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4)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34화(34/266)
34. 여론의 양면 (1)
그라운드의 짐승.
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오스카는 그 별명을 좋아했다.
사람은 짐승을 두려워한다. 귀여운 반려동물이 아니라, 야생의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는 큼직한 체구의 짐승을 만나면 겁에 질린다.
가령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경악 어린 시선처럼.
“……!”
느껴진다. 필드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충격의 눈빛이.
그 눈빛을 일일이 마주하며 내달렸다. 터져 나가는 허벅지의 근육이 요동치며, 지면을 박찼다. 한 마리의 흑표범처럼, 이빨을 드러내는 불곰처럼.
“훅, 훅.”
투웅―!
수없이 손발을 맞춰본 스탠리의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는 크로스가 페널티 박스를 향하는 순간.
오스카는 마치 점프하듯, 크게 성큼 뛰었다.
“막―아!”
“저 짐승 새끼, 막으라고―!”
“집중해! 공격수가 뛴다! 시야 가리지 말고 막아!”
쏟아지는 상대의 욕설과 고함. 수비수의 괴성과 골키퍼의 비명 같은 외침.
“――!”
그 모든 소음이 일순 진공으로 빨려들 듯 사라진다. 오스카의 눈에는 공포에 젖은 눈망울과 뻐끔거리는 입 모양만이 시야에 맺혔다.
그 순간, 오스카의 머릿속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 * *
“이로써 계약은 성립됩니다. 환영합니다. 오스카 선수.”
“……이거 참,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요. 5년 계약이라고요? 내 나이가 34살인데 말이죠. 이거 나한테 너무 유리한 조건…….”
“아니요, 제가 유리한 조건입니다.”
확신의 목소리가 가슴 깊이 새겨졌다.
“전 당신을 고작 이 주급 가지고, 2년간 프리미어리그에서 써먹을 거니까요.”
“2년?”
“예. 3년 동안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하고, 나머지 2년 계약 동안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실 겁니다.”
“허, 대단한 포부신데? 그럼 윈윈인 거네요.”
“아니요. 계약에 윈윈은 없습니다. 이 계약, 오로지 나에게 유리합니다. 불공정 계약이 될 겁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이해 못 할 말과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 오스카는 어쩐지 흥미가 떠올랐다.
두근―!
심장이 미약하게나마 박동했다. 그저 돈, 돈만이 그에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 감독이 그의 마음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좋아요, 선수. 이제 제 선수가 됐으니 감독으로서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유진은 빙긋 웃었다.
“주급 값, 하세요.”
* * *
성큼, 두 번째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순간.
농구공처럼 강력한 탄성으로 튀어 오른다.
왼쪽과 오른쪽. 한 체격 하는 덩치들이 얽혀 온다.
잡아당기고 밀치고 발악한다. 오스카는 새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지면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용수철 같은 유연성.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도약력.
그리고 익숙한 듯 보지 않아도 정확한 위치에 떨어지는 크로스.
수비가 어디에 있든, 골키퍼가 또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 무엇도 분석하고 생각하고 고심할 필요가 없다.
“오스카아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함성이 말해 주기에.
지금 본능대로 몸이 움직이는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분석과 고민보다도 정확하다는 것을.
철럭―!
그물을 찢어 버릴 듯 파고드는 맹렬한 헤더골이 증명했다.
“고오오오올―!”
새로운 동료들 간의 어색함은, 부딪치는 필드에서의 땀이면 충분히 날려 보낸다.
오스카는 얽혀 오는 동료들의 축하 속에서, 유진을 똑바로 보며 씩 웃었다.
“주급 값, 합니다.”
* * *
“주급 값하려면 한참 멀었지.”
오스카의 골은 실로 아름다웠다.
환상적인 궤적의 크로스, 폭발적인 러닝 점프의 강력한 헤더 골.
홈 팬들은 미친 듯이 열광했다. 벌써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함성이 경기장을 완벽히 장악했다.
“고작 이 정도로 만족하려고 데리고 온 선수가 아냐.”
이번 시즌.
