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5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54화(255/266)
254. 제임스, 앤서니 (1)
축구 팬은 축구에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사실상 프로축구의 근간이자, 축구라는 스포츠가 역사와 함께 곁에서 존재할 수 있던 절대 불변의 유일 원칙이다.
자본이 휩쓰는 현대 축구에서도, 결국 그 자본의 방향이 더 많은 팬의 유입과 사랑을 갈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듯이.
이 같은 사실을 망각했던 많은 구단이 몰락하고, 팬을 그저 시끄러운 이웃 정도로 취급했던 선수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왔다.
그래서 감독은 선수단 관리뿐만 아니라, 때때로 이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팬들의 마음도 잘 다독여야만 한다.
사실 그리 어려운 얘긴 아니다. 축구 팬들을 다루는 일 말이다.
“결국 선수단 관리하는 것하고는 별 다를 바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때때로 착각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축구 선수와 축구 팬은 별개의 존재로 본다는 점이다.
전혀 아니다.
“결국 모든 선수는, 어떤 구단의 서포터즈였고, 누군가의 팬이었으면서, 우상을 닮기를 바라며 달려왔으니까.”
개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선수는 결국 축구 팬이다.
선망하던 축구 클럽이 있었고, 서포터즈로서 응원하는 팀도 존재하며, 경기가 끝나고 쫓아가면서 사인을 받으려던 좋아하는 선수는, 어린 시절 다 마음에 품고 있으리라.
그래, 선수도 축구 팬이다.
선망하는 선수와 우상처럼 여기는 선수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어, 카스티노? 그,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카스티노, 전에 알려준 드리블 있잖아요! 이게 무게 중심이…….”
“크흠, 오늘 훈련 끝나고 뭐해? 여기 도시 구경은 다 했어? 한 바퀴 같이 돌면서 소개해 줄까?”
알바로 카스티노를 대하는 선수들의 태도도 팬들과 큰 차이점이 없었다.
최근 알바로 카스티노가 아낌없이 노하우와 조언을 전해준다는 사실이 훈련장에 퍼지자, 선수들은 쭈뼛거리면서도 카스티노의 곁을 기웃거렸다.
그의 곁에 몰려든 선수들의 얼굴만 봐도, 옅은 홍조를 띠거나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선수들을 향해 달려들어서 사인을 받으려던 팬들처럼.
아니 그럴까.
적어도 우리 선수들 전부 TV로만 봤던, 유로나 월드컵에서도 활약한, 월드 클래스 선수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런 선수가 같은 유니폼과 훈련복을 입고, 같이 훈련하면서, 아낌없이 조언을 전해주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당연히 선수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파벌 문제, 걱정 안 돼?”
“파벌?”
“파벌 또는, 음, 선수 한 명의 위상이 선수단 전체를 지배하는 그런 거 말이야.”
막스는 최근 지도자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여러 유명했던 감독들이 남긴 자서전, 저서들을 보면서 말이다.
“퍼거슨 경이 베컴한테 신발 던지고, 어지간한 월드 클래스 선수들을 애들 대하듯이 소리쳐서 헤어드라이어라는 별명도 있었다면서.”
큰 위상을 가진 선수일수록, 인정하되 철저하게 감독의 권위로 짓누르는 행위.
물론 정답은 아니다. 정답일 때도 있고, 실패한 오답인 상황일 수도 있다.
상황별로 다르게 다가가야 한다.
“카스티노가 그런 마음을 품는다면 문제가 생기겠지.”
“그런 마음을 품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확신은 무슨.”
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 친구랑 나는 생각이 같아. 이유는 다르더라도 이 맨스필드를 어떻게든 높은 데로 가보자는 목표는 일치하거든.”
나와는 다른 이유.
순전히 평범한 승리로는 얻지 못하는 희열과 성취감을 얻기 위해, 일견 무모함을 넘어서 불가능한 맨스필드의 목적지.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란 단어에 카스티노는 눈을 반짝였다. 외부인이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 하고 헛웃음을 칠 그 목표에, 스포츠 도박에 손을 댈 정도로 강렬한 동기부여를 찾던 카스티노는 마음을 빼앗겼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카스티노는 나만큼이나 동기부여가 뚜렷해졌다.
“하니 문제없어. 카스티노가 내 말을 듣지 않을 리는 없으니까.”
“듣지 않을 리가…….”
아무래도 막스는 희미한 위기의식을 느낀 듯했다. 코치들도 선수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고, 전달하기 어려웠던 여러 지침과 지시들을 아무렇지 않게 설명해 내는 카스티노의 모습에서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도 문제이리라.
그만큼 카스티노가 보여주는 모습은 놀라웠다. 마치 성공 공식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듣지 않고, 어쩌겠어?”
