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40)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39화(240/266)
239. 메리 크리스마스 (1)
“갈랑. 감독님이 좀 보자신다.”
알롭 코치가 훈련장에서 던진 발언에, 클라라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통역해 줬다.
“너 뒤졌다, 이제.”
“……아직도 통역 그따위로 해?”
“의역이다. 새끼야.”
클라라니는 여전히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루틴을 반복하면서 점점 팀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루소폰 그룹에서 가장 친밀했지만, 배신감을 느꼈던 갈랑과는 사이가 회복되기란 요원했다.
“감독님 면담이야.”
“……그게 왜 의역인데?”
“말했잖아. 나 다음 너라고.”
갈랑이 그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너랑은 나는 다르지.”
“…….”
“로테이션 멤버가 한 소리 듣는 거 하고, 주전 선수하고 같을 수가 없잖아?”
클라라니의 이마에 힘줄이 잡혔다. 무어라 반박하려는 듯 입을 오물거리다 고개를 돌렸다.
“그래. 한번 느껴보라고.”
“퍽이나.”
갈랑은 시니컬하게 받아치곤 감독의 집무실로 향했다.
“…….”
하나 집무실에 가까워지는 갈랑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감독과 면담은 당연히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기존 선수들도 감독이 호출했다고 하면 아예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마 툭하면 놀러 가듯이 문을 열고 박차고 들어가는 앤서니 외에는, 좋아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을 거다. 처음엔 그런 모습을 보고 갈랑은 참 허약한 놈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에 그런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내가 왜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해?
훈련장.
클라라니와의 언쟁에서 보여줬던 그 단면은 충격적이기 짝이 없었다.
그간 갈랑이 봐온 유진은 젊고 유능하면서 선수를 존중할 줄 아는 세련된 감독이었다. 때때로 차갑게 보일지언정 어린 선수(앤서니)를 케어하는 모습을 보면, 묵묵히 챙겨주는 큰형처럼 보이기도 했으니-
그래, 착각이었다.
종종 선수들이 말하기를 독재자와 같은 유형이라는, 그 험담 아닌 험담이 뼈저리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화가 나면서도 불쌍했지.’
클라라니가 통역을 제멋대로 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솟구치면서도 동시에 선수로서 안타까웠다. 모든 선수가 보는 앞에서 감독에게 그런 말을 듣는 모습이라니. 솔직히 말해 자신이 클라라니 자리에 있었다면 울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요즘 클라라니 하는 폼 보면, 심상치 않단 말이지.’
아직도 로테이션 활용이지만, 클라라니는 척 보기에도 만만한 놈이 아니다.
갈랑은 배신감 때문에 클라라니를 멀리하는 것도 있지만, 뭐라 할까. 능수능란하다 못해 사람을 잘 다루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그래서 일부러 클라라니를 근래 더 꺼렸다.
‘그런 놈을, 감독님은 심한 말을 던져놓고도 원하는 대로 다루신단 말이지.’
본래라면 선수와 감독 사이가 완전히 갈라져, 돌이킬 수 없을 그런 관계로 치달을 게 분명해 보였는데…….
클라라니가 몇 번이고 감독 집무실을 드나들고, 세간에는 무릎도 꿇었다는(본인은 부정하지만) 소문도 들리더니 어느새, 클라라니는 팀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 그런 감독이다.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대체 나한텐 뭔 말을 하려고……?’
갈랑은 내심 치솟는 불안함을 애써 억눌렀다. 하지만 위축된 모습은 어쩔 수 없었다.
빳빳하게 긴장된 어깨가 집무실의 문턱을 넘은 순간.
“아, 어서 와요.”
갈랑은 누군가 문자를 하고 있던 듯, 휴대폰을 덮은 채 반기는 유진의 웃음을 바라봤다.
‘……음?’
어쩐지, 차가운 미소는 아니었다. 도리어 따뜻한……?
