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0)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30화(30/266)
30. 돈이 없다면 잇몸으로 (3)
해리 오스카는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최근 현재 주급의 두 배 조건을 제시받았습니다. 리그 원 팀이고요.”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시작부터 꺼내 드는 얘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네, 축하드립니다.”
내 반응에 오스카는 멈칫했다.
그러고는 씩, 새하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지만 일단 보류했죠.”
“주급 두 배에 상위 리그 팀. 좋은 조건이었을 텐데요.”
“그야 유진 감독님하고 약속이 잡히지 않았습니까? 우리 구단에서도 이번 트레이드를 우선하겠다는 견해기도 하고요.”
“저와 포레스트 구단의 체면을 생각해주시다니, 고맙습니다.”
“하하, 물론 제가 배려심이 깊어서 체면만 따진 건 아니고요. 저 욕심 많습니다.”
오스카는 솔직한 사내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부터 지금도.
말을 빙빙 돌리거나, 특별한 요구를 꺼내지도 않았다.
선수와 계약 얘기를 나누노라면, 온갖 요구 사항에 머리가 아픈 적이 한둘이 아니다.
포지션을 보강해달라, 어떤 역할로만 쓴다고 약속해달라, 출전 시간을 정확히 보장해달라. 같은 경기 내적인 이유라면 차라리 낫다.
하지만 휴식이니, 차량 지급이니, 구단 마케팅에 자신을 메인으로 넣어달라니, 하는 요청들을 듣고 있으면 이야기가 지지부진해지게 된다.
보통은 에이전트들이 그런 수법을 쓰곤 한다. 결국 지친 나머지 이런 조건들은 선수와 협의해 삭제할 테니, 에이전트 수수료를 더 덜라는 등의 협잡.
그런 점을 고려하면, 에이전트가 없이 솔직하게 딱 하나의 조건을 내세우는 오스카는 무척이나 시원시원했다.
“주급 세 배. 제가 바라는 조건은 그대롭니다.”
다만, 그 조건이 나에게.
아니, 우리 팀으로서는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늘 그렇듯, 무심하게 반문했다.
“만일 우리가 해당 조건을 제시하지 못한다면요?”
“두 배 준다는 리그 원 팀으로 가야죠.”
“그럼 우리가 두 배를 제시하면 어떻습니까.”
오스카의 눈썹이 장난스레 휘어졌다. 하지만 눈동자는 단호했다.
“약팀이 강팀으로부터 이적 시장에서 이기려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해합니다.”
“그리고 두 배도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직 보류 중이고요.”
그는 솔직한 태도를 유지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숨기지도 않았다.
“저희 팀으로 흥정하려는 건가요?”
“저를 원하는 팀이 여러 곳이면, 서로 경쟁을 붙이는 건 저로서는 당연한 일이니, 너무 섭섭지 않게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네요. 제 몸값을 올리는 방법이니까요.”
“예, 이해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 배를 제시했는데, 저쪽에서도 똑같이 세 배를 제시하면 어떻게 됩니까. 리그 원 팀으로 가십니까?”
오스카의 굵은 눈썹이 씰룩였다. 그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잠깐 고민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말씀은 제 조건을 들어주실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예. 주겠습니다. 지금 받는 주급의 세 배.”
“!”
오스카의 동공이 흔들렸다.
“단지 말씀해주세요. 다른 팀에서도 똑같이 세 배 부르면, 그쪽으로 갈 겁니까?”
“…….”
답은 곧장 나오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입술 사이로 찰나 무수한 고민이 느껴졌다.
리그 원과 리그 투.
고작 한 단계 차이지만, 이 한 단계를 극복하기 위해 매년 리그 24개의 구단이 사력을 다해 싸우고 부딪친다.
그 치열함을 건너뛸 수 있다는 의미.
상위리그가 하위리그에게 가지는 이적 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우위다.
“그건…….”
