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261)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260화(261/266)
260. 웸블리의 자격 (4)
필드의 분위기에 당황한 건,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선수들 어제 뭐 잠이라도 못 잔 거야? 긴장해서?”
“컨디션 다 좋았다고 하지 않았나?!”
맨유 감독, 루이스 모라이스는 당황해서 이런저런 말을 내뱉는 코치진을 뒤로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따위 문제가 아니다.’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 따위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비쳐 보이는 것일 뿐.
‘그 말은 곧, 저놈들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서 우리가 잘하는걸, 못 하게 한다는 뜻이다.’
맨스필드가 잘하는 게 아니다.
맨스필드 선수들은 아무리 잘해봤자, 그 잘함의 척도가 맨유 선수를 넘어설 수 없다. 선수 간의 격차는 그토록 뚜렷하다.
하지만 이건 축구다. 축구는 늘 강팀이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약팀이 언제고 강팀을 집어삼키고 승리를 쟁취해 내며 포효하는 게임이다.
약팀이 강팀을 잡는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강팀의 장점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잘하는 바를 철저하게 틀어막아서, 쏟아지는 야유와 눈총에서 조급해지고, 끝끝내 스스로 자멸케 하는 것.
대체로 철저하게 틀어막는 수비, 소위 말하는 ‘늪 축구’가 바로 그런 예시였다.
‘그런데, 저들이 그런가?’
루이스 모라이스는 혼란스러웠다.
맨스필드가 늪 축구를 중심으로 맨유를 늪에 빠지게끔 하고, 카운터 한 방을 노리는 정도는 예상했다. 그리고 그건 꽤 위협적이리라고, 충분히 대비했다.
‘그런데 이건 늪이 아냐. 늪인데, 늪이 아닌…….’
필드의 선수들이 거의 느껴보지 못한 진기한 경험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처럼.
베테랑 감독인 루이스 모라이스도 이 같은 상황에 적응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나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선수단의 확연한 격차 덕분에 맨스필드도 득점포를 쏘아 올리지는 못하는 상황.
실점을 내어줬으면 위기였겠지만, 아직은 충분히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었다.
“라인을 조정합시다. 칼럼 헤이즈에게 내려오지 말고 측면을 더 파고들라고 하죠. 수비도 안 되는데 무슨 협력 수비야. 대신 콜란 벅을 한 단계 내리고, 패스 웍이 쉽지 않으니, 드리블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선수들에게…….”
착착착, 지금 필드에서 벌어진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서 곧바로 수정하는 루이스 모라이스의 실력도 가히 대단함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흐름은 확실히 필드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는 듯했다.
한, 5분 정도는.
―간지뉴 선수! 콜란 벅과 노리스의 돌파를 혼자서 몇 번이고 거듭 막아내고 있습니다!
―클라라니, 측면 대신 중앙으로 파고들고, 맙소사, 이 선수 발재간이 대단하네요!
―맨스필드, 좀 더 고삐를 잡아당겨서 공세적으로 나섭니다!
“……뭐야, 이거.”
루이스 모라이스는 저도 모르게 툭, 손에 들었던 전술 보드를 떨어뜨렸다.
이상했다. 희한했다. 소름이 끼쳤다. 거짓말처럼, 바뀐 변화에 맞춰 똑같이 선수들을 늪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맨스필드의 변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혼란 그 자체였다.
루이스 모라이스는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럴까.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맨유의 감독인 본인보다도, 맨유 선수들에 대해 세세히 전부를 알고 있는 유진만이 보일 수 있는, 세상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경기 양상일진대.
* * *
“콜란 벅이 내려갔어. 이 친구가 수미로 플레이할 땐 패스가 반박자 미세하게 느려지는 경향이 있어. 돌진해서 압박할 수 있기에 충분하고…….”
“간지뉴! 이리 와! 새 지시야! 감독님 말씀대로-”
“보자, 칼럼 헤이즈가 수비 가담하지 않고 공격적이라, 스탠리에게 이 녀석 어깨를 공략하라고 해. 발밑 막지 말고, 어깨만 툭툭 치면 당황해서 속도로 승부 보려고 할 거야. 그럼 컨트롤이 불안해지니까 거리 두고 실수하길 기다리면 오케이.”
