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52)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51화(52/266)
51. 감독은 감독이기에 죄인이다 (2)
변칙.
예측하기 어려운 전술 변화가 꼭 승리를 장담하진 않는다.
상대 팀이 예측하지 못했다는 건, 평소 경기에서 사용한 적이 없다는 뜻. 한마디로 이는 상대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변화라는 의미다.
발이 맞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해 도리어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는 법이다.
필드 위 선수들이나, 양 팀 벤치나, 그리고 홈 관중과 원정 팬까지.
“이거, 영 아닌데?”
적어도 후반전 시작하고, 15분 동안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저 대단한 맨스필드가 오늘은 안 되는 날이라고.
전반전에 2실점이나 내주고, 선수들은 싸우고, 초짜 감독은 끔찍한 상황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이상한 포지션 변경이라는 카드만 쥐고 있는 거라고.
그 같은 생각은 오스카의 추격 골이 터지는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Yeeaaaaaaaaaaaa―!”
“오―스―카―!”
“goal, goal. goaaaaaaaal!”
골키퍼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완벽한 헤더 타점으로 내리찍어 버리는 오스카의 헤더를 막을 순 없었다.
한 체격 하는 수비수가 경합을 벌이며 같이 뛰어도 이겨 내는 해리 오스카다. 하물며 지금처럼 프리하다면, 모두가 놓아준다면, 오스카는 그 무엇보다도 정확한 위치에 공을 갖다 넣을 수 있는 스트라이커였다.
“오스카! 오스카! 오스카!”
“스태그으으으으!”
맨스필드의 애칭, 숫사슴(Stags)을 연호하는 함성 너머로 착지한 오스카가 달려갔다.
또 한 번 환상적인 어시스트를 성공시킨 스탠리가 웃으면서 마주 뛰었다. 서로 포옹하며 환호하려고 할 때, 오스카가 방향을 틀어 조금 더 달려갔다.
“어이, 꼬맹이!”
“……!”
“선배가 추격 골 넣었는데 축하 안 해 주냐? 어?”
수비수 제임스가 바짝 굳었다.
어린 나이와 173cm라는 작은 키의 선수에게 190cm의 키, 90kg의 강인한 체격을 자랑하는 해리 오스카는 쳐다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검은 얼굴에서 새하얀 이빨만 씩 드러나 빛내고 있으면 더욱이.
거대한 그림자가 얼굴을 가리자 바짝 긴장했다. 오스카의 말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쥐어짰다.
“고, 골 축하해요!”
“야, 꼬마. 누가 잡아먹어? 네 덕분이다.”
“…… 네?”
“네가 기점이라고 인마. 어? 네가 선수들 끌고 내려와서 스탠리가 공 잡고 달렸던 거잖아. 그거 아니었으면 안 나왔어.”
“아…….”
“고맙다. 좋았어. 플레이.”
어깨를 강하게 두들기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모습에 제임스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실점할 때마다,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던 모습이 떠올라 어안이 벙벙했다. 오스카는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두들겼다.
“못한 건 못했다고 소리치고, 잘한 건 잘했다고 말하는 게 축구다. 알겠어?”
“……네.”
제임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제임스를 추켜세워 주던 오스카의 시선이 어깨 너머를 향했다. 젠킨슨이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한번 마주친 오스카가 어깨를 으쓱였다.
* * *
“축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80분 동안 즐거웠지? 즐거워야 했을걸! 이제부터 재미없을 거야! 뒤지게 처맞을 거니까!”
“필드 밀에 온 이상 실컷 얻어맞고 쫓겨나야지!”
소수의 크롤리 원정 팬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쟤들 전광판 안 보이나?”
“시간이랑 스코어 숫자 안 보여?”
“안경부터 맞추고 경기장 와라!”
추격 골을 내어주긴 했지만, 경기 종료까지 10분.
추가시간을 감안해도 최대 15분 정도나 될까. 스코어는 1점 차이로 명백히 크롤리가 앞섰다. 오늘 경기를 전체적으로 지배한 팀은 크롤리였다. 추격 골을 넣었다고 마치 다 이긴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구는 맨스필드 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딱 1분 동안만 말이다.
추격 골이 터진 순간부터, 맨스필드는 자신들이 왜 홈에서 전승을 거두고 있는지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플레이했다.
뻐엉!
―종횡무진 젠킨슨! 공을 걷어냅니다! 공이 떨어지는 위치에 대니 스콧! 선수 한 명 제치고, 파고듭니다!
