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44)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43화(244/266)
243. 메리 크리스마스 (5)
“이 일정에서 갑자기 주전선수 포함, 전 선수단 봉사라니 조금 의외였습니다.”
“조금요?”
“……하하, 많이요.”
데일 스틸 단장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갑작스럽게 선수단 전원 봉사를 추진하면서 의외로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선수단 운영의 주체는 본인이라는 명분, 권력 구도나 정치 싸움 따위가 아니었다. 데일 스틸 단장은 정말로 진지하게 걱정을 표했다.
“솔직히 말하면요, 2일 후인 24일에 미들즈브러전, 26일 박싱데이에 리그 25라운드, 1월 1일에 26라운드……그렇게 쭉 이어지다가 1월 13일에 리그컵 4강전에, 그 다음 주에 FA컵 3라운드 시작하잖습니까.”
지금까지의 일정도 제법 빽빽했다. 하지만 박싱데이를 기점으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까지 이어지는 일정은 실로 끔찍했다. 경기를 체크해 놓은 달력을 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다.
“그런 걸 떠나서 경기 이틀 전에 하루를 그렇게 소비한다는 게, 예, 조금 그랬습니다. 휴식이라도 취하는 게 맞지 않았나, 하는. 하하하.”
데일 스틸의 우려는 합당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도 생각이 바뀐 듯했다.
“감독님 말마따나, 고작 하루의 훈련인데요. 뭘.”
“예. 하루 훈련 갖고 질 경기 이기고, 이길 경기 질 정도였으며 그건 평소에 잘못된 겁니다.”
“무엇보다도 선수단 분위기가 좋군요.”
데일 스틸이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뭐라 할까요. 결속력이라고 해야 할지……눈빛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선수들에게 때때로 팬들이란 존재는 쉽게 와닿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요?”
“경기장에서 이름을 연호해도, 경기가 끝나고 기다린 팬들이 사인을 요청해도, 우리 팀은 작은 도시다 보니 팬들과 어울리기 쉬워서 조금 덜합니다만, 저 팬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현실에 있는 사람들인지 가끔 혼동하거든요. 그 끝없는 지지와 사랑에 헷갈리는 거죠. 선수들은.”
데일 스틸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표정이었다.
뭐, 다들 납득할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이번 봉사에서 꽤 많은 걸 느꼈을 겁니다. 현실에 팬들이 있고, 그 팬 중엔 소아암에 걸린 채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축구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선수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진짜 팬들이 있다는 사실을요.”
“그런 의도로 봉사를 추진하신 건가요? 확실히, 선수단의 분위기가 무언가 따뜻하고, 좋네요. 표정들도 하나같이 좋고…….”
“네. 뭐, 그런 의도가, 있긴 있었죠.”
나는 가만히 젠킨슨과 얘기 중인 갈랑을 바라봤다.
물론, 뭐든지 의도대로 되진 않는다. 변화는 선수가 의지를 갖춰야 하니까.
* * *
선수단의 분위기가 달라졌단 감상을 남긴 데일 스틸의 말은 정확했다.
선수들 본인들도 확연히 달라진 마음가짐을 느꼈으니까.
“아이들 경기장에 온다는데?”
“맞아. 이브날에 애기들 다 응원하러 온대. 경기장 처음 오는 애들도 있다는데.”
“추운데 괜찮으려나.”
“VIP석들 비워서 제공한다니까…….”
“그럼 우리가 이기기만 하면 되겠네?”
동기 부여는 의외로 정말 별것 아닌 것에 확 끌어올려지는 경우가 있다.
많은 구단주가 착각하곤 하는데, 승리 수당은 순간적인 동기 부여에는 문제가 없지만, 의외로 효과는 그리 길지 않다.
프로 선수들은 계약할 때마다 주급과 여러 수당에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시즌 도중에는 돈보다 외적인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결코 논리적이지 않은 족속들이니까.
팬들의 일어나라는 외침을 듣고 뛰었다는 선수나.
이겨내라는 말을 듣고 득점에 성공하는 공격수나.
