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54)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53화(254/266)
253. 선수는 선수를 이해한다 (5)
갈랑은 원래부터 수비를 잘했다.
크리스마스 이후 나머지 반쪽을 찾아가고 있고, 아직도 완벽히 익숙해지진 않았지만, 아무렴 문젠가. 그가 대단히 좋은 수비수라는 점은 명백했다.
하나 웨스트브롬 전을 앞뒀을 땐, 좀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웨스트브롬의 공격수, 파울라다는 훌륭한 공격수입니다.”
남들이 와, 하는 소리를 내뱉는 대단한 스트라이커는 아니다.
애당초 웨스트브롬이 엄청난 체급을 지닌 팀은 아니고, 프리미어리그 중하위권, 때때로 챔피언십도 구경하고 오는 팀이다 보니, 일반 대중들까지 알려진 이름은 아니다.
하나 축구 팬들이라면 하나같이 그 이름은 들어볼 정도의 명성은 지녔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현시점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는 건 대단한 성적입니다.”
언제든 빅클럽의 수비 라인에도 비수를 꽂을 ‘한 방’이 있는 선수라는 평가.
웨스트브롬이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선수.
그 말은 곧 역설적으로.
“파울라다 의존도가 상당합니다.”
리그 중반을 조금 지나는 시점에서 프리미어리그 두 자릿수 득점이면, 열 손가락에 꼽히는 수준이다. 실제로 현재 리그 득점 6위였고, 2위까지 3~4골 차이일 정도니까. 그럼에도 웨스트브롬은 언제든 리그 강등권까지 떨어질지도 모르는 순위를 유지 중이었다.
“파울라다 같은 공격수를 가진 팀이 그 정도 순위라면, 전체적으로 밸런스에 문제가 있다는 점입니다.”
즉, 파울라다를 막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공략 가능한 상대입니다.”
그 같은 결론이 나오는 순간.
나는 막스와 알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기존대로 라인을 높이고, 공격적으로,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
막스조차도 이번 경기에선 신중하고 안정적으로 라인을 내리고 앤서니의 한 방을 노리는 전술을 제안했다.
두 골, 세 골, 네 골……다득점의 승부가 아닌, 앤서니의 킬러 본능을 믿어 단 한 번의 득점으로 이기는, 그런 약팀이 강팀을 잡는 전형적인 자이언트 킬링 말이다.
“1차전, 2차전 두 경기야. 1차전에서 1득점 차로 이기면, 다음 경기에서 상대가 어떻게 나올 거 같아?”
“그야…….”
“전력을 다하겠지. 2차전은 또 웨스트브롬 홈경기고. 나는 정신론을 좋아하진 않지만, 토너먼트는.”
나는 머리를 톡톡 두들기면서 말했다.
“정신력이야.”
“하지만…….”
“감독님이 말씀하신 대로 파울라다의 발끝은 정말 매서워서요. 이 친구라면 라인을 높인 우리 수비진을 상대로, 아무리 갈랑이 잘한다고 해도 정말 위협적인 선수입니다.”
수비적 성향에 수비 전술에 일가견이 있는 알롭은 입안이 바싹 마른 듯 말을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파울라다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 라는 전제가 중요한데, 갈랑이 지휘하는 수비진이 훌륭하고, 최근 갈랑 이 친구가 마음을 제대로 먹은 듯 변하기야 했지만…….”
알롭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무리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위험합니다.”
확률의 문제.
막을 수 있다. 갈랑이 지휘하는 수비, 리처드의 손끝이라면.
하지만 확률로 보면 50% 이하.
“끌어올리면 됩니다.”
“박싱데이 일정입니다. 훈련도 제대로 진행 못 하고 선수들 체력 회복 루틴으로만 훈련 세션을 진행 중인데 어떻게-”
알롭이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훈련 세션은 코치의 권한이자 능력이다. 어떻게 세션을 진행하고 선수에게 적용할 수 있느냐가, 곧 코치의 실력임은 분명했다.
알롭도, 막스도 내 앞에서 그건 불가능하다, 무리다-라고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이건 코칭의 문제가 아닙니다.”
“코칭이, 아니라고요?”
“때론 코치의 정형화되고 정확한 코칭보단, 같은 동료이자 선배, 그리고 수준이 높은 선수로부터 얻는 노하우. 그게 통할 때가 있죠.”
“…….”
“어린 학생들이 자타공인 뛰어난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과 별개로, 따로 과외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과외 선생님이 대체 누구-”
“경기도 뛰지 않고 주급만 받아 가는 선수가 있는데, 주급값은 해야죠.”
뭐, 본인이 한다고 하지 않았나.
* * *
알바로 카스티노는 어떤 반문도 없이 따라줬다.