“스탠리! 감독님 지시는 앞으로-”
“그리고 클라라니는 측면 약해진 것 같다고 그쪽 파지 말고, 중앙으로 돌파해서 오히려 혼란을…….”
“클라라니! 이리 와봐! 감독님 새 지시다!”
“갈랑은 수비 라인 지휘 대신 미드필더까지 뛰어 올라가서 힘을 보태. 저쪽 노리스는 드리블할 때 발을 보고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갈랑이라면 충분히 사전에 제압을 할 수 있을 거야.”
“갈-랑!”
정신없었다. 시시각각 부딪치는, 조금의 느려지는 템포도 없이 부딪치는 필드와 달리 상대적으로 벤치는 고요하고 잠잠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막스는 목이 쉴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필드를 주시하던 유진이 상대의 흐름을 캐치해 내고 쏟아내는 지시를 곧장 선수들에게 알려야만 했으니까. 목이 쉴 정도였지만 막스는 고통스러운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목이 아프다는 걸 느낄 새도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상대 팀의 변화를 한눈에 파악하는 것조차 말이 안 된다.
어떤 식으로 변화를 꾀하는지, 어떤 요소를 공략하려 하는지, 무엇을 얻어내려는지, 그 맥락을 파악하려면 경기를 계속 지켜봐야만 했다.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하나 유진은 어렵지 않게 선수들의 위치 변경만 보고도, 마치 답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툭툭 내뱉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던 막스는 일단 그대로 받아서 선수들에게 소리쳤는데-
―맨스필드가 오늘 맨유를 숨 막히게 하고 있습니다! 웸블리 구장, 서서히 조용해지고 있어요! 맨스필드 팬들의 목소리만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
무어라 할까. 전율에 몸이 떨리는 건 아니다. 그저 신기했다.
맨유 선수들의 모든 움직임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을까.
막스 본인도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필드를 노려보고 있는데, 볼 수 있는 시야가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자일슨인가?’
아니다. 자일슨의 보고서는 상세하고 대단했지만, 지금 유진이 말하는 내용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도리어 보고서를 들고 와서 검토받을 때, 유진이 줄줄이 늘어놓는 분석을 듣는 자일슨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경악을 넘어 창백하게 질리는 꼴을 똑똑히 봤었다.
축구 분석이야말로 자신의 천직이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인 것처럼 매달리는 자일슨조차 보지 못한 미세한 전부를 유진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게 말이나 돼?’
아니지, 아니야. 그걸 안다는 게 더 믿기지 않는다. 유진이 언제 맨유를 분석했는가. 이게 분석하고 연구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결과란 말인가.
‘맨유 팬이었나? 그래서 맨유 경기 매번 지켜보기라도 한 거야?’
그럴 수도 있지, 본인이 맨유 감독이면.
자기 선수들을 훈련장에서, 경기장에서 계속 지켜보고 수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선수의 전부를 샅샅이 알아낼 수 있겠지.
맨유 감독이면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저기 저 맨유 감독보다 유진이 더 맨유를 잘 아는 것 같은데.’
생각을 거듭해도 믿기지 않는 요소만 줄지어져 나오니, 막스는 그저 유진이 외계인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루이스 모라이스가 못하는 게 아니다. 유진이 모라이스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의 감독이라서, 모라이스의 모든 생각과 전략 전술을 꿰뚫어 보는 게 아니다.
사람이 어찌 남의 속을 다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그냥, 아는 거지.”
“어?”
“루이스 모라이스 감독은, 대단한 감독이야. 훌륭한 감독이라고. 세심하고 세밀해. 선수 파악에 힘을 기울이는 감독이야. 3년간, 맨유에서 트로피가 없다는 것도, 사실 선수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최적을 찾는 스타일이라 그렇지.”
“……?”
“그래서야. 잘 아는 감독이니까. 선수를 사실상 전부 파악한 감독이니까. 그러면 감독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역으로 적어지거든.”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선수들의 습관, 약점, 단점 따위를 세세히 모른다면 몇 가지 안 좋은 점을 감수하고도 파격적인 전술, 전략을 선택할 수 있어. 하지만 너무 잘 아니까, 최선의 약점 없는 최적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그런 선택지는 많아 봤자 서너 개.”
“……!”
“그리고 그 선택지는, 적어도 내 머릿속에 전부 있는 것들이야.”