필드에서 들려오는 응원가에 힘을 얻거나.
“솔직히 애들한텐 만화책이나 게임, 축구라고 해 봤자 저기 맨시티 선수들이나 좋아할 줄 알았는데…….”
“경기장에 처음 온다는 친구도 있는데, 이번 경기만큼은…….”
그랬기에 승리 수당 같은 이점이 다른 구단에 비해 형편없는 이 맨스필드가 동기를 부여받아 승리를 가져올 수 있던 이유였다.
하나같이 이번 경기만큼은, 다른 경기는 몰라도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선수단 사이에 퍼졌다.
그리고 선수단이 믿는 카드가 있었다.
“어이, 앤서니. 격차는 이번 경기에서 보여주라고.”
“애기들 울렸으니까, 그거 벌충은 해야지.”
“반쯤 미친놈인 줄은 알았지만, 그 애기들 상대로 해트트릭 때려 박고서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라는 말을 아이들한테 할 줄은 몰랐어.”
“감독님이 처음으로 앤서니한테 정색하더라. 하기야 애들 몇 명이 울었는지.”
그 말에 한 쪽에 있던 앤서니의 작은 어깨가 흠칫했다.
선수들이 뒷모습을 보고 키득대면서 놀렸다.
“감독님이 정색하더라. 앤서니, 너한테.”
“흐흥, 크흥, 나,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에에.”
“아이들 상대론 세 골 넣고, 미들즈브러 상대론 한 골도 못 넣으면, 진짜 그건 나쁜 거야.”
“감독님이 우는 아이들 안아주면서 달래주는 것도 처음 봤어.”
“네가 몇 명을 울렸는데-”
“오늘 지면 애들 또 울지도 모르지. 앤서니가 울렸던 것처럼.”
“걱, 걱정 마아아. 이번에 네 골은 넣을 테니까아!”
제각기의 방법으로 동기 부여를 가지는 선수들 사이.
평소와 달리 거울을 쳐다보며 준비하지 않고, 갈랑은 조용히 조그마한 종이를 매만졌다.
―제 거 줄게요! 고마운 사람한테 줘야 하는 거니까!
조그마한 크리스마스 편지였다.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적힌.
자선 행사가 끝나는 말미.
아이들 대부분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경기 관람하러 간다는 원장의 말에 환호하면서, 에단이 자신에게 쥐어 줬던 편지였다.
갈랑 형한테- 적힌 서두 옆에 젠킨슨 아저씨께라고 쓴 부분을 두 줄로 찍찍 그은 흔적을 보며 갈랑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곤 했다.
‘적어도 얘한텐 젠킨슨보단 내가 더 나은 건가.’
사실 경기장 초청도 자신이 요청한 일이 아니다. 이미 예정된 일정이었다. 갑자기 VIP 자리를 비울 수야 있을까.
‘다 감독님이 미리 준비하셨던 거지.’
하지만 아이 눈에는 어떻게 비쳤겠는가. 갈랑이 데려가 준다고 말했고, 실제로 일어났으니. 저를 바라보는 그 맑은 눈동자에 어렸던 선망의 빛을 떠올리면서 큼직하게 써진 단 한 문장의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본래라면 자신이 아닌, 분명 젠킨슨에게 전달되었어야 했던 말.
―나쁜 놈들 다 때려버려요!
“……얘는 축구를 보는 거야, 복싱을 보는 거야.”
갈랑은 실소를 머금으며 상념에 빠졌다.
그 상념은 유진이 라커룸으로 들어오는 순간에서야 끝났다.
나직한 부름이 그를 수면 위로 건져 올렸다.
“갈랑 선수.”
“네.”
“제가 내린 지침, 한 번 더 복기가 필요합니까?”
그 순간.
갈랑의 입가에 지어졌던 미소가 사라지고, 두 눈이 또렷하게 빛났다.
“……아뇨, 준비는 마쳤습니다.”
* * *
미들즈브러.
리그가 절반이 지나는 시점.
