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54)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53화(54/266)
53. 팀의 단결은 어디에서 오는가 (1)
“괜찮겠어요?”
훈련장에 출근하는 발걸음을 멈춰 세운 건, 부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현관을 나서려던 젠킨슨이 몸을 돌렸다.
“뭐가?”
“그…… 경기장에서.”
젠킨슨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았다. 자신이 이런 반려자를 두게 될 줄은, 과거였으면 생각도 못 했으리라. 순한 성격의 부인의 큰 눈망울에는 오로지 걱정과 염려밖에 보이지 않았다.
“난 주장이야. 주장이 팀 동료들에게 한마디 하는 것쯤이야.”
“…….”
부인은 그래도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젠킨슨은 그것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았다.
젠킨슨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옛날과는 달라. 자기. 말했잖아. 당신하고 결혼하고 나서, 그리고 우리 귀엽고, 신이 내려 주신 선물인 아들이 생기고 나서, 난 과거와는 완전히 이별했다고.”
그 말에 그제야 부인은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걱정 마. 기자들이 달라붙는 것쯤이야 오랜만이지만 익숙한 일이야. 예전처럼 싸우지도 않을 거야. 잘 넘길 거라고.”
“알았어요. 음, 그, 선수하고는 화해한 거예요?”
“화해…….”
젠킨슨은 해리 오스카를 떠올렸다.
화해라…….
솔직히 말해 젠킨슨은 화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도, 오스카도 나이가 많다. 젠킨슨은 언제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인 37살. 오스카도 얼마 전에 34살이 됐다. 한참 끓어오르던 10대라면, 주먹질하고 화해하고 친해지는 것도 흔한 일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려웠다.
젠킨슨도, 오스카도 그 경기 후반전에서 서로 화해하지 않았다.
감독인 유진의 일갈에도 서로 악수하거나 어깨동무 따위는 하지 않았다.
화해란 본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고작 악수 한 번, 어깨동무 한 번에 이뤄질까.
화해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은 합의를 봤다.
‘암묵적 합의인 셈이지,’
서로 베테랑이고 프로 선수임을 알기에 나올 수 있는 암묵적 합의.
둘의 사이가 어떻든, 최악이든, 경기만큼은 이겨 내자는 그 마음이 서로 통했다.
아마 앞으로 모든 경기에서 그럴 것이다.
경기 바깥에서는 서로 살갑게 대하진 않고, 도리어 각을 세우겠지만, 필드에서만큼은 서로 부딪치지 않기로 합의를 본 셈.
젠킨슨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화해, 어, 비슷하게 했지.”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젠킨슨을 똑바로 바라봤다. 순한 눈망울이지만, 젠킨슨은 늘 생각했다.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다고.
“당신에게 습관이 있어요.”
“습관?”
“내 눈을 똑바로 못 볼 때는, 마음속에 불편함이 남아서 그렇더라고요.”
“…….”
“부디 편한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젠킨슨은 쓰게 웃으며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곡을 찔렸기에.
하나 어쩌겠는가.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골이 녹아내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냐.’
아이의 싸움과 어른의 싸움이 다른 점이다.
쉽게 화해할 수 없다는 것.
젠킨슨은 그리 생각하며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차를 몰고 클럽하우스에 가까워지면서 젠킨슨은 슬며시 긴장감이 들었다.
‘기자들을 그냥 무시할까? 괜히 이것저것 질문에 대답하다가 도리어 열이 뻗칠 수도 있겠는데.’
그는 경기장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오리라 예상했다. 아내가 걱정했던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옛날이었으면 기자들하고도 대거리를 했을 텐데.’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을 한편으로 애써 지우며, 젠킨슨은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문 앞에는 평소에 보기 힘든 기자들이 꽤나 몰려와 있었다.
마치 정문으로 통과시켜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진을 친 형세.
기자들은 젠킨슨의 차를 발견하고 슬그머니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쯧.”
젠킨슨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를 대고, 내리려는 찰나.
촤르륵,
굳게 닫혔던 철문이 열렸다. 몰려오던 기자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들은 달려오던 방향을 급격히 틀었다. 문이 열리고 유진이 나왔으니까.
“땡볕에 고생이십니다. 안으로 드시죠. 보아하니 그냥 돌아가실 것 같지 않고,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제가 인터뷰에 응해드리죠.”
피하지 않고 도리어 문을 열어주고 인터뷰에 응해 주겠다니.
기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 차에서 내리려던 젠킨슨은 유진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게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했다. 젠킨슨은 정차하려던 차를 그대로 몰고, 안으로 들어갔다.
“…….”