“……!”
“저 친구, 월드 클래스야. 비판하는 호사가들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치부하지만, 내가 보기엔 맞아. 똑똑한 친구라고.”
“네 말이 결국 그 목표를 향해 가는 데 틀림이 없음을…….”
“잘 알 수밖에 없을걸?”
막스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하기야 내 말과 행동이야말로 오로지 목표를 이루기 위한 틀림 없는 방법이라고 확신하는, 어쩌면 오만에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를 발언처럼 비쳐지리라는 점 정도는 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상황 더없이 좋아. 나한텐.”
막스의 눈썹이 휘어졌다.
“결국 나와 생각을 공유하는, 그 입김 강한 선수 한 명만, 완전히 내 편으로 제어할 수 있다면?”
“……!”
“일일이 선수 한 명, 한 명을 관리하는 건 힘들고 실수도 나올 수도 있지, 모든 선수가 날 좋아할 수도 없고. 하지만 선수 한 명만 제어해서, 나머지 선수들을 이끌 수 있다면? 효율적이지 않아?”
“……으음.”
“봐. 지금 상황, 좋잖아.”
“어?”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단점을 해결하려 하고, 내가 내린 지침이나 요구한 플레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카스티노에게 도움을 구하고…….”
선수와 감독의 간극.
감독이 아무리 목표를 부르짖어도, 모든 선수가 공감하기는 어렵다.
선수는 절대 감독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감독과 뜻을 공유하는 한 명의 선수가, 모든 선수에게 그 목표를 전달해 주고, 나아가게끔 힘껏 밀어준다면.
“만일 내가 엇나간다 치면 저 친구는 본인이 나서서 움직일 친구야.”
“……뭐?”
“나라고 실수 안 하고, 매번 옳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그땐, 뭐, 일개 선수 따위에게 잡아먹혀도, 싸지. 안 그래?”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모르지. 나 또한 사람이고, 치명적인 실책을 범할 때가 있을 테니까. 그 단 한 번의 실수는 결코 사소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구단 전체가 오롯이 내 손에 있음을 고려하면, 내 사소한 실수의 여파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번질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면, 차라리 선수 따위에게 잡아먹히는 게 낫다.
물론, 내 자존심이나,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카스티노가 날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은 변치 않는다.
오로지 나만이.
이 맨스필드를 목적지까지 데리고 갈 수 있다.
하니 나는 실수해선 안 된다. 나른해진 듯했던 전신의 감각이 일제히 깨어났다. 그 미약한 긴장감이, 내 목덜미에 차가운 칼이 되어 겨눈 듯한 느낌.
나는 미소 지었다.
근 1년간 잊고 있던 감각.
마치 살벌한 외줄을 타는 듯한 그 느낌이, 나는 더없이 좋았다.
* * *
“흐으응. 특별히 대단한 얘기들도 아닌데에에.”
“……그래?”
“그래애. 다 아는 얘기잖아아아. 저런 말 나도 할 줄 알아아아.”
제임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
“그러어엄. 저런 말 누가 못 해애애? 공을 찰 땐 당연히 슈팅 각도를-”
늘 그렇듯이 앤서니가 또 실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생각했던 제임스의 눈이 점점 커졌다.
툭툭 던져대던 앤서니의 말 중엔, 얼마 전에 카스티노가 다른 선수에게 해줬던 조언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앤서니식으로 변경된. 하지만 그 맥은 분명 일치했다.
제임스는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앤서니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부러움으로 물들었다. 부러움, 경외, 대단함……스쳐 가는 감정 뒤에 밀려오는 약간의 씁쓸함.
‘그런걸, 정말 안다고?’
어떻게, 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그냥 탁 보면 보이는 걸, 무슨 대단한 내용이라고 저렇게 떠들어 대애애. 다른 사람들도 바보 같아아아.”
“…….”
“안 그래에에? 제-이.”
“……어? 아, 난 잘 모르겠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제임스는 앤서니가 돌아보자 급히 시선을 돌리며 머쓱하게 웃었다.
만일 유진이 눈앞에 서 있었다면, 미소 뒤에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봤을지도 모르지만 애석하게 상대는 앤서니였다. 앤서니는 콧바람을 훙훙 내뱉었다.
“사기꾼이 분명해에에. 저 사라암. 다 아는 걸 그럴듯하게만 포장해서어…….”
“미안하지만 사기꾼 아냐.”
훅, 들려오는 말에 앤서니도 조금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자, 앤서니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흐으응. 나한테도 조언해 주려고오오?”
“너한테? 내가? 왜?”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한 카스티노의 반응에 앤서니가 눈을 깜빡였다.
“으응?”
“너한텐 조언이 필요할 리가 없잖아.”
“에엥?”
