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3화(3/266)
03. 돌아온 탕아 (3)
전화는 길지 않았다.
애당초 전화로 할 얘기도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인생.
아니, 어쩌면 두 명의 인생이 걸린 문제.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기엔 할 말이 많았고, 나눌 대화가 수도 없었으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미래도 있었다.
―영국? 독일이 아니라?
“맨스필드. 당장 내일 보지.”
―내일? 뭐 내일? 아니, 그리고 왜 영국이야? 보훔 맡기 전에 고향이라도 간 거야? 머릿속 정리하려고?
“당일에 오지 않으면 거절이라고 생각할게. 그때 보자고.”
끊기 전 저 너머에서 무어라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과감히 끊었다.
더 깊은 얘기는 만나서 하면 될 일.
그리고 그가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기회가 오지 않아서 욕심을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지.”
찾아온 기회를 우물쭈물 지나가게 내버려 둘 만큼, 말랑말랑한 친구가 아니다.
통화를 마친 나는 천천히 주위를 거닐었다.
문득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두 시.
해가 지기에는 아직 한창이고, 점심시간도 아니다.
한데 고요했다.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다. 주차장에 주차된 차가 없는 것부터 알아봤다.
“사람이 없어.”
절로 쓴웃음이 튀어나왔다.
언제였던가.
나는 독일에서 유령도시를 방문해 본 적이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광산을 들락거리는 광부들로 인해 떠들썩하던 도시였으리라.
하나 내가 본 도시는 과거의 떠들썩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함. 황량함. 그리고 쓸쓸함이었다.
“비슷하네…….”
파아, 깊은 한숨을 토했다.
허공에서 흩어지는 말처럼, 비슷했다.
소박하지만 튼튼했던 클럽하우스는 놀라울 정도로 적막에 잠겼다.
공차는 소리와 고함으로 가득했던 과거는 그저 추억처럼 침묵만이 맴돈다.
부산스럽게 건물을 오가며 바쁘게 살던 프런트 직원들도 보이지 않는다.
가라앉는 배.
지금 맨스필드였다.
나는 묵묵히 걸으며 과거의 기억을 꺼냈다.
당시 맨스필드도 하부리그의 약팀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팬 수도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당초, 이 도시는 말 그대로 깡촌이니까. 6만 명. 아무리 크게 쳐도 7만이 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적막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차는 소리와 코치들의 욕설, 선수들 간의 고함이.
그야말로 치열했다.
그것이 축구였고, 여기는 축구를 하는 곳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씁쓸한 건 매한가지네.”
하나 지레 단념할 수 없다.
걸어온 거리를 내려다봤다. 건물의 외벽을 바라봤다.
“깨끗해.”
주위를 돌아다니는 청소부는 물론 누구 한 명도 보이지 않건만.
매일같이 관리하는 것처럼 거리와 벽은 깨끗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았다.
“아저씨.”
철문 앞 부스에 있던 잭 아저씨가 긴 빗자루 하나를 들고 거리를 쓸고 있었다.
한참 그 광경을 바라보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라앉는 배에도, 배를 포기하지 못한 채 머무르는 자는 존재한다.
그것이 이 난파선이 다시 돛을 펼 수 있는 희망이다.
그리고 난파선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을, 작은 바구니로 미친 듯이 퍼내는 미련한 선원 같은 희망은 또 남아 있었다.
―뻐엉!
“……?”
귀가 뻥 뚫리는 소리.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소리다. 어찌 모를까. 공을 차는 시원한 파공음을.
클럽하우스 뒤편으로 조성된 연습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가까이 갈수록 고함과 공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어찌나 반가운 소리인지.
“음.”
연습구장에 도착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이, 뒤로, 뒤로 가!”
“공 잡고 못 버티면 빠르게 패스해! 압박 들어오잖아!”
연신 쏟아져 나오는 고함과 괴성.
하나 목소리는 대개 가늘고 어렸다.
실제로 그랬다. 목소리뿐 아니라, 구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유소년이네.”
맹렬히 뛰는 선수들은 다 어렸다. 유소년 선수였다. 하지만 숫자가 부족했다. 두 팀으로 갈랐지만, 한 팀에 여덟 명이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끈 사람이 있었다.
