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9)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39화(39/266)
39. Football Machine (2)
“You saw me standing alone― Without a dream in my heart―(넌 내가 혼자 서 있는 것을 봤어- 내 가슴 속의 꿈 없이-).”
맨체스터 시티의 응원가로 유명한 블루문이 크루 관중에게서 흘러나왔다.
본래 크루의 응원가였다는 사실을 역설하듯, 관중들은 경기장이 떠내려가라 목청껏 불렀다.
“Without a love of my own-(내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
크루가 자랑하는 강력한 두 줄 수비. 4-4-2 포메이션으로 펼쳐지는 형태에서 최전방 투톱(패트릭, 리암 니틀)이 기분 좋은 선제 득점을 뽑아낸 덕분이다.
“Ohooo- OhOhoooo- Forever Crew Alexandra-(오-오오오오- 영원토록 크루 알렉산드라-).”
터져 나오는 응원가에 힘입은 듯, 크루의 기세는 선제골을 넣고도 멈추지 않았다.
미드필더와 수비 라인의 촘촘한 간격으로 갈취한 공이 빅(Big) 패트릭에게 패스.
“뛰어! 올라가!”
“라인 올려!”
패트릭이 툭툭 밀고 가다가 사이드를 향해 공을 쏘아 보냈다. 순간 라인을 지키던 우측 풀백, 제임스가 역동작에 걸려 패스를 끊어 내지 못했다. 허겁지겁 공을 향해 달려갔지만 사이드로 빠졌던 파트너 공격수 리암 니틀이 수월하게 공을 받았다.
“공간 좁혀! 길 열어 주지 마!”
묵직한 패트릭과 달리 빠른 발로 측면을 뒤흔들 수 있는 스몰(Small) 리암 니틀이 공을 툭 쳐 내며 스피드를 올리려는 순간.
촤아아아악―!
저돌적으로 달려온 존 젠킨슨의 과감한 슬라이딩 태클이 공을 휩쓸어 버렸다.
―존 젠킨슨의 훌륭한 태클! 공만 쓸어버리는 이름다운 수비가 크루의 공격을 저지합니다!
“치잇!”
리암 니틀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허둥지둥하는 우측 풀백인 제임스를 흘겼다. 아쉬운 기색 위로 웃음이 덧칠해진다.
그 표정을 본 젠킨슨은 이를 악물었다. 선제 실점의 빌미가 된 부분이 바로 제임스의 수비였다.
단단한 수비진이라도 어느 한 부분이 커버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면, 실점을 헌납할 수밖에 없다. 방금도 자신이 커버하지 않았다면 추가 실점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 제임스.”
“네, 네, 캡틴!”
제임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젠킨슨은 그런 제임스를 더 닦달하는 대신 고개를 돌렸다. 같은 라인의 윙어 스탠리가 보였다. 실점과 조금 전 찬스도 오롯이 제임스 탓으로 보기엔 가혹하다.
“스탠리, 수비 가담 똑바로 해! 빌어먹을 위에서 기웃대기만 해? 하프 라인 밑으로 안 내려올 거냐고!”
스탠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안면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스탠리의 눈썹이 확 휘어졌다. 대답은 없었다. 무어라 더 한마디 하려는 찰나.
“비켜.”
“……!”
스탠리의 나직한 말에 젠킨슨의 눈썹이 솟구쳤다. 하지만 더 몰아붙일 수 없었다. 삐빅, 상대 팀이 스로인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들어서고 있었으니까.
젠킨슨은 한숨을 내쉬며 경기장을 둘러봤다.
상대의 숨 막히는 압박 수비.
풀리지 않는 공격.
명백한 팀의 약한 수비 고리.
상대가 철저히 준비해 왔다는 사실이 필드에서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과감하게 해! 과감하게!”
흐름을 탄 크루의 기세가 매서웠다.
젠킨슨은 주장이었다. 필드 위에서의 리더는 자신이었다. 리더는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했다.
‘라인을 내려야 하나?’
제임스와 스탠리가 불안불안했다. 상대방은 약한 고리를 눈치챘다. 감독이 지침을 내린 게 틀림없었다.
추가 실점을 막으려면 라인을 내리며 신중하게 경기를 펼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판단.
‘하지만 상대의 수비 역시 만만치 않아.’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상대의 수비를 뚫고 득점에 성공해야 동점, 추가 골을 넣어야 역전이다. 라인을 내렸다간 지루한 공방으로 바뀔 영향이 컸다.
경기 전술은 늘 유동적이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필드 위 선수들의 컨디션, 기량, 분위기에 따라 바뀌기 마련. 필드의 리더인 젠킨슨이 주도해야 하는 일이었다.