다음 시즌, 그 다다음 시즌까지.
“멈추지 않고 뛰어야지.”
“후, 나는 오늘 유니폼 사진을 찍은 저 두 친구를 선발로 출전시킨다고 했을 때, 미친 줄 알았다니까?”
“유니폼 사진만 오늘 찍은 거지. 선수단 등록은 이틀 전에 했잖아?”
“쟤들, 맨스필드에 어제저녁에 왔다고. 그런 선수들을 선발로 쓰는 게 말이 되는 거 같아?”
대답 대신 턱짓으로 필드를 가리켰다.
속도는 처참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크로스만큼은 확실한 스탠리의 날카로운 발.
수비수 둘 셋을 때려 부수듯이 파고드는 짐승 같은 오스카.
막스가 탄식을 내뱉었다.
“나, 참, 어떻게 팀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저 두 선수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오스카의 피지컬이나 골 냄새를 맡는 본능은 소름이 끼치기는 하다만.”
“막스. 아직도 우리 선수들 파악 다 못 한 거야?”
“무슨 소리야. 난 수석코치라고.”
“치트 키가 있다고. 우리 팀한텐.”
막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대충 넘기지 않았다. 인상을 쓰고, 필드를 주시하며, 고민하고 분석했다. 그것이 막스가 성장하는 비결이자 성공의 비법이었기에.
그리고 막스는 감탄을 터뜨렸다.
“대니 스콧!”
* * *
대니 스콧은 솔직히 몇 번이고 후회했다.
‘물론 감독님을 포함한 코치진은 나쁘지 않아, 아니 좋아.’
코치진은 만족이었다.
그가 감명받아 이곳에 오게 된 유진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감독님이야, 최고지. 내가 본 감독 중에서도 말이야.’
수석코치인 막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훈련 때마다 브리핑하며 내놓는 전술과 훈련 세션은 노팅엄에서 했던 것보다 종종 더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수두룩했다.
알롭 코치 역시 4부 리그 구단에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노련했고, 베테랑이었다.
피지컬 코치인 알렌스키의 능력은 평범했지만, 적어도 선수들을 훈련에 집중시키게 하는 의지를 키워내는 것만큼은 썩 좋았다.
4부 리그라고 깎아내리기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코치진이었다.
‘선수들은 확실히…….’
훈련 때도 느꼈지만, 실제 경기에서 그는 절실히 체감했다.
‘이게 4부 리그의 수준인가? 고작 이 정도야, 진심으로?’
수준을 운운하는 것이 천박한 게 아니다.
명백히 리그 순위가 있고, 상위 리그와 하위 리그의 격차는 분명했다. 대니 스콧은 맨스필드의 동료들이 4부 리그에서도 약팀에 꼽힌다는 걸 느꼈다.
‘패스를 줘도, 아무리 내가 열심히 뛰어도.’
동료들이 부응해 주지 못했다.
‘개막전에서 두 골을 넣은 것도 윙백이었던 제임스였지. 이제 상대 팀들도 그 점을 눈치채고 철저하게 틀어막고 있어.’
제임스는 어리다.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단 의미다.
결국 대니 스콧은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리그 2라운드 패배, 3라운드 지루한 무승부.
원정 2연전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이 답답함을 해결하고자 유진에게 면담도 요청했다. 자신에게 좀 더 자율성을 주라고. 그렇다면 이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러나 유진은 냉정하게 일축했다.
“경기를 지배하려고 하지 마세요.”
“!”
“경기 전체를 보기에 그딴 마음이 드는 겁니다.”
“미드필더가, 경기 전체를 봐야 하는 건 아닌가요?”
“전체를 보는 건 접니다. 밖에 있는 감독이 하는 일입니다. 선수는 감독의 지시를 따라서 움직이는 병정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넘어 많은 것을 하려고 하기에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
“한편으로는 이해합니다. 현재 동료 선수들이 급에 맞지 않겠죠.”
“그, 그건…….”
