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Tyrant of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72)
회귀한 필드의 독재자 71화(72/266)
71. 트라우마 (3)
짙은 긴장감이 가라앉았다.
경기를 앞둔 라커룸엔 특유의 공기가 흘렀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응축되고 또 억눌러진 열기.
선수들은 제각기 루틴대로 경기를 준비했다.
브랜들리 스탠리도 늘 했던 대로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
어째서인지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은 편치 않았다. 오늘만큼은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지저분하게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스탠리는 모든 잡념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어이, 괜찮아?”
“……오스카.”
“컨디션은 어때, 친구.”
“나쁘지 않아.”
“그래……?”
오스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묘한 눈빛이었다. 스탠리가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 알아. 무슨 걱정하는지.”
“걱정이라니, 네가 무슨 세 살배기 애도 아니고. 내가 왜 걱정하겠어?”
“눈빛하고 말이 너무 다르잖아?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하지만 지금 나는 재활에 성공했고, 성공적으로 시즌을 보내고 있어.”
“상대는 스윈던이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순간 날카롭게 쏘아지는 목소리.
도리어 당황한 이는 거칠게 쏘아붙인 스탠리였다. 순간 여러 얘기가 오가던 라커룸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선수들의 시선이 쏠렸다. 스탠리가 입술을 깨물곤 오스카에게 사과했다.
“미안. 경기 앞두고 신경이 곤두섰나 봐.”
오스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두들겼다.
오스카가 물러나자 선수들의 시선도 하나씩 멀어졌다.
단 한 명의 시선도 느껴지지 않은 순간이어서야.
스탠리는 저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후, 하.”
내뱉는 숨결이 희미하게 떨렸다.
스탠리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었다 폈다. 어찌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창백해진 손에는 핏기가 보이지 않았다. 스탠리는 그 손으로 제 무릎을 매만졌다.
‘괜찮아. 문제없어. 알렌스키 코치도 말했잖아. 상태 좋다고. 병원 닥터도 문제없다고 말했고. 난 멀쩡해.’
끊임없이 되뇌고 또 중얼거렸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무릎이 시큰거렸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삐걱거리는 불쾌한 감각이 떠올랐다.
스탠리는 어른이고, 베테랑이다. 똑똑히 알았다. 이건 착각이라고. 허상에 불과하다고. 머릿속 두려움이 만들어낸 고통스러운 기억일 뿐이라고.
―빠악! 삐빅, 빅!
―레프리! 레프리! 아니, 닥터! 빌어먹을! 들것이 아니라 응급차 들어오라고!
―뼈가 튀어나왔잖아! 빨리 오라고!
―이 개자식이, 사람을 죽이려고 태클해?!
―로드릭스 이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같은 선수야? 동업자 정신 어디 갖다 팔아먹었어!
머릿속에 떠오른 잡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를 지우면 두 개, 세 개가 떠올랐다. 그마저도 떨쳐 내면 목소리가 들렸다.
―무릎 골절, 다시는 선수로 뛰지 못할 수도…….
―재활을 해 봐도, 선수 생활은 숙고해야 합니다. 의사로서의 소견은, 뛴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다시는 공을 찰 생각은 말아라. 그토록 축구를 못 하게 막았는데, 결국 이런 일이 닥쳐야 그만두게 됐구나. 빌어먹을, 네가 어릴 때 내가 어떻게든 못 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감독님, 어려울 거 같습니다. 스탠리하고 재계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스윈던 이 개자식들! 내 선수를 이따위로 만들어?
―괜찮다. 우리 밤비, 할미가 기도해 줄게. 괜찮아질 거야.
머릿속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목소리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스탠리는 심호흡을 했다. 깊게 숨을 마시고 내뱉었다. 그는 자신의 라커 벽면에 붙여져 있는 사진을 바라봤다. 아직은 흰머리가 많지 않던 시절 할머니의 품에 안긴 누나와 어렸을 때의 스탠리, 그리고 살짝 떨어진 채 무심하게 카메라를 노려보는 아버지까지.
그리고 사진 옆에 작은 상자. 고작 어린애나 신을 수 있을 사이즈의 아주 낡은 축구화.
스탠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시간이 흘러도, 시계의 초침이 무심하게 지나가는 상황에서도 스탠리의 머릿속은 여전히 끔찍한 기억으로 아득하기만 했다.
라커룸에 유진과 막스가 들어왔다. 곧 경기가 시작된다. 유진은 전술적 설명과 지시를 전달했다. 선수들은 그에 응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초반 전술은 4-2-3-1 포메이션을 유지……”
“……앞서 말했던…… 이럴 땐 템포를…….”
“중요한 건…… 한 번 더……”
집중하려고 애를 써도 귓가엔 뜨문뜨문 목소리가 끊겼다.