고민이 깊어지는 젠킨슨의 머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경기의 모든 판단과 지시는 오로지 내가 합니다. 당신들이 믿고 따라야 할 보스는 그런 성향입니다. 용납하기 어려우면 헤럴드와 같이 나가세요. 싫으면, 받아들이세요.
유진이었다.
비록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많지만, 지금 팀을 이끄는 데 그의 수완과 능력은 젠킨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 실점.
젠킨슨은 마치 부모에게 의지하는 아이처럼 벤치를 바라봤다.
무심한 눈빛으로 필드를 쏘아보는 유진의 얼굴이 보였다.
벤치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 * *
예측에 대한 결과물은 확률이다.
막스가 3년 동안의 크루 경기를 분석해서 나온 결과는 최선이다.
그리고 최선은 100%가 아닌 법이다.
70%일 수도, 80%일 수도, 어쩌면 98%일지도 모른다.
핵심은 분석이 틀릴 확률이 30%든, 20%든, 아니면 2%일지라도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점.
지금이 바로 분석이 틀린 순간이다.
‘예측한 패턴과 다른가? 아니. 예측 그대로야.’
필드를 주시했다. 바깥에서 보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무리. 각자의 개성을 철저하게 죽인 조직이 하나인 듯 꿈틀거리는 무서운 광경.
감독이 내린 전술적 지침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기계 같은 모습.
‘자판기에서 왜 음료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 광경에서, 어쩐지 훈련장의 자판기가 떠올랐다.
‘버튼을 누르면 음료가 나와야지. 그게 자판기라는 기계의 프로세스야. 하지만 아니었지. 저 팀은…….’
이미 실점은 과거.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적의 약점을 찾아야 한다.
‘해야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조금 전, 윙어에게 크로스를 올릴 각이 생겼는데, 패스를 왜 찔러 주지 않은 거지?’
시선을 돌렸다. 상대 팀 벤치, 근엄한 각진 얼굴의 사내. 크루 감독이 이른 선제 득점에 기뻐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완연한 기쁜 낯은 아니다. 표정 너머에 숨겨진, 마냥 좋진 않은 미묘한 찰나의 낌새.
그 감독의 시선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의가 흩뜨려졌다.
“허허, 수비서 또 문제가 났네요. 이건 선수 문제가 아니에요. 라인을 올렸다가 한 방에 맞지 않았습니까.”
알롭의 말에 막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실점을 허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지적에 막스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알롭은 막스의 삐딱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번 무너진 라인은 계속 무너집니다. 조금 라인을 낮추고 안정감 있게 운영하시죠.”
알롭의 조언에 막스의 눈썹이 휙 솟구쳤다.
“라인을 낮추라고요? 실점했는데요?”
“추가 실점은 막아야죠.”
“추가 실점이 날지 안 날지는 어떻게 안답니까?”
뻐어어엉―!
―오오오오오! 크루의 기습적인 슈팅!
―골대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갑니다! 크루 관중들 아쉬움의 탄식을 터뜨립니다!
―맨스필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고막을 후려갈기는 시원한 슈팅 소리. 머리를 부여잡은 채 아쉬워하는 선수와 홈 관중의 모습.
알롭이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허허, 수비진 균형 안 맞는 거 안 보이시는지요.”
“지고 있는 도중에 라인을 내리고 수비만 한다, 수비적인 팀으로요? 승점 내어주겠다는 건가요? 알롭 코치님.”
“예, 그렇죠. 그래도 때론 안정부터 찾아야 하는 겁니다. 축구란 그래요. 그게 프롭니다, 차근차근해야죠. 수비부터 정비해야죠. 급하게 간다고 성공하는 거 아닙니다. 코치.”
“수석코치요, 알롭.”
두 명의 신경전은 고스란히 노출됐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 둘을 돌아봤다.
“팝콘이라도 들고 올까요?”
막스가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허허, 죄송합니다. 감독님. 제가 조언하려다가 괜한 소란만 일으켰군요.”
막스와는 달리 낯빛 하나 바뀌지 않는 얼굴을 가만히 주시했다.
베테랑인 알롭이 대놓고 지적하며 시비를 걸었다. 막스를 톡 건드려서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을까. 저 너구리 같은 사람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알롭, 같잖은 수작질은 거기까지 하세요.”
“……!”
알롭의 눈이 커졌다.
선수들 사이로 헉,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코치에게 면박을 준 적은 없었다. 알렌스키를 가혹하게 몰아붙였을 때도, 선수들이 없는 자리에서였다.
바로 예의다.
선수가 믿고 따라야 하는 코치의 권위를 지켜 주는 매너.