“조언이나 노하우는 없는 친구들에게나 필요한 거지. 안 그래?”
앤서니의 눈이 마치 소처럼 끔뻑거렸다.
예상치 못한 말에 적잖은 당황스러움.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혼란이 떠올랐다.
뭐라 할까.
내심 카스티노가 자신한텐 무슨 조언을 흉내 내면서 해줄까 했던 앤서니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카스티노는 그런 앤서니를 흘끗 보곤, 옆에 멍하니 서 있던 제임스를 톡 건드렸다.
“제임스. 잠깐 얘기 좀 할까?”
“……저요?”
“그래. 도움이 좀 필요해 보여서. 원치 않으면 괜찮고.”
“아…….”
제임스는 앤서니를 흘끔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동무를 한 채 한쪽으로 같이 가는 두 명을 바라보는 앤서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언가 기분이 나빴다.
제임스가 저 사기꾼을 따라가서? 아니, 그런 건 아니었다.
“흐으으음.”
어쩐지, 자신한테만 아무 말 안 해주는 카스티노의 그 말이 조금은 걸렸다.
앤서니는 애써 부정했지만, 약간의 섭섭함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 * *
―리그 28라운드! 성공적으로 리그컵 1차전 승리를 거둔 맨스필드가, 3일 만에 열린 이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을까요! 말하는 순간, 제임스를 향한 갈랑의 다이렉트 스루 패스!
투-욱!
패스에는 선수의 발끝에 닿는 패스와 공간을 향한 패스가 있다.
제임스는 별안간 생각했다.
자신에게 오는 패스는, 어지간해서 늘 공간을 향한 패스라고.
그래서일까.
“뛰-어!”
제임스는 뛰어야만 했다. 툭 벌어진 공간, 그 앞으로 배달되는 듯한 스루패스.
그 공을 잡기 위해 제임스는 힘껏 내달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함성이 피부에 닿아 전율을 일으켰다. 순간적인 속도로 공간을 내지르고, 끝끝내 패스를 잡아내는 순간 터져 나오는 이 환호에 제임스는 어느덧 중독되고 있었다.
하나 어째서일지, 불쑥, 제임스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함성이, 저 환호가.
“공간, 공간 열렸다!”
“저쪽이야!”
자신이 아닌,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는 앤서니의 움직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제이!”
제임스는 저를 향해 외치는 앤서니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그의 근육이 저절로 작동했다.
작년부터 이어져 온 약속된 플레이는 생각보다도 먼저 근육을 작동시켰다. 스피드로 사이드를 탈탈 털어버린 뒤, 무리이다 싶은 긴 패스를 잡아내고.
그런 자신의 속도를 막기 위해 몰려든 수비수를, 어떻게든 속도로 압도하며 끝까지 내달리다가.
투웅, 툭 찔러넣어 줘야 하는 그 패스.
―언제까지 희생당할 건데?
“……!”
순간 당연하듯이 그리 움직이려던 제임스의 발끝이 방향을 바꿨다.
중앙의 공간을 향한 패스가 아니라, 한 번 더 공을 차고 전진했다.
머릿속에 불현듯 찌르듯이 들리는 목소리는, 저를 향해 말하던 카스티노의 목소리였다.
―앤서니라는 주연을 위한, 제임스라는 조연의 눈물겨운 희생.
투웅.
지금이라도 패스해야 한다. 저 공간을 향해서. 그러면 늘 그렇듯이, 테셰이라나 간지뉴가 잡고, 선수를 끈 뒤에 앤서니를 향해서 패스해 줄 거다.
발끝에 닿는 패스로 말이다. 언제든 슈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발끝으로, 선수들은 앤서니를 향해 패스할 것이다. 자신에게 보내는 패스와는 달리.
―그래서 제임스, 이번 시즌 공격포인트가 몇 개나 되는데?
“…….”
터엉!
제임스는 패스가 아닌, 한 번 더 전진한 뒤에 슈팅이라는 선택을 내렸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제임스의 슈팅이었다.
물론 몰려든 수비 때문에 슈팅 각도가 생기지 않았으니, 어림도 없이 빗나가는 슈팅이었다.
긴장했던 상대 수비들이 안도의 숨을 쓸어내리고, 고삐를 당기며 공세를 펼치던 맨스필드 선수들은 당황해하는 분위기가 필드를 휩쓰는 가운데.
중앙을 향해 달리던 앤서니가 조금 당황스러운 듯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소리쳤다.
“다음엔 패스 해줘!”
“후욱, 훅.”
전력을 내달린 질주에 제임스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표정을 찌푸렸다.
폐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찌푸리는 얼굴이 아니었다.
제임스는 자신에게 패스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듯한 앤서니의 목소리가.
어쩐지 듣기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