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4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44화(245/266)
244. 메리 크리스마스 (6)
아이들에겐 잊을 수 없는 꿈같은 광경이었다.
어느 경기장이나 그렇듯 VIP석은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현장감과는 조금 멀지만, 경기 자체가 가장 한눈에 잘 보인다.
무엇보다도 필드 밀은 1만 석의 규모가 작은 경기장.
VIP석이라고 해 봤자 층수는 낮았고, 선수들의 표정도 생생하게 보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앤서니 로우가 시작하자마자 골을 집어넣고, 유유히 달려와 세레머니를 펼치는 모습도, 아이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장면, 그대로였다.
“와아-!”
“말도 안 돼!”
“멋있어요!”
“짱이야!”
초청받은 아이 중 절반은 경기장 경험이 처음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축제와 같은 분위기. 거기에 가득 찬 일만 관중이 내뿜는 열기와 환호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느껴보는 현장감이었고, TV가 아닌 눈앞의 녹색 필드에서 펼쳐진 득점과 세레머니는 실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으응? 뭐라는 거야?”
“뭐랬어요, 앤서니가?”
“저 형이 뭐라고 한 거에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원장은 잠깐 고민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을 위한 골이래!”
“와!”
사실, 함성에 묻혀 못 듣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즐거워하는 얼굴은 그가 보기에도 처음인데. 원장은 흥분해서 방방 뛰는 아이 중에서도, 조용한 에단이 순간 눈에 밟혔다.
“…….”
여기 온 애 중에서도 가장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어쩌면 못 올 수도 있던 아이.
하지만 가겠다고 꿋꿋이 고집을 부린 덕에 데리고 왔지만, 혹여 문제가 생길까 계속해서 걱정이 드는 아이였다.
하나 조그마한 주먹을 꼭 쥐고, 홍조 띤 얼굴로 조마조마하게 경기에 흠뻑 빠져 있는 걸 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듯했다.
‘경기, 끝까지 이겼으면 좋겠다. 애들한테 큰 선물이 되게.’
다행히도 그런 원장의 마음은, 선수들이 모두 공통으로 하는 생각과 같았다.
아니, 한 명만 빼고.
―앤서니 로우 선수! 리그 33호 골을 터뜨렸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아, 설마, 한 골로는 만족 못 한다는 건가요?
―충격에 빠진 미들즈브러 선수들보다도 표정이 딱히 좋지 못한 앤서니 선수입니다! 이거, 오늘 앤서니가 몇 골을 더 넣어야 만족할까요! 벌써 기대가 되는 오늘의 경깁니다!
* * *
놀랍게도 지금 앤서니 로우는 절박했다.
‘보여줘야 해!’
앤서니 로우가 워낙 개성이 인상적이다 보니, 팬들은 그가 마치 오랫동안 맨스필드에서 뛴 것처럼 친근하게 느끼곤 했으나 실제로 그는 이제 2년 차.
맨스필드에 엄청난 애정과 충성심을 지니기엔, 온전히 맨스필드맨이라고 불리기엔 여러모로 부족했다. 실제로 그랬다. 앤서니는 팀에 대한 충성심은 딱히 없었다.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모습도 개인의 성취라는 욕망에 닿아서였지, 딱히 팀을 위해서 뛴다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앤서니!”
“오늘 왜 저래?”
“아니, 평소처럼 잘하긴 하는데, 오늘은 진짜 남다른데?”
“이게 더비전인 줄 아는 거 아냐?”
“더비전도 이렇게 안 뛸걸.”
관중의 말이 맞다. 애당초 더비전도 팀에 대한 충성과 역사를 깊이 이해해야만 동기 부여가 되는 법. 앤서니는 그런 유형이 아니었다.
“그러면 대체 오늘 왜 저래?”
누군가의 하소연 섞인 호기심처럼, 필드의 앤서니는 모두의 놀람을 자아냈다.
―앤서니 로우의 돌파에 미들즈브러 선수들 골치가 아픕니다! 정신없거든요! 왼쪽에서 흔들고, 중앙에서 돌파하고, 우측까지 파고들고, 오늘 앤서니 로우는 심장이 두 개인 것처럼 엄청나게 뛰고 있습니다!
첼시의 보석이란 별명에서 이제는 맨스필드의 유령이라고 종종 불리는 그 이름처럼.
조용한 움직임으로 유령처럼 나타나 원샷 원킬의 득점을 뽐내는 게 평소의 앤서니였다면, 오늘은 전혀 다른 선수가 가면을 쓰고 앤서니인 척하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한 플레이였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앤서니가 변했다!”
관중 사이로 터져 나온 목소리는 이내 전염되어 희열에 찬 긴장으로 퍼져나갔다.