나는 지금, 그 매너를 짓밟을 수 있음을 선명하게 보였다.
“먼저 예의를 벗어나는 짓을 한다면, 저도 똑같이 대하겠습니다. 그게 맞지 않겠습니까?”
“…….”
알롭의 입이 일자로 닫혔다.
“허허, 죄송합니다. 저는 좋은 마음에 그저 조언을 좀…….”
“예, 조언이요. 코치. 그렇게 믿어 줄까요?”
“……!”
담담하게 알롭을 주시했다. 저 허허로운 웃음 뒤에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적어도 내 눈에는 보였다.
‘막스의 기를 죽이려는 속셈. 거기에 선수단 앞에서 자신의 힘을 증명하려는 얄팍한.’
막스는 수석코치다. 팀의 이인자를 향해 알롭은 망설임 없이 전술적 직언을 쏘아붙였다. 수석코치에게도 할 말은 하는 강단 있는 모습을 지금 선수단에게 어필했다. 반면 막스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는커녕,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
“제가 정말 모르는 것 같습니까?”
경기장은 치열하다. 뜨거운 불처럼 화르륵 타오르고 부딪친다.
벤치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감독님.”
“왜요. 선수들 눈이 이제야 신경 쓰입니까?”
수년 동안 팀에서 선수단과 함께해 온 알롭.
독일에서 온 낯선 이방인, 막스.
수석코치를 찍어 누르는 장면을 보여 줌으로써, 알롭은 선수단 내에 자신의 위치가 어떤지 보여 주려는 얄팍한 속셈이었다.
그래, 퍽이나 얄팍하지만, 또……효과는 강한.
“……!”
막스도 뒤늦게 눈치챘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코치의 권위는 선수단의 지지에서 나온다.
선수들이 무시하고 코칭을 듣지 않는다면, 누가 코치로 인정하겠는가.
‘교활함, 또는 영리함일지.’
어쩌면 둘 다.
“예. 설전, 할 수 있습니다. 조언할 수 있어요. 정확히는 조언으로 위장한 신경전, 파워 게임, 뭐든 이해합니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때와 장소를 가렸어야죠, 경기가 중요합니까, 그 같잖은 신경전이 중요합니까?”
“……!”
알롭은 막스만을 노린 게 아니다.
“그리고 상대도 가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막스를 수석코치로 선임한 것 역시 나의 전적인 결정.
알롭이 반대했던 막스의 전술안을 승낙한 것 역시 내 뜻이다.
카메라와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보인 설전은 외부에서 어떻게 비칠까.
젊은 신임 감독, 경기 중에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싸우는 코치진.
팀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감독이다.
알롭은 어쩌면 그 점까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내가 똑바로 응시하자, 알롭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눈빛이다.
선수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줄은 몰랐던 것일까.
방법은 하나다.
아마 나를 향해 전적으로 반기를 일으키는 것이겠지.
애석하게도, 그 정도의 용기는 없다.
감독을 향해 반기를 든 코치.
어느 누가 반기겠는가. 아닌 척, 뒤에서 너구리처럼 구는 알롭의 성격과도 맞지 않은 일.
지금 알롭을 무너뜨리는 건 아주 쉽다.
선수단 앞에서 알롭을 깨부수면 된다. 그간 만들어 온 감독의 권위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만든다. 알롭도 그걸 알기에, 막스를 건드렸겠지.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날 공격하려고.
알롭을 향해 웃어줬다.
알롭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알롭, 난 코치가 좋습니다.”
적어도 순진하고 능력 없는 코치보단, 교활하고 능력 있는 코치가 수백 배는 나으니까.
“그러니, 주제만 넘지 맙시다.”
“……!”
알롭 코치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고개를 돌렸다. 경고는 여기까지다. 알롭 같은 너구리라면 알아들었을 것이다. 못 알아들었으면? 상관없다. 보여 주면 그만이다.
헛된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말이다.
“포지션을 바꾼다.”
감독과 코치, 그 명백한 격차를.
* * *
“빌어먹을, 이래서 약팀에 와선 안 되는 건데.”
오스카는 이를 악물었다.
전반전부터 강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느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유니폼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흉악하다 싶을 정도의 근육질이 그대로 드러났다.
인상을 구기자 주위에 있던 상대 선수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정작 그들보다 짜증이 나는 건 오스카 본인이었다.
“대체 몇 번째 허무하게 득점을 헌납해.”
이가 절로 갈렸다.
평소에도 느꼈지만, 오늘은 더욱 심했다.
실점이 하루 이틀은 아니다. 자신이 뛰었던 모든 경기에서 실점을 기록했다. 그래도 팀이 순항을 달리고 있지 않냐고? 이유가 무어겠는가.