18승 4무 1패 승점 58점의 압도적 1위의 팀.
완벽한 공수 밸런스를 바탕으로 차원이 다른 퍼포먼스를 보이는 이 팀은, 누가 뭐라 해도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혔다.
전반기에는 맨스필드가 패배를 겪었던 다섯팀 중의 하나였으니까.
대체로 사람들은 이번 경기에서도 미들즈브러의 우위를 점쳤다.
맨스필드 역시 승점 46점으로 리그 6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12점의 승점 차이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승패를 점칠 때 의외의 요소가 영향을 끼친다는 걸 망각하곤 한다.
“제깟 놈들이 잘해봤자지! 어!”
“여기는 필드 밀이다-!”
“여기서 산타도 우리 편이야!”
“빌어먹을, 너희들 자식들한테 산타는 없다고 미리 말해 놓으라고!”
크리스마스 이브.
딱히 특별한 놀거리가 없는 맨스필드에선, 이브에 열리는 경기야말로 거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만원 관중은 물론이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거리에 가게마다 모두 맨스필드 팬들로 꽉꽉 들어찼다.
[맨스필드, 챔피언십 최고의 좌석 점유율! 홈 11경기 좌석 점유율 평균 96%!] [원정팀의 무덤, 필드 밀. 승점 1점 이상 얻어갈 확률 10%도 되지 않아] [베팅 업체 도박사들, 맨스필드 홈경기에는 예측할 수 없는 기이한 요소가 있다.] [미들즈브러, 최악의 원정 맨스필드 전에서 팬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전할까?]미들즈브러도 팬층이 대단한 팀이기야 했지만, 도시 전체가 맨스필드의 경기를 기다리는 홈구장의 이점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하물며 한때 무패의 철옹성이었던 필드 밀은 몇 번의 패배를 기록하긴 했지만, 여전히 80%를 훌쩍 넘는 압도적 승률을 자랑하는 원정팀의 무덤임은 틀림없었다.
즉.
―아무도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경기입니다!
실로 그랬다.
맨스필드의 승리도, 미들즈브러의 승리도, 축구계 전문가는 물론, 대단한 도박사들도 섣부른 예측을 할 수 없는 경기.
하지만 경기에 임하는 각 진영의 선수단은 모두 하나같이 자기네의 승리를 자신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표출은, 맨스필드가 한 발짝 더 빨랐다.
리그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를 알리는 그 첫 경기의 시작 휘슬이 부는 순간.
맨스필드의 선축으로 팽팽했던 긴장감이 쾅, 하고 터져나갔다.
투욱-!
센터서클에서 공을 뒤로 패스하며 시작한 순간, 미들즈브러 선수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달려 나갔다. 최전방의 앤서니 로우를 필두로 제임스, 클라라니, 해리 밀러, 테셰이라, 간지뉴, 톰 브룩스―
‘뭐?’
‘잠깐만. 얘네?’
미들즈브러는 공수 밸런스가 가장 완벽하단 찬사를 받는 팀.
그 말은 상대의 어느 전술에나 곧장 적응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월등하단 얘기였다. 하나 그런 선수단조차, 지금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서릴 수밖에 없었다.
최전방뿐만 아니라, 전부 다.
심지어 수비진까지 모두.
맨스필드가 자기네 필드를 착각한 것처럼, 마치 이쪽이 그들의 필드인 것마냥 전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조금의 주저 없이 전속력으로.
“당황하지 마! 자리 지키면서 압박해!”
그 순간, 벤치에 있던 미들즈브러 감독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감독에 대한 신뢰도가 더없이 높은 미들즈브러 같은 팀에겐, 그 외침이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하곤 했다. 당황도 잠시, 미들즈브러는 찬물을 부은 것처럼 냉정해진 얼굴로 바뀌었다.
‘뺏으면 된다!’
‘단 한 번만 차단하면 문제없어!’
‘도리어 이건 기회다!’
순간적으로 확 끌어올려진 라인.
저들의 공격 시도를 차단한 뒤, 공을 탈취해 낸다면 그야말로 그림 같은 역습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찬스.