* * *
“너무 긴장하셨네요.”
“긴, 긴장 아닙니다.”
“네, 웃어요. 선수의 웃는 얼굴만 있는 영상이, 우리 구단 공식 계정에서 가장 하트 수 많은 거 아시죠?”
갈랑이 어설프게 웃으면서도 의외라는 눈빛을 보였다.
“덕택에 팬이 많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갈랑 선수의 개인 팬이지만, 선수가 매 경기 활약해 주고 있으니 사실상 클럽 팬이 되어가고 있죠.”
밖은 추웠다. 눈도 종종 내리는 날씨이다 보니, 그런 훈련장에서 땀을 흠뻑 흘리다가 들어온 그는, 땀이 식으면서 곧 추위를 느낄 것이다.
나는 뜨거운 차를 한 잔 내어주면서 말했다.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선수.”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 영어 공부도 근래 열심히 하시고, 누구와는 달리 선수들과 소통하려 하시고, 정말 고마워요.”
“……!”
물론 여기서 굳이 지칭하지 않아도 누구를 말하는지는 당연히 알 수밖에 없으리라.
“여러모로 새로운 선수가 팀에 와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감독으로서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네.”
“특히 프런트의 의견이 아닌, 감독이 꼭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수일 경우에는요.”
나는 씩 웃었다.
“그래서 더 고맙다는 겁니다. 내 기대에 부응해 줘서.”
“……!”
갈랑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팬들 앞에 자주 서고, 모델 일도 하는 만큼 표정 관리를 잘하는 그가 좀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었다.
안 그러겠는가. 시종일관 호의적인 분위기였으니. 그의 예상과는 꽤 벗어난 것이리라. 아직 팀에 적응하는 단계인 그에게 적어도 나는 클라라니에게 차갑게 일갈하던 모습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을 테니까.
“아, 혹시 제가 호출한 이유가 클라라니를 대했듯이 혼내려고 그런 줄 안 겁니까?”
“아, 그게…….”
“하하, 오햅니다. 클라라니는 아시다시피, 예, 본인이 자초한 감이 있죠. 지금 좀 나아졌지만……아무튼 원래부터 잘하고, 기대에 부응해 주는 선수와 똑같이 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
“일전에 들었을 겁니다. 저는 절대 공평한 감독이 아니라고요.”
솔직히 말해 위험한 말이긴 했다.
감독은 적게는 이십여 명, 많게는 마흔 명 넘게.
거기에 2군과 유소년 소속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의 선수를 관리해야 한다.
중간에 코치진이 있기야 하지만 결국 모든 선수는 1군 경기 출전을 바라고,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감독이란 걸 안다.
그랬기에 감독은 적어도, 선수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나는 공평하다고.
너희가 증명하기만 한다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런 희망을 줘야 한다.
하나 내 팀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선수가 다 출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선수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스타일이니까요. 하지만, 모두가 베스트 일레븐이고, 모두가 핵심일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나와 같이 역경을 이겨내고 온 것도 아니죠.”
“…….”
“네. 저는 그래서 대놓고 차별하고 불공평함을 보여줄 겁니다. 뭐, 물론 이 발언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습니다만, 이건 아셔야 합니다. 이런 기조에서 누군가는 혜택을 받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불합리한 상황을 받아들여야겠죠.”
나는 굳이 계속해서 클라라니를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대화의 중심에 그 이름이 연상되게끔 말했다.
“반면 잘하는 선수라면, 기대에 부응하는 선수라면, 충분히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
“글쎄요. 공평해야 한다…… 이건 어쩌면 또 잘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에겐 불공평함, 그 자체가 아닐까요?”
그리고 계속해서 주지한다.
너는, 클라라니와 다르다.
클라라니가 저렇게 불합리할 정도로, 팀의 막내나 수행할 잡일들을 하면서도, 아직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계속 내 눈치나 살피는 상황에 처한 반면.
