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41)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41화(41/266)
41. Football Machine (4)
“선수는 기계가 아니지.”
크루 감독, 앵거스 배넌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각진 얼굴, 굵은 눈썹, 동점 골을 허용했는데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 로봇과도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 필드를 응시했다.
“기계의 나사와 볼트에는 감정이 없지만, 축구의 선수에게는 감정이 있으니까.”
산드레손과 하워드가 며칠 전 훈련장에서 한차례 크게 충돌했다는 건 팀 바깥의 사람이라면 알 수가 없는 정보다.
“운이 나빴습니다.”
“딱 한 번 협력 수비가 무너질 때, 골이 터지다뇨.”
“그렇게 철저하게 틀어막았는데…….”
코치진은 이번 실점이 불운이라 생각했다. 앵거스 배넌은 침묵을 지켰다.
세상에 완벽한 기계는 없다. 최첨단 기계도 오류가 뜨고, 엔지니어가 달라붙어서 정비해야 한다. 기계의 오류는 막상 발생하기 전까지 발견하기는 어렵다.
기계를 만들고, 직접 다뤄 온 제작자도, 기술자도 말이다.
‘그걸, 외부인이 한눈에 알아봤다는 말인가…….’
엥거스 배넌은 팔짱을 낀 채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저 루키인 줄 알았는데, 루키가 아니라 리그 투를 뒤흔드는 폭풍이었나.’
그는 건너 벤치, 유진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재밌는 친구군.’
경기는 후반전 77분이었다.
“빌어먹을! 이번에도 무승부냐!”
“골 좀 넣어! 우리도 이겨 보자고!”
“어? 그걸 놓쳐? 잘하는 건 수비밖에 없는 것들이, 수비도 못 해? 이 쓰레기들아!”
벤치 뒤에서 터져 나오는 홈팬들의 원망과 욕설.
단순히 극렬 서포터들만의 외침은 아니었다.
1대 1.
지고 있는 경기는 아니지만, 관중석의 분위기는 패배한 것마냥 음울했다.
‘홈에서는 승리를 거둬야 해. 무승부는, 이제 만족할 수 없어. 팬들도 마찬가지겠지.’
지금 경기만 놓고 본다면 분명 크루의 우위였다.
상대의 득점은 이쪽의 단 한 번의 실수를 거침없이 쑤셔 버린 것일 뿐.
전체적 양상은 크루의 우세였다.
경기 흐름이 확 기울진 않았다. 아직 시간은 남았다.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가면 된다. 지레 겁먹고 굳어 있을 수야 없다.
“상대가 라인을 내립니다?”
“뭐, 이대로 무승부를 하겠다는 거야?”
갑작스러운 전개에 벤치진이 부산스러워졌다.
시야에 담길 정도로 확연한 변화.
맨스필드가 라인을 깊숙이 내리고 있었다.
이건, 버티겠다는 뜻.
“하?”
당황해하는 코치진과 달리 엥거스 베넌은 탄식을 터뜨렸다.
“대놓고 끌어들이겠다?”
조금의 포장도 없는 담백한 의도가 여실히 전해졌다.
엥거스 베넌은 유진에게 시선을 줬다. 때마침 유진도 이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
유진이 보란 듯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마치 따라오라는 것처럼.
엥거스 베넌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따라갔다.
“…….”
관중석이었다. 간절히 소원을 빌 듯, 양손을 꼭 모은 채 경기를 바라보는 관중들이 보였다. 또는 소리치고, 욕을 하고, 승리를 간절히 바라며 응원하는 팬.
“빌어먹을! 좀 이겨 보란 말이다!”
“무승부만 해서 뭐하냐고! 그저 그렇게 강등만 피할 거야?”
“팀에 돈이 없어, 선수가 없어, 뭐가 없냐고! 좀 뛰어! 골을 넣어!”
승리에 목마른 관중들이다. 매번 무승부나 패배, 최소득점으로 제대로 된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팬들의 간절함이 필드를 향해 쏟아졌다.
“기계가 아닌 것은 선수뿐만이 아니다……이건가.”
보란 듯이 팬들을 쳐다보던 유진이, 다시금 크루 감독에게 시선을 준 뒤 필드로 고개를 돌렸다. 크루 감독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너무 투명한 의도가 아닌가. 눈빛부터가 말이지.
애석하게도 웃을 수는 없었다.
“재밌는 친구가 아니라, 음흉한 녀석이었군.”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가장 목마른 자는, 물을 한 번도 마시지 못한 자가 아니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의도.
“단 한 모금이라도, 물을 마셔본 자가, 물을 더 갈구하는 법이야.”
알면서도 무시 못 할 명백한 도발.
“이건 선수의 싸움이 아니라…….”
엥거스 베넌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오랜만의 선제득점, 완벽하게 흐름을 가져가던 경기 내용이지 않았나.
승리의 단맛을, 아주 조금이나마 팬들은 느끼고 있었다.
지금 그걸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하물며 여기는 홈구장.’
축구는 스포츠다.
승리를 갈구해야 한다. 무승부는 전략일 뿐, 최종 목표는 아니다.