“부끄러워할 것 아닙니다. 객관적인 사실이니까요. 선수마다 실력의 격차는 존재하고, 저 역시 압니다. 그런데요, 그거, 경기 전체를 들여다보려고 해서 느껴지는 겁니다.”
“전체를 들여다보려고 해서……?”
“필드의 일원이 되세요. 무수한 구성원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길이 보일 겁니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 답답함에 희미한 후회마저도 솟구치려는 찰나.
“나이스 패스!”
“……!”
“좀 더 빠르게 패스를 보내줘!”
엄지를 치켜올리며 외치는 새로운 영입생.
그의 생각보다도 무섭게 움직였고, 자신의 시야 밖에서도 확실한 위치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대니 스콧은 지금까지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필드의 구성원 중 하나.
그라운드의 지배자이자 사령관이 아닌, 그저 하나의 일원.
늘 그렇듯이 경기 전체를 지켜보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내 자리에서 봐야만 하는 길을 보는 것.
보였다. 길이.
자신의 패스를 받고, 상대 수비진을 찢어 버리는 해리 오스카의 뒷모습을 보며.
대니 스콧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드디어, 급에 좀 맞는군.”
* * *
“저것들, 처음 손발 맞춰보는 거 확실해? 확실하냐고!”
뉴포트 그린 감독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대니 스콧의 패스를 이어받은 해리 오스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수비진을 종잇장처럼 찢어 버립니다!
―강력한 슈팅! 오, 골키퍼가 튕겨냈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군요! 손바닥이 얼얼하겠죠?
―뉴포트, 맨스필드의 공격진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 실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경기 내내 시종일관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해리 오스카는 리그 원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선수였잖습니까?”
“일단 침착하게 그의 움직임을 방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독님. 대니 스콧에게 붙여 놓은 마킹을 오스카에게 좀 더 집중을……!”
그린 감독은 본인의 능력과 역량이 그렇게까지 대단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았다.
때문에 리그 투에서 가장 많은 코치진을 보유했다. 참모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최적을 찾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수비 라인을 조정하지. 대니 스콧에 대한 압박을 다소 줄이고 확실히 오스카를 막아. 물론 대니 스콧에 대한 경계심은 지우지 않는다!”
―오스카, 강력한 압박에 시달립니다! 수비수 세 명이 에워싸는군요!
―아무리 짐승이라도, 이건 뚫을 수 없죠! 오스카 결국엔 포기하고 몸을 돌려 백 패스합니다!
―대니 스콧, 받습니다. 받고, 곧장…… 어, 어어! 우측으로 넓게 벌려 주는 롱패스! 공간, 공간, 공간 뚫렸어요! 공간 열렸어요!
―브랜들리 스탠리! 스탠리가 느리지만 공을 잡아냅니다! 툭, 치고 크로스!
―오, 맙소사, 크로스가 그대로, 그대로 날아오르는 오스카의 이마에 맞습니다! 오스카의 두 번째 헤더골! 골키퍼 그대로 굳어 버린 채 골을 허용합니다!
“……!”
그린 감독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오스카와 스탠리가 적응력이 뛰어난 게 아니야. 그들이 대단한 선수여서만은 아니야.”
오로지 단 하나였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맹점.
“대니 스콧, 저놈이 두 선수를 완벽하게 다루고 있어!”
마치 원래 한 팀이었던 것처럼 완벽한 패스와 경기 조율, 위치 선정까지.
“대체……!”
하지만 이는 선수의 오롯한 능력이 아니다. 어떤 대단한 선수라고 해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기가 어디 한둘이던가.
지금 대니 스콧은 자신의 역량을 극한까지 발휘했다. 그 영향을 받아 이적생인 오스카도, 스탠리도 전부를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
그린 감독의 시선이 상대 팀 벤치를 향했다.
두 번째 골이 들어가고 나서야 희미한 미소가 맺히는 무심한 얼굴의 유진.
선수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은.
오로지 감독의 능력이었다.
“하…….”
그린 감독은 절실히 느꼈다.
경기의 패배가 아니라.
‘고작 감독 1년 차인 초짜한테…….’
유진에게서 감독으로서의 패배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