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49)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48화(49/266)
48. 자강두천 (3)
“주급 값도 못 하는 새끼들.”
“……!”
피터버러 원정에서 돌아와 해리 오스카는 참았던 말을 터뜨렸다.
선수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고, 아예 갈라졌다는 걸 모를 수가 있냐고.
모른다.
선수들도 드러내지 않으니까. 선수도 바보가 아니다. 어리지 않다. 화가 나도 참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어느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
“툭하면 실점을 헌납하지. 언제까지 그럴 거야?”
해리 오스카가 툭 던진 발언은 좌중을 얼어붙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다.
누군가의 장점은 다른 방향에서 보면 최악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오스카가 그랬다.
그의 솔직함은, 터무니없는 무례함으로 돌아왔다.
“이 팀에 사람 새끼는 딱 셋이야. 나, 대니, 스탠리. 나머진 답이 없어.”
“!”
“이 팀에서 사람다운 선수는 그게 다야. 감독? 그 사람은 규격 외야. 이 돈값 못하는 선수들 데리고 용케 팀을 이끌고 있잖아?”
폭언을 듣고도 묵묵히 있을 이를 찾기는, 순한 토끼 우리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구멍이 뚫렸다고 아무렇게나 나불대면, 그건 입이 아니라 주둥이야. 알아?”
“잘 아네. 내 별명이 그라운드의 짐승인데. 짐승한테 뜯겨 보겠어? 캡틴?”
오스카와 젠킨슨이 부딪쳤다.
으레 땀 흘리고 부딪치는 스포츠 선수끼리 발생하는 가벼운 신경전…… 이라기엔 새로운 핵심 선수 오스카, 기존 팀의 터줏대감 젠킨슨의 충돌은 두고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코치진이 곧장 반응했다.
“음, 저희가 면담해 보겠습니다.”
“주장이랑 핵심 스트라이커의 불화라니. 이거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죠.”
알롭 코치와 알렌스키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여겼다. 반면 나는 단호하게 일축했다.
“아니요. 내버려 두죠.”
“예?”
“감독님, 저 둘이 대립하면……무엇보다 지금 오스카의 언행부터가 확실히.”
“두 선수 나이 많습니다. 어린 친구 아니에요. 코치가 강제로 화해를 주도해 봤자, 앙금만 남습니다. 서로 알아서 잘 풀 겁니다.”
“…….”
알롭과 알렌스키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둘과 달리 쉬이 물러나지 않았다. 나에게 직언을 던지는 데 거리낌이 없는 친구였으니까.
“유진, 오스카의 언행은 선을 넘었어.”
“알아.”
“따끔하게 제동 걸어 줘야 한다고. 감독인 네가.”
“선을 넘은 말이지만, 공감되지 않아?”
“……!”
막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오스카의 편을 드는 거야?”
“난 누구의 편도 아냐, 막스. 내 편은 오로지 이 팀 전부야.”
“그러면 중심을 잡아 줘야지! 선수의 자존심을 후벼 판 건 오스카야. 이거 앙금 오래 남아. 쉽게 웃으면서 풀 수 있는 거 아냐. 도리어 나이가 많아서, 더 복잡하게 꼬일 거라고.”
“이게 단순히 오스카와 젠킨슨의 갈등으로 보여? 그저 오스카가 터무니없는 시비를 건다고 생각하는 거야?”
막스는 당연하다고 소리치려는 듯, 입을 움찔거리다가 두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오스카도 베테랑이야. 존 젠킨슨도 마찬가지고. 둘의 차이점은 하나야. 젠킨슨은 원클럽맨. 오스카는 경력 동안 일곱 번이나 팀을 옮긴 저니맨. 그리고 자존심 강한 두 명.”
막스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동공이 위를 향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 주도권?”
“그래. 알롭이 너에게 주도권을 넘겨줄까 걱정돼서 한바탕 몽니를 부린 것처럼. 선수라고 다를 것 같아?”
“……!”
“기존 터줏대감과 굴러 들어온 돌의 대립은, 단순히 서로 기분 나쁘다고 싸우는 게 아니거든.”