그래, 지금 유진은 말하고 있다.
‘언제까지 두 줄 수비로 틀어박혀 있을래? 이기고 싶으면 라인 끌어올리고 기어 나와야 하지 않아?’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의도에 놀아 준다면, 상대 역시 준비가 됐다는 터. 함정에 빠지는 꼴이다. 물러설 수도 없다.
“축구는, 기계가 아니지.”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폭풍처럼 들이닥치는 90분의 혈투.
기쁨, 희열, 짜릿함, 광기, 슬픔, 안타까움, 답답함, 그 모든 감정으로 굴러가는 스포츠.
리그 투에서 가장 감정을 소거하고 기계적으로 절제하는 축구를 하는 감독, 앵거스 배넌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라인을 올리지.”
“네?”
“점유율을 가져가면서 득점을 노린다. 승리해야지, 홈에선. 적어도 상대 수비가 약하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니까, 오늘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기회야.”
엥거스 베넌은 유진의 도발에, 응수(應手)를 뒀다.
* * *
―경기 양상이 바뀌었죠. 이거 재밌네요. 크루와 맨스필드가 서로 뒤바뀐 것 같은데요?
―맨스필드는 늘 수비가 약한 팀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는데요, 지금 모습은 좀 다릅니다!
―물론 공격을 다소 희생한 느낌은 없잖아 있지만, 확실하게 상대의 공세를 틀어막는 단단한 조직력을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의 맨스필드에서 보기 드물었던 조직적인 수비입니다!
“효과적이네요. 알롭.”
“아, 허허……네.”
“수비적인 전술의 짜임새가 좋습니다.”
깊숙이 라인을 내리는 전술은 플랜 B.
알롭의 전술이었다.
경기 전, 막스의 공격적인 전술에 반대해 수비에 힘을 실은 전술.
대니 스콧, 오스카, 스탠리 위주로 강한 공세를 펼치는 막스의 형식과는 궤가 전혀 달랐다. 기존 선수들, 특히 존 젠킨슨을 필두로 단단하게 내려앉았다.
공격할 땐 보지 못했던 수비 사이의 조직력이 빛을 발했다.
“원래 제가 지도하던 선수들이니까요. 허허.”
알롭이 슬쩍 막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몇 년이고 알롭과 손을 맞춰온 기존 선수들을 위주로 한 수비 전술은 단단했다.
공격을 최소화하고 수비만 임하는 그 조직력과 짜임새는 썩 훌륭했다.
덕분에 크루는 라인을 서서히 끌어올리면서 몰아쳐야만 했다.
전술 변경 이후 상대의 슈팅수가 이쪽의 세 배에 달할 정도로.
“근데, 이대로라면 승리는…….”
어렵다.
이대로라면 잘해 봤자 무승부다.
도리어 수비만 하다가, 운이 나빠 실점한다면 기껏 띄운 분위기에 찬물을 붓는 격.
패배하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말이다.
“지금은 감독의 싸움입니다. 선수의 싸움이 아니라.”
“……?”
“간격.”
막스와 알롭이 필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슈팅, 슈팅, 슈팅.
크루의 파상공세가 쏟아졌다. 튕겨 나온 공, 떨어지는 공, 전부 크루 선수들의 발끝에 도달했다.
“침착해! 침착하게 전개해!”
“급하게 플레이하지 마! 정신 똑바로 차려!”
“공 지켜!”
크루 공격진도 훌륭한 편은 아니다. 화려한 발재간으로 선수 두셋을 제치고 공간을 창출해 내지 못한다. 그저 공을 잡으면 최대한 많은 슈팅을 가져가는 것.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면, 하나라도 꽂히리라는 마인드로, 공을 잡고 슈팅에 열을 올렸다.
공을 잡으려면 선수는 움직여야 한다.
뛰고 주위를 살피고 달려들어야 한다. 정해진 위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떨어진 공, 세컨볼을 우리가 차지해야 하지 않냐고? 아니, 그럴 필요 없다. 탐욕스럽게 공을 갖고 싶으려면 가지라고 해라.
유도했다. 저들의 욕망을.
“공 잡으라고!”
자리 지키라는 외침보다, 공을 향해 소리치는 빈도가 높아지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두 줄로 기계처럼 움직이던 ‘조직’이 공을 소유하려는 ‘개인’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순간.
“촘촘하고 단단했던 두 줄 수비. 미드필더 라인과 수비 라인의 간격이 벌어지는 순간.”
바로 지금.
나는 단전에서부터 소리를 끌어모아 소리쳤다.
“젠―킨―슨―! 지―그으음!”
* * *
뻐어어엉―!
―젠킨슨이 몸을 던지며 공을 길게 걷어 냅니다!
―젠킨슨, 팀의 주장답게 몸이 부서지라 뛰고, 또 뛰고 있어요! 그야말로 온몸을 내던지는 수비!
왜일까.
“후욱, 훅!”
젠킨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힘껏 공을 후려갈겼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유진의 외침이 고막에 선명하게 꽂히는 순간, 젠킨슨은 있는 힘껏 공을 정면을 향해 뻥 차올렸다. 솔직히 말하면, 앞을 보지도 못했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상대의 공세에 몸을 던지고 구르고 걷어 내기에 급급했다.