유소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벗겨진 머리의 성인 선수.
“젠킨슨.”
아는 얼굴이다. 과거와 달리 나이를 먹었기에, 곧장 알아보진 못했지만 어렵지 않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 연습이 조금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코치가 한 명도 없어.”
훈련을 봐주는 코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무언가 체계도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은 제각기 무어라 고함치지만, 통일성도 없었다.
그 가운데, 단 한 명이 고군분투하며 무언가 소리치지만, 밖과 필드 위는 다른 법.
유일한 성인 선수인 젠킨슨의 목소리는 허공에 힘없이 흩어질 뿐이었다.
‘코치 없이 자체적으로 연습? 그것도…… 잠깐. 이거 유소년 선수들 훈련이 맞나?’
선수들은 대개 유소년 선수였다. 딱 한 명만 성인 선수고.
그렇다고 이게 유소년들의 훈련이라고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팀에 선수라고는.’
그럴 리가. 분명 미리 조사한 명단은 아직 1군 선수들이 꽤 남아 있었는데.
어쩐지 최악으로 치닫는 듯한 상황에 절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보훔에서 남은 다섯 경기를 전부 승리해서 기적적으로 잔류했던 나다.
차라리 우승이 쉬울 것이라고, 기적의 잔류를 해낸 내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스포츠면을 일제히 장식하지 않았던가.
그 전의 커리어라곤 코치밖에 없던 내가 단숨에 분데스리가의 정식 감독이 될 수 있었던, 분명 엄청난 업적이었다.
‘차라리 그게 더 쉬워 보이는데.’
분명 지금 이 시간대는 성인 선수들의 훈련 시간일 것이다.
아무리 감독이 없는 상태라고 해도, 코치 한두 명쯤은 남아 있을 것 아닌가.
한데 코치도 없고 선수도 없다. 오로지 성인 선수 하나만이 나와서, 유소년이라도 동원하며 훈련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머리 아픈데, 이거 진짜.’
막스를 내 곁으로 불렀으니, 적어도 팔 부 능선은 넘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안일했다. 아직 넘을 산이 너무 많았다.
‘결국 중요한 건 감독의 능력.’
그리고 그 능력으로 만들어 내는 ‘성적.’
나는 눈을 빛냈다. 중심을 잡아주는 코치 없이 제각기 날뛰는 선수들.
그중 터치라인 쪽에 서 있던 풀백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윙어로 뛰고 있는 애 두 명. 보니까 반대 발도 주발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기본은 하는 거 같은데?”
“……누구세요?”
“상대 수비가 발이 빨라. 클래식하게 돌파하기엔 속도도, 피지컬도 밀려. 반대 발도 나쁘지 않게 쓰니, 안으로 파고드는 게 나아.”
“네?”
주근깨가 가득한 풀백은 뭐라고 하는지 이해 못 하는 눈치였다.
하여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십수 년 동안 월드 클래스 급 선수들과 멱살만 안 잡았을 뿐이지, 무수히 신경전을 펼치며 성공적으로 내 뜻대로 필드에서 뛰게 했던 경험이 있다.
그것은 코치로서의 관록.
또는 감독으로서의 위엄이었다.
“다시 한번 더 네? 이딴 멍청한 반문이나 처한다면 네가 신고 있는 신발을 아가리에 처넣어 주마.”
“!”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윙어 둘은 어쭙잖게 라인 타지 말고 안쪽으로 파고들라고 해. 발재간은 나쁘지 않으니까. 그리고 너 이름이 뭐지?”
“제임스, 제임스인데요.”
“그래, 제임스. 넌 계속 올라가. 윙어가 수비 달고 안으로 파고들면, 라인 타고 질주하라고. 너 지금 수비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잠깐만 봐도 개판이야. 제임스, 네 수비는 다 늙은 개가 비척대는 거 같다고.”
“……!”
“태클도 안 돼, 일대일 마크도 부족해, 그럴 거면 차라리 수비를 포기하고 달려. 어차피 안 되는 수비, 그냥 포기하고 네 빠른 발이라도 살리란 말이야. 닥치는 대로 오버래핑만 하라고. 공간이 보이면 개처럼 날뛰면서 파고들어!”
