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46)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45화(246/266)
245. 메리 크리스마스 (7)
―미들즈브러, 계속해서 두드립니다, 두드리고, 또 두드립니다!
미들즈브러의 공격진은 계속해서 맨스필드의 뒷공간을 공략했다.
특별히 공격진의 움직임이 대단히 날카롭거나, 공간을 읽어내는 눈이 좋다거나, 장악 능력이 뛰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맨스필드가 오늘 뒤를 너무 내어주고 있어요! 이렇게 공간을 내어주면, 대문 열어준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논하기 전에 환경이 미들즈브러 공격진이 뛰어놀기에 더없이 좋았다.
―오늘 맨스필드는 평소보다도 수비 라인을 더 높이고 있죠, 이러면 필연적으로 뒤에 공간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요. 양날의 검입니다. 앤서니의 두 골은 이런 높은 라인 형성부터 시작됐지만……오, 올리버 하딩 다시 파고듭니다!
단단히 내려앉은 수비진 상대로도 뒷공간 파고들기가 특기인 미들즈브러의 윙어 올리버 하딩.
하물며 이렇게 극단적으로 올라간 덕에 허허벌판의 뒷공간쯤이야, 그에겐 탐스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왼쪽에서 내달리는 올리버 하딩에게 달려드는 수비는 없었다.
맨스필드의 헤일러가 그나마 거리를 두고 중앙에서 뛰어가는 것뿐.
―맨스필드의 뒷공간이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와아, 미들즈브러 너무 매서운데요!
벌써 몇 번이고 반복되는 역습 루틴임에도 불구하고 중계진은 감탄을 터뜨렸다.
―올리버 하딩, 하딩, 박스 외곽까지 접근, 헤일러 뒷짐 지고 중심 낮추고 접근합니다! 툭툭, 잔발!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올리버 하딩은 공간 파악과 스피드에 장점이 있지, 발재간에는 다소 손색이 있었다. 헤일러는 그 부분을 노려서 영리하게 각을 좁히는 수비를 진행했다.
나름의 호수비였지만 역습 상황에서 공격수의 숫자가 더 많은, 미들즈브러의 유리한 상황은 분명했다.
―올리버 하딩, 중앙 뒤쪽으로 컷 백-! 라이언 콜린스가 뛰어듭니다!
발 빠른 스트라이커. 미들즈브러의 핵심 득점원인 라이언 콜린스의 발끝이 공에 닿으려는 찰나.
투웅!
―갈랑, 갈랑입니다! 갈랑이 이번에도 발을 뻗어 공의 궤적을 틀어버렸습니다!
완벽한 수비는 아니다. 태클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발짓. 하지만 통했다. 공만 살짝 건드리는 행동은 얼핏 보기엔 갈랑이 수비에 밀린 듯 보였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터엉!
―라이언 콜린스의 슈팅이 리처드의 손끝에 정말 아쉽게 막힙니다! 이런, 갈랑이 마지막에 공을 건드는 바람에 무게중심이 무너졌고, 공의 방향도 틀어져 버렸죠. 정말 영리한 수비입니다!
―또 갈랑입니다, 갈랑이 지켜냈습니다!
―하하, 대단히 영리한 플레이네요. 진짜 이런 식으로 수비를 하는 선수를 얼마 만에 보는 걸까요.
―하지만 방금 전은 정말 위험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슈팅을 못 하거나, 빗나가거나, 그도 아니면 리처드가 안전하게 막아냈지만, 예, 점점……
―영점이 잡혀가고 있죠? 공격진이 갈랑을 포함한 맨스필드의 수비에 적응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이는데요.
―거기에다 갈랑 선수, 벌써 지쳐 보이거든요.
* * *
훅, 훅.
갈랑은 눈앞이 뿌연 것이, 자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김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몸이 뜨거웠지만, 필드의 공기는 차가웠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분명 이쪽이 두 골을 먼저 넣었는데도, 정확히는 수비진의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파트너인 헤일러는 젊은 만큼 아직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간간이 실수를 범했고, 풀백인 스탠리는 전진을 계속하다 보니, 사실상 수비수 두 명이 최종수비를 보는 격이었다.
‘그것도 센터서클쯤에서.’
갈랑은 목이 바짝 말라 갈라질 것 같아 침을 꿀꺽 삼키고 제 뺨을 톡톡 때렸다.