“……그럼 지켜봐야 한다는 거야? 주장하고 핵심 스트라이커가 싸우는데?”
“한번, 흔들어 줘야 하는 시기야.”
이적시장은 끝났다.
선수단은 이제 방출과 새로운 선수 영입에서 멀어졌다.
심지어 팀의 뎁스는 지독히도 얇다.
2군 따위는 운용하지 않는다. 유소년 아카데미도 해체했다. 올라올 찬란한 재능의 유소년도 없다.
이제 선수단에 더 이상 변동은 없다. 적어도 시즌 전반기는 이대로 간다.
“좋게 말하면 선수단이 안정된 거지.”
“뉘앙스가 어째 좋은 의미가 아닌 거 같은데?”
“나쁘게 말하면 위기감이 없이 고여가는 물웅덩이.”
“위기감?”
“언제든 이 팀에서 탈락할 수 있단 위기감 따위.”
얄팍한 스쿼드 뎁스 때문에, 우리 팀은 모든 선수를 최대한 알뜰살뜰하게 써야 한다.
경기 출전은 당연한 일이다. 선수들 본인들이 정확히 알고 느끼리라.
선수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바보도, 멍청이도 아니다. 그들도 알 건 다 알고, 놀라울 정도로 똑똑하기까지 한다. 어느 면에서는 얍삽하기까지 하다.
“시즌은 길어. 흔히 말하길, 장기전(長期戰)이지. 그래, 장기전. 전쟁이라고.”
“…….”
“46번의 전투를 치른 뒤에,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1년간의 긴 전쟁. 이 전쟁에서, 치열한 전투에서 싸워야 하는 병사들이 안주하고, 안정되고, 고여 있으면, 그게 좋은 걸까?”
팀은 끊임없이 흔들려야 한다.
안정기 따위는 이미 지킬 게 많은 팀에게나 허락되는 사치다.
약팀은 불안정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오스카는 팀을 마구 흔들고 질타했다.
결국 축구는 실력으로 증명한다. 프로의 세계가 그렇다. 아무리 험한 말을 지껄여도, 실력 좋은 선수가 말한다면 무게감이 달라진다. 메시지는 강력해진다.
“우리만 축구하나? 대니, 스탠리, 나만 축구해? 수비는 뭐 하는 거야? 또 골 먹혀? 무실점 경기가 있기나 해?”
자신을 향한 적의 어린 눈빛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나와 첫 만남에서도 당당히 주급 세 배를 요구하던 선수다.
보통 배짱이 아니다. 오스카는 할 말을 아낌없이 쏟아 냈다.
문제는, 그 말에 반응하는 선수들도 차마 논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단 점이다.
그리고 수비진의 핵심은, 젠킨슨이었다.
“…….”
“캡틴. 어설프게 영입 선수들 기강 잡으려고 하지 말고, 수비진 정돈이나 똑바로 하지 그래?”
“수비는 수비수만 하는 게 아니지. 수비 가담은 갖다 팔아먹었어?”
“골을 넣어 주고 있는데, 수비까지 하라는 거야? 그게 도움이 될까?”
“……!”
“내가 최전방에서 싸우고 골을 넣어 주는 게 팀이 이기는 길이야. 캡틴도 알잖아? 그러니까 어쭙잖게 그 엿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처음 온 순간부터, 그 눈빛 더럽게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오스카가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젠킨슨의 무심한 얼굴이 꿈틀거렸다.
오스카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아카데미가 해체된 건, 내가 고액 주급을 불러서가 아니야. 댁 같은 선수나 배출하는 시스템이니, 줄일 수밖에 없는 거였지.”
* * *
유스 아카데미는 축소 수순을 밟았다.
기존 선수들은 제임스를 제외하고 전부 집으로 돌려보냈다.
유스 리그도 불참 통보를 협회로 보냈다.
맨스필드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유스 출신으로 평생 팀에 헌신해 온 젠킨슨의 심장을 무너뜨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처음부터 좋아할 수가 없는 거였지.”
“오스카를 위해 유스 아카데미를 해체했다라.”
“과잉 해석이지 않아?”