“예, 난처한 처지 이해합니다. 답변하기 어려운 점, 동의합니다. 말씀 안 해주셔도 됩니다.”
그의 말을 끊었다.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순간 멈칫하던 얼굴에서 전부를 읽어낼 수 있었다.
‘불확실성.’
다른 팀에서도 똑같이 세 배를 제시해주리라는 자신감이 엿보이지 않았다.
모든 부분이 솔직한 남자다.
그저 말뿐이 아니라 얼굴, 표정, 제스처까지.
허세나 과장 따위는 없다. 만일 자신이 있었다면 숨기지 않았으리라.
당연히 리그 원으로 간다. 그러면 그쪽은 세 배, 그 이상을 불러야 나를 잡을 수 있을 거다. 이렇게 딜을 제시했으리라.
하지만 망설였다.
‘저쪽과의 협상도 지지부진한 거다.’
지금 두 배라는 저 제시안도 치열한 협상과 논의 끝에 만들어낸 조건임이 분명했다.
‘세 배는 무리일 거야.’
그러면 됐다.
내가 세 배를 제시하면.
‘챔피언십 제일의 스트라이커.’
그를 데리고 오게 된다.
솔직히 그의 세 배라는 주급도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내가 그의 미래 가치, 실력과 성적을 알기에 도출되는 결론.
‘자신의 가치를 아는 선수다.’
많은 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모른다.
자신이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할 수 있는 선수인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그에 반해 오스카는 당당히 많은 주급을 요구했다.
적어도 자신이 그 정도는 충분히 받을 만한 실력이라는 강력한 확신이 넘실거렸다.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높은 주급을 부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선수 본인에 대한 자기 확신은, 때때로 가진 모든 실력을 아낌없이 드러낼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이기에.
‘그것이 오스카를 챔피언십 제일로 만들었겠지.’
나이만 아니었다면, 적어도 4~5년만 젊었어도 프리미어리그의 러브콜을 받았을 만한 실력자였다.
솔직하고, 자기 확신에 찼으며, 자신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선수.
‘물론 자신의 가치를 완벽히 아는 건 아냐.’
고작 세 배?
웃기는 소리다.
‘적어도 지금 주급의 열 배는 코웃음 칠 정도.’
내가 놀라거나 당혹해하지 않았던 이유기도 했다.
고작 세 배로 저 선수를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예. 세 배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대답 대신 서류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의심 어린 오스카의 동공을 똑바로 바라봤다.
“우리 사이의 신의는 감독과 선수와의 유대가 아니라 계약서를 근거로 합니다.”
오스카의 눈이 내밀어지는 계약서에 향했다.
“그 외의 어떤 조건도 협의는 없습니다. 해당 내용에 따라 사인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뿐입니다.”
“…….”
“당장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민하세요.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결정하세요. 단순한 이적이 아닙니다. 우리 팀으로의 이적은, 선수의 인생을 건 결정이 될 겁니다.”
장황한 말이다. 베테랑인 그에겐 이런 말은 여러 번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오스카는 이번만큼은 대충 흘려듣지 못했다.
나는 확신을 했기에. 목소리에 그 감정을 여실히 담았기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확신이 오롯이 설 때, 서명을 끝내고 연락해주세요.”
* * *
“세 배라고?!”
릴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만한 계약을 구단주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독단이기도 했고.
아무리 내가 헤드 코치라도, 이번 건은 큰 건이었다.
적어도 맨스필드의 눈물 나는 재정으로는.
“정말 그렇게 제시했다고?”
“무리라면 무를게.”
릴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잠깐의 침묵 사이로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듯,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무를 수 없지. 그대로 계약하자.”
“괜찮겠어?”
“……솔직히 말하면 재정한계선이긴 해. 채무 변제는커녕, 이자도 간신히 내는 시점이니까.”
그러나 릴리는 굴하지 않았다.
“조합에 적지만 팬들이 계속해서 조합금을 모으고 있어. 그것들이면 당장 어찌어찌 해결은 가능할 거야.”
