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5화(25/266)
25. 감독 데뷔 (3)
반즐리의 감독 샘 홀튼은 이른바 심리전의 달인이었다.
‘기가 죽었을까, 아니면 억울해했을까, 그도 아니면 방방 뛰었을까.’
샘 홀튼의 시선이 상대편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향했다.
돌처럼 무심한 얼굴이 시야에 걸렸다.
그는 사람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무뢰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럼 기자회견에서의 무례함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 역시 의도된 바였다.
‘지금 맨스필드는 내부에서부터 문제 현안이 아주 수두룩한 팀이다. 내부는 곯아 무너지고 있고, 외부에서도 엄청난 압박이 있어.’
샘 홀튼은 자신이 맨스필드의 감독 자리에 앉았다고 상상하면,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감독이 경력도 없는 초짜란 말이지!’
샘 홀튼은 그 점을 유의 깊게 살폈다.
‘분데스리가에서 코치 생활 좀 했다지만, 그것도 끽해야 유스팀과 2군 코치였어.’
아무리 빅리그라지만, 감독과 코치의 경력은 다르다.
‘최고참 선수인 젠킨슨보다 어리지? 이번에 영입한 대니 스콧보다도.’
스포츠계는 위계질서가 철저하다.
하물며 나이도 그 질서의 한 축이다. 나이가 어린 감독의 말을 듣지 않는다기보단, 어린 감독이 저 베테랑 선수가 포함된 선수단을 장악할 관록이 있는가. 너무도 당연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포부, 멋있긴 했지.’
기자회견에선 열기만 높은 풋내기의 포부라고 거침없이 힐난했지만, 솔직히 말해 샘 홀튼은 그 점을 높이 샀다.
‘감독이 그런 야심 정돈 품어줘야지.’
남들이 비웃는다고 하더라도, 이 바닥은 높은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려야 하는 경주장이니까.
하지만 개인적인 호오(好惡)는 차치하고서도, 샘 홀튼은 젊은 감독, 유진이 선수단 장악에 실패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엿봤다.
‘언론이 제법 시끄러웠지.’
맥 헤럴드와의 루머는 4부 리그에서 가장 핫한 소식이었다.
선수와 갈등이 그대로 기사에 실릴 정도면, 선수단 장악은 더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법하지 않은가.
‘지금 맨스필드는 모래성과 같아. 어린아이의 발길질에도 우르르 무너질.’
반면 반즐리는 다르다.
객관적으로 맨스필드보다 강한 팀이다.
‘위닝 멘탈리티라는 게 괜히 있는 줄 아나?’
위닝 멘탈리티.
무슨 일이 닥쳐도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는 팀의 강력한 정신력.
‘맨스필드는 도리어 패배감에 젖어있는 팀이야. 연이은 패배에 강등까지.’
거기에 선수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감독이라면.
또, 밖에서 그런 감독을 조롱한다면?
‘선수들이 과연 감독을 위해 뭉칠까?’
그 기자회견이, 맨스필드라는 모래성을 크게 흔들어놓은 셈이다.
나아가 반대로 반즐리에는 그 정도 팀은 찍어누를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결국 안하무인의 기자회견은 심리전이었다.
샘 홀튼은 자신을 두고 사람들이 욕을 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다고 한들, 상관치 않았다.
오로지 승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본인의 명성이 진창에 처박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본래 심리전이라면, 자신조차 오물을 뒤집어쓸 각오를 해야 하기에.
그렇다고 샘 홀튼을 그저 심리전만 잘하는 감독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다.
‘프리시즌에서 맨스필드는 확연한 약점을 보였다.’
프리시즌 친선경기 무패였지만, 샘 호틀은 포착해냈다.
‘골 넣을 선수가 없어.’
바로 스트라이커의 처참한 실력.
이적한 우드의 공백을 메꾸지 못했다는 점.
‘그러니 대니 스콧을 스트라이커로 올리고, 헤럴드를 공격헝 미드필더로 두는 선택을 했지. 분명 그건 위협적이었어. 하지만……막을 만하다.’
모르면 몰랐을까. 미리 알고 있으면 어려운 것도 없다.
그 루트만 압박하면 맨스필드는 손발이 묶여버린다.
“저쪽 팀은 선수단이 빈약해요. 그 둘을 제외하고 다른 루트를 개척할 수는 없을 겁니다. 설령 하더라도, 위력적이지 못할 거예요.”
코칭스태프의 일관된 의견이었다.
“개막전 시원한 승리를 가져갈 수 있겠어.”
샘 홀튼은 자신만만했다. 개막전에서 상쾌한 승리를 따내면 이번 시즌은 순항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경기 시작 전.
상대 팀의 라인업을 봤을 때 거칠게 흔들렸다.
“뭐?”
샘 홀튼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헤럴드가 없어?”
맥 헤럴드의 명단 제외.
그 같은 라인업 발표에 감독 이하 코치진은 일제히 당황했다.
대체 무슨 포메이션이고 무엇을 의도하는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혼란 속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스트라이커가 없다고?”
오로지 대니 스콧이, 스트라이커 자리에 서 있었다. 단 홀로, 외롭게.