모두가 앤서니를 좋아하고, 앤서니의 득점 행진에 기뻐해 왔지만 그래도 늘 은연중에 마음에 품어왔던 아쉬움.
‘조금만 더 뛰면-’
‘거기서 압박만 더 해줬으면……!’
물론 행복한 고민임은 다 안다. 그런 능력까지 갖췄다면 챔피언십의 득점왕이 아니라 프리미어리그의 득점왕을 차지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나 지금 앤서니는 그런 아쉬웠던 부분을 전부 받아들인 것처럼 플레이했다.
그쯤 되자 팬들은 기뻐하면서도 의아했다.
“하루아침에 저렇게 바뀔 수가 있나?”
“대체 뭔 일이……아!”
“왜?”
“혹시 저기 온 아이들 때문 아냐?”
맨스필드는 서포터즈 조합이 운영하다 보니, 팬과 구단 간의 관계가 밀접했다.
당연히 구단의 크리스마스 봉사 일정도 잘 알았다. 아니 그럴까. 마케팅 팀이 일부러 아이들 초청하는 내용까지 샅샅이 홍보했는데. 오늘 경기의 입장 수익도 소아암 센터에 기부한다는 내용까지 알렸으니…….
“아이들이 보고 있으니까?”
“앤서니가, 정말 그것 때문에 저렇게 바뀐다고?”
“허어……철딱서니 없는 친군줄 알았는데, 순수한 면도…….”
놀랍게도 절반은 맞는 말이었다.
앤서니는 자선활동을 다녀온 이후 동기 부여가 잔뜩 된 상태였다.
투웅-!
‘보여줘야 해……!’
앤서니의 시야가 깜빡였다. 눈앞의 공이 발끝에 붙는 순간, 공기의 흐름이 일순 반대로 흘러가는 감각.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박차고 달려가면서도, 앤서니는 오로지 공과 가야만 할 길을 바라봤다.
‘감독, 감독님한테 보여줘야 해!’
앤서니는 처음 봤다. 자신한테 정색했던 감독님의 얼굴을.
조금은 충격적이고, 심지어 덜컥 겁이 들었고, 내심 불만이었지만-
―소아암이란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 상대로 해트트릭을 했으니, 참 가차 없다는 건 알겠습니다.
부, 불만이었지만…….
―아이들 상대로도 프로의 자격, 그렇게 역설하시던데 선수, 해보시죠.
사람은 공포를 느끼면 몸이 바짝 굳어버린다. 하나 앤서니는 달랐다.
처음 보는 자신을 향한 서늘한 유진의 눈빛.
그때를 떠올리자, 그의 모든 감각이 날 선 칼처럼 예민하게 곤두섰다.
마치 위기에 처한 순간, 자신도 모르는 잠재되었던 힘을 전부 꺼내고,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한 마리의 동물처럼.
툭, 툭, 공을 밀어내는 순간 한 박자 늦게 발들이 들어왔고, 투웅, 투웅, 공을 발등으로 튕겨내자 슬라이딩 태클이 반 박자 늦게 잔디를 갈랐으며.
―애들 상대로 프로 운운하면서 그저 노는 건지, 아니면 진짜 프로가 뭔지.
투웅.
튀어나오는 골키퍼의 뒤편을 향해, 발 안쪽으로 툭 밀어내는 정확한 인사이드 킥이 임팩트 되는 순간.
“――!”
비명 따위는, 발악과도 같은 외침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보였다. 골키퍼도, 수비수도, 입을 벌리며 표정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리며 무어라 토해내지만.
―보여주지 못하신다면, 조금 실망할 것 같습니다. 선수.
앤서니는 듣지 않았다. 오로지 발에 공이 때려지는 감각. 그리고 저를 향해 벤치에서 보고 있을 유진의 시선만을 의식했다.
앤서니가 이 팀에서 뛰는 이유는 팀에 대한 충성도, 사실 개인의 목표를 향한 성취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유진의 인정.
분명 유진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상당히 많이 다른 방식의 동기 부여였지만-
철럭-!
아무렴 문젠가.
앤서니는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전반 22분이었다.
* * *
“그러니까, 자선 활동을 한 게 앤서니의 각성을 의도한 거야?”
막스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각성은 무슨. 대체 뭔 얘기를 하는 거야?”
“무슨 얘길 하냐고? 보고도 몰라서 그래?”
흘끔 보니 막스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그건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직면한 자의 표정과 같았다. 음, 어떻게 보면 공포스러웠던 장면이긴 하지.
“봤어? 봤냐고. 쟤 혼자서 센터서클 아래에서 60m 넘게 돌파하면서 다섯 명의 태클 다 피한 거?”
막스가 침을 튀기며 와다다 쏟아냈다.