막스의 말에 난 쓴웃음을 삼켰다.
일련의 흐름과 결과를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재정 확보를 위해서, 아카데미 해체에 대한 결심을 굳힌 건, 오스카 영입 때문이긴 했다.
‘언제까지고 좋은 선수를 헐값만 주고 부려 먹을 순 없어.’
스탠리나 대니 스콧은 선수들이 놓인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일 뿐.
오스카의 경우가 도리어 정상적이다. 좋은 선수를 확보하려면 재정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도 그 순간에 절실히 깨달았고 행동으로 옮겼다.
젠킨슨의 논리가 과대 해석이 아닌 셈이다.
“사실 그 이유뿐만은 아니겠지.”
“새로운 최고 주급자니까.”
“팀 내 주급 체계를 박살 냈으니까, 좀 유치해 보여도, 당연한 거 아니겠어?”
아무리 실력으로 보상받는 프로라지만, 사람 심리가 그렇다.
나보다 잘 벌면 아니꼽게 보인다. 충분한 인정을 받는 선수라면 모를까.
적어도 오스카는 이제 이적해 온, 뉴페이스였다. 지금이야 대단한 활약이지만 아직 선수들의 인정을 받기도 전에, 최고 주급자로 떠올랐다.
“거기에 팀 내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것도 있겠지.”
고액 주급자에 내포된 다른 뜻이 무엇일까.
바로 팀 내 핵심 선수라는 증명이다.
젠킨슨은 팀의 오래된 주장이다. 평생 팀을 위해 노력해 온 그의 헌신과 희생은 누구도 부정치 않는다. 젠킨슨 본인 역시 잘 알고 있다.
몇 번의 다른 팀들의 러브콜에도, 물이 차올라 침몰하는 맨스필드라는 배에서, 꿋꿋이 물을 퍼내던 선수가 바로 젠킨슨이었다.
미스터 맨스필드.
그는 그저 서 있기만 해도 팀을 장악했다.
젠킨슨에게 아카데미 해체를 불러온 오스카는 거슬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오스카도 평범한 친군 아니지.”
여러 번 팀을 옮겨 본 오스카는 이것이 선수단의 헤게모니(Hegemony) 파워 게임임을 파악했다.
그가 훈련장에서 다짜고짜 선수들에게 쏟아 냈던 비난은, 성격 파탄자여서가 아니다.
패권 다툼에 순순히 지지 않고 임하겠다는, 명백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지금까지 압도적이고 화려한 실력을 보여 주고, 훈련장에서 선언한 셈이다.
너희들 다, 병신들이라고.
젠킨슨을 중심으로 안정기를 갖춰가던 팀에 일대 격동을 불러왔다.
“더 지켜볼 거야?”
그리고 나는, 이 대립을 이용했다.
* * *
젠킨슨과 오스카의 충돌은 선수단의 대립을 불러왔다.
“오스카가 말이 거칠긴 했지만,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그러니까 비켜.”
오스카와 포레스트에서 같이 뛰었던 스탠리는 당연히 오스카의 편이었다.
그보다 먼저 맨스필드에 녹아들던 대니 스콧은 중립이긴 했다.
정확히는 기울어진 중립.
“말이 험하고 직설적인 건 인정해. 그런데, 그렇게까지 억울해할 정돈 아니지 않아?”
“……!”
“너희 중에 내 패스를 흡족하게 받는 놈이라곤 하나도 없었어.”
대니 스콧이 턱을 치켜올렸다.
냉정한 눈빛은 내려다보는 듯 오연하기까지 했다.
“누구의 편을 들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그렇게 편을 가를 거면 말하지. 적어도 난, 실력 없는 놈의 편을 들 만큼 멍청하지 않아.”
“대니! 지금 오스카를 두둔하는 거야?”
“두둔?”
대니 스콧의 표정이 무심해졌다.
“어린애들처럼 네 편 내 편 가려서 싸울 시간에, 내 패스받는 연습이나 하는 건 어때?”
그 역시도 이번 시즌의 영입생.
왜일까.
그 대단하고도 논리적이면서, 똑똑한 이성을 갖춘 어른들도.