별로 어려울 건 없었다.
파울라다의 영상을 보여 주고, 자일슨이 분석한 그의 스타일과 활약을 자료로 내주자-
“아, 이런 유형의 선수군요.”
아무렇지 않게 카스티노는 어떤 선수인지 대충 파악은 끝낸 듯했다.
“완벽히 이 선수 마음까진 모르겠지만, 슈팅 스타일을 보니 습관이 보이긴 하네요.”
자일슨이 준비한 데이터였지만, 데이터도 사실 쌓아놓기만 하면 그저 죽은 정보에 불과하다.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데이터의 가치가 빛나는 법.
카스티노는 그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카스티노 선수는 파악한 파울라다의 스타일로서 갈랑과 훈련해 줘야겠습니다.”
“음. 네.”
“조금, 가혹하게 하셔도 됩니다.”
카스티노가 실소하듯 말했다.
“제가 반년쯤 경기 못 뛰고 있지만, 저, 알바로 카스티노입니다.”
* * *
솔직히 말해 갈랑은 알바로 카스티노와의 일대일 특훈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때문에 필드에서 그는 몇 번이고 피부에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쪽을 막으니까, 저쪽으로 뛰어가잖아?’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도 잠시, 갈랑은 마치 명령어가 입력된 로봇처럼 가장 절묘한 지점으로 들어갔다. 파울라다의 어깨가 흠칫하는 것이 느껴진다. 상대가 자신의 움직임을 의식한단 의미였다.
바로 찰나의 무의식.
그것이 파울라다의 어깨와 허벅지에 아주 미세한 힘이 더 실리게 만들어, 조급하게 바로 슈팅 모션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으로 바뀐다.
카스티노가 훈련에서 보여 준 것처럼, 정확하게.
‘이런 식으로 압박한다면, 파울라다는 정확한 득점을 위해 반박자 빠른 슈팅을 노릴 거고-’
그 순간에 성큼 더 압박하되, 발끝을 뻗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그 좁은 공간에 슈팅을 쑤셔 넣으려고 할 것이다-’
자일슨이 보여 준 선수 분석 보고서. 그걸 바탕으로 유진이 설명한 상대 팀의 공격 전개 스타일.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들어도, 몸으로 체득하는 바는 다르다.
아무리 상대를 분석하고 연구해도, 정작 몸이 맞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모든 팀이 엄청난 수준의 코치진, 방대한 분석가들을 대동하지만, 그걸 선수들에게 완벽히 적용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물론 지금까지 맨스필드 선수들이 어려움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유진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고 정확한 조언으로 선수들을 이끌어왔으니까.
하나 때때로, 몇 가지 의문이 생겼는데.
―감독님이 딱히 대단한 지침을 내리는 거 아니잖아?
―뭔가, 좀 쉽고 정론 같은 말들이 많긴 하지.
돌이켜 곰곰이 생각하면 유진의 조언이 막 엄청 대단한 방법이 섞인 것과는 멀다는 점이다.
하나 갈랑은 이제 깨달았다.
퍼엉!
놀라울 정도로, 예상한 지점과 타이밍에서 슈팅을 때리는 파울라다의 모습에서.
‘그런 고차원적인 조언을 못 한 게 아냐.’
터엉!
기다렸다는 듯이 정확하게 슈팅을 손끝으로 밀어내며 막아내는 리처드의 선방에서.
‘그저, 하지 않았던 거지.’
자일슨의 분석이, 유진의 전략과 지침으로, 그리고 카스티노라는 동료 선수의 경험이 뒤섞인 조언이 만나.
―웨스트브롬, 맨스필드의 홈구장 필드 밀에서 패배합니다! 유진의 맨스필드, 프리미어리그를 잡아냈습니다!
* * *
[맨스필드, 프리미어리그의 웨스트브롬과 리그컵 4강 1차전 1대 0 승리!] [끊임없이 두드렸지만 뚫지 못한 웨스트브롬, 파울라다 착잡한 표정으로 “맨스필드의 수비는 끈질겼고 무서웠다. 다음 경기 준비 잘해서 무너뜨릴 것.”] [빛난 리처드의 선방쇼, 완벽했던 갈랑의 수비 지휘, 맨스필드 시즌 최고의 수비 뽐내] [맨스필드 유진 감독, “아직 1차전이 끝났을 뿐, 2차전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 우리는 웸블리에서 뛰게 될 것.” 확신.] [14개의 슈팅으로 하나의 득점, 앤서니 로우. 영점 맞지 않은 발끝에, 아직 부상 회복을 못했나, 팬들 염려]* * *
호사가들은 감독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말하곤 한다.
선수단을 관리하고, 선수들을 잘 다루면서 전술보단 관리에 특화된 매니지형 감독.