샘 홀튼의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가짜 9번.’
펄스 나인(False 9).
* * *
팀의 치명적인 약점은 가장 먼저 내 눈에 띄었다.
아니, 이 팀에 내가 부임하던 그 순간부터.
다른 팀 감독이 알 정도라면, 내가 모를까.
무수한 문제점이 산재했던 이 팀에서, 가장 먼저 선명하게 번뜩이며 내 눈을 어지럽히던 약점.
‘득점원의 부재.’
비단 스트라이커 하나를 이르는 것이 아니다.
‘스코어러가 없어.’
득점을 기록할 수 있는.
저 0대 0을 표시하고 있는 전광판에 숫자를 올려줄 수 있는 확실한 스코어러.
우리 팀에는 없었다.
맥 헤럴드라는 날카로운 발이 있지만, 내 기준에 차지 않는다.
스코어러에겐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팀원의 조력을 받아 확실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선수.’
애석하게도 맥 헤럴드가 그와 비슷한 유형이었다. 물론 한참 부족한.
선수단 전체가 지원 사격해야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팀은 빈약하다. 뎁스가 얇고 좋은 선수는 거의 없다. 헤럴드는 쓰기 애매한 계륵이었다.
내가 원하는 선수는 다른 부류였다.
‘어떤 지원사격도 없이 기어코 결과를 만들어내는 유형.’
적어도 리그 투의 수준에서, 해리 오스카가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 오스카는 아직 내게 없다.
그렇다고 명백히 드러나는 약점을 가만히 둔 채 경기에 나서는 머저리는 아니다.
‘이 약점은 너무 쉽게 눈에 띄어. 눈치채지 못할 사람이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드러낸다.
뻐엉―!
대니 스콧으로부터 이어지는 패스를 받은 윙어의 어설픈 슈팅은 골문을 비켜나갔다.
상대 팀은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기는커녕,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이번 전술, 잘 모르겠는데.”
막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굳은 얼굴의 그는 자신이 짠 전술임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보이지 못했다.
그야 당연했다. 내가 요구했던 전술이었으니까.
“지금 우리 측 공격 원활하지 못한 거 보이잖아?”
막스의 말대로였다.
상대의 포백은 견고했다.
반면 우리 측 공격진에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는 건 그나마 대니 스콧이었다.
“아무리 전술이 좋아도, 그 전술을 따라주는 선수들의 수행 능력에 갈린다고. 대니 스콧 말고는 움직임을 완벽히 이해하는 선수가 없어.”
입술을 질끈 깨문 막스의 표정을 보아하니, 알 만했다.
선수단의 퀄리티가 부족함을 절실히 체감하고 좌절감을 느낀 것이다.
머릿속 공상과 실전은 다르다는, 유구한 조언이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줄은 몰랐던 것일까.
하지만 그는 선수단 탓을 하지 않았다.
“선수단에 맞추는 전술이 필요한데……이 또한 내 잘못이야.”
“아니야. 잘 되고 있어.”
터져 나오는 함성과 열기 속에서 경기는 팽팽함 속에 고요함을 유지했다.
대니 스콧의 번뜩임이 간간이 보였지만 그는 애당초 정통파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견고한 포백을 뚫고 들어가는 움직임은 어려웠고, 그것 역시 내가 주문하지 않았다.
보기에 퍽 답답한 공격 전개.
“도리어 계속 상기시켜 주는 거야. 우리 약점을.”
“……좋지 못한 것 같은데. 우리 득점력이 약하다는 걸 아니까, 저들은 도리어 간단하게 공격 전개를 틀어막고 있어. 보다 편하게.”
“우리가 모르는 약점은 치명적이지만, 인지하고 있는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지.”
고개를 갸웃하던 막스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전반전은 서로 공세를 펼치며 득점이 나오지 않은 채 끝났다.
나는 라커룸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준비한 대로 가자고.”
* * *
―지공 상황에서 이번에도 대니 스콧이 공을 내려가서 받습니다!
―역시 공을 쫓는 움직임은 남다르네요, 대니 스콧, 공을 잡고 주위를 둘러보는데요, 아, 애매하네요.
공이 온 순간.
대니 스콧은 찰나 고민했다.
‘뚫을까?’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도 십오분쯤 지났을 때.
단단했던 상대의 수비블록도 헐거워지는 것이 보였다.
느슨해지는 연결고리가 흑백에서 색채를 입은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냐.’
유진의 지시는 공을 소유한 채, 기회가 온다면 패스를 할 것.
어렵지 않았다. 펄스 나인이라지만, 그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공을 잡고 최대한 버티면서 적의 수비진을 끌어내고, 그 빈틈으로 패스를 쏘아 보낸다.
간단명료하지만, 사실 쉽지만은 않다.
공을 소유하고 지키는 것. 상대 수비를 끌어내는 것. 나아가 그 사이로 패스길을 찾아,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
이 셋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놀랍게도 대니 스콧은 두 가지를 해냈다.
아니, 세 가지까지.
패스의 길이 보였다. 한데.
―공격에 나갔던 반즐리의 선수들 다 복귀했습니다. 수비진이 촘촘해졌어요!