희한할 정도로 유치하다 싶은 편 가르기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모이는 집단이라면, 그것도 좀 더 이성이 아닌 본성을 끌어내는 치열한 스포츠라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젠킨슨을 필두로 한 기존 선수단.
오스카를 중심으로 한 영입생.
숫자 차이는 극명하다.
하지만 팽팽했다.
오스카와 대니 스콧, 스탠리가 경기장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숫자 차이를 커버할 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팽팽한 대립은, 곧 결과가 나오지 않는 지루한 싸움이라는 의미기도 했다.
누군가 딱 잘라, 끊어 내지 않으면 계속 지루하게 이어질 팽팽한 대립.
누군가는 단 한 명이었다.
“감독님. 면담 요청합니다.”
“감독님, 선수단 내부 문제 때문인데, 얘기 좀 하고 싶은데요?”
젠킨슨과 오스카의 연이은 면담 신청.
그랬다.
나만이 저 대립을 끊어 낼 수 있음을,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파악했다.
“모두 지켜보세요. 괜히 화해를 주선하거나, 갈등을 푼다고 이상한 짓 하지 마세요.”
일전에 내가 코치진에게 엄중히 전달했던 의견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기민하다. 코치진이 간섭지 않는다는 점을 눈치챘다. 한마디로 이 대립을 끝내고 결정지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사실을 알알았다.
이는 또 다른 의미로.
“잠깐 이거…….”
막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선수들이……기존에 늘 상담하던 코치를 배제하고, 바로 다이렉트로 감독에게……?”
경악에 찬 시선이 닿았다.
“누가 진짜 힘을 가졌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거지.”
바로 파벌의 해체였다.
이전보단 덜해졌지만, 분명 존재했던 알롭과 알렌스키를 중심으로 나뉘었던 선수들의 응집.
최근 생긴 알롭과 막스 사이로 나뉘었던 기존 선수단과 영입생의 파벌까지.
“설마, 이거 이용하시는 거, 아니시죠? 이걸 꾸몄다거나.”
“무슨 말씀이시죠? 알롭 코치.”
“……아닙니다. 하지만 갈등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거, 바로잡아야 합니다. 감독님.”
파벌의 해체.
나아가 파벌의 중심을 이뤘던 코치진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와 동시에.
“내버려 두세요. 선수들의 문제는 선수들이 푸는 겁니다.”
“이러다가 주먹질하고 싸움질까지 할지도 모릅니다!”
“코치님. 제가 지시했으면.”
길고 지루했던 코치진 간의 파워 게임이.
“그냥, 하세요.”
나의 승리로 종결됐음을 뜻했다.
* * *
알롭의 의심은 앞뒤 맥락이 잘못됐다.
이 갈등을 조성하고 꾸미진 않았다.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대립일 뿐.
나는 거기서 이득을 얻기 위해 좀 더 기다리고 움직였을 따름이다.
무언가 얻는 게 있다면, 또 잃는 것이 있는 법.
코치진의 영향력을 일소하고, 선수단에 오롯이 내 의지를 관철하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됐다면.
그에 상응하는 걸 잃을 수도 있는 법이다.
심판의 휘슬과 고함, 온갖 욕설과 함께 같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멱살을 잡는 모습은, 솔직히 상응하는 대가라고 해도 퍽 씁쓸한 일이었다.
―맨스필드 선수단! 필드에서 무슨 소통 오류가 있었던 걸까요? 같은 팀끼리 뒤엉키는 상황이라니요!
“……하, 이 자식들. 설마 경기 중에 싸울 줄이야.”
리그 10라운드.
끝내 필드에서 엉키는 선수단에 막스가 탄식을 터뜨렸다.
“어떻게, 경기장에서, 경기중에 싸울 수가 있어…… 하아.”
막스가 머리를 싸맸다. 충격과 경악이 번진 홈구장.
끊임없이 이어지던 홈 관중들의 목소리마저 잠잠해지는 가운데. 연이은 실점으로 경기는 두 골 차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래, 최악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커룸으로 가자고.”
아직, 45분이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