제임스는 숨도 쉬지 못하고 두 눈만 끔뻑거렸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듯 붙잡으면서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를 글자 하나씩 귀에 박아 넣었다.
그쯤 하면 충분했다. 고작 십 대의, 그것도 평범한 재능이기에 오만해 본 적도 없는 어린 선수를 휘어잡는 것은.
제임스가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윙어들에게 얘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눈을 빛냈다.
‘어쩌면 나는 형편없고, 터무니없는 선수들로 팀을 꾸려나가야 할지도 몰라. 그런 선수들로도 이겨낼 수 있으려면 믿을 건 오로지 내 능력뿐이다.’
차분히, 필드를 주시했다.
* * *
존 젠킨슨.
고군분투하듯이 경기를 뛰던 그는 꾹 억눌렀을 뿐, 회한이 가득했다.
‘빌어먹을.’
방금 쏘아 보낸 패스를, 제대로 받지도 컨트롤하지도 못한 채 빼앗기는 미드필더의 모습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무리야. 아무리 4부리그라고 해도, 저거론 무리야. 절대로!’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그는 속에서부터 불이 타는 것 같은 심정에 숨이 막혔다.
뛰느라 힘든 게 아니라, 저 안에서 부글거리는 짜증과 분노, 그리고 허무와 회한이 뒤섞여 기도를 틀어막았다.
오늘은 훈련일이다.
취소된 적도 없다. 한데 몇 남지 않은 계약직 코치도, 아직 이적하지 않은 선수도, 계약 기간이 남은 1군 선수들도 자신을 제하면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게 팀인가. 이게 프로구단이야?’
아니지. 적어도 그들에겐.
프로구단이 아닐 거다. 간신히 파산은 면했다지만, 사실상 시한부다.
하루라도 빨리 상위리그로 올라가지 못하면, 중계권료며 스폰서며 제대로 받질 못하니, 팬들이 구성한 조합은 빚을 갚을 능력을 잃어버리고 다시 파산 절차에 돌입할 것이다.
구단을 구해줄 백기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존 젠킨슨도 알았다. 이 구단은 망했다. 자신이 평생을 뛴 구단.
유소년부터 이십 년 넘게 입었던 유니폼의 로고.
심장 위에 있는 그 로고는 제2의 심장이었지만, 이젠 그 심장이 멈출 때가 온 것이다.
하나 심장이 멈춘다 한들. 제세동기든, 전기충격이든,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해서 다시금 뛰게끔 해야 하지 않겠나.
존 젠킨슨은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몇 남지 않은 유소년 선수까지 바락바락 모았다. 이미 마음 떠난 1군 선수들은 제아무리 주장의 말이라도 듣지 않을 것이니. 결국 이번 시즌은 유소년이 뛰어야 할 거다. 지금 팀은 그런 상황이었다.
유소년조차 없으면 선발 11명을 구성할 수도 없는 최악.
하지만.
‘답이 없다.’
자신도 코치가 아니다. 그저 선수일 뿐이다.
필드 안에서 그가 아무래 고래고래 소리쳐봤자, 밖에서 전술을 잡고 지휘해 주는 지휘관이 없으면 한계는 뚜렷하다. 더욱이 이런 어린 선수들로는.
그는 심장의 비프음이 삐이― 멈추는 듯한 이명이 들려오는 듯했다.
하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심장은 뛰는 동안 더 격렬하게 고동치는 법이니까.
라인에서 우물쭈물하다가 대충 크로스를 올리거나 뺏기거나 하는 윙어가, 별안간 움직임을 바꿔 안쪽으로 치고 들어왔다.
‘우스운.’
짧은 시간이지만 젠킨슨은 파악했다. 이 윙어의 주발은 오른발.
계속해서 오른발로만 크로스를 올리던 녀석이다.
‘오른발을 노린다.’
역시 녀석은 오른발로 공을 컨트롤하며 툭툭 치고 나왔다.