‘각오는 했는데…….’
오늘 경기를 앞두고, 유진이 전달한 지침은 이미 충분히 숙지했다.
―평소보다도 높은 라인을 형성할 겁니다. 아마 수비수들은 본인들이 미드필더라고 착각할 정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 충분히 숙지했다.
원래도 맨스필드는 이번 시즌 대대적으로 높은 라인을 유지했다.
하지만 갈랑은 문제없이 소화해 왔다.
이번에도 조금 힘들지언정, 가능할 거라고 봤다. 실제로 아직까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있다는 상황만 봐도 분명하다.
그러나 5분 동안 두 골, 세 골이 터질 수도 있는 것이 축구다.
85분을 틀어막고 5분 동안 무너질 수도 있단 의미다.
갈랑은 이 상태라면, 그 5분은 필연이라고 느꼈다.
지금 찾아오느냐, 아니면 후반으로 버티면서 미루느냐의 차이일 뿐.
‘라인을 내려야 해.’
수비진이 더 올라가면 안 된다. 너무 부담스럽다. 센터서클부터 역습 때마다 저 아래까지 미친 듯이 전력 질주하고, 공을 걷어내고-
그 모든 과정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해야 했다.
―아이한테 경기장 초청 약속을 하셨더군요? 네, 추운 날. 나는 그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습니다. 많은 득점, 그리고 승리. 선수가 도와주셔야 합니다.
푹 숙인 갈랑의 고개가 힘겹게 들어 올려졌다.
그의 시선이 VIP석에서, 질병의 고통과 근심을 모두 잊은 듯 그저 축구에 흠뻑 받아 천연한 웃음을 짓는 아이들에 닿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감탄을 거듭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내려다보는 에단이.
확신할 수 없지만, 어쩌면 저 아이 중에서 에단만큼은 자신을 응원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갈랑은 불현듯 과거를 떠올렸다.
* * *
영국에서 축구의 위상은 실로 대단하지만, 그건 브라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질에서 축구는 하나의 종교였다.
많은 종교인들이 가난과 싸우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브라질 빈민가의 아이들은 축구라는 종교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슬럼가라고 해도, 낡은 축구공 하나쯤은 골목거리에도 돌아다니니까.
갈랑이 축구공을 접한 것도 그런 사정이었다. 화려한 명품 치장에 여러 광고 모델, 잡지 모델을 겸임하는 그를 보면 언뜻 떠올리긴 힘들지만, 그는 빈민가 출신이다.
딱히 대단히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브라질 축구 선수 중에 절반은 아마 빈민가 출신일 수밖에 없으리라.
빈부격차가 극심한 나라 중 하나기도 하니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에겐 늘 정확하진 않지만, 두 가지의 갈림길이 있다.
가난에 순응하고 엇나가거나, 아니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성공을 갈구하거나.
갈랑은 후자였다.
―허, 요즘도 골목길에서 공 차는 애 중에 이런 애들이 있나? 너 어디 유스 팀에서 뛰고 있는 거 아니냐?
골목에서 뛰어놀고 시끄럽다는 신고가 하도 들어왔다고 귀찮은 얼굴로 출동한 경찰이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툭 던진 말.
그 말이 갈랑의 인생을 바꿔놓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아는 형님이 여기서 애들 축구 가르치는데, 너 한번 가봐라. 조금 동네가 여기서 멀긴 한데……
그리 말하면서 자신을 살피는 눈치를 보고 갈랑은 급히 외쳤었다.
갈 수 있어요, 라고. 다급하게.
버스비도 없었다. 그래서 3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다행히도 팀의 유스 코치는 선수 보는 눈썰미가 있었고, 꼬질꼬질한 옷을 입은 빈민가의 아이가 보여주는 찬란한 재능을 캐치해냈다.
―너 정말, 프로 구단 유스가 아니라고? 이거 내가 품기엔 너무 큰데?
사실 대단한 팀은 아니었다.
브라질엔 영국만큼 축구 구단이 엄청 많고, 프로, 세미프로를 떠나 아마추어 구단도 그 숫자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각에서는 브라질 국민 숫자만큼 있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
굳이 따지면, 갈랑이 간 팀도 학교에 달린 축구부에 가까웠다.