그 같은 생각이 선수단 사이에 휴대폰도 없건만, 완벽하게 공유됐다.
일부 선수는 역습할 준비를 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강력하게 압박하면서 맨스필드의 실수를 유도했다. 전력으로 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퉁퉁,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둥그런 공을 다뤄야 하는 과정이라면. 그 상황에서 거칠게 몰아붙이는 압박을 시도하면, 필연적으로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
그들의 생각으로는 말이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생각 외의’ 유별난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
투욱-
“어?”
미들즈브러의 센터백, 이번 시즌 챔피언십 태클 성공률 1위라는 빛나는 성적을 가진 쥘 보네는 자신도 모르게 새된 소리만 내뱉었다.
분명 어깨를 들이밀고 발을 뻗었는데-
‘없다.’
아무도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가 막으려고 했던 공격수는 유령처럼 스르르 부드럽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인지해서 몸을 돌리며 손을 뻗는 찰나.
옷자락만이 손끝을 스쳤다.
‘뭐야, 이거.’
사실,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쥘 보네는 자신의 압박, 태클, 그리고 반칙을 각오한 손짓까지 모든 걸 무력화하는 움직임이 눈앞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차마 이해할 수도, 인정하기도 어려웠다.
부드러움, 유연함, 거기에 속도-
“앤서니 로호오오오오우!”
앤서니 로우가 완벽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나 선수 한 명을 놓쳤다고, 팀이 위기에 처하는 건 아니다. 축구는 팀플레이다. 한 명의 수비 실패는 다른 선수의 협력으로 충분히 막아낼-
“어?”
“마, 막아!”
“뭐야!”
순간 터져 나오는 골키퍼의 비명.
그때야 쥘 보데는, 아니 미들즈브러의 모든 사람은 깨달았다.
혼자 날뛰고 있는 앤서니 로우를 견제하기엔, 다른 선수들의 위치가 다 하나같이 어긋나있다고.
“속았다.”
그 순간, 벤치의 미들즈브러 감독, 안토니오 카르도주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필드에서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그의 시선이, 왼쪽의 상대 팀 벤치, 담담히 서 있는 유진 감독에게 향했다.
다른 코치와 벤치 선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조마조마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마치 동떨어진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래, 저 담담한 얼굴만이 말해주고 있다. 이거, 노림수라고.
앤서니 로우는 리그 득점 32골의 괴물이다. 모든 팀이 그를 경계하고, 미들즈브러도 마찬가지다. 앤서니 로우 봉쇄는 맨스필드를 상대하는 팀들의 특명이었다.
하나, 휘슬이 울리고 킥오프가 되는 그 찰나의 시간.
미들즈브러는 특명을 잊어버렸다. 선수 탓을 할 수 없었다. 안토니오 카르도주 감독도 똑같이 잊어버렸으니까. 그랬다.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지.’
맨스필드 선수단 전체가 미끼였다.
동시에 전력으로 뛰는 맨스필드 선수들 전부가 아니라, 오직 한 명.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존재.
앤서니 로우만을 막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그 순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망각의 대가는 뼈저리게 치명적이었다.
투욱-!
놀랍게도, 패스는 없었다. 앤서니 로우는 오로지 첫 백패스 이후, 리턴 패스를 받고 돌파만 하고 있었다. 그저 전진, 그저 드리블.
미들즈브러의 집중과 압박이 골키퍼 제외 10명에게 전부 골고루 쏟아지면, 두세 명은 협력해야 공략할 수 있는 앤서니에겐 역설적으로 지금의 수비는, 평소의 압박보다도 헐거운 상태였으니.
철럭-!
앤서니 로우는 유유히 골을 집어넣고, 관중들. 그중에 VIP석에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을 향해 뛰어가 소리쳤다.
“봤지? 나한텐 쟤들이나 너희나 차이 없어! 똑같이 나보다 못해!”
앤서니 로우, 34초 만에 이번 시즌 챔피언십 최단 시간 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