잔발이 제법 재주가 있지만, 으레 그 어린 녀석들 특유의 허세 섞인 불필요한 동작 잔뜩 들어간 개인기. 젠킨슨은 묵직하게 서서 공이 오른발을 떠나는 순간, 발을 내밀었다.
뻐엉―!
“!”
발은 허공을 스쳤다. 젠킨슨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른발을 떠난 공이, 왼발로 향했다. 그리고 왼발이 거침없이 슈팅을 때렸다.
“허!”
“아깝다!”
“아으, 좀만 안쪽이었으면 골이었는데!”
슈팅의 방향과 정확성, 공이 닿는 임팩트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명확한 슈팅이었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존 젠킨슨은 볼을 긁으며 탄식하는 윙어를 바라봤다.
‘얘, 반대 발도 썩 나쁘지 않네?’
한데 왜 안 쓴 거지? 왜 라인만 파다가 막히거나 주야장천 되지도 않는 크로스만 올린 거지?
그러다가 갑자기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왜 안으로 파고들어?
한 방 먹었다.
만일 저 슈팅이 조금만 더 정확했다면, 영락없이 골로 연결됐으리라.
‘허.’
나름 베테랑 수비수인 존 젠킨슨이 열일곱도 안 되어 보이는 풋내기한테 된통 당한 것이다.
‘우연이 아니야.’
그와 같은 상황이 몇 번이고 더 벌어졌다.
상대 윙어가 마치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안으로 파고들었다.
불필요한 동작이 잔뜩 들어간 잔발에 개인기지만, 유소년 레벨에서는 그만 해도 위력적이다. 아무리 젠킨슨이라지만, 포백 중에 고작 혼자일 뿐. 그가 라인을 컨트롤하거나 다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동안, 두 윙어는 빠르게 중앙으로 파고들며 경지 자체를 흔들었다.
그랬다. 지금 경기가 이뤄지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차는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축구 경기가.
두근.
젠킨슨은 순간 심장이 뛰는 소리를 느꼈다.
꺼져 가는 비프음에서 희미한 고동 소리가 울렸다.
그때였다. 중앙으로 파고든 윙어의 공을, 다른 수비수가 부랴부랴 억지로 쳐냈다. 목적도, 방향도 없는 그저 걷어내는 동작.
“나이스!”
하나 젠킨슨은 소리쳤다. 그만해도 훌륭한 거다. 적어도 이 레벨에선.
“뭐야?”
“막아! 막아!”
하나 그 걷어찬 공이, 갑자기 튀어나와 미친 듯이 질주하는 상대 풀백의 발에 걸렸다.
그것만큼은 젠킨슨도 놀랐다. 공간을 파고드는 좋은 오버래핑이었다. 단숨에 마킹하는 선수들을 떨쳐내고 가뿐하게 공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위치.
풀백은 공을 잡고 거침없이 크로스를 올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오버래핑에 이은 크로스였기에, 수비수들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 사이로 운 좋게 공이 떨어지는 위치에 있던 상대 팀의 어린 공격수가 머리를 갖다 맞췄다.
뻐엉! 펄럭!
“!”
“골!”
“와, 골이다! 골!”
상대 팀이 일제히 환호하며 날뛰었다. 아무래도 젠킨슨이 이쪽에 있기에 주눅이 잔뜩 들어있던 상대 팀은 갑자기 터진 골에 그야말로 광분했다.
젠킨슨은 굳은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같은 팀의 유소년들은 하늘 같은 대선배가 표정을 굳히자, 어쩔 줄 몰라 했다. 하나 젠킨슨은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두근.
심장의 고동 소리가 멈추지 않고 울렸다.
“뭐야?”
이거, 누군가 손을 댔다.
그것도, 경기 전체를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젠킨슨은 시선을 돌렸다. 터치라인 바깥쪽. 누군가 서 있었다.
“…….”
팔짱을 끼고 있는 젊은 사내.
존 젠킨슨은 프로 경력 20년이다.
수도 없이 경기를 뛰었고 무수히 많은 코치와 감독을 만났다.
따라서 알았다.
경기를 잡아먹을 것처럼 들여다보는 눈.
당장이라도 호통을 칠 듯 핏대가 선 목.
그러면서도 경기를 주시하듯이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
“감독.”
새로운 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