다만 축구에 진심인 사람들의 특성상, 축구부 운영조차 마치 하나의 구단 유스 팀처럼 체계가 잡혀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골목에서 공 차는, 그 버릇이랄게 좀 많이 남아있다. 이것만 빼고 기본기만 닦으면, 그래, 딱 1년이면 프로 구단으로 보내주마.
다만 그 팀이, 상류층의 학교가 운영하는 축구팀이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팀에서 뛰려면 학교에 들어가야 했고, 빈민가에서 여러 자선기관과 복지사업으로 운영되는 학교에 다니던 갈랑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코치는 장학금을 얻기 위해 노력해 줬고, 갈랑이 그만큼 성과를 보여줘야 했다.
그 같은 사실은 어렸던 갈랑은 잘 몰랐지만, 어떻게든 온 기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알았다. 그러니 테스트받기 위해 도착했던 때.
저를 향한 차가운 눈빛과 수군거림을 직면했다.
‘뭐야, 쟤?’
‘쟤야? 코치가 들여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애가?’
‘상태가 왜 저래. 옷이라도 좀……’
사실 그간 봐왔던 환경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었다. 도로와 건물은 깨끗했고, 가드가 돌아다니면서 치안도 안정적이었고-
저도 모르게 위축됐던 갈랑은 저를 향했던 수군거림을 듣고 고개를 푹 숙여 애꿎은 제 유니폼만 바라봤다.
유니폼.
그래, 유니폼이다.
브라질에서 가장 인기 팀인 산투스의 유니폼이었다. 물론 정식 라이센스의 유니폼은 아니었고, 시장에서 파는 가짜 유니폼이었지만, 아무렴 문젠가.
공 차는 걸 좋아하는 그에게 어머니가 쌈짓돈을 꺼내 사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는데.
가짜든 진짜든, 정말 좋아해서 매일 그 유니폼을 입었다. 애당초 입을 옷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기야 했지만, 항상 유니폼만 입고 다녔다.
헤지고, 더러워져도, 입고 생활하고, 골목에서 공을 찰 때도.
옷은 금세 색이 바라고 더러워졌다. 바닥을 구르며 진흙이 잔뜩 묻을수록, 오물이 묻을수록.
한데도 단 한 번도 그게 지저분하거나, 부끄럽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다 그랬으니까.’
같이 골목에서 공 차던 놈들, 오물이나 질퍽한 흙이 유니폼에 묻는 건 당연했다. 몸을 날리고, 바닥을 뒹굴고, 공을 향해 와르르 달려가다 넘어지고-
다 그랬었으니까. 하나 모두가 깨끗하고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채 기다리던 훈련장에서, 갈랑은 처음으로 입고 있는 유니폼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갈랑은 모든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원래부터 수비수 포지션이었다. 친구들이 다 개인기를 쓰면서 공격하는 걸 좋아했고, 갈랑은 역으로 그런 애들이 공을 뺏기고 울거나 분해하는 걸 보는 걸 좋아했다. 공을 지키는 역할 말이다.
하지만 지저분한 유니폼과 꾀죄죄한 모습을 의식해서일까. 저를 향한 눈빛이 신경 쓰였을까. 갈랑은 과감하고 멋진 태클을 보여주지 못했다.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거냐?
자신을 강력히 추천해 준 코치는 다소 석연찮은 반응을 보였지만.
―그래도 다행히 됐다. 충분해. 다음 주부터 학교 수업 듣고, 수업 끝나면 바로 여기로 와라.
놀랍게도 테스트는 통과했다. 갈랑은 어안이 벙벙했다. 안 됐을 거라고 팍 기가 죽었으니까. 그래. 그 정도만으로도 됐다.
딱 그 정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갈랑은 차원이 다른 재능임을 여실히 드러냈던 것이니까. 그 경험은 갈랑에게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후에 학교에 입학하고, 축구부에 들어가면서 그에게는 깨끗한 교복과 유니폼이 주어졌다. 그 유니폼을 입으면서 갈랑은 순간 바뀐 시선을 느꼈다.
주위에서 바라보는 눈빛은 물론, 저를 향해 수군거리던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도 말이다.
좋은 학교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어머니 손을 잡고 머리를 자르고, 깨끗이 씻고, 깨끗한 교복과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일까.