서포터즈 조합이 모으는 돈은 말 그대로 팬들의 자산.
정말 구단이 위기에 빠졌을 때 필요한 기금.
“지금까지 선수단 개편하면서 냉정했잖아. 그런데도 그만한 조건을 수용했다는 건, 정말 필요한 선수고, 그만한 가치가 있고, 또 유진, 네가 원하는 축구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뜻이잖아?”
“…….”
“그러니까. 구단주로서 지지는 못 해줄망정, 도와주지 못할망정, 어떻게 막겠어?”
릴리가 애써 웃었다.
“다른 팀 감독은 안 이래. 전술 짜고 선수단 관리하느라 밤새 고민하는데. 짐을 더 얹어줄 수 없지. 걱정 마, 유진. 그 계약, 그대로 진행해.”
“…….’
감독과 구단주의 충돌은 축구판에서는 흔한 일이다.
적어도 내가 겪어온 구단주들 역시 대개 그랬다.
‘형편없는 지원, 번번이 막아서는 태클, 그러면서도 많은 결과물을 요구했던 이들이 대다수였지.’
내 독단을 막거나 나무라거나 불신하지 않는다. 무조건 믿는다. 감독으로서 처음 받는 온전한 신뢰. 서로 주고받는 것 없이 그저 확실한 지지.
릴리가 살포시 웃었다.
“왜? 내가 이 정도도 못 할 줄 알았어?”
“재정 상황이 심각할 텐데.”
“정 힘들면 내가 사비라도 지출하면 되지.”
“사비가 얼마나 있다고?”
“그럼 우리 양조장의 후원금도 어떻게.”
“아무리 지역의 작은 사업장이라지만, 엄연히 회사고 회계팀이 있는데 대표 말 한마디로 돈 융통이 바로바로 가능하겠어?”
릴리는 주춤했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재정 걱정은 구단 회장에게 맡겨, 유진! 내가 어떻게든 여기저기서 자금 끌어올 테니까!”
릴리의 눈에 불이 켜졌다. 그 강렬한 의지는 나에게도 전염됐다.
맨스필드는 구단주고, 감독이 따로 제각기 입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릴리도, 나도.’
목표는 맨스필드를 일으켜 세우는 것.
거기엔 감독이니, 구단주니 같은 허물은 필요 없다.
같은 목표다.
때문에 같이 고민하고, 해결한다.
“고민한 방법이 있어.”
“방법이 있다고?”
릴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역시, 뭔가 방도가 있어서 계약을 제시한 거구나!”
“구단의 조직을 개편하는 거야.”
“선수단은 개편 중이잖아? 이미 방출은 끝난 거 아니었어? 그렇다고 코치진 정리도 안 할 거고. 다른 마케팅팀이나 프런트도 지금 사실상 최소 인원인데. 내가 전화 돌리고 있을 정도야.”
“이건 우리 둘이 얘기해서 결정지을 문제가 아니야.”
“……!”
“스태프들, 코치진도 소집해줘.”
릴리의 얼굴에 희미한 긴장감이 떠올랐다.
* * *
알렌스키는 속이 벌써 쓰려오는 기분이었다.
“소집이라니…….”
갑작스러운 전 코칭스태프 소집.
시즌 개막전 승리라는 단꿈에서 곧장 벗어나게 만드는 무서운 마법이었다.
“왜 그러신가?”
알롭의 허허로운 웃음도 알레스키는 찌푸린 표정을 피지 못했다.
“무슨 자리만 만들면 내 속이 쓰립니다. 저번에 선수 이적 건부터 해서 어휴…….”
“하긴, 이런 소집일 때마다 심상치 않은 일이 있긴 했지.”
“코치님은 뭐 짚이는 바가 있습니까?”
“허허허, 나라고 알겠나. 감독님 속내를.”
알롭이 평소 능글맞은 구석은 있지만, 알렌스키는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저 감독의 속내를 알까.’