크롤리 타운은 다 이겨왔던 경기를 동점을 내어 줄 수 없단 생각에 라인을 내려 앉혔다. 승점 1점마저도 소중한 강등권 팀에게 값진 원정 승리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으니까.
애석하게도 그것이 그들이 강등권인 이유였다. 상황판단 미스, 분위기 파악 미숙, 그리고 상대 팀에 대한 분석과 파악의 미비―라는 총체적인 문제점.
맨스필드의 공격진을 상대로 내려앉는다는 행위는.
―아! 대니 스콧을 막아서는 수비수! 오스카가 길을 열어줍니다! 막아서는 수비수를 날려 버리고 대니 스콧의 침투 경로를 열어주네요!
단단히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었으니.
어지간해서는 밑으로 내려오지 않던 오스카가 내려와 상대 선수를 몸싸움으로 날려 버렸다. 오스카는 공간으로 유령처럼 스며들었다.
오스카의 몸싸움에 날아간 수비수들이 심판을 바라보며 억울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거대한 오스카의 체격에 힘없이 밀린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 시점, 비명을 내지르는 이는 원정 팬이 아니라 벤치의 감독이었다.
“이 멍청이들아! 심판 보지 말고 공을 봐! 선수를 보라고! 휘슬 불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말고 집중하라고!”
심판을 바라보며 항의하는 그 짧은 사이. 철저하게 경기에 몰두한 맨스필드의 집중력이 빛을 발했다.
―대니 스콧은 별명 그대로 백조와도 같습니다! 우아한 몸놀림으로, 단단한 크롤리의 수비진 사이로 춤을 추듯 파고드네요!
대니 스콧의 유려한 움직임이 선수 두 명을 더 제치고 파고들었다.
“우리가 아주 좆으로 보이나 봐!”
크롤리도 간절했다. 스코어를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이 대니 스콧을 막았다. 잔뜩 내려앉은 크롤리의 수비벽은 두꺼웠다.
대니 스콧의 뛰어난 발재간으로도 더 이상의 돌파는 무리. 나아가던 움직임을 멈추고, 발바닥으로 공을 살며시 끌면서 빠르게 주위를 파악한다.
선택지는 둘이다.
‘슈팅이냐, 패스냐.’
크롤리의 핵심 수비수인 루카 데비와 조 알렌은 이를 악물며 대니 스콧을 막아섰다.
둘 다 영리한 수비는 못 하고, 축구 지능은 허언으로도 높다고 말할 수 없지만, 투지 하나만큼은 대단한 선수들이었다. 거듭된 패배에서 오늘이야말로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막아야 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패스일까?’
‘아냐, 패스는 아냐. 오스카는 저 뒤에 있어. 제임스는 터치 라인에 있어.’
‘그럼 슈팅이다. 슈팅 아니면 돌파!’
‘내가 슈팅 각 좁힐게. 너는 돌파를 막아.’
실제로 대화가 오간 건 아니다. 촌각을 다투고, 시야가 좁아지는 필드에서 대화는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오랜 호흡을 맞춘 두 파트너는 행동과 동작으로 그 같은 의견을 교환했다.
그때였다.
“비―켜!”
귓가를 찌르는 외침.
브랜들리 스탠리가 소리치면서 파고들고 있었다.
한창 내려앉은 크롤리라서 윙백인 그가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올라오는 건 낯선 게 아니었다. 하지만 두 수비수는 혼란에 빠졌다.
스탠리는 마치 대니 스콧의 패스를 받기 위해 공간을 파고드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비켜!”
사실 스탠리를 마킹하던 선수는 한 명이었다. 하지만 스탠리가 그리 외치며 달려드니, 다른 선수들도 거짓말처럼 스탠리에게 달라붙었다. 소위 어그로를 끌었다.
“비키라니까!”
그렇게 말하면 누가 비킬까. 선수들은 스탠리와 대니 스콧의 움직임이 약속된 플레이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패스였다.
조 앨런과 루카 데비의 눈이 번뜩였다. 대니 스콧이 왼발로 공을 긁으며 뒤로 살짝 빼는 듯한 움직임.
‘스루 패스다!’
‘공간 사이로 패스를 내지르려는 거야!’
두 수비수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비키라고!”
발작하듯 외치는 스탠리를 향한 길목을 막고, 패스를 끊기 위해서.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두 수비수는, 아무리 올려 쳐도 축구 지능이 좋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그저 투지 넘치는 파이터형 센터백.
