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55)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54화(55/266)
54. 팀의 단결은 어디에서 오는가 (2)
원래 축구는 승리와 패배, 무승부만 있지 않다. 수많은 가십, 선수들의 사생활, 온갖 지저분하고 자극적인 이야기. 때론 강력한 이슈가 경기 결과보다 주목받을 때가 있다.
[경기 도중, 동료끼리 멱살 잡은 맨스필드! 초짜 감독의 지휘력 문제없나?]-이걸 왜 감독 탓함?
-팀 내 베테랑 두 명이 부딪쳤는데 그럼 감독문제지 선수문제겠냐?
-감독이 장악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야. 둘 다 감독보다 나이 많잖아? 감독이 제어를 못 하는 거지.
-이래서 어린 감독은 쓰면 안 된다니까.
-괜히 관록 있는 노인네들이 감독으로서 성적 내는 줄 알아? 선수단을 장악해야 성적도 좋은 거 아냐?
-근데 맨스필드 지금 2윈데.
-2위가 성적 안 좋은 거야?
-이 새끼들 요즘 눈 높아졌네. 시즌 시작하기 전에 감독 못 구해서 전전긍긍했던 거 기억 다 지워버렸나.
여러모로 기자들을 이용한 건 맞다.
인터뷰 방향도 최대한 나를 탓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했으니까.
기자들을 불러 놓고 변죽만 울리면서, 은근히 열받게 만들기도 했다.
조금 감정이 상하기 시작한 기자들인 나를 비판하는 투의 기사를 줄줄이 작성했다. 무엇보다도 존 젠킨슨은 팀의 영원한 중심이고, 해리 오스카는 새로이 떠오르는 영웅이었다.
팬들은 저 둘이 불화를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 한다.
유니폼 판매 순위도 둘이 번갈아 1위와 2위를 하고 있으니 오죽할까. 나는 그런 팬심까지 이용했다. 선수 둘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한 감독을 탓하게끔.
-개소리들하고 자빠졌네. 감독이 지금 아득바득 혼자 팀 꾸려나가는 거 안 보여? 유진 아니었으면 새 감독 선임은커녕, 지금 리그 밑바닥에서 연패나 하고 있을걸?
“음.”
물론 모든 팬이 감정에 치우치진 않는다.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는 팬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오, 자일슨, 당신 칼럼 잘 보고 있어요!
-네 말이 맞아. 지금 이 자식들 뭐가 중요한지 갈피도 못 잡고 있어.
-유진만한 감독, 맨스필드가 어떻게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아?
그저 지나가는 댓글로 치부하기엔 뒤이어 달리는 내용이 많았다.
슬쩍 확인해 보니, 축구 블로그를 운영하는 아마추어 칼럼니스트였다.
하부 리그 중심으로 칼럼을 쓰는 그는 제법 추종자가 있을 정도로 유명해 보였다.
그가 강하게 나서자 분위기가 다시 바뀌는 듯했다.
그럼 곤란하지. 타닥, 키보드를 두들겼다.
-감독한테 돈 받았냐?
-뭐?
-돈 받고 옹호하고 칼럼 쓰는 거 아님?
-무슨 개소리야.
-누가 봐도 감독이 선수들 제어 못하는 건데, 실드치는 것 봐. 구단 프런트 아님?
아직은 나를 탓하는 여론이 많은 게 더 이롭다.
선수들은 압박감을 느끼면 필드에서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티가 난다.
감독도 압박을 느끼면 힘들어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거야 평범한 감독들 얘기다. 나는 비범(非凡)하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위로 치켜드니 릴리의 얼굴이 보인다. 릴리가 후다닥 옆으로 비켜섰다.
“읏, 그 각도로 보면 안 돼.”
“왜?”
“못생겨 보이잖아.”
“그러진 않는데.”
“…… 흠흠, 여하튼 뭐 하고 있는 거야?”
릴리는 내가 단 댓글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여론 관리.”
릴리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헛웃음을 켰다.
“그러니까, 너를 옹호하는 댓글을 까 내리는 게?”
“아직 내가 더 욕먹어야 하는 시점이거든.”
“맙소사. 왜?”
릴리의 얼굴에 속상한 기색이 떠올랐다.
“어차피 결과로 드러날 테니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선수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표적이 되면 그 선수는 어지간한 베테랑이라도 무너져. 한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기도 힘들고.”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골을 잘 넣던 공격수도, 무득점 경기가 서너 경기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강한 압박감을 느낀다. 그럴수록 득점은 실패하고, 비난과 차가운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악순환이다.
“선수는 유리컵 같거든.”
“…….”
탁자 위에 있는 유리컵을 톡톡 건드렸다.
“보기에 튼튼하고 좋아 보여도, 생각보다 쉽게 깨져. 그리고 한번 깨지면, 못 붙여. 새로 사야 해.”