매번 소집 때마다 예상을 벗어나는 파격을 던지는 그야말로 미친 감독이 아니던가.
회의실에는 이미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알렌스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선수단 대표로 주장인 젠킨슨이 오는 거야 그렇다 치고, 잠깐만. 저 사람은 행정팀장이고. 저분은 마케팅팀 아니던가? 구단 프런트들인데?’
비록 있는 듯 없는 듯 고작 한두 명밖에 없는 각 프런트의 행정팀, 마케팅팀의 대표까지 들어왔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릴리가 들어왔다. 안에 모인 사람들이 분분히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아, 다들 앉아 있어요. 감독님이 중요한 얘기를 해줄 테니까요.”
그 말과 함께 동시에 뒤이어 유진이 따라 들어왔다.
‘뭐야, 결국 감독이 할 말이 있다는 거야?’
‘선수단 관련 일은 아닌가? 프런트까지 부른 거 보면?’
‘훈련이나 전술 문제라면 코치진끼리만 얘기했을 텐데.’
불안한 시선이 유진에게 쏟아졌다.
호기심, 의문, 불안함.
그 여러 가지가 뒤섞인 시선이 한 번에 쏠렸는데도, 유진은 늘 그랬듯이 담담하게 섰다.
“시즌 시작했으니 모두 바쁘신 거 압니다. 그래서 다른 소소한 얘기는 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안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입이 열리자 회의실은 긴장감이 가득 차올랐다.
알렌스키는 어쩐지 슬그머니 다시 속이 쓰려오는 기분이었다.
“우리 팀은 현재 정상화를 위해선 극한의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필요 없는 건 전부 쳐내고 치워야 합니다.”
“!”
순간 알렌스키는 저도 모르게 알롭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어 수석코치인 막시밀리안에게 향했다. 하지만 막시밀리안도 아무것도 모르는 듯 혼란스러운 얼굴에 알렌스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석코치도 모른다고? 그럼 뭐지?’
알렌스키가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렸다.
“설마 지금 선수 방출을 더 진행하시겠다는 뜻인가요?”
알렌스키의 얼굴에 걱정과 함께 분노가 은은하게 드러냈다.
방출이라면, 일전에 자신이 지켜 낸 다섯 명이 최우선 타겟이 되리라는 건 당연지사.
그것을 겨우 막아낸 알렌스키로서는 날카롭게 반응했다.
하지만 유진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시즌은 시작했습니다. 이제 선수 방출은 없습니다.”
“그러면…….”
“조직 개편입니다.”
“!”
이번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있던 프런트와 릴리가 긴장했다.
동시에 뾰족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프런트는 정말 최소 인원인데요! 마케팅팀은 저 혼자 있고, 행정팀도 팀장님하고 구단 회장님께서 직접 일하고 있고요.”
마케팅 팀의 직원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개편할 조직 자체가 없다. 이미 구조조정을 통해 나갈 인원은 다 나간 상태니까.
“아니요. 있습니다.”
“있다니……?”
“지금 구단에서 가장 필요 없고, 의미도 없으며, 쓸모는커녕 아무런 효용도 못 하는 조직.”
“!”
주위가 술렁였다.
“그런 조직이라니.”
“전력분석실도 없는 구단에서 무슨…….”
술렁임 사이로, 유진의 나직한 음성이 묵직하게 파고들었다.
“우리는 그 조직을 치워버릴 겁니다.”
“대체 그 조직이 어딥니까?”
“미래라는 거창한 목표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쓸모없는 조직.”
“!”
순간 주위에 무시무시한 적막이 가라앉았다.
미래, 현재. 어쩐지 유진의 입에서 나올 말이 짐작됐기에.
그리고 그 짐작을 부정하고 싶었기에. 설마, 머릿속 떠오르는 그 생각이 맞는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그럼에도 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선언했다.
“맨스피드의 유소년 아카데미를, 해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