선수단 관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전술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활약하는 전술가형 감독…….
사실 어떤 요소든 다 감독에게 중요했다. 선수단 관리만으로는 일부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진 몰라도 트로피를 들 수는 없고, 천재적인 전술로 경기에선 승리하더라도 리그에서는 우승컵을 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법이다.
결국 모든 요소를 다 가져야 했다. 얼마나 두 분야를 밸런스 있게 잘 관리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뭐, 꼭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에도 비교적 부족한 전술적 역량은 막스에게 상당수 의존하는 부분이 있으니.
아무튼, 감독은 어느 분야에든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늘 감독을 욕하지만, 사실 축구에 있어서 가장 ‘정통하고’ ‘해박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감독이란 직업종사자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머리가 굵은 선수들은 간혹 그 점을 잊곤 한다.
‘감독님이 이런 지침을 내렸는데, 이건 좀 너무 모르고 하시는 말 아닌가…….’
‘하시는 말씀은 대충 이해는 하겠는데, 필드에서 저걸 하라는 건 좀 과하신데.’
내가 선수의 머릿속을 열어볼 순 없지만, 저런 생각을 은연중에 품는 선수들은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 팀에서는, 대개 저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최대한, 선수들이 이해 못 할, 납득하지 못할 지침 따위는 내린 적이 없으니까.
그래.
못 한 게 아니라, 일부러 하지 않은 거다.
감독으로서 일하다 보면, 판 전체를 보는 눈이 길러진다. 그래서 선수들이 이해하지 못할, 좀 더 멀리 보는 얘기를 제안하곤 한다.
선수의 포지션 변경 같은 일이라든지.
하나 이런 부분은 선수들이 당장 납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반발이 심할 수도 있고, 당장 필드에서 확 바뀌기도 어렵다.
결국 감독과 선수의 간극이 존재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 누구보다도 감독과 생각이 일치하면서, 선수들에게 같은 동료 선수로서, 또 선망받는 월드 클래스 선수가 직접 옆에서 전달해 준다면, 다른 이야기지.”
카스티노가 바로 그랬다.
사실 그간 자일슨이 쌓아놓은 데이터, 그리고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내가 선수들에게 요구하고, 전달할 수 있는 지침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걸 얼마나 선수들에게 와닿을 수 있게 말할 수 있는가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나 그런 나에게 알바로 카스티노가 찾아왔다.
“이걸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 그거 감독님이 말씀해 주신 건데, 제가 좀 하기엔 너무 생각할 게 많아서요-”
“간단해. 우선 눈앞의 상대 선수 먼저 공략을…….”
자일슨의 데이터, 그리고 내가 내린 지침, 그걸 옆에서 카스티노가 달라붙어 노하우를 전수해 주듯 일대일 과외.
이와 같은 루틴이 만들어진 셈이다.
카스티노 같은 월드 클래스 선수 영입에는 이런 부분을 노린 점도 분명 존재했지만, 카스티노는 내 예상보다도 더 협조적으로 굴었다.
“그런 월드 클래스 선수를 결국 원하는 방향으로 다루는 것도, 네 솜씨 아냐?”
물론 막스는 옆에서 감탄하면서 그런 말을 했지만…….
하기야, 모두가 외면했을 때 내가 내어준 손을 붙잡았던 카스티노의 심정이 더 강렬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똑똑히 봤다.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단호한 마음 뒤에도.
―감독님 목표처럼, 이 작은 클럽을 이끌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일궈내는 거, 어지간한 도박보다 더 짜릿할 거 같지 않습니까?
맨스필드를 도박판으로, 그리고 판돈으로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건 듯한 그 눈빛 말이다.
그리고 이건 그저 물 떠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도박이 아니다.
스스로 베팅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그런 도박.
“카스티노 선수, 앤서니하고 얘기 좀 해보시겠습니까?”
“네, 지금이 타이밍 같네요. 감독님.”
물론.
“아, 그 전에, 제임스부터 얘기를 한번 해보죠.”
“제임스요?”
“네. 좀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서요. 앤서니뿐만 아니라, 동시에 제임스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끌어낼 수 있는.”
“……흐음, 그거 좀 들어보고 싶네요.”
“제임스를 아예, 크게 흔들어 주세요.”
“……!”
도박이라면, 이왕 더 베팅을 크게 하는 것이 재밌지 않겠는가.
간략한 설명을 들은 카스티노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실소를 내뱉었다.
“자칫하면 선수들 사이가 잘 안 풀릴 수도 있는 얘긴데요.”
“그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
“감독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내 단호한 대답에 그는 한동안 날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러면, 제대로 흔들어 볼게요.”
그의 입가에 재밌다는 듯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