“갈랑 선수는 제가 라인업에 가장 먼저 올리는 이름 중 하나입니다.”
“……!”
너는 다르다.
왜?
“제가 원했던 플레이를 해주고 있으니까요.”
기대에 부응해 주고 있으니까.
“뭐, 선수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클라라니처럼 어설픈 수작을 부려도, 한두 번쯤은 봐줄 겁니다. 하하. 선수를 내 라인업에서 빼기엔, 너무 잘하니까요.”
그러니까 설령 클라라니처럼 굴어도, 한두 번은 봐줄 수 있다.
불공평한 감독의 혜택이다.
그리고 갈랑은 이런 혜택을 누릴 자격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말인데요, 선수. 몇 가지 플레이 스타일에 지침을 드릴 생각입니다.”
물론.
“조금 어렵고, 선수의 스타일을 바꿔야 하는 만큼 곤혹스럽겠지만, 전 선수를 믿습니다.”
당신이, 계속해서 내 기대에 부응해 준다면.
* * *
“감독님. 또 이상한 짓 하셨죠?”
젠킨슨은 원래부터 그랬지만, 요즘엔 더 나를 편하게 대한다.
특히 주장 완장을 내려놓고, 스스로 벤치로 밀려남을 인정한 순간부터 더욱이.
가끔은 내가 유스였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처럼 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선수의 말년을 누리는 사람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아요? 갈랑, 그 샌님 같은 놈이 갑자기 다치지 않게 태클하는 법을 물어보더라고요.”
젠킨슨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나보다 수비도 잘하는 놈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자기가 슬라이딩 태클 같은 건 거의 안 해봐서 모르겠다고.”
“그런가요?”
“네, 발은 정말 잘 쓰고 위치도 잘 잡는데, 슬라이딩 자체를 못 하던데 말이죠. 아무튼, 좀 신기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나 했더니, 감독님과 면담을 했더라고요?”
“별거 아닙니다. 갈랑에게 스타일 변화를 주문했죠.”
“아하, 단지 요구했는데 선수 커리어 내내 헤딩도, 몸 던지는 거친 태클도 하기 싫어서, 극한까지 발 기술과 수비 위치만 갈고 닦은 괴짜의 마음을 바꿔놓았다고요?”
나는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이, 담담히 그를 쳐다봤다.
“새삼스럽게 궁금합니까? 뭐, 예시가 한둘이 아닌데. 일단 선수부터 원래의 폭군으로-”
“아, 흠흠. 예, 뭐, 알겠습니다. 감독님이 선수 한 명 바꿔놓는 건 이제 신기할 일이 아니죠. 하하. 그런데요, 감독님.”
“네.”
“이번 건은 생각 다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젠킨슨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흘끔 쳐다본 그의 표정도 진지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갈랑의 플레이 스타일 변화를 요구하고 꾀했던 건 아마 감독님뿐만이 아니었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겠죠.”
“이전 클럽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잘하긴, 확실히 잘하는 친군데, 조금만, 저기에서 조금만 더 잘할 수 있는 방도잖아요?”
“키도 크고, 몸도 충분히 튼튼하고, 이미 완성된 발 기술과 수비 위치 같은 능력을 고려하면-”
“제가 하는 것처럼 거친 플레이, 타점 높은 고공 플레이까지 더해진다면 정말 대단한 수비수가 될 테니까요.”
그런 점을 지금까지 다른 코칭스태프나, 감독이 몰랐을까.
아니, 알았을 것이다.
한데도 안 됐던 건, 갈랑이 그런 플레이를 전면 거부하거나-
“걔, 재능 없어요.”
젠킨슨이 차갑게 일축했다.
거친 슬라이딩 태클, 얼굴에 상처가 나고 피멍이 드는 몸싸움, 몇 번이고 뛰어오르는 헤더.
“하지 않은 게 아니고, 못 한 겁니다. 감독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