백미러로 보이는 유진과 그를 향해 몰려드는 기자를 보면서, 젠킨슨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 * *
“이봐, 캡틴.”
훈련 중 잠깐 쉬고 있던 젠킨슨은 햇빛을 다 가려 버리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묵직한 목소리. 땀방울이 얼굴에 가득 맺힌 오스카였다. 훈련장에서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신경도 쓰지 않던 둘 사이를 생각하면, 먼저 말을 거는 오스카의 모습은 생소했다. 젠킨슨의 얼굴에 자연스레 경계심이 떠올랐다.
“워, 노려보지 말라고. 경기장에서 못다 한 주먹질 하자는 건 아니니까. 아무리 그래도 주장을 때려눕히면 나도 좀 눈치가 있다고.”
“…… 실없는 소리 말고, 왜?”
“보아하니 나랑 비슷한 생각 하고 있는 것 같아서?”
“…….”
젠킨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훈련장을 향했다. 훈련을 지도하고 있는 건 알롭과 막시밀리안, 그리고 알렌스키 코치였다.
“감독 찾고 있는 거지?”
“…… 아니.”
“아니긴 뭘. 기자들하고 인터뷰 중인 거, 신경 쓰이잖아?”
젠킨슨이 다시 오스카를 바라봤다. 살짝 신경질이 났다. 날씨도 더웠고, 자신의 속내를 다 안다는 듯이 넘겨짚는 오스카의 어투가 짜증스러웠다.
하나 다시 바라본 오스카의 얼굴에 젠킨슨은 쏟아내려던 짜증을 참았다. 오스카의 표정 역시 무언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
“내가 여기저기 팀 옮겨 다녀 본 건 알 거야.”
“저니맨인 건 다 알지. 이 팀도 내년에 떠날 거 아냐?”
“딴 데서 돈을 더 준다면 갈 수도 있겠지.”
“충성심이라곤 조금도 없군.”
“충성심?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난 주장이랑 안 맞다니까. 충성심이니, 원클럽맨이니, 그런 낭만 찾다가 트로피도, 돈도 없으면 무슨 소용이야. 아무튼 난 여러 팀을 전전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
“어지간한 유형의 감독들은 다 겪어 봤단 얘기야.”
젠킨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스카는 씩 웃었다. 비켜, 꺼져, 관심 없어, 같은 차가운 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음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됐단 뜻이었으니까.
몇 번 서로 부딪치고 나니, 오스카는 은근히 젠킨슨을 잘 알 것 같았다.
“그런 유형의 감독이 있어.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는 감독 말이야.”
“…….”
“솔직히 말하면, 좋은 감독인데…… 더럽게 불편하기도 해. 안 그래?”
불편하다.
젠킨슨은 그 단어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지금 우리 감독님처럼 말야. 주장도 느껴지잖아. 라디오니, 기사니, 다 감독 얘기야.”
“감독 책임이다?”
“그래. 정작 싸운 건 우리 둘인데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일대 사건이라 부를 법한 일이었다.
훈련장에서 선수들이 싸웠다니, 마찰을 일으켰다니 하는 건 종종 기사로도 나오는 일이 있다. 하지만 경기 도중에 싸웠다는 일은 정말로 벌어지기 힘든 희박한 일이다. 젠킨슨은 각오했다.
저를 향한 손가락질과 프로 의식이 결여됐다느니, 하는 많은 비난을.
귀찮게 전화하고 달라붙을 기자들을.
“없었잖아? 나도 그래. 솔직히, 선수 이미지에도 최악이잖아. 경기 도중에 동료랑 싸운다, 이거 말이야. 어느 팀에서 그 선수를 사고 싶어 하겠어?”
선수에게 심각한 이미지 저하를 가져올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기사가 모두 감독 책임을 탓하고 있어.”
“지금 그게…….”
오스카는 어깨를 으쓱였다.
“감독이 일부러 그러고 있는 거야.”
“…….”
젠킨슨은 아침 출근길이 떠올랐다.
기자가 무슨 짓을 할지 알 텐데, 굳이 문을 열고 인터뷰에 응해주던 유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알잖아. 지금까지 감독 인터뷰한 것들.”
“…… 나쁘지 않았지.”
“나쁘지 않았다고? 하, 이 친구야. 그게 나쁘지 않았을 정도야? 우리 경기 끝나고 하는 인터뷰들 보면, 기가 막혀. 물 흐르듯이 한다니까?”
본래 유진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정석이었다.
언론에서 좋아할 법한 얘기를 해 주면서도, 팀과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깔끔했다. 기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인터뷰 스킬이 뛰어났다.
“그런 인터뷰를 해 왔던 사람이, 지금 이 기사들을 모를 것 같아?”