“드리블 돌파 잘하는 거야 알지! 그런데 속도는 그렇게 안 빨랐잖아! 하물며 센터서클 아래라고! 난 앤서니가 센터서클 아래로 내려가는 걸 처음 본다고! 그렇게 돌파해서 골을 넣었는데, 이게 각성이 아니면 뭐야?”
첫 번째 골은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줬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상대가 당황한 틈을 앤서니가 정확히 노리고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두 번째 골은 막스의 말대로 온전히 앤서니의 개인 역량이었다.
평소에도 개인 기량만으로 득점을 아무렇지 않게 넣어댔지만, 오늘은 아예 플라이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바뀌어버렸으니, 막스의 반응도 오죽하겠는가.
“갑자기 저렇게 변할 리가 없잖아.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런데 그 이유랄게, 우리 이틀 전에 간 자선활동밖에 없다고.”
“그것조차 내가 앤서니를 저렇게 써먹으려고 의도한 거다?”
“그게 아니면?”
아니.
저건 얻어걸린 거다. 내가 정색 한 번 했다고, 갑자기 메시가 빙의한 것 같은 플레이를 펼칠 줄은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럴 줄 알았으면 진즉 정색 한 번씩 했지.
“그럼, 정말 순수하게 선수들 동기 부여, 그것도 아니면 저 귀여운 아이들한테 크리스마스 선물해 주려는 산타였던 거야?”
“오늘 우리 전술 말이야. 좋지?”
내가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하자, 막스는 멈칫하면서도 대답했다.
“좋지. 득점 벌써 두 개나 터졌어. 앤서니의 폭발력을 극대화한 전술 덕분에, 사실 저런 플레이가 가능한 거니까.”
“그래, 공격의 파괴력 강화. 그 말은 역설적으로.”
말끝을 늘어뜨렸다. 순간 막스의 눈썹이 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필드로 고개를 돌렸다.
“……수비의 약화.”
그리고 그가 보고 있는 시야에는, 모두가 앤서니의 활약에 시선이 뺏긴 사이 온몸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헉헉대는 갈랑이 잡혔다.
* * *
전반 33분.
이른 시점에 두 개의 실점을 내어준 미들즈브러는 곧장 공격을 시도해 왔다.
1점 차이는 넣은 팀이나, 먹힌 팀이나 모두 조마조마한 심정이지만 2점 차부턴 다르다. 한쪽에는 여유가, 다른 한편에는 조급함이 흐른다.
두 골을 먼저 앞서가는 팀은 당연히 여유로울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한 골을 내어주더라도 분명히 앞서고 있으니까.
2점 차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운까지 맞아떨어져도 동점이 보통 한계다.
그 이상의 역전 스코어.
3대 2 스코어를 괜히 펠레 스코어라고 따로 별칭을 붙이면서 대단하게 여기겠는가.
이미 두 골을 내어줬다는 건, 그 경기에서 누가 더 확실히 잘하고 있는지 증명한 셈이다. 즉 실력적, 전술적으로도 더 나아가는 팀이 두 골을 먼저 넣었고, 이제 심리적으로도 상대 팀보다 우세한 상황.
하물며 홈경기 압도적 승률과 원정팀의 무덤이라는 별명까지 있는 필드 밀에서의 경기.
관중석은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벌써 열어본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하나 관중석과 달리 필드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정신 차려! 똑바로 봐!”
간절함이 담긴 외침은 의외로 맨스필드 측에서 흘러나왔다.
늘 서글서글 웃는 리처드의 외침이었다. 리처드가 웃음기를 잃어버릴 정도로 필드는 위급했다.
“밀어 넣어!”
“또 온다-!”
미들즈브러는 거침없이 공격을 시도했다. 최전방의 라이언 콜린스가 공을 몰고 들어오다가 왼쪽으로 길게 빼주는 스루 패스. 상당히 빠른 공이었지만 스피드 윙어인 올리버 하딩은 수비마저 가뿐히 떨쳐내고 골라인 아웃 직전 잡아내는 데 성공, 그리고 곧장 박스 외곽 측으로 컷백.
터엉!
쉐도우 스트라이커 마르코 로나모의 슈팅까지. 비록 골대를 비껴가며 아웃 됐지만, 실로 폭발적인 속도감의 역습이었다.
“후우. 후.”
맨스필드 수비 라인은 격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폭발적인 득점의 역설.
그건 이전보다도 한없이 높은 수비 라인 형성이었다.
하물며 미들즈브러는 리그에서도 최고의 공격력과 스피드를 자랑하는 팀.
비록 아직까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있었지만…….
‘시간문제다.’
맨스필드도, 미들즈브러도. 선수들이 모두 똑같이 느끼는 감상.
변화가 필요했다.
선수들의 시선이 흘끔, 벤치로 향했다.
하나 유진은, 담담한 시선으로 필드를 주시할 뿐.
어떤 변화도 요구하지 않았다.
마치 아직은 아니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