“주급 값도 못 하는 놈들. 매번 내가 골을 넣어줘서 망정이지.”
오스카는 마음속에 시커먼 것이 덕지덕지 붙는 느낌이다. 전력을 다해 겨우겨우 득점을 올리는데, 수비가 매번 헌납하고 있는 꼴에 어떤 스트라이커가 마음이 편할까. 오스카는 차오르는 짜증, 분노 담은 시선으로 공을 노려봤다.
―그라운드의 짐승, 해리 오스카가 다시 한번 공을 잡고 몰고 갑니다!
―크루가 곧바로 대응하는데요, 삼면에서 강력한 압박이 들어가네요!
공을 몰고 가는 찰나. 상대 센터백이 정면을 막아선다. 어깨를 밀면서 나아가자 옆에서 레프트 윙어 산드레손이 길을 막는다. 뒤이어 왼쪽 풀백 하워드까지 거리를 두고 압박.
제아무리 오스카의 무지막지한 괴력이라도 숨이 턱 막히는 촘촘한 압박.
애석하게도 오스카는 기교와 기술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유형이 아니다. 힘에서 밀려나는 순간, 공은 그의 발끝을 떠났다.
―하워드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공만 빼내는군요, 깔끔한 태클!
―오스카, 또 한 번 크루의 질식 수비에 무너집니다!
오스카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흥분해서 안 된다. 스트라이커가 흥분해 버리면, 넣을 골도 놓친다.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그는 골을 넣어야만 했다.
―주급 값, 하세요.
“…….”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음성.
왜일까.
오스카도 수많은 팀을 전전하고, 여러 감독을 거치면서 몇 번이고 들어 본 말이다.
한데 어째서인지, 유진이 한 말은 다르게 다가왔다.
‘응원하는 말이 아니야. 당부하는 말도 아니다. 그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
당부도 아니다. 응원도 아니다. 당연히 이 정도 주급 값을 해줄 거라는 확신이자 믿음.
‘어째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을 얼마나 봤다고.
그간의 활약?
1년 전에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가, 다음 시즌에서 대차게 말아먹는 선수가 어디 한둘이던가.
한데 유진의 믿음은, 단지 성적을 넘어…….
‘나 자체를 믿는 듯했어.’
성적과 기록 따위가 아니라.
오로지 해리 오스카란 이름을 말이다.
“……하.”
너무 갔군, 너무 갔어.
오스카는 감독에게 진한 유대감을 느끼는 자신이 생경했다.
팀은 몇 번이고 옮길 수 있다. 늘 그래 왔듯이.
감독도 한 팀에서 여러 번 바뀐다. 늘 그랬듯이.
감독이든, 팀이든, 유대감을 느끼고 신뢰를 형성하며 사랑에 빠질 필요는 없다. 프로 선수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뭐가 되든, 주급 값만큼은 하는 플레이.
프로 선수의 소명이다.
오스카의 눈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수비 라인에 향했다.
“Yeeeeeeeaaaaaaaaaaa―!”
“존, 존, 젠킨슨! 맨스필드의 캡틴이라네― 맨스필드의 자존심, 맨스필드의 기둥, 맨스필드의 벽이라네―!”
빼앗긴 공을 차근차근 몰아가던 크루의 공격을 저지하고 포효를 터뜨리는 젠킨슨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신 차려! 정신! 공만 보지 말라고! 선수들을 따라가! 공만 보다간 주위를 못 보게 된다고!”
줄줄 흐르는 땀방울과 목이 터지라 소리치는 고함.
어떻게든 경기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절박함이 보였다.
오스카는 코웃음을 쳤다.
‘열심히 한다고, 어쩌라는 거지?’
이 바닥에 열심히 안 하는 선수가 있나?
‘이 바닥은 성적이야.’
프로는 오로지 돈과 성적. 그것이다.
축구에 대한 낭만?
저렇게 미친 듯이 외치고 팀을 지켜온 유스팀 출신의 주장이나 보여 주는 낭만이 있다고?
‘그 낭만 지키다가 팀이 무너지고 있었지.’
낭만, 지켜도 된다. 열정, 하려면 해라. 영화 같은 축구. 마음껏 해라.
단.
‘돈값은 하고. 프로라면.’
성적이 좋아야 더 많은 주급을 받을 수 있고, 선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골을 넣어야 한다.’
팀을 위해서가 아니다.
프로 선수로서, 돈 받고 뛰는 선수로서 당연한 사명.
그 절박한 마음을 품는 순간.
“오스카, 스탠리!”
유진의 손길이 필드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