―도통 맨스필드가 반즐리를 공략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또 한 번 그 누구도 침투하지 않는다. 기회가 열렸는데 파고들지 않았고, 어물쩍 주위를 맴돌며 패스받으려고만 한다.
―하하, 이거 쉽지 않죠? 오늘 맨스필드의 공격진이 힘겨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거……아무래도 유진 감독의 선택이 실패로 돌아간 것 같은데요. 맥 헤럴드가 없는 공격진의 펀치는 너무 약합니다, 아니요, 펀치조차 하지를 못하고 있네요!
‘패스길이 보이지만, 우리 팀이 들어가지를 않아.’
이렇다 보니 몇 번의 기회를 포착해도 현재까지 스코어는 0대 0이었다.
‘그나마 우리 쪽 수비도 나쁘지 않은 게 다행이야. 이거, 무승부라도 노리는 작전인가? 지금 상태로 승점 1점만 따내도 확실히…….’
대니 스콧은 눈을 빛냈다.
‘차라리, 내가 돌파하는 게 낫다.’
하지만 그 순간, 대니 스콧은 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공격 루트를 만드세요.
“……끄응.”
머릿속에 유진의 지시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대니 스콧은 어물쩍거리다가 결국 공을 뒤로 돌렸다.
지시는 하나였다. 돌파나 드리블이나, 위험하고 도박적인 패스마저 절대로 엄금한다는 명령.
오로지 루트를 개척하라는 단 하나의 지시였기에 대니 스콧은 답답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시간이 갈수록 그 같은 현상은 명확했다.
아군 윙포워드 동료는 시간이 갈수록 지치고 도리어 상대팀에게 온전히 움직임이 전부 파악되어 일전보다 기회가 더 열리지 않고 있었다.
몇 번씩 번뜩이며 보였던 그 기회가 이제는 옅어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어. 내가 돌파해서 만들어야 해.’
대니 스콧은 공을 받자마자 몸을 돌리며 파고들려고 했다.
그러자 수비진이 눈을 형형히 빛내며 몰려들었다.
―오, 대니 스콧 이번에는 공을 잡고 직접 올라갑니다!]
―패스길이 막히니 직접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네요, 하지만 반즐리 수비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강력한 압박입니다!
―아, 이거 막힐 것 같은데요!
대니 스콧이 어깨를 비집고 공간을 비집자. 수비수들이 강하게 밀고 들어왔다. 대니 스콧은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허벅지에 힘을 불어넣고 버티려던 찰나.
‘어?’
그의 망막에 예상치 못한 선수 한 명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잡혔다.
공간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모습.
‘공간!’
그 순간, 대니 스콧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에게 수비수들이 몰리는 순간, 아주 희미하게 발생한 균열. 그리고 그곳으로 파고들면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쟤가 왜 저기 있어?’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불쑥 솟구쳤다. 그러나 머릿속과는 달리, 그의 신체는 저절로 작동했다. 어깨로 짓누르는 압박을 버티고, 허리를 펴내며, 수비수들의 모든 이목을 끌어버린 채.
‘보인다.’
사위가 침묵에 잠겼다.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사람들이 입을 열어 소리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막이 감돌았다.
대니 스콧의 눈이 형형하게 번쩍이며 시야가 확장됐다.
―공격 루트를 만들어라.
‘저것이다.’
보였다. 공간의 틈이.
현시점, 오로지 대니 스콧만이 볼 수 있는 시야.
그리고 필드 밖에서 유진이 상상했던 그 광경.
공간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풀백의 오버래핑 앞으로, 대니 스콧은 있는 힘껏 공을 밀어 넣었다.
투웅―!
데구르르 구르는 공이 선수들의 틈바구니를 벗어나 필드를 가로지를 때.
극한까지 솟구친 집중력으로 침묵에 잠겼던 사위가 일시에 깨어난다.
“와아아아아아아!”
“달려! 달리라고! 뛰어!”
함성과 고함, 그 격렬한 열기 속.
대니 스콧이 보낸 패스가 정확히 발끝에 닿는다.
백 번호 33.
그 위로.
제임스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빛났다.
* * *
“프로 레벨 아니라니까. 유스 레벨에서도 평범한 수비수를 콜업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되자마자 교체 투입된 제임스를 바라보며 막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부족한 코칭스태프의 숫자로 처리해야 할 일이 한가득하며, 이번 시즌 막스도 처음 이 팀에 온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선수단 파악도 1군에 그쳤다.
애당초 유스팀 선수까지 파악하는 건, 그로서도 어려운 일이었고, 나 역시 그걸 요구하지 않았다.
때문에, 저런 불만은 이해가 갔다.
나는 굳이 그 불만을 해소해주지 않았다.
구단을 방문한 첫날, 젠킨슨이 유소년을 데리고 훈련할 때.
내 눈에 띄었던 선수.
분명 나는 그를 가차 없이 매도하고 힐난했지만, 그에게 지시를 내렸던 이유는 분명했다.
‘내 지시를, 수행할 정도의 머리는 그중에서 가장 있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제임스으으으으―!”
그의 발끝에 대니 스콧의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패스가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