“…….”
“교묘한 사람이야. 일부러 기자들의 모든 시선을 자기한테 쏠리게끔 인터뷰하고 있어. 우리 둘 언급은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탓인 것처럼.”
젠킨슨은 입을 다물었다. 오스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거 참, 사람 마음 불편하게 말이야.”
오스카의 말에 젠킨슨은 백번이고 공감이 갔다.
불편했다. 마음이.
솔직히 말해, 감독은 잘해 왔다. 정말 잘했다.
‘리그 성적뿐만 아니라, 팀 재정까지.’
젠킨슨이 어찌 모를까. 축구공 같은 용품부터 새 걸로 바뀌었고, 훈련장의 설비와 시설들도 깔끔하게 탈바꿈되고 있음을.
일전의 맨스필드였으면, 파산 위기를 간신히 벗어난 가난뱅이 구단인 맨스필드라면 꿈도 못 꿨을.
그는 흘깃 오스카를 바라봤다.
훈련장에서 공을 컨트롤하는 대니 스콧과 킥 연습하는 스탠리를 시야에 담았다.
‘저 선수들도…….’
모두 지금의 감독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유진이기에 데리고 올 수 있었던 자원이다. 본래의 맨스필드라면, 저들이 쳐다도 보지 않았으리라.
‘비록 아카데미는…….’
역린처럼 그의 가슴을 푹, 쑤시고 있는 아카데미지만.
젠킨슨은 속 좁고 편협한 인사는 아니다. 그는 이 바뀌고 있는 팀을 가장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노장이었다. 유진은, 정말로.
‘잘하고 있었다.’
지금 범람하는 기사의 비난과 힐난, 책임은 잘못됐다.
엄연히 잘못됐다.
그 사실을 느끼는 순간, 오스카와 젠킨슨은 눈이 마주쳤다.
오스카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사과하지.”
“……!”
“필드에서 내가 너무 거칠었어. 솔직히 말하면, 감정에 휩쓸렸다고. 주장답지 못하게.”
“…….”
“화해하고 싶어. 뭐, 저번 경기 후반처럼, 적당히 합의하고 승리를 위해서 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티가 나겠지.”
오스카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젠킨슨이 잠시 멈칫했다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베테랑이고, 프로 선수였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인지 어느 정도 짐작되는 게 있었다.
젠킨슨은 제 생각을 읽은 듯한 오스카의 눈을 보며 의외의 감정을 느꼈다.
“한두 경기는 티가 안 나도,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티가 날 거야. 아 저 친구들, 서로 패스도 안 하고, 협력도 안 하고…… 아직도 화해 안 했다고.”
“더 그러겠지. 한번 싸웠으니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플레이를 분석할 거야. 쟤들 아직도 화해 안 했냐고. 대체 감독은 선수단 관리 어떻게 하냐고.”
그럼 티가 날 것이고.
한번 생긴 불화설은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이며.
이는…….
“감독은 또 자기 책임으로 돌리고, 우릴 보호하려고 할 거야.”
“…….”
젠킨슨은 마음 한편이 욱신거렸다.
불편함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아내가 말했던 그 불편함.
“그러니, 우리, 서로 좀 마음에 안 드는 건 알지만.”
“한 번쯤 친해지려고 노력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오스카가 큼직한 손을 내밀었다. 앉아 있던 젠킨슨이 그 손을 바라보다 덥석 잡고 일어났다.
“맨스필드에 온 걸, 좀 늦었지만 환영해.”
“…… 그래, 캡틴.”
* * *
“예, 서로 화해했다고 보고까지 하러 올 필요는 없었습니다만…….”
나는 어색하게 앉아 있는 두 명을 바라봤다.
서로 어느 팀에서나 리더가 될 자질을 갖춘 선수들이다.
실제로 리더십도 뛰어나고.
그래서인지, 어느 한 명이 먼저 굽히지 않는 한 서로 끝끝내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관계였다.
알롭 코치와 막스가 불과 물처럼 어울릴 수 없었다면.
이 둘은 불 대 불이었다.
어우르기보단 서로 더 큰불을 일으켜 집어삼키려고 하는.
“뭐 화해했다니 다행입니다. 좋은 일이네요. 다만 축구 선수라면, 달려와서 화해했다고 선생님에게 말하는 학생처럼 굴 게 아니라.”
“…….”
그 두 불을 어찌 다뤄야 할지는, 간단했다.
“경기장에서 보여 주시죠. 프로답게요.”
둘이 힘을 합치면, 더 무서운 불길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면 되니까.
그래.
이것이 내가 두 선수의 싸움을 화해시키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