스탠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깨물고 또 짓씹었다. 비릿한 쇠 맛이 입안에 감돌 때쯤.
불현듯 그는 뜨문뜨문 들려오던 목소리가 멈췄음을 깨달았다.
겨우 감았던 두 눈을 똑바로 떴을 때.
“스탠리 선수.”
뜨문거리던 음성이 아니라, 온전하고도 선명하게 박히는 나직한 목소리.
“필드로 나가세요.”
유진 감독은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 * *
스윈던은 홈 무패를 자랑한다.
상대 팀에 대한 분석은 끝도 없는 법이다. 불독 감독의 지원. 막스와 내가 비디오로 점검한 경기 내용. 그 전부를 살폈다. 최대한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분석하려 애썼다.
그러나 축구는 테이블이 아니라 그라운드 위에서 벌어지는 법.
“뒤져 버려라! 이 거지 새끼들아!”
“나가 뒤져라! 나가 뒤져라! 나가 뒤져라! 맨스필드 나가 뒤져라!”
“맨스필드의 거지들이 밥을 빌어먹으러 왔다네! 축구가 아니라 동냥질을 하러 왔다네!”
“내 평생 듣는 욕을 여기서 다 듣는 것 같아.”
막스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반전 휘슬이 울린 지 십 분.
그 십 분 동안 그치지 않고 온갖 고함과 욕설이 벤치 뒤에서 터져 나왔다.
“저치들은 자기 팀 응원이 아니라, 상대 팀 비난만 하는데?”
“뜨거운 응원의 열기지.”
“그래도 적당 선이라는 게 있다고.”
막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스윈던은 특별한 전술적 기량이 뛰어난 것도, 선수들의 수준이 리그 탑인 것도 아니었는데,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가 무엇인지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건만…… 이거였네.”
빠악―!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섬뜩한 파열음.
경기장에 일순 무서우리만큼 짧은 정적과 함께 시선이 한데 집중됐다.
삐빅―빅!
긴급하게 터져 나오는 휘슬이 짧은 침묵을 깨뜨렸다.
고함과 비명이 뒤따랐다. 함성과 야유, 온갖 소음이 잡탕처럼 뒤섞였다. 혼란스러운 필드에서 두 선수가 뒤엉켜 쓰러졌다. 대니 스콧이었다.
“레프리! 카드! 퇴장 주라고! 저 새끼 태클하면서 발 치켜들었다고!”
“이게 태클이야? 이걸 수비라고 한 거야?”
“퇴장 줘요, 심판! 스터드로 찍었다고! 사람 하나 작살내려고 했던 거야!”
선수들이 주심에게 달려가 양팔을 벌리고 어필했다. 반면 상대 팀은 가관이었다. 미안한 기색은커녕 무엇이 문제냐는 듯, 억울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기까지 했다.
그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우우우우우!”
“일어나, 이 새끼야!”
“엄살 그만 작작 부려라, 비루하게 늙은 더러운 개!”
“걷기 힘들면 요양원으로 꺼지라고!”
“눈 똑바로 떠 심판! 저게 왜 반칙이야!”
“정신 차려 심판!”
경기장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관중들의 외침.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언어의 폭력.
“진짜 너무하네!”
막스가 입술을 깨물고 방방 뛰었다.
프로판을 오래 굴러다닌 내가 보기에도 스윈던은 유난히 과했다.
그래도 나는 냉정을 유지했다.
“경기 현장에서야 알 수 있는 스윈던의 저력이야.”
“이걸 저력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 이게 무슨 축구야!”
심판은 주위에 휩쓸려선 안 된다. 뛰어난 명심판은 마치 기계같이 냉정하다. 주위에서 뭐라 지껄이든 본인의 눈과 판단을 신뢰한다.
참고로 영국은 심판에게도 승격, 강등이 적용되는 나라다.
그리고 여긴 4부리그다.
“뭐, 옐로?”
시종일관 쏟아지는 야유와 욕설에 심판은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연히 우리 팀도 난리가 났다.
“뭐? 이게 경고에 끝나?”
“레프리! 이봐요!”
실력 없는 심판의 대표적인 특징이, 판정은 개판이면서도 권위 의식에 찌들어있단 점이다.
“시끄러워! 번복 없어! 모두 제자리로 가! 옐로카드에 이름 적히기 전에 어서!”
그 첫 판정이 경기의 향방을 갈랐다.
바로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뭐? 이 정도 태클인데 경고에 그쳐?’
가히 반칙의 스폐셜리스트. 스윈던은 경고받지 않는 선에서 교묘한 축구를 이어갔다.
삑, 삑! 삑!
끊임없이 울리는 휘슬은 경기의 템포를 툭툭 끊어 먹었다.