조금 전 공을 잡은 순간에도.
‘걷어 내야 한다.’
그 생각뿐이었다.
무작정 걷어 낼 수야 없다. 최대한 상대에게 공이 가지 않도록, 방향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수비수란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유진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거짓말처럼 공을 차올렸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에.
‘어째서?’
왜 유진은 자신의 이름을 외쳤단 말인가.
왜 자신은 듣자마자 공을 보지도 않고 차 버렸단 말인가.
지친 젠킨슨의 시선이 포물선을 그리며 저 멀리 반대편으로 향하는 공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공을 향해―
“오스카?”
순간 튀어나오는 그 이름.
해리 오스카.
그가 뛰고 있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공 잡아! 놓치지 마!”
순간 젠킨슨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은 그저 찼을 뿐인데, 패스가 됐다. 연결이 되고 있다. 공을 향해 쫓아가는 오스카와 급하게 달려드는 수비수까지.
‘……지금 이 패스 길을, 그리고 이 순간을, 정확히 보고, 소리쳤다고?’
그게……된다고?
밖에서, 그 흐름이, 한눈에 읽힌다고?
젠킨슨은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 표정과 눈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연결되는 패스의 끝을 더욱 절실히 보고 싶었기에.
“막아! 막으라고!”
“저 괴물 자식 막아!”
터져 나오는 크루에서의 절박한 목소리.
오스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공을 바라보면서 달리고 또 질주했다.
툭, 툭, 투웅―!
좌우에서 두 명의 수비가 얽혀 들어왔다. 한 명은 어깨를 밀치고 한 명은 손을 뻗어 뒤에서 옷을 잡아당기려고 한다. 하나 오스카는 그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하―아아!”
새하얀 이빨이 검은 피부 아래 거친 입김을 토하며 번쩍였다.
“꺼져라, 머저리들!”
공을 잡고 내달리지 않는다.
“……!”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보고, 번쩍 뛰어오른다.
‘뭐? 점프? 헤딩하겠다고?’
‘골키퍼도 있다고, 이 거리에서 헤더 하겠다고? 여기서 헤더 골을 넣겠다는 거야?’
‘우리 수비가 그렇게 나약해 보이나!’
모욕감과 수치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수비수 두 명 역시 기어코 같이 뛰며 얽혔다. 덜컹, 오스카의 신형이 흔들렸다. 완전히 막지 못해도, 의도에 훼방을 놓은 일 역시 훌륭한 수비. 오스카는 절대로 골문을 향해 헤더슛을 할 수가 없다. 수비수들의 수비가 통했다―라고 수비수들이 생각했었다.
여전히 오스카는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아.”
투웅―!
수비수들은 착각에서 깨어났다. 공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했다.
‘백헤딩!’
골문을 보면서, 뒤로 공을 내어주는 백 헤딩.
공이 떨어지는 위치는 물론, 공을 받아 줄 동료 선수까지. 그 모든 것을 순전히 ‘운’에 맡겨야만 하는 플레이.
‘뒤에서 오는 선수!’
투웅, 툭―.
가볍게 공을 차는 그 트래핑, 볼 터치 소리가 수비수들 사이로 섬뜩하게 들렸다.
“왜, 아무도.”
막는 선수가, 없는 거야?
자고로 고도로 발달한 팀플레이와 준비된 전술은 외부에서 관측하기엔 ‘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오스카가 전력으로 공을 향해 질주하고, 오스카를 향해 수비수들 역시 미친 듯이 뒤따라갔을 때.
미드필더 라인은 맨스필드 페널티 박스에서 부딪치고 공을 따내며 공세를 펼치는 도중이었다.
뒤늦게 공을 따라 몸을 돌려 쫓아왔지만, 수비와 미드필더 라인의 간격은 실로 넓어지고 또 넓어진 상태. 그야말로 공백이었다.
그 사이로, 도도하게.
한 선수가 백헤더로 떨어진 공을 잡았다.
애석하게도, 크루 선수들은 달려들거나 몸을 날리거나,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상대에게 공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뻐어어어엉―!
그 누구도 반응 못 할 반박자 빠른, 벼락같은 슈팅이.
무려 30m가 넘는 그 거리를 뛰어넘어.
철럭―!
“……아.”
화려하게 달려 나가며 포효하는 세레머니 따윈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선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치켜들며.
더없이 오만하게 턱을 치켜드는 선수.
대니 스콧, 역전골.
크루 알렉산드라 1 : 2 맨스필드 타운.
* * *
막스는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
알롭 역시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경악과 충격 모든 것이 범벅 뒤섞인 얼굴을 보는 순간. 막스는 어쩐지 자기 얼굴 역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승점 3점이지.”
유진이 담담히 말했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도, 알롭도.
감독을 따라잡을 수 있는 존재. 언제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파트너. 언젠가 저 위치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그저 한 계단 위의 자리.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래, 오늘 경기를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 이 순간.
감독과 코치.
그 명백한 차이를.
유진은, 감히 넘을 수 없는 격차를 여실히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