막스는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그 선택지가, 어째서 맨유 감독뿐 아니라 네 머릿속에도 있을 수가 있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들어봤자 믿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일 듯해서.
막스는 그저, 이 경기의 마지막까지 유진의 능수능란함이 통할지, 그 점이 기대됐을 뿐이다.
* * *
―간지뉴, 공 차단하고 그대로 드리블 돌파!
―클라라니와 원-투 패스!
―맨유 팬들, 야유로 화답합니다!
분명 맨유가 당황하고, 맨스필드에게 준비한 플레이를 못 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일단 전체적인 지표는 비등했다.
점유율, 패스, 슈팅-
모든 지표가 비슷했으니, 사실 맨스필드가 맨유를 집어삼켰다는 반응은 과장이 심했다.
물론 그 비등하다는 점 하나만으로, 맨유는 지금 자기네 팬들에게 야유를 들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경기였다.
결국 골을 넣어야 하는 스포츠지만, 맨유는 슈팅만큼은 최대한 막아냈고 어떻게든 틀어막고 있었다.
―클라라니! 오늘 적극적입니다! 슈팅, 대신 패스! 좀 더 만들어 가는군요!
―왼쪽 윙어로 출전한 톰 도허티가 받습니다, 슈팅! 튕겨 나옵니다!
―세컨볼은 누가, 맙소사, 또 간지뉴네요!
―간지뉴 공 잡고, 템포 조절합니다. 후방에서 올라온 갈랑에게 패스.
―놀랍습니다! 오늘 패스 성공률은 맨스필드가 훨씬 높습니다! 맨유 상대로 패스 강의를 하는 걸까요?
그러니까 모두의 예상과는 별개로, 맨스필드는 맨유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비등한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
문제는 서로가 한 방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한 방이 나와서 상대의 골문을 열어야 하는 법.
서서히 차오르는 긴장감이 필드에 만연하게 퍼졌다.
―맨유가 오늘 잘 풀리지 않지만, 수비에서의 집중력은 여전합니다!
―맨스필드, 마지막 어태킹서드에서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팀 선수, 전부 표정을 보세요. 이를 악물었어요!
서서히 차오르던 긴장감은 고조됐다.
필드에서뿐만 아니라 응원과 야유를 번갈아 하던 관중석까지 차올랐다.
그건, 모두가 피부로 체감하는 부류였다.
이 팽팽함, 이 비등함-
어느 순간 툭, 끊어지는 순간 결정이 난다고.
―전반전, 추가시간 2분 남았습니다.
―맨유의 공격을 막아낸 맨스필드, 곧장 공세를 펼칩니다! 시간을 끌지 않고 득점을 넣겠다는 대단한 기셉니다!
모두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고조되고 차오르던 긴장감이 터지지 않고, 터질락 말락 하는 그 잠깐의 찰나.
‘지금이다.’
누군가의 생각인지 정확하지 않다. 필드에서 뛰는 선수일 수도, 벤치의 감독일 수도, 어쩌면 관중석의 누군가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확실한 건. 무언가 터지기엔 더없이 좋은 순간이란 점을, 누군가는 불현듯 느꼈다는 점이다.
―클라라니의 중앙 돌파! 오버래핑하는 스탠리에게 내주는 패스! 스탠리, 받고 바로 러닝 크로-스!
―마지막 공격, 크로스가 길게, 오, 앤서니!
그리고 그 순간, 앤서니의 유령 같은 움직임이 드디어 철벽에 틈을 만들었다.
모두가 날아오는 러닝 크로스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앤서니는 틈을 허물고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오밀조밀 꽉 차 있던 박스 안에 확 벌어지는 그 균열은, 마치 앤서니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신기하기까지 했으니.
정작 그 사이에서 자리를 잡던 수비들의 마음은 어찌하겠는가.
사실은, 놀랄 새도, 당혹할 새도 없었다.
앤서니가 공간을 창출해 내는 순간, 이미 크로스로 날아온 공은.
투웅-
앤서니의 발등에 떨어졌고.
촤악!
뒤늦게 파악한 수비수의 태클을 침착하게 피해내며 제치고.
퉁, 퉁!
몸싸움으로 무너뜨리겠다는 듯한 수비수의 간절함조차도 오로지 발끝 미세한 컨트롤로 방향만 톡 바꿔놓으면서.
―앤서니가 때립니다!
슈팅이 공간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