우리 선수들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처참한 상황이 계속되자 선수단 전체가 위축되는 것이 보였다. 지켜보던 막스가 대기심에게 항의하기를 반복하다 지친 얼굴로 중얼거렸다.
“더러운 축구야. 이건.”
더러운 축구. 지저분한 플레이.
스윈던을 정의하는 하나의 색채.
그러나 그것이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무작정 비난할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도 저들의 거친 색채는 그저 겉면에 불과하다.
“우리가 잘하는 것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축구야.”
“……뭐?”
“상대의 뛰어난 장점을 지저분하게 질척이면서 못하게 늘어지는 거야.”
“……확실히.”
“대니 스콧을 완전히 봉쇄했어. 특별히 대단한 수비 전술이나, 특출난 수비 실력을 가진 선수가 아닌, 이 홈경기라는 이점과 주심의 성향을 이용한 더럽고 거친 색채로 말이지.”
“…….”
막스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그의 표정이 고심으로 깊어졌다. 답을 찾는 기색이다. 하지만 답은 간단하다.
“잘하는 게 하나일까 봐?”
다른 걸 하면 된다.
* * *
벤치에서 얘기를 나눴다. 막스뿐만 아니라 알롭 코치와 서브 선수의 워밍업을 돕던 알렌스키까지 모여서 머리를 맞댔다.
“그렇게 하겠다고?”
“음, 확실히 공격 루트를 만들 수 있겠는데요.”
전술적 역량을 갖춘 알롭과 막스는 눈을 빛냈다.
즉시 막스는 그 자리에서 적합한 포메이션과 지침을 떠올릴 정도였다. 관록 깊은 알롭의 눈에도 무엇이 변할지 보이는 듯했다. 실마리를 엿본 듯한 눈빛이었다.
“잠깐만요, 그렇게 하면…….”
반면 알렌스키는 이해가 다소 늦었다.
피지컬 코치인 그는 경기 전체를 보는 시야가 좁기 때문이다.
뒤늦은 이해 끝에 그는 맹점을 발견했다.
“그거, 스탠리한테 부담을 안겨 주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스탠리가 미친 듯이 뛰고 부딪치고 싸워야 한다는 얘기잖아요. 지금 역할이.”
“예, 정확합니다.”
“아니, 잠시만요. 감독님. 지금 스탠리는 감독님도 아시겠지만요, 이 친구, 불안한 상태예요. 지금 필드에서도 예, 보이시잖아요.”
알렌스키의 말대로였다.
“스탠리, 지금 제 기량은커녕, 위험합니다. 지금 스윈던 애들 미친개처럼 뛰어다니는데, 물리면 그냥 골로 가는 거라고요.”
그의 이해도는 생각보다 높았고, 정확했다. 그의 말에 막스도, 알롭도 슬쩍 눈치를 보면서 찔린 듯한 표정을 짓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핵심을 짚었다.
“예. 스탠리 선수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기려면요.”
“그 희생이, 부상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선수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 안 하십니까? 지금 스탠리는 오히려 교체로 빼 주고 보호해 줘야 할 정도입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뭐가 필요하죠?”
“……!”
“무얼 해야 극복할 수 있죠?”
알렌스키의 말문이 막혔다.
“알렌스키 코치는 참 좋습니다.”
“……예?”
“훌륭히 제 역할을 해주고, 선수들 생각도 많이 하고, 심리상담사가 없는 우리 팀에서 선수들 멘탈도 챙겨 주시고. 훌륭한 코칩니다.”
알렌스키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꼭 한 번씩 엇나가요.”
“……!”
“코치. 직책이 뭡니까.”
“……피지컬 코치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선수 교체에 대한 의견은 여기 수석 코치와 전술 코치인 알롭 코치만이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모든 최종 판단은 감독이 합니다.”
* * *
라커룸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대니 스콧은 불편한 표정을 꿈틀거렸다. 태클을 몇 번 당했는지 발목이 부어올랐다. 비단 그뿐만 아니었다.
선수들은 하나같이 찡그린 얼굴이었다. 단지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하나같이 자잘한 타박상에 고통을 느낀 탓이다.
무엇보다 경기 직전 반칙에 계속 당하다가 선제골을 내줬다.
한 골 차로 끌려가는 상황은,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최악이었다.
그 무거운 침묵 너머로.
코치진이 들어왔다.
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하프타임의 라커룸.
경기 전체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순간.
선수들의 집중력이 일제히 한 데에 쏠렸다.
그때.
“스탠리 선수, 따로 얘기합시다.”
별안간 유진이 스탠리만을 따로 불러서 라커룸을 나갔다.
라커룸에 당황스러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스탠리가 굳은 얼굴로 따라나선 뒤에야 막스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감독님을 대신해서, 변경 사항과 지침을 전달하겠다.”