“젠킨슨하고, 오스카가?”
릴리는 그 젠킨슨과 오스카가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 어렵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원래 겉으로 강해 보일수록 속이 여린 법이니까.”
“너도 그래?”
“난 속도 강해.”
“…….”
“그리고,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최선이지만, 이미 닥쳤으면, 최대한 이득을 봐야지.”
“이득이라니…….”
“리그 투의 기사란은 맨스필드가 범벅이야.”
“정확히는, 널 욕하는 얘기만 가득해.”
“아무튼. 결국 내 이름 앞에 오는 게 뭐야.”
모든 기사에는 단지 내 이름 유진 피셔만 적히지 않는다.
<맨스필드 감독, 유진 피셔.>
“사람들은 날 생각하면 맨스필드를 떠올리고, 맨스필드를 생각하면 날 떠올리게 돼. 언론의 노출이 계속된다는 게 그런 거거든.”
내가 원하던 바였다.
팬들은 감독 개인을 응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팀이다, 그저 자기 팀이 잘나가기를 바라고 염원한다. 은연중에 기사를 계속 접촉하는 팬들의 머릿속에 맨스필드와 내 관계가 마치 하나인 듯 전해진다면.
“성적으로 증명하면 돼.”
팬들은 결국 나를 응원하게 된다.
물론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수년은 걸릴 장대한 여정이다. 어렸을 때 봤던 팀의 감독이, 성인이 되어서도 팀의 감독이어야 느껴지는 감각.
나는 그걸 조금 더, 빨리 유도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날 비난하는 목소리라도, 결국 축구는 결과다. 승리가 거듭되고 성적이 나온다면 단숨에 바뀔 여론이다. 그러니 걱정도 없고, 압박도 느끼지 않는다.
“지금까지 언론에 노출된 것 포함해서, 우리만큼 리그 투에서 가장 빠르게 명성이 높아지고 있는 팀은 없을걸?”
“그게 좋은 명성은 아니긴 한데…….”
릴리는 차마 내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그녀는 헛웃음을 짓더니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우리 팀 경기 일정이었다. 내가 일정을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이 종이를 준 건…….
“앞으로 두 달 동안 8경기 전부, 모두 티비 중계 확정이야. 방금 연락받았어. 이 중 세 경기는 중계 때문에 두 시간 정도 당겨서 진행해야 하는데, 동의하겠냐는 협회 연락이야.”
“시간대도 크게 부담스럽진 않네. 진행해 줘.”
“…… 별로 놀란 얼굴이 아닌데, 설마 이것도.”
“팀이 화제가 되고 언론과 팬들의 주목을 받고, 궁금해지잖아. 저 감독이 정말 형편없는 초짜 감독인지, 선수들이 또 필드 위에서 싸울지, 그 장면이 카메라에 담기면, SNS나 커뮤니티에서 온갖 밈처럼 쓰일 정도로 파급력이 생긴다는 건 이번의 사건으로 증명됐고.”
“…….”
“그걸 방송국 사람들이 놓칠 리는 없어. 8경기 전부 중계가 잡힌 건 조금 예상 이상이긴 해.”
“아마도, 우리가 리그 투, 중계권료 1등이 될 거야.”
하부 리그지만 그중에서라도 중계권료를 가장 많이 받는다면…….
“재정에 큰 도움이 되겠어. 돌아올 이적 시장에서는 자금을 기대해도 될까요, 회장님.”
릴리가 내 미소를 따라 살포시 웃었다.
“물론이죠, 감독님. 돈주머니를 풀어야죠.”
* * *
콜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현재 리그 순위 6위로 다이렉트 승격이 주어지는 3위 안을 호시탐탐 노리는 야망 있는 팀이었다.
촘촘하게 나열된 리그 테이블을 보면, 콜체스터에게 리그 2위 맨스필드와의 경기는 흔히 말하는 승점 6점짜리의 경기였다.
“피터버러에게 일격을 맞기 전까진 5연승을 달린 만큼 위험한 팀입니다.”
“2대 0으로 끌려가던 직전 경기 크롤리전에서도 기어코 무승부를 만들어내는 거 보면 집념이 있기도 하고요.”
“쉽지 않은 팀이에요, 우리가 홈이라고 해도 확실히…….”
콜체스터의 코칭 스태프가 맨스필드 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건 당연했다.
특히 맨스필드의 이번 시즌 성적, 유진 감독의 변칙적인 전술,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실시간 전술 대응은 피터버러의 감독, ‘노신사’ 브랜드 바톤의 경계심을 일으켰다.
“개막전에서 반즐리 상대로 보여 준 유진 감독의 대니 스콧을 활용한 전술은 적재적소에 투입된 절묘한 한 수였습니다.”
“어린 유소년 제임스를 기용해서 오버래핑을 활용한 변칙도 대단했죠,”
“이후 해리 오스카를 활용한 공격 전술도 폭발적이었고요.”