그때야 갈랑은 자신이 잘생겼단 사실을 깨달았다.
저를 보며 수군거리던 애들의 눈에도 호의적인 빛이 그려졌다는 것도.
‘……날 좋아해?’
차가운 눈빛과 질색이던 표정을 똑똑히 기억했던 갈랑은 충격을 받았다.
‘여긴 축구를 잘하는 것보단, 이런 걸 더 좋아하는 거야?’
그래, 다른 세상이었다. 그가 살던 골목길은 축구를 잘하는 것이 세상에서 최고였다. 가장 선망받고, 찬사를 받았다. 하나 여기선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갈랑은 최대한 늘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새하얀 유니폼조차 더럽혀지기를 극도로 꺼렸다.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그의 재능은, 그 반쪽짜리만으로도 충분히 남달랐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갈랑이 열심히 하지 않고 다른 길로 빠졌단 뜻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축구만이 자신의 가난을 역전할 수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기에 나머지 반쪽을 극한까지 갈고 닦았다.
발을 쓰고, 안정적으로 플레이하고, 더 빨리 뛰고,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관찰하고, 어떻게든 읽어내는-
―레오나르두 파세스, 산투스 입단!
―산투스 프로무대에 데뷔한 18살의 수비수, 잘생긴 외모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그래, 그 빛나는 재능만으로 입었다. 어머니가 사줬던 가짜 유니폼이 아닌,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산투스 유니폼을.
갈랑은 확신을 얻었다. 곳곳에서 접촉해 오는 언론사, 잡지, 모델 제안-
거기에 저를 좋아해 주는 팬들까지. 갈랑의 플레이 스타일이 완벽하게 정착되는 순간이었다.
언제였던가.
산투스에 입단하고 활약했던 갈랑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은사였던 코치를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하나 그 코치는, 무언가 안타까운 기색으로 말했었다.
―나는 네가 셀레상(seleção: 브라질 국가대표)의 일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너는…… 파세스. 축구에 집중해라. 다른 것 말고, 축구에……
감사한 마음에 식사 자리에 초청했던 것이었지만, 그 눈빛을 보고 갈랑은 어린 마음에 섭섭해져서 차갑게 말했었다.
‘축구 선수로서 제 이름은, 레오나르두 파세스가 아니라 갈랑(Galã)이에요.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거든요.’
* * *
“갈-랑!”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갈랑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멍청한!’
경기 중에 과거나 떠올리다니, 상념에 빠지다니. 하나 자책할 시간조차 없었다. 또 한 번 미들즈브러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었다.
갈랑은 본능적으로 뛰었다.
‘왼쪽으로 달려 나가고, 중앙에서는 한 박자 늦게 움직이고- 1순위는 콜린스, 아니 저 뒤에 오는 이탈리아 놈이다!’
어렸을 적 코치가 봤던, 셀레상의 일원이 될 거라는 예측은 어쩌면 정확했을지도 모른다.
갈랑은 급박한 역습 상황에서 필드를 보고, 읽어냈다. 상대 팀의 흐름과 동선, 궤적까지.
무작정 압박하고 막는 게 능사가 아니다. 가장 확실한 위치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비를 펼친다. 이것이 갈랑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한계는 존재했다. 안정적인 전술에선 그 무엇보다도 효율적인 영리한 수비겠지만-
마치 오늘의 맨스필드는 그 수비력을 두드리고 때리면서 계속 테스트하는 것처럼 수비진에게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지금 갈랑은 한계에 봉착했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갈랑은 직감했다.
‘이거, 실점이다.’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파악되는 여러 경우의 수.
적어도 다섯 번의 상황에서, 세 번은 골일 수밖에 없었다.
골이 아닌 경우의 수 하나는, 리처드가 말도 안 되는 선방 쇼를 보여주거나.
갈랑은 문득, 어렸을 때 보고 느꼈던 지저분한 자신을 보면서 질색하던 차가운 눈빛.
그리고 바뀐, 깔끔한 모습에 호의적으로 변했던 시선.
나아가 경기장 한 축, 유리창 너머에서 선망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에단의 천연한 눈빛이 교차하듯이 스쳐 간 걸 느꼈다.
실점이 아닌, 마지막 경우의 수.
갈랑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지금.’
촤아악―!
갈랑의 슬라이딩 태클이 잔디를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