투웅, 툭―!
수비수들의 예상대로 돌파도, 슈팅도 아닌 패스였다. 공은 대니 스콧의 발을 떠났다.
하긴, 이는 두 센터백이 축구 지능이 낮은 걸 탓하기엔 억울한 측면이 있다.
누가 알았을까.
“……!”
패스가, 백패스인 줄은.
그 백패스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선수의 발끝에 향하고 있음은.
“비키라고, 쫌!”
공도 없이 답답한 목소리로 외치는 스탠리도. 측면에서 알짱거리는 제임스도.
후방으로 빠졌지만 모든 선수의 경계를 사고 있는 해리 오스카도 아닌.
뻐엉!
―으아아아! 후방에서 달려온 수비수, 존 젠킨슨이 강한 슈팅으로 골망을 가릅니다! 이번 시즌 젠킨슨의 첫 번째 골! 맨스필드, 맨스필드가 5분 만에 2대2 동점을 만들어냅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니 스콧과 젠킨슨의 콤비플레이! 아니, 이거는 완전한 팀플레이예요! 오스카, 스탠리, 제임스, 대니 스콧, 그리고 젠킨슨까지! 모두가 크롤리를 속이고 기만하는 환상적인 팀플레이!
-2대 2 동점을 만드는 사나이, 미스터 맨스필드, 캡틴 존 젠킨슨입니다!
최후방 수비수, 존 젠킨슨이 달려와서 슈팅을 때릴 줄은.
누가 알았을까.
* * *
수비수인 젠킨슨은 득점과 인연이 없었다.
세트피스 상황이 아니면 어지간해선 골을 넣긴 힘들었다. 수비수가 전진하는 플레이는 수년간 맨스필드에서 나오기 힘들었으니까.
―스탠리나, 오스카에게 수비 가담을 하라고 자주 질타하시죠? 그럼 먼저 보여줘요.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까. 고작 스탠리와 제임스의 포지션 변경이라는 지침 하나로, 이런 상황까지 생각했을까.
―기회가 온다면요, 선수로서의 감이 속삭인다면요, 한번, 시원하게 공격가담을 해버려요. 공격수들이 아무말도 못할 정도로, 환상적인 득점으로 말이죠.
최후방 수비수인 그가 아무리 공격 상황이라도 어태킹 서드까지 뛰어드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짧은 시간이었다. 대니 스콧이 공을 잡고 들어가는 순간, 젠킨슨은 전력을 다해 뛰었다. 바로 이 순간이라고. 감독이 말했던 ‘기회’ 그리고 선수로서의 ‘감’.
골을 넣었다. 황금 같은 동점골.
패배라는 수렁에서 건져 올리는, 홈구장 불패의 신화를 지켜낸 최후방 수비수의 완벽한 디펜스.
“허억,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목 안이 불을 삼킨 듯 뜨거웠다. 단단했던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비틀거렸다, 그러고 있으니 선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었다.
“슈팅, 썩 괜찮은데?”
젠킨슨은 실소가 튀어나왔다.
“내가 스트라이커가 아닌 걸 감사하게 여겨. 그랬다면 네 자리는 없었을 테니까.”
“하긴. 수비할 때마다 실점하는 거 보니까, 그냥 스트라이커로 포지션 변경하는 게 장래가 밝아 보여.”
“내 나이가 서른일곱이야, 애송이.”
해리 오스카는 큭큭 웃어 대며 젠킨슨의 어깨를 툭 치곤 돌아갔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주장 머리와 등을 마구 두들겨 보겠느냐고 모여들었던 선수들이 휘슬 소리와 함께 하나둘, 제 자리로 떠나가자 젠킨슨은 그제야 필드의 정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절망과 분노, 허망함 같은 온갖 감정이 뒤섞인 상대 팀 선수.
온갖 욕설과 야유를 쏟아내는 원정 팬의 외침.
그리고 자신의 이름과 맨스필드를 끊임없이 연호하며 방방 뛰고 있는 홈 관중.
하나씩 시야에 담던 젠킨슨의 고개가 우뚝 멈췄다. 벤치였다.
―주장의 업무에 책임을 다하는 건지, 아니면 주장으로서 팀을 위해 희생하는 자기 모습에 심취한 건지 말이에요.
탁, 탁.
젠킨슨은 왼팔의 주장 완장을 두들겼다. 보란 듯이, 유진과 눈을 마주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