗어나간 순간에야 리처드는 자신이 미소 짓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
경기 중이니까. 당연히 웃고 있을 수만은 없겠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리처드는 입꼬리가 꿈틀거리며 올라가지 않음을 느끼며 답답함을 느꼈다.
‘한 골 더 내어주면 안 돼.’
전반전, 예상치 못한 실점으로 팀은 위기에 처했다, 추가 실점은 없어야 한다.
그 같은 강렬한 책임감이 부담되어 그를 짓눌렀다. 이유가 무엇일까.
작년보다 실점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도리어 작년에는 몸을 계속 날리느라 여기저기 다친 데가 어디 한둘이 아닐 정도였다.
한데 지금 느끼는 부담감은 차원이 달랐다.
‘주장 완장을 받아서?’
완장을 차고 있는 어깨가 무거워서일까. 완장을 매만지던 리처드는 고개를 저었다. 완장만의 무게는 아니었다.
그 순간 눈앞에서 훅 날아오는 패스를 봤다. 이쪽의 높게 올린 수비 라인의 뒷공간을 노리는 패스. 리처드는 순간 고민했다. 앞으로 뛰어가느냐, 뒷걸음질 치면서 자리를 잡느냐.
그 치열한 찰나의 고민, 그리고 선택.
리처드는 달려 나갔다. 그의 선택은 결국 성공적이었다. 상대 팀 공격수와 갈랑의 경합에서 갈랑이 밀렸고, 그 순간에 리처드가 뛰어가 공을 뻥 차버렸으니까.
“어, 나이스, 나이스, 나이스 디펜스!”
갈랑이 짧은 영어로 리처드를 치하했다.
하나 리처드는 그런 갈랑을 한번 흘깃 바라보고 몸을 돌렸다.
‘조금 전도.’
갈랑은, 막았을 것이다. 그래 막았겠지.
‘그런데 왜?’
튀어 나갔을까.
갈랑의 수비력과 태클, 차단 능력은 훌륭하다. 골키퍼라면 믿고 골문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수비력을 갖췄다. 이렇게 높은 수비 라인에서도 차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나 리처드는 찰나의 선택 순간 뛰쳐나왔다.
리처드는 이유를 곧 깨달았다.
‘불안해서.’
혹여나, 막지 못할까 봐. 격렬한 몸싸움을 피하거나, 위험한 태클을 자제하거나, 또는 공중볼을 두고 볼지도 모를 것만 같아서.
적어도 지금껏 봐왔던 갈랑은 그랬으니까.
리처드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벤치에서 박수를 치며 격려하고, 응원하고, 때때로 교체를 대비해서 몸을 풀면서도 팬들에게 응원을 유도하는 젠킨슨을 바라봤다.
젠킨슨이 없는 수비 라인.
리처드는 지독한 책임감을 느꼈다.
이를 악물어야 하는 스트레스. 부담과 압박. 리처드는 주장 완장과 더불어 슈팅 한 번 한 번에 긴장하며 집중하는 작금의 상황이……
“리-처-드!”
“믿고 있었다고!”
“수호신!”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그 목소리에도 리처드의 입꼬리는 이제 올라가지 않았다.
그랬다.
리처드는 축구가 즐겁지 않아졌다.
* * *
“최근 지표를 보면 리처드의 선방률이 떨어졌습니다.”
“으음, 그래도 높은 편인데요.”
“그래프로 볼까요.”
“…….”
자일슨 팀장의 분석 보고서를 보여주자, 알론 코치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래프로 보니 확실히 눈에 보이죠. 매 경기마다 점점…….”
“우하향.”
“네. 한두 경기 어쩌다 안 풀린 것도, 가끔 실수한 것도 아닌, 꾸준히 저하되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요.”
“하지만 그래도 리그 탑급-”
“챔피언십 탑급이지, 프리미어리그 탑급은 아니잖습니까?”
“……!”
“내가 원하는 건, 그리고 리처드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그런 클래스에요.”
알롭 코치의 눈이 커졌다.
작년부터 보여준 리처드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지만, 그건 상대 팀 공격수들이 최고급은 아니기에 나오는 모습이라고도 생각했다.
실제로 리처드를 평가절하하는 일부 여론도 그런 의중이었고.
결국 첼시의 서드 키퍼가 리그 원, 챔피언십 탑급일 정도로 리그 간 격차가 있다- 정도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한데.
“그 정도, 라고요?”
“네. 제가 아는 리처드는, 제가 보는 리처드는 그렇습니다.”
“…….”
“한없이 긍정적으로만 보이는 사람이, 어느 순간 웃고 있지 않게 된다면 말입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정말 큰일 난 상황이거든요.”
“리처드는 여전히 낙천적이긴 합니다만…….”
“더 내버려 두면 찾아올 겁니다. 슬럼프요. 그거, 약도 없습니다.”
“……그래서, 갈랑의 스타일을 바꿔보시겠단, 뜻입니까?”
“네.”
“하지만 클라라니처럼 명분이 없습니다. 클라라니 행동에 문제를 일찍 느꼈으면서도, 감독님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신 건 그 취중 인터뷰 때문이었잖습니까. 그게 다 선수를 대하는 감독님만의 명분-”
“있습니다.”
“네?”
“선수에게 플레이 스타일 교정을 요구하는 건, 지시하는 건, 감독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
“내가 하라고 하면, 해야 합니다. 그게 명분입니다. 예. 저 자체가요.”
알롭 코치의 입이 닫혔다.
나는 말했다.
“당장 갈랑 데리고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