“대니 스콧을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윙어까지 변경해 가면서 쓰는데 그 활용도가 대단합니다.”
“제임스와 스탠리의 포지션 변경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기도 했고요.”
브랜드 바톤의 경계에 따라 유진의 전술을 분석하던 코치진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놀랍고, 대단한 점은 알겠다. 그런데.
“그래서, 그 대단한 감독의 의중을 찌를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있나?”
브랜드 바톤의 말에 코치진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전술 싸움으로 가면…….
“쉽지 않습니다.”
코치 중 누군가 총대를 메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코치들도 말을 보탰다.
“분석은 되는데, 모르겠어요. 공격적인 색채는 분명한데 세부 전술을 파고들면 매 경기가 다릅니다.”
“보통 메인 전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도 성적이 좋으니…….”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메인 전술을 여러 개 들고 있는 느낌이나 다름없어요.”
브랜드 바톤이 손을 저었다.
“코치진들이 전술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을 내릴 정도면, 알 만하군. 저 감독, 리그 투에 어울리지 않는 전술가란 거.”
“…….”
“그럼, 전술로 대응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대응해야겠나?”
침묵 끝에 말을 꺼낸 건 바로 맨 처음 쉽지 않다고 과감히 말하던 코치였다.
“유진 감독을 직접 압박하는 겁니다.”
“직접 압박?”
코치는 직전 크롤리 전의 젠킨슨과 오스카의 멱살다짐의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지금 맨스필드 상태를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팀 분위기는?”
“최악이겠죠.”
“아침마다 기자들이 클럽하우스에 진을 친답니다.”
피피티 화면이 빠르게 전환됐다. 헤드라인 한 줄씩만 뽑은 기사들이 수십 개가 넘는다.
“허.”
놀람이 어린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거, 리그 투 맞나?”
감독이 쓰게 웃었다.
챔피언십의 팀을 지휘해 봤던 경험이 있는 노장에겐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마치 챔피언십 정도 되는 팀이나 받는 주목도 같지 않은가.
“축구보단 이슈라, 이건가.”
“아무래도 맨스필드 팀 자체가 장안의 화제니까요.”
“…….”
“비단 선수뿐만 아닙니다. 일전엔 코치 중에서 기존부터 일해 온 코치와 새로 온 수석코치가 벤치에서 언쟁을 벌이는 모습도 노출됐습니다. 코치 갈등, 선수들 싸움…….”
“감독이 전술가 타입이고, 라커룸 장악에는 실패했다?”
“젊고, 어린 감독인데다가, 이번이 첫 프로팀이니까요.”
“음.”
“지금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이런 언론의 포화는 리그 투에서 볼 수도 없었고, 신임 감독이 버티기엔…….”
“어렵겠지.”
30년 가까이 코치와 감독 생활해온 브랜드 바톤은 유진이 느끼고 있을 압박감을 가늠했다.
“실시간으로 전술에 대응하는 건 놀라운 능력입니다만, 반대로 생각하면 조금의 변수만 생겨도 곧장 필드에 나선다는 것이죠.”
“압박감을 계속 느끼고 있는 상황이면 일전보다 더 자주, 빈도 높게 지침을 내리고 대응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유로운 상황이면 모를까. 압박감을 느끼는 상태에서의 대응이 좋을 거란 건 좀 회의적이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고, 노릴 수 있는 건…….”
축구는 선수단의 퀄리티와 전술만으로 승패가 결정 나지 않는다.
때로는 이상할 정도로 느껴지는 기이한 분위기.
그것 하나만으로 흐름이 뒤바뀌는 법.
콜체스터는 이번 경기에서 무조건 승리를 거두기를 희망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했다.
“젊은 감독이 버티긴 어려운 압박이겠지.”
브랜드 바톤은 순순히 인정했다. 상대는 젊고, 강하다고. 새로운 생각과 톡톡 튀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피라고.
하지만 ‘노신사’ 브랜드 바톤은 단호히 말했다.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로 가득해도, 왜 관록이 축구계에서 중요한지 말이야.”
* * *
“리그 6위 팀인 만큼 중요한 경기인데, 그래도 긴장 안 해?”
릴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누가 누구 돈을 받고 실드친다고 그래? 유진 감독이야말로 지금 맨스필드에서 가장 중요한! 이런 멍청한. 당장 앞만 보고 넓게 보지는 못하는……
-나 유진인데, 돈 준 거 맞다.
-감독은 그런 말투 안 써요…….
유진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별로. 그래봤자 한 경기일 뿐인데.”
“말하는 것만 보면 한 수백 경기는 지휘해 본 감독 같아?”
“대충 비슷해. 한 시즌에 80경기 정도 치렀으니, 십 년 조금 넘었으니 천 경기에 가깝기도 해.”
압박감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 유진의 얼굴에선 관록이 묻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